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8일(현지시각)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총리(오른쪽)가 사우디 수도 리야드의 왕궁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12월 8일(현지시각)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총리(오른쪽)가 사우디 수도 리야드의 왕궁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8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알려지자 당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시진핑 주석의 사우디 방문이 ‘페트로 달러 체제’를 흔들 수 있다고 보도했다. WSJ는 지난 3월에도 ‘석유 수출액의 4분의1을 중국에 판매하는 사우디가 중국과의 석유 거래에서 달러 대신 위안화로 받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실제로 중국과 사우디는 2016년부터 위안화로 석유를 거래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해왔다.

지난 7월 자존심을 굽히고 급히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찾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차갑게 영접했던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12월 7일 시진핑 주석이 방문했을 때는 가히 하늘과 땅 차이의 환대를 했다. 

 

중국 쪽으로 급격히 기우는 사우디

시진핑을 태운 전용기가 사우디 영공에 들어서자 사우디 왕립 공군 전투기 4대가 영접 나가 전용기를 호위했으며, 리야드 영공에 진입한 후에는 왕립 곡예비행단 소속 사우디 호크 제트기 6대가 전용기와 동반 비행을 한 뒤 하늘을 중국 국기 색깔인 빨간색과 노란색으로 물들였다. 그리고 지상에서는 시 주석의 차를 중국과 사우디 깃발을 든 사우디 왕실 근위대 기병들이 호위해 왕궁으로 모셨다.

의전만이 아니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시진핑을 위해 아랍 국가 정상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지난 12월 8일 34개 협약을 체결한 중국·사우디 양자 회담에 이어 12월 9일에는 걸프만 6개국 정상들이 참여한 제1차 중국·걸프협력회의(GCC) 정상회의를 개최해 ‘전략적 동반자 관계 구축’을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바로 ‘중국과 GCC 전략대화 2023~2027년 행동계획’을 통과시켰다. 그날 저녁에는 21개 아랍연합 국가 정상들 및 국제기구 대표들과의 제1차 중국·아랍 정상회의도 개최해 향후 3~5년간 중국이 제시한 식량안보, 에너지안보 등 8개 영역에서 ‘8대 공동행동’을 기초로 ‘중국·아랍 운명공동체’ 구축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합의했다.

당시 GCC 정상회의에는 사우디, 카타르, 바레인, 쿠웨이트, 오만, 아랍에미리트 정상들과 GCC 사무총장이 참석했다. 이어서 열린 아랍 국가 정상회의에는 사우디, 이집트, 요르단, 바레인, 쿠웨이트, 지부티, 팔레스타인, 카타르, 코모로, 모리타니, 이라크, 모로코, 알제리, 레바논 정상 등 21개 아랍연맹(AL)의 사무총장이 참석했다. 이외에도 시 주석은 이번 방문에서 튀니지 대통령, 이라크 총리, 소말리아 대통령, 모리타니 대통령, 카타르 정상과 단독회담을 가졌다. 3박4일 방문 기간 중 20명에 가까운 아랍 정상들, 국제관계 수장들과 회담함으로써 ‘아랍권과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셈이다. 아랍의 맹주 사우디가 시 주석 방문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를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중국 수입 석유의 위안화 결제 촉구

시 주석의 방문에서 중국은 걸프만 6개국으로부터 석유와 가스를 앞으로 더 많이 수입하겠다고 약속하며 상하이에 개설된 위안화 결제 원유 선물거래 플랫폼을 이용해달라고 부탁했다. 중국이 수입하는 석유는 위안화로 거래하자고 촉구한 셈이다. 또한 중국은 걸프만 6개국과 투자 및 경제협력 메커니즘을 구축하고 현지 통화 스와프에 협력하며 특히 디지털통화 협력을 심화하자고 제안했다. 석유와 가스 업스트림(탐사, 시추, 생산) 개발, 미드스트림(저장, 운송)과 정제 부문의 협력을 증대할 것이라고 말하며 대규모 투자 의사도 밝혔다. 여기에 더해 원자력 안전 및 기술에 대해 300명의 인력을 교육할 ‘중국·GCC 공동 핵 안보 시범센터’ 건설 계획도 발표했다. 지난 20년 동안 논의되어 온 ‘중국·GCC 자유무역협정’이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중국과 사우디는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 협정을 체결하여 양국 간 관계를 격상시켰으며 2년마다 정기적으로 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중국의 ‘일대일로’와 사우디의 ‘비전 2030’을 융합해 발전시키는 ‘일치 계획’ 협정에도 서명했다. ‘일대일로’는 현대판 육·해상 ‘실크로드’를 만드는 프로젝트이고, ‘비전 2030’은 사우디가 석유 시대 이후를 대비해 산업을 다양화하기 위해 문화·기술·제조 중심 경제로 전환하는 대규모 국책 사업이다.

