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라우즈산의 여러 봉우리 중에서도 가장 유력하게 시나이산으로 추정되는 자발마클라. 정상 부분이 불에 탄 듯 검게 변해 있다. photo Living Passages
사우디 라우즈산의 여러 봉우리 중에서도 가장 유력하게 시나이산으로 추정되는 자발마클라. 정상 부분이 불에 탄 듯 검게 변해 있다. photo Living Passages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데리고 바다를 건넜다는 홍해, 그리고 하나님(가톨릭에서는 하느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다는 시나이산(호렙산이라고도 불림). 두 곳의 위치를 놓고 전통적인 견해와 새로운 견해가 뜨겁게 맞서고 있다. 바다가 갈라졌던 홍해의 위치는 수에즈만(灣)에 있고, 시나이산은 지금의 시나이반도에 위치한 해발 2258m 자발무사(Jabal Musa·모세의 산이라는 뜻)라는 것이 전통적인 견해다. 물론 전통적인 견해도 세부적으로 따져 보면 수십 개로 나뉜다. 이에 비해 1980년대부터 등장한 새로운 견해에 따르면 바다가 갈라졌던 홍해의 위치는 수에즈만이 아닌 아카바만에 있고, 시나이산은 사우디아라비아 북서쪽 미디안 지역에 있는 해발 2580m의 라우즈산(Jabal al-Lawz)이라는 것이다.

시나이산 위치를 둘러싼 오랜 논쟁

새로운 견해가 나오자 성서고고학계에서는 냉소를 보냈지만, 관련 유적·유물이 꾸준히 발굴되는 데다 전반적인 지형(地形)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이를 지지하는 학자들이 꽤 늘어났다. 시나이반도의 자발무사 주변에는 유적·유물이 전혀 발굴되지 않는 점도 라우즈산 쪽에 힘이 실리게 하는 요소다. 물론 시나이산이 여기 있든 저기 있든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석유 일변도 경제를 탈피하기 위해 야심적으로 추진하는 초대형 미래 신도시 네옴(NEOM)시티 프로젝트 변수가 이 오랜 논쟁 속으로 뛰어들었다.

네옴시티 프로젝트에는 3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인 트로제나(미래형 산악관광) 프로젝트가 바로 라우즈산 일대를 포함하고 있다. 라우즈산은 네옴시티의 중심 도시인 타북과도 멀지 않다. 2029년 동계아시안게임이 트로제나에서 열릴 전망이고, 최근에는 라우즈산 주변에도 아스팔트 도로가 놓이고 있다. 따라서 라우즈산과 시나이산 이슈는 네옴시티의 개발에 맞춰 계속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 국내 모 방송사는 라우즈산 취재를 마치고 조만간 특집방송을 계획하는 등 라우즈산을 향한 언론취재나 성지순례도 급증하고 있다.

구약성경의 이집트 탈출기인 출애굽기(出埃及記·Exodus)와 민수기(民數記·Numbers)를 보자. 지금부터 3500년 전 모세는 이집트에서 430년간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나와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향해 대장정을 시작했다. 남자만 60만명이라고 했으니,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하면 200만명에 가까운 인구를 이끌고 척박한 광야를 하나님의 인도에 따라 40년간 이동했다.

성경에 나와 있는 이스라엘 민족의 이집트 탈출 경로를 보면 대략 ‘라암셋→숙곳→비하히롯→홍해→수르광야→마라→엘림→신(Sin)광야→르비딤→시나이산→다베라→기브롯→에시온게벨→가데스바네아→신(Zin)광야→바란광야→모압→느보산→가나안’의 순서로 이어졌다. 시기로는 BC 15~BC 13세기에 이뤄진 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그중에서 홍해와 시나이산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다. 이스라엘 민족은 시나이산 앞 광야에서 11개월5일간 머물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과 율법을 받았기에 민족사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이다.

