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8일 ‘간첩단 의혹’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마친 국가정보원 관계자들이 서울 정동 민주노총에서 나오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1월 18일 ‘간첩단 의혹’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마친 국가정보원 관계자들이 서울 정동 민주노총에서 나오고 있다. photo 뉴시스

올해 초 적발된 일련의 간첩단 수사가 마무리되고 사법처리 단계로 들어갔다. 물론 또 다른 간첩혐의자들에 대한 추가 수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1월 20일 이른바 전북간첩망 ‘하모’에 대한 기소에 이어 2월 21일 제주간첩단(‘ㅎㄱㅎ’) 관련자 2명이 구속되었다. 또한 3월 15일에는 창원간첩단(자통 민중전위) 관련자 4명이 구속기소되었고, 3월 28일에는 민노총 침투 간첩망 관련자 4명에 대한 구속영장이 집행되었다.

그런데 이들 간첩단들에게 적용된 법규를 보면,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못 부르고 형을 형이라고 못 부른 홍길동의 ‘호부호형(呼父呼兄)’이 떠오른다. 간첩 행위자들을 실정법상 간첩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정법상 간첩죄는 △형법 제98조(간첩) △군형법 제13조(간첩) △국가보안법 제4조(목적수행) 등에 규정되어 있다. 형법 제98조에 명시된 간첩죄는 적국(敵國)을 위해 간첩 활동을 해야 적용할 수 있는데, 북한은 헌법상 국가가 아닌 반국가 불법단체에 불과해 이의 적용이 어렵다. 

그렇다 보니 그동안 북한 간첩들에게 반공법(이미 폐지됨)이나 “북한은 반국가적인 불법단체로서 국가로 볼 수 없으나, 간첩죄 적용에 있어서는 이를 국가에 준하여 취급하여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처벌해 왔다. 1980년 국가보안법 제6차 개정(1980. 12. 31. 법률 제3318호) 때 목적수행죄가 재정비된 이후부터는 북한과 연계된 간첩 활동은 형법상 간첩죄를 적용하지 않고 국가보안법상 제4조 목적수행(간첩)죄를 적용해 왔다. 또한 군인이 간첩 활동을 하면 군형법상 간첩죄를 적용한다.

목적수행(간첩)죄는 반국가단체(북한 등)나 구성원의 지령을 받은 자가 목적수행을 위한 행위를 했을 때 적용하는데, 대표적으로 형법 98조에 규정된 행위, 즉 간첩 활동을 하거나 국가기밀을 탐지·수집·누설·전달·중개할 때 최고 사형·무기징역에서 사안에 따라 10년·7년·5년·3년 및 최하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국가기밀의 엄격한 해석 

여기서 핵심은 국가기밀의 범위를 해석하는 문제이다. 최근 판결 행태를 보면 사법부가 목적수행(간첩)죄 적용에서 국가기밀의 범위를 매우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북한 공작원과 연계되어 금품수수, 회합·통신, 잠입·탈출, 고무찬양, 편의 제공 등의 죄를 범한 자라도 목적수행(간첩)죄가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1982년 대법원 판결(대법원 1982. 2. 9. 선고 81도3040)을 보면 “국가보안법 제4조 제1항 제2호의 ‘국가기밀’을 군사기밀에만 국한할 수 없고 정치·경제·문화·사회의 각 방면에 관한 국가적 기밀까지도 포함하고, 그 사실이 대한민국에 있어서는 상식에 속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반국가단체에게는 유리한 자료가 될 경우에는 국가기밀에 속한다”라고 폭넓게 국가기밀을 인정했다. 

그러나 1997년 대법원 판결(대법원 1997. 7. 16. 선고 97도985)에서 국가기밀의 판례가 변경되었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현행 국가보안법 제4조 제1항 제2호 (나)목에 정한 기밀을 해석함에 있어서 그 기밀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방면에 관하여 반국가단체에 대하여 비밀로 하거나 확인되지 아니함이 대한민국의 이익이 되는 모든 사실, 물건 또는 지식으로서, 그것들이 국내에서의 적법한 절차 등을 거쳐 이미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공지의 사실, 물건 또는 지식에 속하지 아니한 것이어야 하고, 또 그 내용이 누설되는 경우 국가의 안전에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기밀로 보호할 실질가치를 갖춘 것이어야 할 것이다”라고 기밀을 매우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즉 국가기밀이 되기 위해서는 정보성 외에 앞서 언급된 실질비성(實質秘性)과 비공지성(非公知性)을 충족해야 한다는 의미다.

대법원이 국가기밀을 매우 엄격히 제한하다 보니 민경우 사건(2004년 판결), 일심회(2007년 판결), 왕재산(2013년 판결) 간첩사건 때도 제출된 상당수의 기밀들이 실질비성과 비공지성이 결여되어 기밀로 배척된 바 있다. 

※ 후속 기사는 4월 2일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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