지난 7월 8일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에서 ‘타다드라이버 비상대책위원회’가 타다드라이버 부당해고 첫 법원판결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7월 8일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에서 ‘타다드라이버 비상대책위원회’가 타다드라이버 부당해고 첫 법원판결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사람들의 편리한 ‘랜선 라이프’는 플랫폼 노동자 덕분에 유지된다.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 등이 발표한 추산에 따르면 지난해 8~9월 기준 플랫폼 노동자 규모는 약 200만명에 달한다. 전체적인 규모보다 더 눈길을 끄는 건 커지는 속도다. 한국노동연구원은 2020년 10~11월 기준 플랫폼 종사자를 약 179만명으로 추산했다. 약 20만명 정도 늘어나는데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점점 많아지는 ‘플랫폼 노동자’의 지위를 어떻게 볼 것인지는 국내외에서 뜨거운 쟁점이 돼 왔다. 플랫폼이 사용자인지 중개자인지, 플랫폼 노동자가 근로자인지 프리랜서인지는 쉽게 결론이 나지 않던 문제다. 그런데 최근 법원이 ‘차량 호출 서비스’ 타다의 기사로 일했던 사람들에 대해 쏘카에 고용된 근로자가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보호 필요성은 인정, 근로자성은 불인정 

지난 7월 8일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 유환우)는 VCNC(타다 운영사)의 모회사인 쏘카가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를 상대로 제기한 타다 전직 운전기사 A씨에 대한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앞서 중앙노동위원회는 부당해고 구제신청에서 기사 쪽의 손을 들어줬는데 이번에는 법원이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다. 이번 판결이 의미가 있는 건 200만 ‘플랫폼 노동자’의 근로자성을 다룬 첫 판결이었기 때문이다.

타다 베이직은 쏘카·VCNC가 2018년 서비스를 시작한 렌터카 기반 차량 호출 서비스다. 고객이 호출하면 용역업체와 계약을 맺은 운전기사가 차량을 부를 수 있어 프리미엄 택시처럼 이용할 수 있었다. 이번에 소송을 낸 A씨는 2019년 5월 VCNC와 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했고 타다의 차량을 운행했다. 하지만 택시업계의 반발로 타다금지법으로 불린 ‘여객자동차법 개정안’이 2020년 3월 국회를 통과하자 쏘카 측은 서비스를 중단했다. 이때 A씨를 포함한 운전기사 70여명과도 계약을 해지했다.

계약 해지 이후 A씨는 쏘카의 부당해고를 주장하며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지만 각하됐다. 하지만 중앙노동위원회는 2020년 5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쏘카가 운전자에게 운행 매뉴얼을 제공하고 근로조건 등을 결정했다는 점에서 쏘카를 실질적 사용자로, A씨를 고용된 근로자로 봤다. 따라서 계약 해지가 부당하다는 게 중노위가 내린 결론이었다. 쏘카는 이런 판정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냈고 이번 법원의 판단은 이런 재심판정을 뒤집은 결과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얘기다.

‘긱 워커’나 플랫폼 노동자라는 단어는 이미 보통명사처럼 됐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경제 생태계는 일시적 유행이 아닌, 시대의 변화로 자리 잡았다. 따라서 새롭게 등장한 이 노동 형태를 어떻게 정의할지는 매우 중요한 과제인데 이번 판결은 그래서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업계에서는 타다 기사들이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했다면 배달과 배송 등 다른 종류의 플랫폼 노동자들은 더욱 인정받기 어려울 거라고 본다. 타다는 자기 차량이 아니라 차량을 업체로부터 제공받고 가이드에 따른 복장을 입으며 운행실적까지 포함하는 ‘드라이버 레벨제’를 시행해왔다. 이처럼 다른 곳보다 플랫폼의 통제가 훨씬 강한 편이었는데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되지 못했다. 그만큼 타다 판결은 플랫폼 노동자에게 중요했다. “이런 사람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면 누가 근로자인가. 법원이 사용자들이 근로기준법을 회피하면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혁신적 경영 모델을 만드는 위대한 일을 하셨다”(구교현 라이더유니온 사무국장)는 비판이 나온 까닭이다.

이번 판결에서 곱씹어볼 또 다른 대목은 재판부의 고민이다. 재판부는 플랫폼 노동 종사자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타다 기사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이 법으로는 보호받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플랫폼 노동 종사자에 대한 보호 필요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근로기준법상 사용종속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데도 관련 법리를 적용하는 건 근로기준법의 입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봤다.

안진수 노무법인유앤 파트너 노무사는 “근로기준법은 굉장히 꼼꼼하고 광범위하게 규정된 법이다. 만약 위반이 생길 경우 계약 자체가 무효가 되기 때문에 계약 당사자가 근로기준법에 적용받는 근로자인지 아닌지에 관한 검토가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그런데 근로기준법 자체가 2~3차 산업, 특히 제조업 노동자들을 전제로 하고 만들어진 법이기 때문에 이 법을 플랫폼 노동자에 적용해버리면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법 자체가 안 어울리는 거다”라고 지적했다.

 

“타인의 노동 활용에 대한 문제의식 부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공유경제질서의 출현에 따른 다양한 형태의 사적 계약관계를 존중할 필요성도 있고, 따라서 플랫폼 노동 종사자에 대한 계약관계의 일방적 종료 등에 대하여 규제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별도의 입법을 통하여 규율하거나 근로기준법의 개정을 통하여 규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새로운 법의 필요성은 플랫폼 노동자들이 갖는 모호성 때문이다. 이번 뒤집기 판결에서 보듯 플랫폼 노동자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판단할지 여부는 사용자도 노동자도 매번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문제가 됐다. 게다가 다양한 플랫폼 업종에는 무수히 많은 노동 유형이 존재한다. 매번 딱 떨어지는 해답을 얻을 수 없다.

일단 플랫폼 노동자 입장에서는 보호를 받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법적 지원이 필요하다. 플랫폼 기업 입장에서도 이런 모호한 법적 결과를 없애는 게 도움이 된다. 한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이런 소송들의 향방을 매번 점치기 어렵다 보니 투자에도 리스크로 작동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플랫폼 기업의 각성을 이끄는 측면에서도 법적인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다. 플랫폼 기업에 자문활동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플랫폼 사업 모델을 가진 스타트업과 상담해보면 타인의 노동을 활용해 수익을 내는 것에 대해서 문제의식이 너무 없어서 놀랄 때가 있다. 어울리지 않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다 보니 매번 이 문제가 ‘혁신’과 ‘규제’의 충돌로만 비치고, 그러다 보니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 사업가들이 고민을 덜 하게 된다. 플랫폼 노동에 맞는 법이 있다면 그런 문제들도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2020년 1월부터 운전·배달기사 등 플랫폼 종사자를 자영업자가 아니라 노동자로 재분류하도록 한 ‘AB5 법’이 시행되고 있다. ‘플랫폼 노동자가 실제로 노동선택권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플랫폼 사업자가 입증하지 못하면 피고용자로 간주한다’는 게 핵심이다. 이처럼 혁신의 물꼬를 막지 않으면서도 그 흐름을 적절히 규제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할 때가 우리에게도 왔다. 이번 판결이 그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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