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 앤드루스 올드코스 18번 홀에서 티샷을 하는 골퍼와 지켜보는 캐디. photo 윤영호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코스 18번 홀에서 티샷을 하는 골퍼와 지켜보는 캐디. photo 윤영호

“스윙이 좋은 나쁜 골퍼는 많아도 세트업이 좋은 나쁜 골퍼는 없다. 스윙은 하나의 테크닉이지만, 세트업은 모든 것이다.”

세인트 앤드루스 16번 홀 옆에는 링크스 골프 아카데미가 있다. 그곳에서 진행되는 일주일 골프 레슨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았다. 한국, 말레이시아,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아일랜드, 독일, 이탈리아, 미국 등지에서 온 16명의 골퍼가 같이 교육을 받았다. 핸디캡 6에서 12 사이의 골퍼였다. 오전에는 연습시설에서 레슨을 받고, 오후에는 세인트 앤드루스 링크스 코스(뉴코스, 주빌리코스, 에덴코스와 스트래티럼코스)에서 레슨이 진행되었다.

첫 시간 강의를 맡은 스콧 헤럴드는 교육을 받으러 온 이유를 물었다. 대부분의 골퍼는 “스윙을 고치고 싶다”고 답했다. 그에 대한 스콧 헤럴드의 대답이 서두 문장이다.

세트업은 샷을 하고 나서 그다음 샷까지의 준비 과정을 통칭한다. 세트업은 스윙 직전의 프리샷 루틴(preshot routine)보다 포괄적인 개념이지만, 프리샷 루틴은 세트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링크스 아카데미에서 연습 중인 오바마 전 미 대통령. photo 링크스 아카데미
링크스 아카데미에서 연습 중인 오바마 전 미 대통령. photo 링크스 아카데미

긴장 개입 최소화 위해 필요한 것이 세트업

올드코스에서 첫 번째 플레이할 때 올드코스에서 45년간 일한 캐디는 “이렇게 서두르는 골퍼는 처음 본다”라고 질책했다. “전체적으로 서두르면서 프리샷 루틴은 일정하지 않다”라는 지적도 했다. 이후로 골프를 칠 때마다 올드코스 캐디의 ‘처음 본다’라는 말을 상기하며 여유를 가지려 노력했고, 그렇게 골프 실력은 좋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프리샷 루틴의 중요성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황에 따라 연습 스윙 횟수와 방법이 달랐다.

스콧 헤럴드는 골프가 어려운 것은 샷과 샷의 간격이 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 사이에 많은 생각이 자리 잡는다. 테니스와 탁구는 샷과 샷의 간격이 짧아서 긴장이 개입할 여지가 적다. 순간순간 공에 반응하기 바쁘기 때문이다. 골프에서 중요한 순간에 실수가 많이 나오는 것은 중요한 순간일수록 더 많은 간격을 가지게 되어 긴장이 더 많이 담기기 때문이다. 프리샷 루틴을 일정하게 가져가면 준비과정에서 몸이 평상시와 같은 상황임을 인식하여 평상시와 같은 샷을 할 수가 있다.

아카데미의 또 다른 프로인 스콧 윌슨은 프로 중에도 세트업이 나쁜 프로가 있다고 말했다. ‘세트업이 나쁜 프로가 어디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후로 골프 중계를 볼 때마다 샷에 집중하기보다는 세트업에 집중해서 보았는데, 실제로 세트업이 나쁜 프로는 있었다. 같은 선수라고 해도 드라이버 세트업은 좋은데 어프로치 세트업이 좋지 못한 프로가 있고, 아이언샷 세트업은 좋은데 퍼팅 세트업은 상대적으로 좋지 못한 선수가 있는 것이 보였다.

대표적인 선수가 로리 맥길로이다. 그의 드라이버와 아이언 세트업은 훌륭하지만, 퍼팅 세트업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PGA 투어에서 그의 퍼팅 실력은 85위에 머물러 있다. 퍼팅 세트업이 가장 인상적인 선수는 윈덤 클라크이다. 그는 본인만 일정한 세트업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캐디조차 세트업의 일부로 움직인다. 윈덤 클라크가 마지막으로 라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캐디는 웨지를 들고 퍼팅 자세를 취한다. 캐디의 그러한 동작이 퍼팅에 어떠한 도움을 주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선수와 캐디가 그린에서 일체감 있게 움직이는 모습은 훌륭한 세트업의 표본처럼 보인다.

