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용 드론을 짊어진 우크라이나 병사. photo 브레이킹디펜스
공격용 드론을 짊어진 우크라이나 병사. photo 브레이킹디펜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 최근호는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최초의 AI전쟁’을 표지 기사로 올렸다. 해당 기사의 핵심 주제는 ‘거대 테크기업들이 어떻게 우크라이나를 AI전쟁의 실험실로 바꾸고 있느냐?’다. 그 중심에 ‘팔란티어(Palantir)’라는 미국의 데이터 분석 전문회사가 있다. 이 기업의 CEO인 알렉스 카프는 러시아가 불법 침략전쟁을 벌인 지 3개월 만에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만난 최초의 주요 서방기업 총수였다. 팔란티어는 이미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 연방수사국(FBI), 펜타곤 및 외국의 정보기관들에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를 제공해온 기업이다. ‘21세기 인공지능 무기상’으로도 불리는 카프는 젤렌스키를 만난 자리에서 팔란티어가 개발한 데이터와 인공지능(AI) 기반 소프트웨어를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다며 “다윗이 현대의 골리앗을 이길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고 제안했다.

 

미국 팔란티어 소프트웨어의 활약

절박한 처지에 있던 우크라이나로서는 어떤 도움도 마다할 입장이 아니었다. 특히 키이우 정부 관리들은 전쟁을 계기로 자국의 기술부문을 발전시킬 기회가 열릴 수 있다고 봤다. 디지털혁신부(Minister of Digital Transformation)의 미하일로 페도로프 장관 같은 인물은 유럽 각국 수도와 실리콘밸리 등지에서 우크라이나 전장을 “최신 군사기술을 위한 실험실”로 마케팅하기 시작했다.

카프와 젤렌스키의 회동 이후 지난 1년 반 동안 팔란티어는 지금까지 유례가 없는 방식으로 전쟁에 깊숙이 개입했다. 현재 우크라이나 국방부·경제부·교육부 등 6개 이상의 기관들이 팔란티어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팔란티어 소프트웨어의 핵심 기능은 AI에 기반하여 위성 이미지, 오픈소스 데이터, 드론 영상, 지상에서 수집된 보고서 등을 분석하여 지휘관에게 군사적 옵션을 제공하는 것이다. 지금 이 소프트웨어가 “우크라이나 표적선정(targeting)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관리들은 전쟁범죄 증거 수집, 지뢰 제거, 난민, 부정부패 문제 등 전장 정보 영역을 훨씬 뛰어넘는 프로젝트에도 무료로 제공되는 팔란티어의 데이터 분석을 활용하고 있다. 정부 관리들은 인공위성 이미지를 포함한 상업용 데이터를 사용하여 전투 공간을 거의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메타콘스텔레이션(MetaConstellation)’이라는 팔란티어 도구를 사용하도록 교육받았다. 이런 소프트웨어는 정보를 동맹국이 운용하는 상업용 일반 데이터 및 군사용 기밀 데이터와 통합하여 지상군 지휘관들이 적의 위치를 파악하고 목표물의 공격 방법을 결정하도록 돕는다. 지금 우크라이나 군에는 외국 기업과의 협력을 기반으로 대대급까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배치되어 있기도 하다. 이른바 ‘디지털 킬체인(digital kill-chain)’이 구현되고 있는 셈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최근 ‘최초의 AI 전쟁’을 표지 기사로 다뤘다.(오른쪽) 왼쪽은 타임 기사에 실린 안면 인식 기술 ‘클리어뷰’ 이미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최근 ‘최초의 AI 전쟁’을 표지 기사로 다뤘다.(오른쪽) 왼쪽은 타임 기사에 실린 안면 인식 기술 ‘클리어뷰’ 이미지.

