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4일 밤 이스라엘 텔아비브 중심가에 수십만 명의 사법개혁안 반대 시위 군중이 몰려있다. photo THE TIMES OF ISRAEL
지난 3월 4일 밤 이스라엘 텔아비브 중심가에 수십만 명의 사법개혁안 반대 시위 군중이 몰려있다. photo THE TIMES OF ISRAEL

“국회의 입법 취지와 정부의 정책 목표를 거스르는 사법부가 못마땅하다. 민주주의는 삼권분립이라지만, 사법부는 국민으로부터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다. 정치성향도 편향되어 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된 권력을 과도하게 간섭하고 판단하는 것은 모순이다. 그러니 대법관 임명이나 대법원 판결에 대해 국회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하자.”

만일 우리나라에서 어느 유력 정치인이나 고위관료가 이렇게 말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 이런 발언을 하는 순간, 엄청난 반발과 논란으로 시끄러울 것이다. 

지금 이스라엘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경상북도만 한 크기에 인구는 1000만명 남짓하지만, 끊임없이 국제 뉴스를 만드는 나라다. 이번에는 ‘사법개혁’이라는 생뚱맞은 이슈가 등장했다. 베냐민 네타냐후(74) 총리가 주도하는 연립정부가 사법부를 강력하게 견제하는 사법개혁안을 올해 초 내놓자, 전국적으로 두 달 이상 항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정치권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공항에서, 예비군에서, 거리에서 최대 수십만 명이 참가하는 시위가 거의 매일 벌어지고 있다. 

 

매일 수십만 명 시위 

네타냐후는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유대 민족주의나 정통파 유대교를 신봉하는 극우(Far-right·이스라엘 언론의 표현이며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개념과 다소 차이가 있다) 정당들과 손잡고 승리했다. 크네세트(Knesset·이스라엘 의회) 120석 중에서 64석을 확보하면서, 총리직에서 물러난 지 1년 반 만에 복귀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해 12월 29일 정식으로 새로운 내각을 출범시켰다가, 일주일 만인 올 1월 4일 사법개혁안을 발표했다. 

골자는 이렇다. △대법원이 내린 위헌 결정을 크네세트의 단순 과반(전체 120석 중 61석)만으로 뒤집을 수 있도록 한다 △이스라엘의 연성헌법인 ‘이스라엘 기본법’에 대한 대법원의 사법심사를 금지한다 △대법관을 임명하는 위원회에 크네세트 의원이 과반수를 차지하도록 비중을 늘린다 △각 부처 법률고문에 독립적인 전문가를 임명해야 한다는 제한을 폐지해 장관이 법률고문을 뜻대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한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개혁안을 발표한 야리브 레빈(54) 법무장관은 “국민에 의해 선거로 뽑히지 않은 자들(법관들)이 행사해 온 권한을 선거로 뽑힌 공직자들에게 되돌려 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년간 이 개혁 아이디어를 구상해왔다고 덧붙였다. 사법부의 권한이 너무 비대해졌다는 주장인데, 사법부가 내각 인사권에 개입하는가 하면 개헌 수준의 심사권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하긴 월스트리트저널도 “이스라엘 법원은 미국 연방 대법원이나 영국 법원을 포함하여 어느 나라보다 막강한 사법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반대 시위가 아무리 많아도 사법개혁안은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내각과 여당이 사법부 인사 좌지우지 

이번 사법개혁안이 통과된다면, 대법원을 비롯한 각급 법원의 판사 인사를 내각과 여당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된다. 기존에는 대법관 추천위원회를 내각 추천 2명, 대법원 추천 3명, 크네세트 추천 2명, 변협(辯協) 추천 2명 등으로 구성했다. 법조인들의 마음대로 작동되는 구조였다. 하지만 사법개혁안에는 내각 추천 3명, 대법원 추천 3명, 크네세트 추천 3명(야당의원 1명 포함)으로 간단하게 만들고 변협 몫인 2명을 폐지했다. 이에 따라 내각과 여당은 최소 5 대 4의 비율로 사법부 인사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 지금까지는 크네세트가 주도한 입법의 적법성을 사법부가 심사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달라진다. 가령 크네세트가 만든 법이 헌법 역할을 하는 ‘이스라엘 기본법’에 반하는지를 대법원이 살피고 제동을 걸 수 있었지만, 사법개혁안이 통과되면 이 권한 역시 박탈된다. 대법관 15명 전원이 모두 동의해야만 크네세트의 입법을 막을 수 있고,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크네세트가 다수결로 처리하도록 바뀐다. 심지어 대법원이 내린 결정도 크네세트에서 과반 찬성으로 뒤집을 수 있다. 크네세트를 장악하는 여당이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되는 셈이다. 