양국의 협정에는 녹색 에너지와 녹색 수소, 태양광 에너지 개발과 길이 170㎞에 달하는 녹색 미래도시 네옴시티 건설, 전기차 공장, 주택 30만채, 알루미늄 플랜트 건설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뿐 아니라 화웨이가 사우디 스마트도시에 모바일 통신 분야, 클라우드 컴퓨팅 센터, 데이터센터 등 첨단기술산업 단지를 건설하는 계획도 포함되었다. 미국이 거래를 금지시키고 있는 화웨이는 지금도 사우디, 카타르,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에서 5G 네트워크를 제공하고 있다. 경제적 밀착이 심화되고 있는 중국과 사우디의 관계는 군사적 분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중국은 2020년부터 사우디의 우라늄 채굴과 정제시설 건설을 지원하고 있으며, 탄도미사일의 판매·기술이전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중국에 급속히 기울고 있는 사우디는 왜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졌을까.

우선 셰일가스로 인해 석유 패권이 중동에서 미국으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과거 석유가 미국의 전략자원이었을 때는 미국이 중동 석유 수송로에 2척의 항공모함을 상시 배치했을 뿐 아니라 중동의 유전에도 미군을 파견해 지켜주었다. 그러다 고유가 시대가 도래하자 미국에선 그간 경제성이 없었던 ‘셰일가스 붐’이 일어났다. 기존 원유 생산에 셰일오일과 가스 생산이 더해지면서 미국은 2018년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됐다. 이로써 중동 산유국의 가치가 미국의 관심 대상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미·중 패권전쟁으로 아시아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미국의 중동에 대한 전략적 중요성이 약화되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로써 미국은 중동에서 발을 빼기 시작했으며 중동 석유 수송로에 상주했던 2척의 항공모함은 남중국해로 이동시켰다.

지난 12월 7일(현지시각)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사우디아라비아 국빈방문에 맞춰 사우디 공군 전투기가 중국 오성홍기 색깔에 맞춘 스모크를 분사하며 리야드공항에 주기 중인 중국공군 1호기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12월 7일(현지시각)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사우디아라비아 국빈방문에 맞춰 사우디 공군 전투기가 중국 오성홍기 색깔에 맞춘 스모크를 분사하며 리야드공항에 주기 중인 중국공군 1호기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사우디 왕실이 미국을 못마땅해하는 이유들

이런 변화 속에서 사우디 왕실은 미국의 중동 정책에 큰 불만을 갖기 시작했다. 사우디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반대했을 때부터 양국 관계는 틀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는 사우디의 앙숙인 이란과 1980년대 8년간 전쟁을 벌이면서까지 이란의 ‘이슬람 혁명’ 수출을 막아왔다. 이란은 ‘이슬람 혁명’이란 신정일치의 정치 시스템으로 왕정을 부인하고 있어 사우디 왕가로서는 극히 경계하는 대상이다. 그동안 이슬람 수니파인 사우디는 미국과 손잡고 시아파 종주국 이란을 견제해왔는데, 2015년 7월 미국의 오마바 정부가 앙숙인 이란과 핵 협정을 타결한 데 이어 경제제재까지 해제하면서 돈독했던 양국 관계가 결정적으로 틀어졌다.

이후 이란은 사우디 왕실에 큰 위협이 되었다. 실제로 이란은 이슬람 혁명 수출로 이라크의 시아파와 민병대, 시리아의 아사드 정부,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을 지원하여 이들이 사우디의 최대 안보 위협 세력으로 떠올랐다. 특히 후티 반군이 예멘 수도 사나를 점령하자, 사우디가 주도하는 연합군은 2015년 3월부터 내전에 개입하고 있다. 이란과 사우디의 대리전으로 평가받는 예멘 내전은 이후 6년 넘게 이어져 13만명 이상 숨졌으며, 300만명이 넘는 난민이 발생했다.

