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7일 체첸 군인들이 키이우 외곽에서 훈련을 마친 후 체첸 국기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러시아군의 총알받이로 충원되는 체첸이 러시아군의 사기 저하를 틈타 독립전쟁을 벌일지 주목된다. photo 뉴시스
지난 8월 27일 체첸 군인들이 키이우 외곽에서 훈련을 마친 후 체첸 국기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러시아군의 총알받이로 충원되는 체첸이 러시아군의 사기 저하를 틈타 독립전쟁을 벌일지 주목된다. photo 뉴시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의 패전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지난 9월 초부터 본격화된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러시아군은 동부에서 하르키우를 내주고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특수작전’의 목표라고 밝혔던 돈바스 지역에서도 40% 이상의 영토를 확보한 상태이며, 남부 헤르손에서도 탈환지역을 늘려가고 있다. 러시아군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지 못할 경우 전쟁에서 패할 가능성도 크다고 서방 분석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푸틴은 지난 9월 21일 부분적인 동원령을 선포하는 한편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언급했다. 서방 분석가들은 푸틴이 부분동원령으로 예비군 30만명을 확보할 수 있지만 훈련이나 장비가 미비하기 때문에 수세에 몰린 러시아군에 도움이 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으로 보기도 한다.

러시아군이 전쟁에서 패할 경우 푸틴 대통령의 실각, 나아가서는 러시아연방의 해체까지 일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벌써 중앙아시아에서는 러시아의 영향력이 퇴조하는 조짐이다.  

미국의 전쟁연구소(ISW)는 지난 9월 19일 동부 하르키우를 탈환한 우크라이나군이 여세를 몰아 돈바스 지역인 루한시크 및 도네츠크주로 진격하고 있지만 러시아가 저지할 방법이 없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군의 공세는 러시아 핵심부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으며, 러시아군 엘리트부대의 사기도 크게 저하시키고 있다고 ISW는 분석했다. 남부 헤르손 지역에서는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의 보급선을 공격하며 점령지를 조금씩 되찾아가고 있다. 러시아군에게는 병력 충원이 가장 큰 난제라고 ISW는 지적했다.

러시아 병사들이 지난 7월 11일 볼고그라드 2차대전 참전비 앞에서 우크라이나 참전 군인들에 대한 지지 행진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는 청년 남성 인구가 격감하면서 병력 보충에 애를 먹고 있다. photo 뉴시스
러시아 병사들이 지난 7월 11일 볼고그라드 2차대전 참전비 앞에서 우크라이나 참전 군인들에 대한 지지 행진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는 청년 남성 인구가 격감하면서 병력 보충에 애를 먹고 있다. photo 뉴시스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군의 소수민족 비율

서방 측 분석가들이나 미디어들은 우크라이나의 반격 대성공 이후 러시아의 패전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다. 벤 호지스 전 유럽주둔미군 사령관은 지난 9월 14일 영국 텔레그래프 기고문을 통해 서방이 “러시아 붕괴에 대비하여 지정학적인 부담들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러시아가 신뢰의 위기에 직면할 것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며 “실제로 푸틴이 드러낸 약점이 너무 심각해서 우리는 푸틴 정권뿐만 아니라 러시아연방의 종말이 시작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120개 민족을 품고 있는 러시아연방의 붕괴는 처음에는 서서히 진행되지만 종국에는 통제불능 상태로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며 “서방이 소련 붕괴에 대비하지 않았던 것처럼 러시아의 붕괴에 대비하지 않는다면 지정학적으로 엄청난 불안정이 초래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호지스 장군은 러시아연방 붕괴를 초래하는 요인은 최소한 세 가지라고 지적했다. 첫째, 러시아에서 전통적으로 정권 정통성의 기반이 되어온 러시아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추락하는 것이다. 본래 러시아 남성들은 군의 봉급에 이끌려 군에 지원해왔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을 겪으면서 군 기피 현상이 나타나고 대규모 충원이 어렵게 됐다. 이 때문에 체첸이나 다른 소수민족의 군 복무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면서 사정은 악화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이 총알받이로 이용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체첸이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전쟁을 시작한다면 푸틴의 러시아는 군사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러시아 지도부에 대응수단이 없으면 다른 유사한 반란이 전역에서 발생할 수 있다.

둘째, 에너지시장에서 입은 손실 때문에 러시아 경제는 1억4400만명의 인구를 지탱할 수가 없다. 러시아의 또 다른 수입원이었던 무기수출은 이제 유지되지 어렵다. 지금 러시아의 무기를 구입하려는 나라는 거의 없다.

