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는 반드시 소리가 날 수밖에 없다. 조용한 변화는 검은 백조와 같은 것이다.” 지난 2월 말 민주당 공천 파동이 한창일 때 이재명 대표가 한 말이다. 이 말 중에 유난히 흥미를 끄는 대목이 ‘검은 백조’라는 격조 높은(?) 비유다. 한마디로 검은 백조가 없듯이 조용한 변화도 없다는 뜻이다. 얼핏 들으면 지당한 이야기다. 이 세상에 검은 백조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놀랍게도 신대륙 호주에서 검은 백조 한 마리가 발견된 적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경험을 뛰어넘는 매우 희귀한 일이다. 우리는 이처럼 확률적으로 희박한 현상은 무시해 버리려고 한다. 그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검은 백조 현상은 일단 벌어지고 나면 엄청난 충격을 몰고 온다. 더구나 현대사회에서는 그런 현상이 점점 빈번해지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검은 백조 현상을 무시하기는커녕 아예 리스크 관리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논쟁적 담론이 있다. 바로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블랙 스완’(The Black Swan·2007)이다. 우리는 예상가능한 위험에 대응하려고 법석을 떤다. 하지만 예상가능한 것은 더 이상 위험이 아니다. 진짜 위험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한 검은 백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리스크 관리의 핵심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우리는 검은 백조가 없다고 가정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9·11테러는 전혀 예상치 못한 가운데 별안간 발생하여, 현대사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또한 주식이 수십 년 꾸준히 오르다가 단 한순간에 폭락하여, 수많은 투자가와 기업을 파산시킨다. 이런 검은 백조 현상은 발생 확률이 극단적으로 낮지만, 일단 발생하면 그 충격이 극단적으로 크다. 일단 모습을 드러낸 것은 더 이상 검은 백조가 아니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거의 본능적으로 순수하고 정교한 형식에 집착한다. 즉 플라톤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다. 뭔가 깔끔하게 설명하기 거북한 현상은 외면해 버린다. 그러나 복잡한 현실 세계에는 플라톤적 사고방식이 미치지 못하는 미묘한 경계지대가 존재한다. 즉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의 간극이 넓어서 위험한 지점이 있다. 검은 백조는 바로 이곳에서 잉태된다.

우리는 ‘평범의 왕국’에 익숙하다. 거기서는 어떤 단일 사례가 전체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한다. 옛날 떠돌이 음유시인들은 누구나 청중을 거느렸다. 그러나 요즘 세상은 점점 ‘극단의 왕국’으로 바뀌고 있다. 어떤 단일 사례가 전체에 큰 충격을 준다. 슈퍼스타 한 명이 수억 명의 청중을 거느린다. 베스트셀러 한 권이 출판 시장을 뒤흔든다. 단추 하나가 잘못 눌러지면 인류가 절멸한다. 이런 극단의 왕국은 검은 백조를 낳을 수 있으며, 실제로 낳는다.

극단의 왕국은 우리의 경험으로 이해할 수 없다. 칠면조는 1000일 동안 먹이를 받아먹다가, 추수감사절에 목이 날아간다. 이때 칠면조의 경험은 0이 아니라 마이너스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돌발 사건을 겪고도 또 다른 돌발 사건이 같은 방식으로 일어나리라고 기대한다. 즉 과거의 경험에 의존한다. 다른 방식으로 일어날 가능성에는 여전히 눈을 감는다.

우리는 확인 편향을 가지고 있다. 처음 세운 가설을 확증해 주는 증거를 찾는 데만 고집스럽게 매달린다. 그러나 백조는 희다는 가설은 검은 백조 단 한 마리의 등장으로 무너진다. 또한 우리는 요약하기를 좋아하고 단순화하기를 좋아하고 깔끔한 논리 만들기를 좋아한다. 이를 통해 세상을 질서정연한 것으로 상상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질서정연하지 않다.

세상에는 재난을 당해서도 기도를 통해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넘쳐난다. 그러나 기도를 하고도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없다. 우리는 이런 ‘말 없는 증거’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경영대학원에서도 성공사례만 가르친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성공사례보다 실패사례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처럼 우리가 세상을 대하고 바라보는 방식은 편향적이고 불완전하다.

처음에는 인터넷이 세상을 이렇게 바꿔 놓을 줄 몰랐다. 그것은 우연히 등장한 검은 백조였다. 발견 당시는 물론, 꽤 한참 후까지도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그것이 원대한 계획의 일부로 추구되었다는 평가는 나중에 만들어진 환상에 불과하다. 이와 비슷한 경우는 어느 분야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이렇듯 우리는 지난 일을 멋진 이야기로 꾸미는 데 능숙하다.

하지만 미래는 과거의 단순한 투사가 아니다. 우연이 뒤섞인 미래라는 개념은 과거의 인식을 결정론적으로 확장한 것이 아니다. 즉 과거와 미래는 비대칭적이다. 그 비대칭성은 우리가 무리 없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미묘하다. 더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평범의 왕국에서 점점 더 극단의 왕국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그만큼 예측도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가 가장 오해하는 것 중의 하나가 정규분포 이론이다. 이 이론의 핵심은 대부분의 관측값이 평균값 주변으로 몰린다는 것이다. 평균값에서 멀어질수록 발생 확률이 급속도로 낮아진다. 그래서 어느 지점 이상은 발생 가능성을 아예 무시해 버린다. 그것이 ‘과학적’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이를 통해 검은 백조가 절대로 없다는 가설이 과학적 이론으로 확립된다.

실제로 평범의 왕국에서는 평균값에서 아주 먼 사건이 벌어지는 경우가 별로 없다. 아무리 부자라도 부에는 한계가 있다. 반면 극단의 왕국에서는 평균값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사건도 적지 않다. 유명한 부호 한 명의 부가 천문학적이다. 오늘날 복잡한 현실, 나아가 극단의 왕국은 불균형적·가중적·무작위적이다. 그런 세상은 정규분포 이론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극단의 왕국에서 어떤 사건이 검은 백조에 해당한다고 해서 그것이 꼭 희귀하거나 극히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검은 백조란 우리가 예상한 확률 밖에 존재하는 사건일 뿐이다. 이런 사건은 일단 발생하고 나면 그 특성을 우리에게 내보인다. 이를 근거로 발생 확률을 계산해 낼 수는 없어도 발생 확률에 대한 일반 개념은 대충 그려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검은 백조를 ‘회색 백조’로 만들 수 있다. 즉 이들이 몰고 올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다.

검은 백조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좋은 것도 있다. 우연한 과학적 발견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같은 것이라도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손익이 갈릴 수 있다. 투자가인 저자는 투자금의 90%는 가장 안전한 곳에 넣고, 10%는 검은 백조에 투자한다. 물론 10%을 통째로 날려 버리기 일쑤다. 하지만 때로는 엄청난 수익을 올린다. 단 한 번의 수익이 여러 번의 손실을 메우고도 남는다. 이처럼 검은 백조는 예측은 할 수 없어도 어느 정도 대응은 할 수 있다.

이재명 대표뿐만 아니다. 우리는 검은 백조는 없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복잡한 현실 속에는 검은 백조가 분명히 존재한다. 예측은 불가능하다. 관건은 어떻게 대응하느냐다. 이때 검은 백조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다면, 피해를 막거나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엄청난 피해나 손실을 피하기 어렵다. 자주 반복되는 선거도 여전히 결과 예측이 어렵다. 더구나 검은 백조라도 불쑥 등장하면, 선거판은 완전히 미궁에 빠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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