전범 식별, 지뢰제거에도 소프트웨어 동원

팔란티어 소프트웨어는 지뢰제거에도 활용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세계에서 지뢰가 가장 많이 매설된 국가로, 불발탄으로 인해 600만명 이상의 민간인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광활한 농지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팔란티어와 손잡고 지뢰제거 작업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곳을 파악하는 모델을 개발한 다음, 10년 이내에 오염된 토지의 80%를 다시 경작할 수 있도록 복구하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팔란티어 외에 다른 테크기업들도 우크라이나의 전쟁 승리를 돕기 위한 도구를 공급하고 있다. 가장 성공적인 도구 중 하나는 우크라이나의 ‘비밀 무기’로 불리는 ‘클리어뷰(Clearview)’다. 현재 18개 우크라이나 기관의 공무원 1500명이 클리어뷰를 사용하여 군사 침공에 참여한 23만여명의 러시아 군인을 식별하여 전쟁범죄 혐의를 입증할 증거와 연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실 3년 차에 접어든 우크라이나 전장에서는 이전의 전쟁과 비교해 여러 특징적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유럽에서 벌어진 21세기 최초의 국가 간 전쟁’ ‘21세기에 최초로 벌어진 1차 세계대전 형태의 참호전’ ‘21세기의 빨치산 전쟁’ ‘탱크 무용론이 본격화된 전쟁’ ‘스타링크 같은 위성 인터넷이 연결성을 제공한 최초의 전쟁’ ‘핀란드·스웨덴이 수십 년간 고수해 오던 중립국 전통의 포기를 유발한 불법적 침략전쟁’ 등이 이번 전쟁의 특징을 규정하는 표현들이다. 

러시아와의 전쟁 발발 3개월 후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국의 데이터분석 전문회사 ‘팔란티어’ CEO인 알렉스 카프(오른쪽)를 만났다. photo 블룸버그
러시아와의 전쟁 발발 3개월 후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국의 데이터분석 전문회사 ‘팔란티어’ CEO인 알렉스 카프(오른쪽)를 만났다. photo 블룸버그

‘진정한 치명적 킬체인이 구현되고 있다’

이와 관련 미국의 워싱턴포스트(WP)는 2회에 걸친 연재 기사에서 이번 전쟁을 ‘인류 역사상 최초의 알고리즘 전쟁(algorithmic warfare)’이라는 분석도 시도했다. 팔란티어가 제공한 첨단 소프트웨어를 우크라이나가 스타링크와 결합시켜 디지털 전장에서 전자 킬체인을 형성함으로써 ‘전쟁의 혁명(revolution in warfare)’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팔란티어가 개발한 소프트웨어와 전장 곳곳에 설치된 유비쿼터스 센서(무인 카메라 등)가 결합돼 ‘진정한 치명적 킬체인’이라는 전쟁의 혁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 혁명’의 요체는 뭐니뭐니 해도 드론이다. 우크라이나군은 팔란티어가 개발한 표적획득 프로그램으로 미사일이나 포병 또는 무장 드론을 선택하여 화면에 표시된 러시아 표적을 공격한다. 그런 다음 드론을 날려 표적의 피해평가를 실시하고 이 데이터를 다시 시스템에 입력한다. WP는 이에 대해 ‘마법전쟁’ 또는 ‘비밀 디지털 전투’가 벌어지는 중이라면서 “다윗(우크라이나)이 골리앗(러시아)과 싸워 이기는 비결이 바로 이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앞으로 드론이 첨단 군사능력의 획득·운용에 이르는 진입장벽을 대폭 낮춘다면 지난 100년간 형성된 ‘부·권력의 연결고리’가 약화되거나 사라지고, 결과적으로 여러 국가·비국가 행위자가 대규모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신(新) 중세주의’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드론이 인적·재정 비용을 대폭 낮춤으로써 국가가 항구적 전쟁상태에 놓이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 같은 드론혁명이 진행 중이라면 모든 국가들은 국방정책을 대폭 수정해야 한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대규모 지상전이 무기화된 드론 전단들의 전투로 대체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역사의 종말’을 주장했던 후쿠야마도 “드론의 사용은 육군력의 본질을 변화시키고… 결국에는 기존의 군구조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WP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AI를 이용한 드론전쟁의 혁명에 박차를 가하다’는 기사에서 폭탄이 장착된 우크라이나의 드론이 전파방해의 공격으로 운용자와의 연결이 끊겼지만 지상에 추락하지 않고 목표물을 향해 가속으로 날아가 파괴한 사례에 주목했다. 새로운 AI 소프트웨어가 탑재된 이 드론은 현재 러시아가 일상적으로 활용하는 전자간섭 영향을 받지 않고 목표물에 고정될 수 있다. 새로운 AI 기능은 목표물이 움직여도 드론이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특정 좌표를 추적하는 기존 드론보다 대폭 업그레이드된 기술이다.