셋째, 러시아는 방대한 영토에 비해 인구가 너무 작다. 영토는 영국의 70배나 되지만 인구는 2배에 불과하다. 지금처럼 국가의 중심이 취약한 상태에서는 국가정체성도 금방 사라질 수 있다. 호지스 장군은 “서구는 30년 전에 소련의 붕괴와 내부문제에 대비하지 못하여 결국 푸틴 정권이 들어섰다. 이번에 또다시 두 번째로 대비하지 못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의 재앙적인 인구 감소

호지스 장군이 지적한 러시아 붕괴요인들 가운데서도 인구문제는 러시아 내외의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지난 8월 9일 러시아 미디어 ‘나카누네’는 러시아의 올 6월 출생률이 10%나 급락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통계국에 따르면 지난 6월 러시아에서는 11만2000명이 태어났다. 이는 지난해 6월보다 10%나 감소한 수치이다. 공식통계를 작성한 2006년 이후 기준으로는 출생률 최저 기록이다.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도 2000년대 최저 수준인 53만5000명이 태어나는 데 그쳤다.

미국 제임스타운재단의 폴 고블 연구원은 지난 8월 “러시아에서 장기간의 인구감소가 다시 시작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국가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이 될 뿐만 아니라 경제회복이나 대규모 군사력 양성에도 장애가 된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인구학자인 알렉세이 라크샤도 지난 4월 발표된 인구센서스와 러시아 통계국의 8월 자료 등을 바탕으로 상황이 “재앙 수준”이라고 최근 주장했다. 예컨대 2022년 들어 첫 5개월 동안 러시아 인구는 무려 43만명이나 감소했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훨씬 많은 수준이며 올 한 해 동안 100만명 이상의 인구감소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2021년에는 이민자를 받아들여 인구감소를 보충했지만, 올해는 오히려 인구유출이 급증하면서 전체적인 인구감소를 심화시켰다고 한다.

라크샤는 인구감소의 원인으로 젊은 세대들이 아이를 적게 낳으려는 경향이 지속되는 점, 정부의 재정난으로 인한 인구증가 정책의 약화, 많은 러시아인들이 경제난과 전쟁 때문에 미래를 불안하게 보는 점 등 세 가지를 지적했다. 이러한 요인들이 출산율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출산이 가능한 젊은 여성의 숫자도 감소시켜 러시아가 인구감소 문제에서 벗어날 능력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러시아에서 가임기 여성은 매년 3%씩 감소하고 있다. 현재의 인구가 유지되려면 여성 1명당 2.2명을 출산해야 하지만 1.5명 이하로 떨어진 상황이다. 라크샤는 러시아 정부가 아이를 많이 낳은 여성들에게 ‘어머니 영웅’ 칭호나 부여하는 수준의 소련식 방식을 지속하거나, 이웃 나라들을 침략하여 영토나 인구를 획득하려는 정책에 의존한다면 이러한 재앙적 전망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라크샤는 러시아가 2014년 병합한 우크라이나 크름반도의 인구를 포함시켜 2010년 이후 인구가 증가했다고 억지 주장을 펴는 점을 인구정책 부재의 근거로 지적하기도 했다.

많은 러시아인들은 다음 세 가지 트렌드를 대단히 위협적으로 평가한다. 첫째, 인구센서스 결과 자연적으로 인구가 증가하는 지역들은 비(非)러시아 인종이 살고 있는 지역들이다. 러시아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는 인구가 줄고 있다. 이는 러시아가 인종적으로 덜 러시아적인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는 의미이다. 둘째,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러시아 사망자 중 많은 비율이 남성 노동인구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이는 러시아의 경제와 출생률을 크게 손상시키고 있다. 셋째, 푸틴에게 가장 긴급하고 중요한 문제는 징집연령에 해당하는 남성의 숫자가 급격히 감소한다는 것이다.

지난 9월 20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이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군산 복합 업체 리더십 미팅을 주관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9월 20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이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군산 복합 업체 리더십 미팅을 주관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러시아 사망자의 24%가 생산연령

러시아의 경제미디어 ‘휘난스’가 지난해 2월 보도한 바에 따르면 실제 러시아 전체 사망자의 24%는 생산연령(working age)에서 발생하며 특히 이 중 80%는 남성이다. 이 미디어는 “러시아인의 5분의1은 근로하는 남성이다. 즉 누군가의 아버지, 남편, 아들로 가족뿐만 아니라 국가의 웰빙을 책임지고 있다. 그런데 통계를 보면 러시아는 전쟁하는 시리아 수준이다. 이는 공포스러운 상황이며 빨리 개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휘난스의 전망에 따르면 러시아 인구가 현재 추세를 유지한다면 2030년까지 550만명 이상 감소한다. “이는 2차대전 당시 사망자의 30% 수준이며 모스크바 전체 지역 인구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휘난스는 개탄했다.