그런 모세는 원래 히브리(이스라엘 민족) 노예의 자식이었다. 하지만 당시 히브리 노예 숫자가 늘어나는 걸 경계하던 이집트왕 파라오는 히브리 남자 신생아를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모세의 어머니는 아기를 갈대상자에 몰래 담아 나일강에 실어 보냈는데 때마침 이집트 공주에게 건짐을 받아 왕실에서 왕족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40세가 되었을 때 동족을 학대하는 이집트 사람을 죽인 사건 때문에 오늘날 사우디아라비아의 북서쪽에 있는 미디안 땅으로 도망갔다. 거기에서 이드로라는 족장을 만났고 딸인 십보라와 결혼하면서 80세까지 머물렀다. 모세는 어느 날 근처에 있는 시나이산의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하나님의 이름이 ‘스스로 존재하는 자(I am that I am)’라는 사실도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 또는 ‘야훼’라고 쉽게 부르지만, 유대인들은 너무도 거룩하기 때문에 발음을 하지 않았고 지금은 누구도 정확한 발음을 모른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노예생활에서 신음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전통적인 이집트 자발무사 설

이윽고 모세는 이집트왕 파라오를 찾아가 10가지 재앙으로 압박했고 결국 파라오는 노예로 삼던 이스라엘 민족을 내보내 주었다. 하지만 파라오는 며칠 뒤 후회했다. 600대의 병거를 포함한 정예 군대를 보내 저 멀리 행진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섬멸하기로 작정했다. 모세 입장에서 앞은 바다요, 뒤는 이집트 군대가 쫓아오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간구했고 결국 홍해가 갈라졌다는 스토리다.

그런데 지금까지 알려진 홍해와 시나이산의 위치는 모두 지금의 이집트 영토 안에 있다. 기적이 벌어진 홍해의 경우 이집트 고센 지방의 라암셋을 출발한 뒤 얼마 가지 않으면 나오는 비터(Bitter)호수이거나 아니면 수에즈만의 초입 부분으로 여겨져 왔다. 홍해는 영어로 ‘Red Sea’이지만 성경 히브리어 원문에는 ‘얌 쑤프’, 즉 갈대바다라는 뜻이다.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두고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많다.

홍해에 비해 시나이산의 위치는 보다 분명하게 추정되어 왔다. 바로 시나이반도에 자리 잡은 자발무사다. 카이로에서 400㎞ 정도 떨어져 있다. 보통 이집트·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가면 카이로에서 버스를 타고 자발무사까지 이동, 새벽 2시쯤 일어나 서너 시간 등정을 한 뒤 장엄한 일출을 본다. 정상에는 모세기념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자발무사가 시나이산으로 통용되는 데는 로마 콘스탄티누스 대제(재위 306~337)의 어머니 헬레나가 큰 역할을 했다. 그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로마에서 예루살렘으로 직접 순례를 왔는데, 오래전 로마의 박해를 피해 수많은 수도사가 머물던 자발무사 지역에 337년 작은 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그후 527년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재위 527~565)는 알렉산드리아의 순교자 캐더린를 기념하여 수도원을 건설하였고 뒤쪽에 솟아 있는 자발무사를 성경에 나오는 시나이산이라고 공표하기에 이르렀다.

이스라엘 민족이 목마르다고 아우성쳤을 때 모세가 큰 바위를 쳐서 물이 콸콸 솟아 나온 르비딤으로 추정되는 곳. 라우즈산 앞에 있으며 바위 높이가 22m에 달한다. photo Living Passages
이스라엘 민족이 목마르다고 아우성쳤을 때 모세가 큰 바위를 쳐서 물이 콸콸 솟아 나온 르비딤으로 추정되는 곳. 라우즈산 앞에 있으며 바위 높이가 22m에 달한다. photo Living Passages

1980년대 등장한 라우즈산 설

그 후 홍해와 시나이산의 위치를 둘러싼 논란은 간헐적으로 지속되다가, 미국의 탐험가 론 와이어트가 1980년대부터 사우디 북서쪽 미디안 지역을 탐사하면서 큰 변화를 맞았다. 당시만 해도 사우디 정부가 엄격한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한 곳이라 론 와이어트의 탐사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찍은 라우즈산 일대의 비디오테이프가 외부에 공개되면서 “라우즈산이 바로 성경에 나오는 시나이산”이라는 주장이 본격 대두되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16년간 왕실 한방 주치의 등으로 일했던 김승학(67) 엑소아크선교회 이사장은 2001년부터 지금까지 현장을 19회 방문하고 ‘떨기나무’와 ‘떨기나무2’란 책을 펴내면서 라우즈산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급속도로 높아졌다.

