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2일 경남 창원 두산에너빌리티에서 열린 원전산업 협력업체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2일 경남 창원 두산에너빌리티에서 열린 원전산업 협력업체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정부가 ‘탈원전 폐지’를 공식화하는 ‘새 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을 확정했다. 현실적·합리적 에너지 믹스 재정립, 튼튼한 에너지 안보 강화, 시장 경제 기반의 에너지 수요 효율화가 목표이고, 2030년까지 원전의 발전 비중을 30% 이상으로 확대하는 것이 핵심 과제다. 국제적으로 약속한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지키기 위해 원전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무분별한 태양광·풍력의 보급과 비현실적인 석탄 화력 감축의 속도도 적절한 수준으로 조절한다. 경제성·안전성·환경성·안보성의 네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를 밝힌 것이다.

 

 탈원전 광풍에 흩어진 학생들부터 불러모아야

전력수급은 당장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도 하기 전부터 이미 전력 공급 예비율과 예비력이 위험한 수준으로 떨어져 버렸었다. 더위가 막 시작되고 있었던 지난 7월 5일부터 사흘 동안 전력 예비율은 안정적인 공급 기준인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7월 7일에는 공급 예비율이 7.2%로 떨어지고, 공급 예비력은 6.73GW까지 내려갔다. 공급 예비력이 5.50GW 아래로 떨어지면 비상경보 1단계인 ‘준비’에 돌입한다. 비상경보는 전력 수급 상황이 몹시 위태로웠던 2013년 8월 이후 한 번도 발령된 적이 없었다.

8월의 사정은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산업부의 전망에 따르면 8월 둘째 주의 최대 전력수요는 사상 최대인 95.7GW를 넘어선다. 작년의 최대 전력수요 91.1GW를 훌쩍 넘어서게 된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공급 예비율은 5.4%까지 떨어지고, 예비력은 5.2GW까지 내려간다. 폭염이 극에 달해서 전력 수요가 늘어나는 낮 시간 동안 태양광 설비의 발전 효율이 떨어지면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지난 5년 동안 탈원전을 핑계로 우후죽순처럼 건설해놓은 민간 LNG화력발전소가 무탈하게 전력을 공급해주기를 바라야만 하는 형편이다.

적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한전을 살려내는 일도 시급하고 절박하다. 지난해 5조8601억원에 이어 올해 1분기에만 7조786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연말에는 30조원의 적자를 예상하고 있는 한전을 그냥 둘 수는 없다. 한전이 좋아서가 아니다. 한전이 무너지면 우리의 전력 수급 체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버리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명백한 현실이다. kWh당 192.75원에 구입한 전기를 소비자에게 56.1%의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는 비정상으로는 한전의 정상화가 불가능하다. 에너지 산업을 태양광·풍력업자의 노후 복지연금으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

지난 5년 동안 참혹하게 무너져버린 원전 생태계의 복구도 절박하다. 지난 60년 동안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시킨 원전산업의 붕괴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다. 뼈를 깎아내고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견뎌내고라도 창원의 원전 부품산업을 살려내야 한다. 물론 무작정 예산을 쏟아부을 수는 없다. 그러나 세계 최초로 원전을 건설했던 영국이 태양광·풍력에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원전 건설 능력을 통째로 상실해버린 경험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는 온전한 착각이다.

원자력 인재 양성 체계를 복구하는 일도 시급하다. 고급 인재의 부족은 반도체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앞장서서 주도한 탈원전의 광풍에 놀라 등을 돌려버린 젊은 학생들을 다시 불러모아야 한다. 인재 양성의 맥이 끊어지면 미래 에너지의 개발과 에너지의 안전한 활용이 불가능해진다.

태양광·풍력의 무분별한 확대로 훼손된 자연환경과 전력 공급 체계를 복구하는 일도 중요하다. 태양광·풍력이 지속가능하고 친환경적이라는 주장은 비현실적인 환상이다. 수명이 20년에 지나지 않고, 가동 시간도 하루 평균 3시간을 넘기 어려운 것이 명백한 현실이다. 수명을 다한 태양광 패널과 풍력 블레이드가 수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폐기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과도한 태양광·풍력 설비가 전력망의 안정적 운영을 어렵게 만든다는 사실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제주도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는 진실이다.

‘그린’ 수소에 대한 환상도 버려야 한다. 하루 3시간도 운영하지 못하는 태양광·풍력으로 가동하는 수전해 설비는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할 수가 없다. ‘깨끗한 물’에서 수소를 생산한다는 주장도 화학적 현실을 무시한 엉터리 궤변이다. 물을 전기분해하려면 독성과 부식성이 강한 ‘전해질(電解質)’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개발을 위한 투자가 필요한 수소를 현재의 기술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산업부 관료들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국무회의에서 확정된 ‘새 정부 에너지 정책방향’에 대한 엄청난 양의 보도·해명자료를 쏟아내고 있다. 탈원전을 적극 옹호하던 입장을 한순간에 훌훌 털어버리고 원전의 안전성과 환경성을 강조하는 관료들의 변신이 안타까운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관료들의 변신을 무작정 탓할 수는 없다. ‘너 죽을래’라고 외치던 후안무치한 장관의 폭력적 요구를 거부하는 일은 절대 쉬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새 정부 토론회에도 참가한 탈원전 선동가들

그런데 새 정부의 탈원전 폐지 정책을 홍보하기 위한 정책 토론회에 탈원전 선동가들을 대거 동원한 관료들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산업부의 에너지전환정책과가 주최한 ‘새 정부 에너지 정책 방향 공청회’ 자리를 지난 정부에서 활동하던 탈원전 선동가들로 가득 채워버렸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만고불변의 원칙을 철저하게 무시해버린 것이다.

탈원전 폐지 정책의 홍보를 ‘원전은 위험하다’고 외치던 탈원전 선동가들에게 맡기겠다는 발상은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모르고 그랬다면 무능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알고도 그랬다면 사정이 다르다. 새 정부의 정책을 교묘하게 거부하는 고약하고 비겁한 행태라고 할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정책보다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면 떳떳하게 커밍아웃을 해야 한다. 제도적 절차를 거쳐서 확정된 정책을 은밀하게 훼손하겠다는 시도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도 숟가락을 얹어보겠다는 탈원전 선동가들의 행태도 부끄러운 것이다. 원전이 위험하고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전문가의 소신은 탈원전 폐지 정책과 절대 어울릴 수 없는 것이다. 한 입으로 두 가지 상충되는 주장을 쏟아내는 전문가는 더 이상 전문가로 대접해줄 이유가 없다. 스스로 영혼을 포기한 기회주의자로 대접하는 것이 마땅하다.

탈원전 선동가들이 산업부의 정책토론회만 기웃거리는 것도 아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도 탈원전 선동가들에게 포획당한 상태다. 임기를 핑계로 자신의 소신을 감추거나 포기해버리는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탈(脫)영혼’을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한다. 자신의 알량한 소신이 국민 안전과 국가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거대 야당이 국회를 틀어쥐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법과 제도를 충실히 지키는 탈원전 폐지가 실현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새 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에서 탈원전의 어두운 파편들을 찾아내 제거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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