이런 인구문제는 바로 군사력으로 직결된다. 예컨대 러시아가 2032년까지 육군을 현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징집률을 현재의 6.31%에서 8.01%로 늘려야 한다. 하지만 러시아의 인구, 특히 청년 남성 인구가 격감하는 상황에서 이는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 

당장 러시아 연방 붕괴나 해체는 아니더라도 러시아의 인접국에 대한 영향력은 급격히 퇴조하고 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크렘린은 서방이 구소련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배타적 영향력을 인정하라고 요구해왔다. 이는 러시아 외교정책의 근간을 이룬다. 우크라이나 키이우대학의 타라스 쿠지오 교수는 지난 9월 17일 미국 ‘애틀랜틱’에 기고한 ‘푸틴의 제국은 소련처럼 붕괴하고 있다’는 논문에서 “러시아는 1991년 소련 해체를 진정으로 인정한 적이 없으며 소련의 제국주의적 영향력을 회복하려 하였다”고 설명했다. 러시아는 소련으로부터 물려받은 방대한 육군을 이용하여 구소련에 속했던 약소국들을 압박하면서 경제적 유대를 활용하여 러시아의 안보체제에 합류하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쿠지오는 “러시아가 압도하는 체제는 이제 도전받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우크라이나의 군사적 승리는 러시아가 초강대국이라는 주장과 러시아군에 대한 신화를 산산이 부숴버렸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대놓고 러시아 무시하는 아제르바이잔

최근 러시아의 영향력 퇴조가 눈에 띄게 나타나는 것은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분쟁에서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소련 붕괴 이후 각각 독립하였다. 아제르바이잔 내에 있는 나고르노카라바흐에는 아르메니아인들이 살고 있다. 소련 붕괴 이후 이를 놓고 두 나라 간에 전쟁이 일어나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 1994년 평화협정으로 아르메니아가 나고르노카라바흐와 인접 지역을 사실상 통치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2020년 55일간의 전쟁이 다시 벌어지면서 원유수출로 부강해진 데다 터키의 지원을 받는 아제르바이잔이 대부분의 영토를 회복하였다. 아르메니아는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일부 지역만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러자 러시아는 이곳에 평화유지군 명목으로 2000여명의 병력을 주둔시켜 휴전이 유지되었다. 그러나 최근 아제르바이잔은 우세한 국력을 바탕으로 아르메니아 국경 주변에 많은 병력을 주둔시키는 등 위협적인 정책을 구사하였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 주변에 대규모 병력을 주둔시켜 협박하는 방식과 흡사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아제르바이잔의 협박은 더욱 강화되어 카라바흐 주민들에 대한 가스 공급을 중단하고 아르메니아인들에게 떠나라고 강요하기까지 했다. 최근에는 포격전으로 양측에서 1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일도 벌어졌다.

경제와 안보를 러시아에 크게 의존한 아르메니아는 러시아가 이번에도 집단안보조약기구(CSTO)군을 동원하여 아제르바이잔을 억제해줄 것을 기대하였다. 그런데 2020년과는 상황이 달라졌다. 러시아 평화유지군 2000명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되어 이제는 평화유지군을 유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반격으로 하르키우에서 대패하고 헤르손에서도 수세에 몰리는 상황에서 군사적으로 두 나라 간의 분쟁에 관여할 여력이 없다. 분석가들은 아제르바이잔이 러시아의 수세적 지위를 이용하여 아르메니아에 선공(先攻)을 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아르메니아로서는 더 이상 러시아를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지난 9월 18일 미국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을 방문하자 수많은 시민들이 미국 성조기를 들고 몰려나와 열광적으로 환영한 것은 의미심장한 장면이다. 미국의 ‘폴리티코’는 지난 9월 19일 아르메니아 시민들이 러시아 기자들에게 “가서 러시아나 취재하라. 점령자는 물러가라!”고 소리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폴리티코는 “시민들이 펠로시를 환영하기 위해 든 성조기는 대단히 중요한 정치적 메시지이다. 아르메니아는 지난 수년간 러시아를 전략적 동맹으로 선택했지만, 이제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가 아제르바아잔의 위협으로부터 안보를 보장해줄 수 있는지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조지아의 반란 가능성

러시아가 중앙아시아에서 철군하면서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간에도 국경분쟁이 새롭게 발생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에서 변화하는 역학구조는 지난 9월 15~16일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 정상회담에서도 드러났다. 인도와 중국의 정상들이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은 푸틴과의 양국 정상회담 전에 푸틴을 기다리게 만들기도 했다. 푸틴은 다른 정상들을 기다리게 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지만 이번에는 입장이 바뀌었다. 

러시아의 퇴조는 조지아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에 대항하는 외국인 군대 중에서는 조지아 군단이 가장 대규모이다. 조지아가 러시아의 퇴조를 이용하여 러시아가 독립국가로 인정한 남오세티야와 아브하지아의 분리지역에 개입할 가능성도 매우 크다. 

러시아가 주도하는 CSTO나 유라시아경제연합은 이제 작동하지 않는다. 지난 30년 동안 러시아의 비공식 제국에 속해 있던 나라들은 러시아에 등을 돌리고 자신들의 살길을 찾아가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몰도바는 EU의 영향권으로 진입하고 있으며, 아제르바이잔은 터키와 전략적 동맹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조지아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등은 중국과의 관계강화에 나서고 있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실패는 러시아의 영향력이 지난 수백 년 동안 경험하지 못한 정도로 급격히 퇴조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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