테니스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서브다. 서브할 때만 간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완벽한 서비스 세트업을 가지고 있는 선수가 라파엘 나달과 조코비치다. 조코비치는 침착하게 공을 10번 전후로 튀기면서 완벽한 타이밍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튀기는 동작을 처음부터 다시 한다. 그것이 매치 포인트 세컨드 서브 상황에서도 정확하게 서브를 넣을 수 있는 이유다.

올드코스에서 만난 다니엘은 30세의 나이에 이미 클럽 챔피언을 두 번이나 했다. 골프 실력이 도약한 계기를 묻는 질문에 그는 “세트업에 신경 쓰면서부터 골프가 늘었다. 세트업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는 요소가 있다면, 처음부터 다시 세트업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링크스 아카데미 레슨 모습. photo 링크스 아카데미
링크스 아카데미 레슨 모습. photo 링크스 아카데미

멘탈도 세트업의 일종이다

DP월드투어의 CEO인 키이스 팰리는 훌륭한 선수가 되기 위한 중요한 요소로 강한 멘탈을 꼽았다. 멘탈의 강약을 재는 척도로 그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다. “타이거 우즈가 뒤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자신의 세트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강한 멘탈이다.” 프로 선수 중에도 그걸 유지하지 못하는 선수가 많다고 말했다. ‘프로 선수가 타이거 우즈가 뒤에서 재촉한다고 해서 자신의 세트업을 유지하지 못할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2023년 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에서 김주형 선수가 로리 맥길로이와 마지막 날 챔피언조에서 플레이했다. 앞선 조에서 로버트 매킨타이어가 14언더파로 경기를 마쳤고, 18번 홀을 경기하던 김주형이 11언더파, 맥길로이가 14언더파였다. 맥길로이의 버디 퍼팅은 핀으로부터 네 걸음 거리에, 김주형의 파 퍼팅은 두 걸음 거리에 있었다. 김주형은 챔피언 퍼팅 기회를 잡은 맥길로이를 배려하기 위해 먼저 퍼팅하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퍼팅 자세를 취한 상황에서 강한 바람으로 공이 움직이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당황한 김주형은 경기위원을 불렀고, 그 과정에서 시간이 소요되었다. 맥길로이를 배려하기 위한 그의 행동은 오히려 맥길로이를 방해하고 있었고, 그는 맥길로이의 눈치를 봤다. 오래 시간을 끈 후에 친 김주형의 파 퍼팅은 홀컵을 한 걸음 넘게 지나쳤다. 평상시라면 공을 마크하고, 닦고, 다시 정렬한 후에 보기 퍼팅을 했을 것이다. 김주형은 이미 자신이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은 것이 신경 쓰였다. 프리샷 루틴을 지키지 않고 툭 친 공은 다시 홀컵을 외면하고 말았다. 18번 홀에서 더블 보기를 범한 김주형은 단독 3위가 될 수 있었던 경기를 공동 6위로 끝냈다.

타이거 우즈가 뒤에서 재촉하고 있을 때 자신의 프리샷 루틴을 유지하는 것이 골퍼에게 필요한 멘탈이다. 어린 김주형은 당시에 충분히 강한 멘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프리샷 루틴이 좋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그의 루틴이 강력했다면, 그의 루틴은 맥길로이에 대한 배려나 눈치로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멘탈과 프리샷 루틴이 모두 세트업이다. ‘세트업이 좋은 나쁜 선수는 없는 법이다’라는 말이 가슴에 박히는 장면이었다. 세트업의 중요성을 익히 알고 있었을 김주형은 골프의 제2 성지인 노스베릭에서 멘탈이 중요한 세트업 요소라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르네상스 골프클럽, 뮤어필드, 노스베릭 골프클럽이 있는 노스베릭 지역은 또 하나의 골프 성지다. 인근에 굴레인과 머셀버러도 있다.) 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에서 성숙해졌을 김주형은 일주일 후에 열린 151회 디오픈에서 공동 2위라는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김주형이 배려와 양보, 눈치보기와 서두름으로 고생하고 있을 때, 캐디가 김주형의 행동에 관여해야 했다. 먼저 퍼팅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어야 하며, 한 걸음 넘는 퍼팅을 프리샷 루틴 없이 하는 것을 막아야 했다.