게다가 2019년 9월 사우디의 주요 석유 생산시설 2곳에 대한 이란 무인항공기의 공격이 있었다. 당시 미국의 미약한 대응으로 사우디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미국이 예멘 후티 반군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사우디에 설치했던 첨단 미사일 요격 체계까지 철수시켰다. 그렇지 않아도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에 따른 혼란 속에 있던 걸프국들은 불안한 시선으로 미국을 지켜보고 있다.

2018년에 암살된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배후로 빈 살만 왕세자가 지목된 것은 양국 관계를 결정적으로 악화시켰다. 트럼프 때만 해도 미국은 이를 모르는 체했지만 바이든이 이를 문제 삼아 빈 살만을 공격하자 이때부터 두 사람의 개인적 앙금까지 보태졌다. 게다가 바이든은 트럼프가 파기한 이란과의 핵 협정을 다시 복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 바이든이 지난 7월 빈 살만 왕세자와의 회담에서도 인권문제를 거론하자, 빈 살만은 미국의 치부인 아부그라이브교도소 가혹행위 사건과 이스라엘에서 자행된 팔레스타인계 미국 언론인 시린 아부 아클레 기자 피격 사건 등을 거론하며 맞받아쳤다. 아부그라이브교도소 가혹행위 사건은 2004년에 이라크 아부그라이브교도소에서 미군에 의해 이루어진 대규모 포로 학대 사건이다. 참고로 지난 12월 6일 미국 연방법원이 자국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를 암살한 배후로 지목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에 대해 면책특권을 인정하고 관련 소송을 각하했다.

사우디와 미국의 틈이 벌어지자 중국은 이를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특히 위안화로 페트로 달러를 대체하겠다는 야심을 키웠다. 예컨대 중국은 지난 2018년 위안화 표시 원유 선물거래를 상하이 시장에 개설했다. ‘페트로 위안’이라고 알려진 이 선물거래는 달러 표시 원유 거래인 ‘페트로 달러’에 대한 대항마다. 이후 미·중 간 무역전쟁이 시작되었으며 이윽고 패권전쟁이 노골화되었다. 여기에 더해 2022년 초에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러시아 경제제재는 러시아와 중국을 밀착시켰다. 이로써 이른바 ‘냉전 2.0’이라고도 부르는 신냉전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했다.

 

신냉전 시대 가속화하는 탈달러 움직임

신냉전 시대에 가장 빠르게 변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통화 결제 시스템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스위프트(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 시스템에서 러시아의 루블화가 차단되자 러시아는 자국 내 은행 간 거래에만 사용됐던 금융결제망(SPFS)을 중국의 위안화 결제시스템(CIPS)과 연계시켰다. 브릭스 5개국 역시 2018년부터 공동 디지털화폐 개발을 논의 중이다. 하지만 공동화폐 개발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중국 위안화를 브릭스 중심 통화로 사용하자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중국은 CIPS에 인민은행 디지털화폐를 연결해 신속한 국제 송금시스템 구축을 계획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중국에는 CIPS 확대를 위한 절호의 기회가 된 셈이다.

이렇게 러시아에 대한 SWIFT 배제 후폭풍은 이란 때와는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증폭될 가능성이 있다. 제이미 다이먼 제이피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가 러시아에 대한 미국 등 서방의 제재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선 이유이다.

이란, 북한, 러시아 등을 잇달아 SWIFT에서 배제시킨 조치가 부메랑이 되어 탈(脫)달러화를 가속화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각국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개발함에 있어서도 SWIFT가 아닌 새로운 결제 시스템에서 구동 가능한 방법을 강구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와 중국의 결제 시스템 이외에 EU도 자체 소액결제시스템 TIPS를 2018년 개발했다. 사우디는 아랍에미리트와 공동으로 디지털화폐를 개발하고 있으며, 걸프협력회의 6개국은 2025년까지 재정·통화 단일화를 추진하고 있다. 튀르키예 역시 이슬람 통화의 맹주를 꿈꾸고 있다. 이런 연유로 블록별, 지역별 대표 통화의 다각화와 다양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서는 중국에 대한 평판이 안 좋지만, 세계의 나머지 80%는 어떨까? 놀랍게도 지난 10월 발표된 케임브리지대학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70% 이상의 국가가 중국을 지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개발도상국 사이에서는 반미, 반달러 감정이 안 좋다는 이야기이다.

