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지난해 12월 19일 제주시 소재 진보당 제주도당 위원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국가정보원이 지난해 12월 19일 제주시 소재 진보당 제주도당 위원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최근 안보수사당국은 북한과 연계된 지하 간첩망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정원과 경찰은 지난해 11월 9일 제주·창원·진주·전주 등에서 관련 혐의자들에 대한 압수수색을 동시에 진행했고 이후 12월 19일 제주에서 추가로 압수수색을 집행했다. 특히 제주간첩단이 단독조직이 아니라 경남권(창원, 진주), 호남권(전주), 수도권(서울) 등에 포치된 자통(자주통일 민중전위)이라는 전국 지하망의 연계 지역망임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올 1월 18일에는 민노총에 침투한 북한연계 지하망 관련자 4명의 직장, 자택, 차량 등에 대한 압수수색이 10여곳에서 동시에 단행되었다. 여기에 현역 국회의원의 보좌관이 현직에 있을 당시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선, 회합했다는 직전 국정원장의 증언까지 더해져 간첩수사가 정치권 및 사회 전반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다. 북한 김씨 정권 수립 이후 75년 넘게 지속된 대남 간첩공작 행태로 볼 때 민노총뿐만 아니라 제2, 제3의 북한 간첩망이 우리 사회 각계각층에 포진되어 있음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공안탄압 저지 및 민주수호 제주대책위원회가 지난 1월 12일 제주 국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공안탄압 저지 및 민주수호 제주대책위원회가 지난 1월 12일 제주 국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숱한 개칭에도 김정일이 직접 지휘

특히 최근에 적발된 제주간첩단과 자통 및 민노총 침투 북연계 지하망 사건의 상부지도선이 모두 북한 문화교류국임이 밝혀져 주목되고 있다. 북한은 정권목표인 ‘전 한반도의 적화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비합법 영역에서 이를 비밀리에 수행하는 여러 간첩공작기관을 운영해오고 있다. 북한에서는 이를 대남사업부서라고 한다. 이 중 문화교류국은 북한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대남 간첩공작 부서이다. 광복 직후 당 사회부와 문화부(1948년 10월)를 거쳐 연락부(1949년 6월〜1974년 5월), 문화연락부(1974년 5월〜1975년 9월), 연락부(1975년 9월〜1988년 11월), 사회문화부(1988년 11월〜1997년 1월), 대외연락부(1997년 1월〜2009년 2월), 225국(2009년〜2015년 8월), 문화교류국(2015년 8월〜현재)으로 개칭되었다.

이 부서는 당 소속이었으나 2009년 김정일의 방침에 따라 대남공작부서를 전면 개편하면서 대외적으로 내각 225국으로 편재(위장)하다가 2015년 당 통일전선부 소속의 문화교류국으로 통합되었다. 그러나 225국이나 문화교류국은 당시 내각 총리나 통일전선부장의 지휘를 받지 않고 직접 김정은의 지휘를 받는 독립적인 대남공작부서로 기능했다. 명칭만 보면 합법적인 문화교류를 전담하는 부서처럼 보이나 광복 직후 국내에서 적발된 대부분의 지하당이나 간첩사건들이 문화교류국의 전신들에 의해 자행된 것들이다.

북한에서도 대남간첩 공작을 담당하는 기관들은 가장 비밀스러운 영역이며 보안이 요구되는 기관들이어서 완전한 실체 파악이 어려운 상태이다. 특히 수령절대주의 폐쇄체제인 북한의 특성상 대남공작기관의 체계나 활동을 정확히 파악한다는 것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나, 그간 여러 간첩사건에서 파악한 대략적인 조직체계와 기능 및 활동상을 간략히 정리해보겠다. 

문화교류국에는 국장(장관급), 제1부국장(차관급), 수 명의 담당 부국장(차관보급) 휘하에 해외담당(중국, 동남아, 일본, 미주, 구라파 등), 대남공작담당(국내 지역별 ○○방향) 및 지원부서 등으로 편재되어 있다. 이외 자체 간첩양성소인 봉화정치학원과 외화벌이 공작부서인 남문무역, 와룡상사 등을 운영하고 있다.