 

캐디는 동반자이며 선생님이다

올드코스에서 세 번째 플레이할 때 만났던 캐디 존은 27년 경력의 캐디였다. 원래는 런던 근교의 퀸우드 골프클럽에서 캐디를 하다가 세인트 앤드루스로 올라왔다. 미국 자본으로 설립된 퀸우드 골프클럽은 영국에서 가장 폐쇄적인 골프클럽이며 가장 비싼 골프클럽이다. 마이클 더글러스, 휴 그랜트, 캐서린 제타존스, 대런 클락, 어니 엘스와 해외의 부유한 비즈니스맨이 회원으로 있는 곳이다. 존이 퀸우드를 떠나 올드코스로 온 이유는 퀸우드 골프클럽이 캐디를 시종처럼 대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퀸우드의 캐디는 유니폼을 입고 골퍼가 올 때까지 정렬해 서 있어야 하며, 플레이어가 정해진 금액 이상의 캐디피를 지급하는 것을 금지했다. 팁을 많이 주면 캐디의 버릇이 나빠지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다. 때로는 멤버들이 캐디를 하대하는 정도가 지나쳤다.

그에 반해 올드코스는 캐디를 파트너로 대한다. 올드코스에서 캐디는 코스 구석구석에 남겨진 역사를 설명해 주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올드코스의 플레이어는 캐디에게 예의를 다한다. 성지에 와서 성지 지킴이를 하대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30년 런던 생활을 청산하고 올라온 존은 대우받는 선생님 역할에 행복하다. 김주형의 캐디도 김주형의 선생님이어야 한다.

 

안전을 위해 ‘포어’라는 말을 외쳐라

캐디에게 올드코스가 모두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올드코스는 아웃코스와 인코스가 겹치고, 페어웨이를 공유하는 홀이 많기 때문에 골프공이 뒤에서만 날아오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도 날아올 수가 있다. 존의  친구는 30년 동안 올드코스에서 캐디로 일하면서 29번이나 공에 맞았다. 잘못 친 공이 사람을 향해 날아갈 경우에는 되도록 크게 ‘포어(fore)’라고 외쳐야 한다.

예전의 골프공은 가죽에 새깃털을 넣어 만들었다. 공의 가격은 골프채 하나의 가격과 같았다. 골프를 칠 때마다 골프채를 서너 개씩 잃어버린다면 골프를 지속하기 어렵다. 옛 세인트 앤드루스 골퍼들은 공의 예상 낙하지점 우측과 좌측 러프에 어린이를 고용하여 세워 두었고, 그들은 골퍼와 함께 홀을 이동했다. 그들을 ‘포어캐디’라고 불렀다. 공이 오른쪽으로 날아가면 오른쪽 포어캐디에게 조심하라는 의미에서 ‘포어 라이트’, 왼쪽으로 날아가면 왼쪽에 있는 포어캐디에게 조심하라는 의미에서 ‘포어 레프트’를 외쳤다.

좋은 캐디를 쓰고, 캐디가 주저함 없이 조언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골퍼의 몫이다. 그것 또한 넓은 의미의 세트업이다. 위대한 선수에게는 위대한 캐디가 있고, 좋은 선수에게는 좋은 캐디가 있다. 세계랭킹 1위의 스코티 셰플러에게는 테드 스콧이라는 걸출한 캐디가 있다. 스윙은 하나의 기술이지만, 세트업은 모든 것이다. 세트업이 좋은 나쁜 선수는 없다. 골프만이 아니라 삶 전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트업이다.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