홍해와 시나이산에 대한 새로운 견해는 전통적인 견해를 여러 가지로 반박하고 있다. 대표적인 주장을 살펴보면 이러하다.

△홍해를 건넌 장소는 이집트를 출발하자마자 코앞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지금의 시나이반도 중심부를 가로로 횡단한 뒤 바닷가에 위치한 비하히롯(현재 이집트 누웨이바)이 그 장소다. 좁은 산골 길을 지나 누웨이바에 도착하면 200만명이 거뜬히 들어갈 수 있는 가로 9㎞, 세로 6㎞의 넓은 해안 평지가 확 터져 나온다. △누웨이바에서 사우디 쪽 바알스본으로 건너가는 아카바만의 바다 밑에는 당시 이스라엘 민족을 추격하던 이집트 전차의 수레바퀴가 오랜 세월 부식되거나 산호가 붙은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이집트 제18왕조 시대(BC 15~ BC 13세기)에 주로 사용됐던 8바퀴살도 발견되었다. △출애굽기 17장에 나오는 르비딤 광야 스토리의 경우 라우즈산 앞이 적격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물을 마시지 못하고 지냈기 때문에 모세에게 “물을 달라”고 아우성쳤다. 그때 하나님은 큰 바위를 쳐서 물이 콸콸 솟아 나오도록 했는데, 그 당시의 바위가 22m 높이로 현지에 있다. 그 반석은 둘로 갈라져 있고 그 틈으로 한 사람이 지나갈 정도다. △라우즈산의 여러 봉우리 중에도 진짜 시나이산으로 추정되는 자발마클라(Jabal Maqla)는 정상 부분이 불에 그을린 듯 멀리서도 뚜렷하게 보이는데, 이는 하나님이 불꽃과 번개 속에 직접 강림하셨다는 성경 기록의 방증이다. △라우즈산 앞쪽으로는 200만명 넘는 이스라엘 백성이 11개월5일 동안 장막을 치고 거할 수 있는 넓은 평지가 있으나, 자발무사 근처에는 그런 장소가 없다. △평지 곳곳에는 맷돌 모양의 돌이 쉽게 눈에 띄는데,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이 내려 주신 양식인 만나를 갈아 먹었던 도구일 것이다. △송아지 모습의 그림들이 여럿 새겨진 바위들이 있는데,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 40일간 시나이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다리다 못해 모세의 형인 아론을 충동질하여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던 흔적이다. 산에서 내려오다가 이 장면을 목격하고 분노한 모세가 “우상을 불살라 가루를 만들고 물에 뿌려 백성들이 마시라”고 명령했는데 당시 냇가의 흔적도 있다. △라우즈산 정상에서 살짝 내려오면, BC 9세기 북(北)이스라엘에서 활동했던 엘리야 선지자가 아합왕의 부인 이세벨의 복수를 피해 500㎞ 이상을 40일간 도망쳐서 도착한 뒤 기도했다는 ‘엘리야의 동굴’도 있다. △1세기에 살았던 사도 바울은 신약성경 갈라디아서 4장25절에서 “아라비아에 있는 시나이산”이라고 했다. 바울은 아라비아에서 3년 가까이 지내기도 했으므로, 정확한 시나이산 위치를 알았을 것이다. △라우즈산 부근의 수많은 암각화들은 사우디 고고학자들과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 팀이 고증과 검증을 거친 결과, 출애굽 시대와 같은 3500년 전 고대 글자들이라고 발표했다.