점점 더 많은 우크라이나 드론 회사들이 개발 중인 이러한 AI 기술은 우크라이나 드론 시장에서 진행 중인 여러 혁신적 도약(innovative leaps) 중 하나로, 무인전쟁의 치명성을 가속화·대중화하고 있다. WP는 전쟁의 긴박함으로 인해 우크라이나가 ‘일종의 슈퍼 발명 실험실(a kind of super lab of invention)’이 되었다고 표현했다. 약관 32세의 페도로프 장관은 우크라이나의 ‘드론 군단(Army of Drones)’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인물이다. 그가 총괄하는 프로그램의 목적은 정찰용·공격용 드론의 최대 활용으로 러시아의 공군 및 포병 전력 우위를 상쇄하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 1년간 민간 기업이 1만명 이상의 드론 운영자를 교육하도록 지원했으며, 향후 6개월 동안 추가로 1만명을 교육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러시아 공군력은 우크라이나보다 10배 이상으로 추정되지만, 우크라이나는 분쟁 초기를 제외하고는 러시아에 공중우세권을 내어주지 않고 있다.

팔란티어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우크라이나는 공격할 표적을 선정하고 있다. photo 비즈니스인사이더
팔란티어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우크라이나는 공격할 표적을 선정하고 있다. photo 비즈니스인사이더

AI 드론은 어디까지 진화했나?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러시아의 전파방해 기술을 드론업체들과 공유하며 업체들이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전자전 무기를 테스트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는 대다수 다른 나라의 드론업체들은 생각할 수도 없는 특권이다. 서양에서는 제품 테스트를 위해 재머(jammer·전파방해기)를 실제로 발사할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특별 면허가 필요하고, 면허가 있더라도 협소한 통제구역에만 허용된다. 그 때문에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 최고 수준의 솔루션을 개발할 수 있는 매우 실질적인 기회가 제공되는 분야”로 평가된다.

이번 전쟁에서 공격용 드론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달은 러시아는 최근 들어 자체 드론부대를 창설하고 새로운 재머를 현장에 도입하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다. 러시아는 자국산 란셋(ZALA Lancet)과 이란산 샤헤드(Shahed) 등 자폭 드론을 사용하여 우크라이나의 반격을 무력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크라이나는 드론 손실 규모를 매달 1000대라고 밝히지만, 다른 추정치에 의하면 매달 1만대에 이른다. 이런 숫자들을 감안하면 역사상 최대의 드론 전쟁이 벌어지는 우크라이나에서 무인기 생산을 늘리는 것이 급선무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에서 AI를 이용한 드론전쟁의 혁명이 일어났다고 보기에는 성급하다”는 평가도 내린다. 정찰 드론이 포병의 효율성 증가에 기여했지만, 공격 드론은 일정한 한계로 인해 ‘게임체인저’가 되지 못하고 있고, AI 기반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개발 중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브레이킹디펜스(BD)는 ‘어떻게 ‘AI 드론 혁명’ 주장이 우크라이나에서 흐지부지되었나?’라는 최근 기사에서 러시아나 우크라이나는 아직 AI 기반 알고리즘을 이용한 드론으로 전쟁에서 유의미한 전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AI 기반 드론으로 목표물을 식별 및 조준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4개월 이상 최전방에서의 실전 테스트를 거친 결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양측의 AI 기반 드론은 모두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는 것이 브레이킹디펜스의 분석이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지난 2월 초 신미국안보센터(CNAS)는 ‘혁명이 아닌 진화(Evolution Not Revolution)’라는 보고서에서 “러시아의 란셋 같은 드론이 자율적 표적 식별 및 교전 능력을 가진 것으로 광고되었지만, 이런 주장은 검증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드론이 우크라이나 전장을 변화시켰지만 혁명적 방식보다는 진화적 방식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우크라이나·러시아 드론을 여전히 인간이 조종하고, 드론이 광범위한 네트워크에 연결되지 않고 규모와 살상력이 작기 때문에 그 효과가 제한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정부 비밀무기 ‘클리어뷰’

그래서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진정한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은 드론보다는 안면인식 기술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러시아 침공이 시작된 이래 1개월 동안 어두운 사무실에 칩거하던 우크라이나 내무차관 레오니드 팀첸코는 자국 영토에 쳐들어온 러시아 군인들의 수천 개 동영상과 이미지를 살펴보던 중 미국 기업인 클리어뷰로부터 ‘안면인식’ 도구를 테스트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안받았다. 그 결과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것이었다. 러시아 군인의 사진을 인식한 클리어뷰 AI의 소프트웨어는 이들의 성명, 고향, 소셜미디어(SNS) 프로필로 바로 연결시켰다. 심지어 눈을 감거나 안면의 일부가 화상을 입어 사망한 군인의 사진도 인식했다. 이렇게 해서 팀첸코는 무기를 들고 우크라이나에 쳐들어온 러시아인들을 하루에도 수백 명씩 찾아낼 수 있었다.

