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훈련 중인 핀란드군(위)과 스웨덴군. photo 뉴시스
동계훈련 중인 핀란드군(위)과 스웨덴군. photo 뉴시스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은 유럽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분수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핀란드는 약 70년, 그리고 스웨덴은 약 200년 동안 중립국 지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양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무력침공이 이뤄진 직후인 2022년 5월 나토 가입 의사를 동시에 밝혔다. 이후 핀란드는 지난해 4월, 그리고 스웨덴은 올 3월 각각 나토의 31번째와 32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할 때의 명분 가운데 하나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차단’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되레 핀란드·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부추긴 꼴이 되었다. 침략국의 안이한 상황인식이 어떻게 정반대의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드라마틱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핀란드의 나토 가입 발표는 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사실 핀란드는 수년 전부터 나토 가입을 고민해 왔다.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핀란드화(finlandization)’라는 경멸적·자조적 말까지 들어온 핀란드는 러시아와 1340㎞에 달하는 국경선을 마주하고 있다. 2016년 핀란드 외무부가 작성한 나토 가입의 잠재적 영향에 대한 보고서는 나토 가입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도록 건의했다. 그러나 투표는 진행되지 않았다. 추정컨대 국민적 여론이 미온적이고 비동맹 노선의 포기 움직임이 러시아를 자극할 것이 우려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북극의 스파르타’로 불리는 핀란드

소련 붕괴 이후 유럽연합(EU)을 단순한 무역 파트너로 여긴 스웨덴과 달리 당초부터 핀란드는 EU에 가입하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으로 계산했다. 결국 이러한 ‘나토 옵션’을 행사하면서 핀란드는 특유의 실용주의를 다시 보여줬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계기로 핀란드인들은 1939년 소련이 자국을 침략한 ‘겨울전쟁’의 악몽을 떠올렸다. 80여년이 지난 지금, 러시아의 불법적인 우크라이나 침략을 목격한 핀란드는 동쪽 인접국가와의 잠재적 대결 준비에 나선 상태다. 냉전 시기 노르웨이 정치학자인 아르네 올라브 브룬틀란트는 소련·핀란드 간 ‘우호·협력·상호지원에 관한 협정’을 언급하며 핀란드의 국방 전략을 ‘원조로부터의 보호(protection from assistance)’라고 평가했다. 이는 소련으로부터의 암묵적 위협을 용인해야 하는 ‘핀란드화’로부터 벗어나려는 핀란드의 몸부림을 상징한다. 즉 ‘원조로부터의 보호’는 ‘협정’의 탈을 쓴 ‘보호’ 명분으로 자율적 정책결정이 침해당하고 국가주권이 상실되지 않도록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말한다.

핀란드의 이런 노력과 관련해 뉴욕타임스(NYT)는 얼마전 ‘러시아의 인접국이라면 자위는 모두의 관심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핀란드 군대를 ‘북유럽 최강’으로 평가한 바 있다. 여기서 말하는 ‘북유럽’이란 스칸디나비아반도, 덴마크, 아이슬란드, 발트3국 등을 가리킨다. 18~30세의 핀란드의 남성은 의무적으로 군에 입대하거나 대체 민간복무를 해야 한다. 인구 550만명의 핀란드에서 평시에는 13만명이 군에 복무하며, 유사시에는 비교적 젊은층으로 구성된 예비군 20만명, 그리고 60세 이하 성인 남성들로 이뤄진 예비군 59만명을 동원할 수 있다. 1939년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의 침략을 당한 역사적 트라우마가 핀란드 군대를 북유럽 제1의 군대로 만들었다.