사실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와 달리 명문 헌법이 없다. 대신 ‘이스라엘 기본법(Basic Law of Israel)’이란 이름으로 10여개 법률이 모여 헌법 역할을 한다. 연성헌법 시스템이다. 배경은 이렇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하자마자 전쟁이 터져 제헌의회가 헌법을 제정할 여유가 없었다. 1950년부터 다시 제헌 협의에 들어갔으나, 국가의 정체성과 비전에 대한 정파들의 이견(異見)이 심해 결국 합의된 헌법을 만들지 못했다. 대신 1950년 6월 13일 이즈하르 하라리가 제안한 ‘이스라엘 기본법’이 헌법을 대신해 정부 구성과 국민 기본권을 규정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기본법’은 단일한 1개 법안이 아니라 2018년까지 총 14번에 걸쳐 추가되거나 개정되었다. 2018년의 개정안에는 ‘이스라엘은 유대인 국민국가다’라는 선언이 포함되었다. 

정부의 사법개혁안이 발표되자마자 야당과 좌파는 물론, 각계각층에서 강력한 반발이 시작되었다. 명목상 국가원수인 이츠하크 헤르초그(63) 대통령은 “너무 급진적이라 사회가 붕괴할 위기에 처했으므로 야당과 대화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지난해 총선에서 ‘반(反) 네타냐후 연합’을 구성했던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는 “일방적 쿠데타”라고 말했고, 베니 간츠 전 국방장관도 “민주주의의 파괴로 내전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성인 에스더 하윳(70) 대법원장은 “이 개혁안은 사법제도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모사드(해외정보기관)와 신베트(국내정보기관)의 일부 전직 수장들도 반대 의사를 천명했다. 몇몇 조종사들은 총리의 해외순방 비행기를 몰지 않겠다는 해프닝까지 벌였다. 영자신문인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은 연성헌법인 기본법만 있는데, 크네세트에서 단순 과반을 확보한 정치세력이 마음대로 개정할 수 있는 까닭에 대법원의 사법심사가 폭정을 막는 유일한 보호장치였다”면서 “이제 이스라엘 민주주의에 조종(弔鐘)이 울렸다”고 지적했다.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네타냐후 총리를 만나 사법개혁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는 등 우방 국가들도 걱정스러운 눈치다. 

 

“네타냐후는 민주주의 파괴자” 

예루살렘·텔아비브·하이파·모디인 등의 대도시에서는 수만 명이 참가하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시위대는 “이번 사법개혁안이 삼권분립에서 사법부의 독립성을 손상시키고, 부패를 조장하며, 성소수자의 권리를 후퇴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텔아비브의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카플란 도로와 하비마 광장에는 ‘네타냐후는 민주주의의 파괴자’ ‘세계 평화에 대한 위협’ ‘파시스트’ ‘로마 황제’ 등의 문구를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시위 진압 과정에서 경찰이 섬광 수류탄과 물대포를 발사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섬광 수류탄은 폭음과 섬광을 내 일시적으로 시청각을 마비시키는 무기로, 주로 테러집단을 제압할 때 쓴다. 시민의 목을 무릎으로 누르는 경찰, 섬광 수류탄에 귀가 찢긴 남성, 경찰을 향해 물병을 던지는 시위대의 모습이 매일 뉴스에 올라오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시위대를 “무정부 상태”라고 규정하며, 강력 대응하겠다고 계속 천명했다. 

특히 지난 3월 1일 텔아비브 북부에 있는 고급 미용실에 네타냐후 총리의 부인 사라 여사가 머리를 하러 방문한 사실을 다른 손님이 소셜미디어(SNS)에 올리자, 때마침 부근에 있던 시위대가 미용실로 모여들었다. 기마경찰을 비롯하여 국경수비대 수백 명이 미용실 앞으로 투입돼 4시간 만에 사라 여사를 차에 태우고 빠져나갔다. 당시 시위 군중들은 리듬에 맞추어 “나라가 불타고 있는데 사라는 머리를 하고 있다” “부끄럽다”고 야유를 질렀다. 평소 사치와 갑질로 ‘국민 밉상’이 된 사라 여사에 대한 악감정까지 겹쳤다. 

영국인 고든 토마스가 모사드를 다룬 책 ‘기드온의 스파이’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2009년 네타냐후가 처음 총리가 되었을 때, 사라 여사는 힐러리 클린턴이 CIA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자신도 모사드의 실상을 낱낱이 알아야겠다고 나섰다. 모사드 간부를 집으로 불러 꼬치꼬치 캐묻는가 하면, 총리 부부가 만날 외국 지도자에 대한 상세한 인물 파일을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특히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에 관해 자세히 알기를 원했고, 해외순방 중 머무를 게스트하우스에 대한 상세 내용도 요구했다. 이에 모사드 측은 “그런 종류의 정보 수집은 모사드의 업무 영역이 아니다”라고 거절했지만, 일부 베테랑 요원들은 한직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3월 2일 자신의 트위터에 사라 여사가 미용실에서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리며 “무정부 상태는 멈춰야 한다”고 다시 언급했다.

이스라엘에서 사법부의 독립성이 약화되고 체제의 불투명성이 높아지면,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우려가 높다. 아미르 야론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는 지난 1월  24일 네타냐후 총리를 만나 사법개혁이 이스라엘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스라엘의 자랑거리인 하이테크 기업들도 사법개혁안 때문에 대규모 탈출 조짐을 보인다고 뉴욕타임스가 2월 23일 보도했다.