김승학 엑소아크선교회 이사장은 “지금 이집트에 있는 시나이산은 로마교황청이 시나이산을 순례하고자 하는 기독교인들의 성화에 못 이겨 527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 자발무사의 북서쪽 언덕에 캐더린 성당을 세운 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시나이산으로 명명하여 공포해 버린 것”이라며 “5세기 이전에는 자발무사를 시나이산이라 부르거나 기록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요세푸스(1세기에 살았던 유대인 역사학자)는 아라비아의 미디안 땅에 시나이산이 있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이스라엘이 1967년 6일전쟁을 통해 시나이반도를 점령하여 1982년 4월까지 조상들의 흔적을 열심히 찾았다. 시나이반도를 고고학자와 지질학자들이 바둑판 쪼개듯 면밀히 뒤졌으나 광야생활 40년의 흔적은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은 지금의 자발무사가 시나이산이 아니라고 단정 지었다. 만약 이스라엘이 조상의 흔적을 찾아내고 시나이반도에 시나이산이 있었다면 시나이반도를 이집트에 쉽게 돌려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1월 16일 라우즈산 부근에서 이스라엘의 상징인 메노라(일곱촛대) 등이 그려진 암각화를 발견한 김승학 엑소아크선교회 이사장. photo 김승학
지난해 1월 16일 라우즈산 부근에서 이스라엘의 상징인 메노라(일곱촛대) 등이 그려진 암각화를 발견한 김승학 엑소아크선교회 이사장. photo 김승학

네옴시티 건설이 논쟁에 다시 불붙여

출애굽 당시 시나이반도가 과연 이집트의 영토였는지를 확인하면 결론이 쉽게 난다는 것이 김승학 이사장의 설명이다. 이집트를 탈출했다면서 이집트 영토에서 그렇게 오래 머물렀다는 것이 말이 안 되며, 따라서 당연히 미디안으로 이동했다는 설명이다.

현재 라우즈산을 진짜 시나이산으로 보는 학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하버드대학교의 프랭크 무어 크로스 주니어 구약학 교수, 스웨덴 케로린스카대학의 레너드 몰러 교수, 그리고 한국인으로 하버드대학교에서 고대근동학을 전공한 윤사무엘 박사 등이 대표적이다. 성서고고학 전문가인 윤사무엘 미국 겟세마네신학교 총장은 최근 라우즈산 일대를 다녀왔다. 그는 “1986년 하버드대학교 수업시간에 프랭크 무어 크로스 주니어 교수가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진짜 시나이산은 아라비아에 있다고 말이다. 그때부터 관심을 갖고 연구했다. 당시는 라우즈산을 마음대로 갈 수 없었다. 대신 시나이반도에 있는 자발무사만 서른 차례 다녀왔다. 하지만 구체적인 출애굽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코로나19 기간 중에 사우디아라비아가 네옴시티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개방한 라우즈산을 이번에 가 보았다. 탐사 결과 이곳이 시나이산이 맞다는 결론을 얻었다. 엘리야 동굴, 모세의 제단, 르비딤 반석, 이드로(모세의 장인)의 집,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를 기다리다가 우상으로 섬기기 위해 만들었던 금송아지 제단 등 시나이산에서 벌어졌던 일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라우즈산=시나이산’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많다. 우선 모세 스토리를 하나의 신화(神話)나 꾸며진 이야기로 보는 시각이 있다. 성서고고학계 내부에서도 반론이 많다. 가령 사도 바울이 “아라비아에 시나이산이 있다”고 말했지만 그 당시의 ‘아라비아’는 지금과 달리 요르단 남부, 이집트 시나이반도, 사우디아라비아 미디안 등을 총괄하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라우즈산에서 발견된 암소 그림 암각화도 출애굽 당시 만든 것이 아니라 비잔틴시대나 이슬람 도래 이후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강후구 서울장신대 교수는 “라우즈산 일대의 유물과 유적 중에 출애굽 당시와 직접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고고학적 증거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미숙 장로회신학대 교수는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 혹은 아라비아반도에서 40여년을 거주했지만 광야의 특성상 물과 식량을 찾아 유랑하며 살았다. 거주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은 유목민의 습성에 따른 공간적 제한, 그리고 오랜 시간이 경과한 데 따른 시간적 제약이 있다”고 연구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전통적인 견해와 새로운 견해 중에 어느 쪽이 맞는지, 아니면 제3의 장소가 있는지는 하나님과 모세 정도만이 아는 일이다. 다만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미디안 땅에 네옴시티를 개발하고 있어, 라우즈산에 대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유대교·기독교와는 다른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만, 이슬람교에서도 모세는 ‘무사’라는 이름으로 선지자로 통한다. 어쨌든 네옴시티 개발로 인해 라우즈산과 시나이산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활성화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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