미군과 합동훈련 중인 스웨덴 공군기. 스웨덴은 GDP 대비 1.5% 수준인 현 국방비를 2026년까지 나토 기준인 2%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다. photo 뉴시스
미군과 합동훈련 중인 스웨덴 공군기. 스웨덴은 GDP 대비 1.5% 수준인 현 국방비를 2026년까지 나토 기준인 2%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다. photo 뉴시스

핀란드 북극권 이발로의 비밀 미군기지

당시 소련군은 탱크 2500대와 40만 대군을 앞세워 핀란드를 짓밟았다. 핀란드는 수적으로 절대적 열세였지만 혹한의 기상과 산악지대 특성을 활용한 특유의 게릴라 전투로 버텨냈다. 약 7만명의 사상자와 11%의 영토 손실(소련이 강탈)이라는 피해를 입었지만, 완전한 국가 패망은 피할 수 있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핀란드의 포병부대는 지금도 유럽 최대 규모이며, 군사 분야 엔지니어들은 함정·지뢰·장애물·방어장비 분야 등에서 최고 수준으로 꼽힌다. 항공력의 경우, 핀란드 공군이 2026년에 F-18을 F-35(64대)로 교체하면 노르웨이·덴마크의 F-35(각 52대·27대)와 스웨덴의 사브 JAS 39 그리펜(최소 60대)을 포함한 북유럽의 공군 전력은 러시아 공군의 북방 전력에 필적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이런 핀란드에 대해 포린폴리시(FP)는 ‘북극의 스파르타(Arctic Sparta)’라고 칭하면서 러시아 본토에서 불과 20마일 떨어진 핀란드 ‘이발로(Ivalo)’라는 마을을 소개한 바 있다. 이곳에는 규모 미상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데, 2023년 12월 미국·핀란드 간 체결된 ‘국방협력협정(DCA)’에 따라 양국은 북극에 인접한 핀란드 최북단 라플란(Lapland) 지역에서의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여기에는 미국의 군용장비·물자 사전배치, 항공기·선박·차량의 핀란드 전역 이동, 나아가 양국 간 안보·경제·기술협력 등이 포함된다. 한마디로 미국은 북극지역에서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핀란드와의 DCA에 따라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전진기지를 마련한 셈이다. 미국은 노르웨이,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같은 국가들과도 유사한 협정을 맺어 유사시 군사기지 사용권을 확보했다.

 

러시아 난민 유입 작전에 맞서 국경 울타리

앞으로 핀란드는 나토 가입에 수반되는 일정 부분의 리스크를 감수해야 할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핀란드의 나토 가입이 확정된 직후 러시아는 “핀란드와 나토 동맹국들의 공격적인 결정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대표적 사례가 난민의 무기화(weaponized migration), 인프라를 겨냥한 은밀한 공작, 영공 침범 같은 하이브리드 공격이다. 일례로 지난해 가을 소말리아·시리아·예멘·케냐·모로코·파키스탄 출신의 망명 신청자 약 1300명이 이발로 인근을 포함한 핀란드·러시아 국경 주변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핀란드는 러시아가 고의로 난민들을 이곳으로 수송하여 국경선을 넘도록 강요한 것으로 본다. 이에 맞서 핀란드는 지난해 11월 말 국경 전체를 폐쇄했으며, 동쪽 국경선을 따라 약 200㎞의 울타리를 세우기 시작했다.

핀란드 국방정책의 대전제는 해외원정 작전의 원천적 배제와 자국 영토 내에서의 결전 수행이다. 1968년부터 핀란드는 잠재적 침략자의 공격을 흡수하고 침략자를 지치게 만들기 위해 광활한 영토를 사용해야 한다는 영토방어 원칙을 채택했다. 이 원칙은 위기 시 국가방위를 위해 사회의 모든 가용자원을 사용해야 한다는 ‘총력안보(total defense)’ 개념으로 보완되었다. 핀란드 국방부가 매년 실시하는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2%가 유사시 국방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응답했다. 5년 전에도 이 비율은 87%였다. 

 

모든 젊은 세대가 국방과 견고히 연결

핀란드 국방장관을 지낸 해군 제독 출신의 카스칼라에 의하면, 핀란드는 “사회 전체가 나라를 지키는 국방에 참여할 많은 훈련과 교육을 실시”한다.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정보의 정확성’을 평가하는 방법을 배우고, 성인들은 응급처치, 소화(消火), 호신술 등 비상사태에 대비한 무료 교육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또한 정치·비즈니스·정부·시민사회 등 모든 분야의 리더들이 다양한 유형의 위기대응을 연습하는 ‘국가안보 과정(National Defense Course)’을 이수한다. 이는 미래 사회의 주역인 젊은 세대가 국방과 견고히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하여 군 복무를 하지 않는 모든 분야의 국민들도 국가안보와 국방에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또한 핀란드 정부는 ‘단합된 전선’을 제시한다. 정부의 고위 공무원으로 구성된 안보위원회(Security Committee)는 기관 간 협력을 담당한다. 특히 핀란드는 정부가 국가안보를 위해 역할을 다하려면 신뢰에 바탕을 두는 기관 간 협력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미국도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대한 미흡한 대응으로 연방정부 기관 간 협력의 공백이 드러나자 핀란드의 대응방식을 롤모델로 삼기 위해 고위급 국방·안보 대표단을 핀란드에 파견하기도 했다.