문화교류국은 주로 공작원(간첩)의 교육과 남파, 남한 내 지하당 및 연계 지하망 구축, 동조세력 포섭, 기밀탐지, 테러 및 해외 우회공작을 전담하는 대남간첩공작의 주무 부서이다. 특히 주사파와 같은 종북세력의 핵심인사를 포섭하여 남한 혁명의 주력군으로 키우고 지하당을 구축하여 통일전선 격인 동조세력을 규합하는 활동을 한다. 남한 내 동조세력의 활동을 지원하고 한국 사회의 교란을 획책하여 이른바 남한혁명의 결정적 시기 조성을 기도하고 있다.

 

한동안 정찰총국에 밀려 고전

문화교류국은 2009년 대남공작 조직재편 당시 신설된 정찰총국의 위세에 밀려 한동안 고전하였으나 가장 오래된 대남 공작부서답게 이를 극복하고 대남 간첩공작의 순결성(?)을 지키며 정교하고 다양한 간첩공작을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표1>에서 보듯 7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북한 문화교류국의 간첩망은 매우 방대하다. 적발되지 않은 간첩망을 포함하면 그 뿌리와 가지는 우리 내부에 상당히 깊숙이 포치되어 암약 중일 것으로 보인다. 2011년에 적발된 왕재산간첩단 사건의 2인자였던 ‘이○○’은 현직 국회의장의 정무비서관(입법부이사관)이었음을 감안할 때 정치권에도 상당한 지하망을 구축했을 것으로 보인다. 

<표2>는 문화교류국 소속 해외거점책 두 명(김명성, 리광진)이 구축한 지하망이다. 김명성은 2016년 검거된 일명 PC방 간첩망과 2022년 적발된 제주간첩단(ㅎㄱㅎ)을 지도하였다. 또 다른 해외거점책 리광진은 4~5명의 공작조를 데리고 2015년 적발한 목사 연계망(김목사, 최목사)과 2021년 적발한 청주간첩단(자주통일 충북동지회) 및 이번에 적발된 민노총 침투 북한간첩망을 지도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 간첩망을 보면 하나같이 북한에 포섭되어 수차례 해외에 나가 북한 공작원을 접선, 회합하고 돌아와 지하망을 구축하고 암약해 왔음이 드러났다. 이들은 겉으로는 양심적인 민주화운동 세력인양 자처하지만 뒤로는 북한 지령에 따라 반정부, 반보수, 반미투쟁과 김정은의 위대성을 선전하는 등 북한 대남혁명 전위대 노릇을 충실히 이행해 왔다.

대한민국이 ‘간첩천국’이라는 오명을 불식하고 자유민주체제를 보장하기 위해서 국정원과 경찰은 이제 북한 문화교류국의 대남 간첩공작을 분쇄하는 끊임없는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

최근 일련의 상황은 자유 대한민국의 안보수사당국이 ‘간첩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이들을 분쇄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작업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안보수사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안보수사관들이 목숨을 걸고 해외에서 활동하는 북한 공작조와 국내 포섭간첩들의 정교한 비밀활동을 수년간 추적하여 간첩혐의를 포착해도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미명하에 북한 눈치를 보며 간첩 검거를 보류하자며 뭉개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제 그런 ‘권력의 벽’을 겨우 넘으니 간첩사건 조작과 공안정국 조성이라며 상투적 구호로 저항하는 ‘정치권의 벽’이 기다리고 있다.

이를 극복하고 영장을 신청하니 이제 사법부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영장을 기각한다. 천신만고 끝에 영장을 받아내 간첩혐의자들을 구속 기소하였으나 형사법 체계의 허점을 역이용한 피고 측의 교묘한 재판지연 전술에 재판부가 말려들어 사법처리가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이다.

이 와중에 간첩 혐의자들은 구속기간 만료와 보석으로 모두 풀려나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이제 ‘재판의 벽’을 넘어야 하는 지경이다. 이는 청주간첩단의 실제 사례이다.

어찌 보면 간첩과의 전쟁은 ‘국내 사법절차와의 싸움’이라 할 정도로 대한민국은 간첩들이 활동하기 좋은 토양을 우리 내부에서 키워 왔다. 대한민국이 간첩천국이라는 오명을 불식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이제 간첩들이 활개치기 좋은 사법 체계를 전면 정비해야 한다. 대공억지력인 경찰의 안보수사 역량도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궁극적으로는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존치시키는 노력이 시급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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