신냉전 시대를 맞아 중국과 러시아는 브릭스 경제동맹체를 확대해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맞서고 있다. 지난 6월 23~25일에 개최된 2022년 14차 베이징 브릭스 화상 정상회의에는 기존 5개국 이외에 브릭스에 동조하는 13개국이 추가로 참여했다. 당시 알제리, 아르헨티나, 이집트, 인도네시아, 이란, 카자흐스탄, 세네갈, 우즈베키스탄, 캄보디아, 에티오피아, 피지, 말레이시아, 태국 등 13개 국가 정상이 참가했다.

이 중 이란과 아르헨티나는 이미 브릭스 합류를 위해 가입 신청을 완료했다. 이번 브릭스 정상회의가 특히 주목받은 것은 서방과의 갈등이 더 심각해진 중국과 러시아가 ‘경제동맹권 확대’와 ‘브릭스 국가 간의 통화금융 시스템 통합’을 위해 새로운 국제 결제 시스템의 구축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현실적 대안으로 회원국 중앙은행들과 상업은행들이 중국의 ‘위안화 국제결제망(CIPS)’에 참여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10월 “인도네시아, 튀르키예,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가 브릭스 참여 의사를 보이고 있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뜻밖에 ‘사우디아라비아’가 들어가 있다. 사우디는 6월 브릭스 정상회의 시 13개 옵서버 참가국도 아니었다. OPEC의 맹주인 사우디가 브릭스에 참여할 경우, 향후 미국의 중동 정책과 에너지 정책뿐 아니라 달러의 기축통화 위상에 큰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하지만 달러는 석유와 달리 여전히 미국이 끝까지 외부의 도전에서 지켜내야 하는 미국의 생명줄이다. 과거 ‘악의 축’으로 지목됐던 나라들, 곧 리비아, 이라크, 이란, 시리아, 베네수엘라, 북한이 모두 페트로 달러에 도전했다가 미국의 강력한 제재를 당해 나라의 운명이 바뀌거나 경제적으로 상당히 힘든 지경이 되었다. 리비아의 카다피나 이라크의 후세인 모두 유로화로도 석유를 팔겠다고 했다가 순식간에 미국에 의해 처형당했다. 사우디가 이를 모를 리 없다.

 

브릭스 앞세운 중국과 러시아의 도전

이러한 페트로 달러 체제에 중국과 러시아가 브릭스라는 경제동맹체 확대를 통해 도전해 오고 있다. 여기에 페트로 달러의 주도국이었던 사우디가 브릭스와 손잡고 이제는 페트로 달러 체제 붕괴에 앞장설 모양새이다. 미국으로서는 심각한 도전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남자라 하여 ‘미스터 에브리싱’이라 불리며 사우디의 경제개혁을 이끄는 빈 살만 왕세자는 폐쇄적인 사우디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 개방적인 나라로, 동시에 경제 강국, 군사 강국으로 만들려는 열정에 차 있다. 이를 위해 중국, 러시아, 한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미국을 대체하려는 의도보다는 사우디를 강대국으로 만들고자 하는 그의 열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 맥락에서 시진핑 주석의 사우디 방문을 둘러싼 정황은 미국이 더 이상 세계 경찰로서 중심 역할을 하지 않는 이상, 다가올 다극화 세계에 대비해야 한다는 맥락으로 해석된다.

특히 사우디·중국 관계의 핵심은 산업 현대화와 국방이다. 빈 살만은 석유에 의존하는 왕국의 경제를 다각화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민간 핵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강력한 방위산업 구축을 원하고 있다. 중국으로부터 이러한 기술과 투자를 확보하려는 것이 사우디가 추구하는 목표다.

지난 2004년 당시 사우디 외무장관 사우드 알 파이잘은 워싱턴포스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사우디 관계는 한 아내만 허용되는 ‘가톨릭 결혼’이 아니라, 네 명의 아내가 허용되는 ‘무슬림 결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과의 이혼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다른 나라와의 결혼을 추구하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그것이 이제 현실이 된 것이다.

중국은 사우디의 가장 큰 무역 상대국이다. 사우디의 중국에 대한 수출액은 작년에 석유 439억달러를 포함해 540억달러를 넘어섰다. 양국 간 무역은 800억달러 이상이다. 자국 내 미군이 배치되어 있는 사우디로서는 미국과의 동맹을 견지하면서도 경제적으로 밀착된 중국과의 관계를 미국 눈치 보지 않고 당당히 구축해 나가는 것이 목표로 보인다. 향후 미국의 대응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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