야당과 시위대는 “네타냐후 총리가 2019년부터 자신에게 제기된 뇌물 등 범죄 혐의를 피하려고 사법부를 장악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네타냐후 총리 자신도 예전부터 “사법제도가 나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비난한 바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네타냐후 총리(왼쪽)와 야리브 레빈 법무장관이 지난 3월 6일 크네세트에서 사법개혁안 토론 과정을 협의하고 있다. photo THE TIMES OF ISRAEL
네타냐후 총리(왼쪽)와 야리브 레빈 법무장관이 지난 3월 6일 크네세트에서 사법개혁안 토론 과정을 협의하고 있다. photo THE TIMES OF ISRAEL

유대인 정착촌 확대에 제동 걸어온 사법부 

네타냐후 총리가 상당한 반발을 예상했음에도 사법개혁안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네타냐후 연정(聯政)은 리쿠드(32석)를 주축으로 유대 민족주의와 정통파 유대교 정당으로 구성됐는데, 향후 그쪽 방향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그러자면 종종 좌파 성향의 판결을 내리면서 국정에 시비를 거는 사법부의 힘을 빼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가령 요르단강 서안지구(West Bank) 내 유대인 정착촌에서 건축허가나 토지 관련 소송이 벌어질 때, 이스라엘 대법원은 오히려 유대인 정착촌 쪽에 불리한 판결을 종종 내렸다는 것이다. 향후 유대인 정착촌을 확대하겠다는 것이 네타냐후 연정의 핵심 과제이므로, 더 이상 사법부의 이런 모습을 용인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하마스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테러와 관련된 판결에도 불만이 많았다. 가령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테러범을 색출하려면 일반 형사법에 있는 인신구속에 관한 절차법들, 가령 미란다 원칙이나 묵비권 행사 등을 생략하고 테러범을 색출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스라엘 법원은 형식 논리에 입각해 그런 행동이 법 위반이라는 판결을 자주 내렸고, 결과적으로 테러리스트에 대한 사법기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네타냐후 연정에서 가장 강경하고 실력자로 통하는 사람은 이타마르 벤그비르(47) 국가안보부 장관과 베잘렐 스모트리히(43) 재무장관이다. 벤그비르 장관이 지난 1월 3일 네타냐후 총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극도로 민감한 지역인 성전산(Temple Mount)을 방문한 것은 조만간 성전산에서 유대인 예배를 드리도록 하겠다는 국정 목표를 예고했다는 분석이다. 스모트리히 장관은 최근 폭력 사태가 벌어진 팔레스타인 후와라 마을을 “쓸어버려라(Wipe out)”라는 강경 발언을 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역겹고 혐오스럽다”고 비판했는데, 스모트리히는 팔레스타인을 완전히 몰아내겠다는 의지를 자주 피력했다. 

이들은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현재 60만명 정도가 살고 있는 유대인 정착촌을 확장하고, 심지어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일부나 전부를 병합하는 방안까지 꿈꾸고 있다. 또 민족 종교인 유대교를 제외한 기독교나 이슬람에 대한 사실상 차별을 추진하는가 하면, 최근 텔아비브 등지에서 벌어지는 동성애 퍼레이드에 분노하면서 유대교 율법을 이유로 동성애를 강력하게 배척할 움직임이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최근 기고문에서 “사법개혁안이 통과되면 네타냐후 연정은 어디든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고, 팔레스타인 영토를 점령하며, 수학·과학이 아니라 종교만을 가르치는 학교에 지원을 쏟는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비록 사법개혁안 반대 시위가 뜨겁게 벌어지고 있지만, 네타냐후 총리 측은 조용한 다수 국민이 사법개혁안을 지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된 만큼, 국민들의 사전 승낙은 받았다는 입장이다. 

 

복잡한 여론조사 결과 

여론조사 결과를 보아도 해석이 복잡하다. 올해 초 사법개혁안을 공고했을 당시 야권 성향의 채널10 방송이 여당인 리쿠드당 지지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5%가 찬성했고, 반대는 17%에 불과했다. 채널13 조사에서는 반대가 53%에 찬성이 35%이었지만, 채널14에선 찬성이 61%이고 반대가 35%였다. 그런가 하면 2월 10일 채널12 조사에서는 24%만이 사법개혁안을 진행해야 한다고 대답한 반면, 31%는 중단을 원했고, 또 다른 31%는 연기를 희망했다. 유대인 정책연구소의 2월 중순 여론조사는 지지가 44%, 반대 41%였다. 거리의 성난 시위대 모습에 비하면, 여론조사 결과가 네타냐후에 꼭 부정적이지는 않다. 

그래서 결국은 사법개혁안이 통과되리라고 보는 시각도 많다. 크네세트의 헌법·법률·사법위원회는 2월 중순부터 관련 조항들을 위원회와 본회의 쪽으로 속속 넘기고 있다. 결정적 변수가 없다면 차례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네타냐후 연정은 “4월 아니면 상반기에는 사법개혁의 모든 목표를 달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민심을 달래고 야당을 설득하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은 “여야(與野) 간에 물밑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지금 이스라엘은 동강날 위험에 처해 있고, 네타냐후의 정치력은 중대한 시험대 위에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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