팀첸코에 의하면 클리어뷰는 이미 우크라이나 정부의 ‘비밀 무기’가 된 상태다. 18개 우크라이나 정부 부서의 공무원 1500여명이 안면인식 도구를 이용하여 침략에 가담한 23만여명의 러시아 군인과 공무원들을 식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관리들은 검문소에서 침입자 색출, 신분증을 분실한 시민들 민원 처리, 친러시아 민병대원과 우크라이나 부역자들의 식별 및 기소, 심지어 납치된 우크라이나 어린이 190여명의 추적 등에도 클리어뷰를 사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이후 20개월 동안 최소 35만건의 클리어뷰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클리어뷰 간의 파트너십은 양측 모두에 큰 도움을 주었다. 프라이버시 권리 침해와 관련된 의혹에 시달리던 클리어뷰는 안면인식 기술의 순기능을 홍보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AI 도구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2017년 설립되어 처음에는 비교적 비밀리에 운영되던 클리어뷰는 수년간 인터넷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토대로 99.85%의 정확도로 사람을 식별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하여 세계 최대 규모의 안면인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현재 클리어뷰의 데이터베이스는 400억개로 늘어나 지구상의 모든 사람당 평균 5개의 이미지를 보유하고 있다. 2018년까지 클리어뷰는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과 FBI를 포함한 600개 이상의 사법기관 및 연방정부에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접근권한을 소리 소문 없이 판매하고 있었다. 하지만 2020년 뉴욕타임스(NYT) 폭로 기사를 통해 회사의 존재와 데이터베이스 규모, 사법집행 기관의 이용 실태가 드러나면서 ‘기술의 천덕꾸러기(a tech pariah)’가 되었다.

비판론자들은 클리어뷰를 ‘소름 끼치는’ ‘끔찍한’ ‘디스토피아적’이라는 표현으로 맹렬히 비난했다. 그 이후 클리어뷰는 데이터를 수집한 기업들로부터 소송·벌금·중지명령 등에 시달리고 있다. 클리어뷰는 호주·프랑스·그리스·이탈리아·영국에서 불법으로 간주되고, 미국 민간기업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접근권 판매를 대부분 금지하는 유럽연합의 데이터 개인정보 보호법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러나 클리어뷰는 수많은 개인정보 보호 단체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아동 학대자 추적, 인신매매 피해자 구출, 심지어 2021년 미 의사당을 공격한 폭도들의 신원 파악 같은 공익적 목적에 기여한 점을 강조한다. 클리어뷰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부터 우크라이나 정부와 파트너십을 맺는 데 성공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클리어뷰를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일례로 우크라이나 내무부는 우크라이나 사상자가 많다는 러시아의 선전선동에 대응하기 위해 ‘손실 없음(No Losses)’이라는 이름의 러시아어 웹사이트 ‘포터닷넷(Porter.net)’을 개설하여 클리어뷰의 도움으로 러시아 군인 사망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여기서 이름을 검색하면 러시아 소셜미디어의 오픈소스 정보에 연결되어 가족들이 군인들의 전사 여부를 알 수 있다. 지난해 11월 13일 현재 여기서 신원이 확인된 러시아인은 7만1000명이 넘는다.

우크라이나는 클리어뷰가 전범 혐의자 기소를 위한 증거수집 과정을 가속화했다고도 밝혔다. 최근까지 우크라이나 검찰은 러시아의 크름반도 점령을 도운 무장 민병대 ‘크름 자위대(Crimean Self-Defense)’ 요원들의 신원 확인이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검찰이 클리어뷰를 사용하여 70여명의 신원을 신속히 파악한 상태다. 이들이 우크라이나 영토에 들어오는 즉시 당국이 체포할 수 있다. 또한 검찰은 이 도구로 고아원과 임시 보호소에서 강제로 끌려간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추적하여 러시아 가정에 입양되거나 ‘재교육’ 수용소로 보내진 것으로 알려진 아이들을 찾아냈다. 클리어뷰의 AI 도구는 가족사진 등 러시아 소셜미디어에서 수집된 이미지를 사용하여 실종 아동 중 198명의 신원을 확인하고 이들이 러시아 또는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우크라이나 전장이 시사하는 점들

미국의 예비역 해병장군인 존 앨런은 인간의 의사결정이 거의 또는 전혀 개입되지 않는 AI 기반 전쟁을 가리켜 ‘하이퍼전쟁(hyperwar)’이라고 명명했다. 로버트 워크 전 미 국방차관은 자율무기와 자율체계가 상황에 따라 독립적으로 행동방책을 선택하는 양상을 ‘알고리즘 전쟁(algorithmic warfare)’이라고 불렀다.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전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기존 플랫폼과 무인 시스템을 결합한다는 의미에서 ‘모자이크 전쟁’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최근에는 합동인공지능센터(Joint Artificial Intelligence Center)를 창설한 예비역 공군 중장 잭 샤나한이 소프트웨어가 차세대 전투체계에 필요한 국방 아키텍처의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하며, ‘소프트웨어 정의 전쟁(software defined warfare)’이라는 용어를 제시했다. 이들 신개념의 공통점은 광속으로 이동하는 데이터가 센서-사수(shooter)-부대-플랫폼을 연결하는 진정한 네트워크 전장에 대한 비전이다. 이는 빠르게 진행되는 기술발전의 영향뿐 아니라, 경쟁국·적대국이 가까운 장래에 모종의 가공할 전력(戰力)을 실전배치할 수 있다는 두려움과 상상력으로 추동되는 미래의 전쟁 시나리오들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이러한 미래지향적 비전을 현실에 더 가까이 가져온 것은 분명하다. 이번의 분쟁은 일찍이 역사상 볼 수 없었던 새로운 AI의 시험대라 할 수 있다. AI는 전자전 및 암호화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회사 프라이머(Primer)는 암호화되지 않은 러시아의 무선통신을 분석하기 위한 AI 도구를 우크라이나 군에 배포했다. 우크라이나는 도청한 러시아의 유·무선 통신 데이터를 프라이머 플랫폼으로 분석하여 러시아 군인들이 말하는 방식의 패턴을 토대로 부대이동 계획, 물류·공급망·탄약고 등의 위치·경로·상태, 전투원들의 사기·정서 및 리더십 효율성 등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식별할 수 있었다.

지금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어떤 측면에선 비극적 역설이라 할 수 있다. 분쟁이 계속되는 와중에 날마다 많은 사람들이 끔찍한 방식으로 목숨을 잃고 있지만 AI 시스템은 비극적 고통과 전쟁의 중단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에 벌어질 새로운 AI 전쟁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싸우기 위해 실제 전장에서 얻어지는 데이터로 훈련 및 무장되고 있다. 이는 우리에게도 다음과 같은 전략적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인공지능(AI)을 단지 무기체계나 경계수단 등을 넘어 군사작전 전반에 통합시키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일례로 AI는 북한에 의한 기습적 도발의 양상·형태·시기 등과 관련하여 ‘생각할 수 없는(unthinkable) 것’까지 생각해내는 데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다. 

둘째, 민관 파트너십의 확장 및 강화 필요성이다. 우크라이나 정부·군대와 팔란티어나 클리어뷰 같은 테크기업들 간의 협력은 국방기술 개발에서 민관 파트너십의 잠재적 유용성을 보여준다. 

셋째, ‘인지전’ 대응에 AI를 활용하는 방안이다. 올 3월 실시되는 한·미연합훈련인 ‘자유의 방패(FS)’ 연습에서 역사상 최초로 ‘인지전’ 시나리오가 적용될 예정이다. 심리전·사이버전·여론전·전자전 등을 두루 포괄하는 인지전의 공격·방어 연습에 AI 도구를 활용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될 필요가 있다. 

넷째, 북한과의 우발사태 발생에 대비하여 ‘프라이머(Primer)’ 같은 도구를 활용하는 방안도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특히 암호화되지 않은(unencrypted) 유·무선 통신 데이터의 분석으로 적의 강·약점을 파악하는 데 유용한 것으로 입증되었다. 

끝으로 우크라이나가 여단급까지 3D 프린터를 보급하여 저가 드론의 대량생산으로 포병화력의 열세를 만회하고 있다는 것도 필자가 주목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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