핀란드 여성들이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 ‘북극의 스파르타’로 평가받는 핀란드 국민의 80% 이상이 ‘유사시 국방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답한다. photo 뉴시스
핀란드 여성들이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 ‘북극의 스파르타’로 평가받는 핀란드 국민의 80% 이상이 ‘유사시 국방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답한다. photo 뉴시스

러시아 잠수함 사냥하던 무스코 기지 부활

핀란드와 함께 나토에 가입한 스웨덴도 안보 위기감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11월 영국의 더타임스(The Times)는 “스웨덴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안보 위기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한때 평화·중립·사회통합의 상징이던 스칸디나비아의 부국 스웨덴이 지금은 러시아 침략전쟁, 이슬람 테러, 무장 조폭집단들 간의 마약전쟁 등 3개 전선에서 동시에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불법 무력공격이다. ‘철의 장막’이 등장한 후 소련이 핀란드에 중립을 강요하자, 스웨덴도 핀란드와 유사한 노선을 취하면서도 영국과는 신호정보(SIGINT) 분야에 초점을 맞춘 ‘비밀동맹’을 유지했다. 지리적으로 소련과 가까운 스웨덴은 소련의 통신감청에 이상적 위치다. 특히 스웨덴 국방무선국(Försvarets radioanstalt·FRA)은 소련과 그 동맹국들 간 신호를 가로채고, 이를 해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는 냉전 기간 동안 나토에 귀중한 정보였다.

하지만 스웨덴은 냉전 종식 이후 불과 몇 년 동안 육군의 90%, 해·공군의 70%를 줄였다. 소련이 붕괴하자 스웨덴은 이제 전쟁은 ‘과거의 일’이 되었다고 확신했다. 냉전 기간 동안 국내총생산(GDP)의 3%에 이르던 국방비가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영구평화’의 시대가 찾아왔다고 성급하게 판단하여 국방력을 자발적으로 약화시킨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 ‘무스코(Muskö)섬’에서 나타났다. 무스코 해군기지(Muskö Naval Base)는 스톡홀름 바로 남쪽의 무스코섬(3.6㎢·여의도 절반보다 약간 작음)에 위치한 지하 시설이다. 냉전이 절정에 달했던 1950년부터 시작된 기지 건설은 거의 20년이 지난 1969년에 완공되었다. 공사 과정에서 약 150만t의 견고한 화강암 덩어리를 깨고, 구축함·잠수함 접안용으로 부두 3개를 지었다. 지하 시설들은 약 20㎞의 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냉전 기간 동안 이 시설은 극비로 유지되어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무스코 기지의 주요 임무는 소련 잠수함 사냥이었다. 그런데 탈냉전 시기에 접어들자 2004년 스웨덴 정부는 카를스크로나 해군기지와 베르가 해군기지 2개만 유지하기로 결정하고 무스코 기지의 대부분 시설을 폐쇄했다.

그러나 다행히(!) 무스코 기지는 철거되지는 않았다. 유일한 이유는 20㎞에 달하는 지하터널의 폐기에 너무 많은 비용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최소 인력으로 시설을 유지하면서, 2004년부터 전략적 ‘개점 휴업’ 상태에 들어갔다. 관광객의 출입도 허용되었다. 소련과 벌어질지도 모르는 핵전쟁까지 대비하여 구축했던 극비의 거대 해군기지가 관광명소 중 하나로 전락한 꼴이다.

그러나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이던 크름반도를 불법 강탈한 사건이 벌어지면서 스웨덴의 안보 인식도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2019년 영국의 가디언지는 “러시아의 공포 속에 스웨덴 해군이 지하 사령부로 복귀했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스웨덴 입장에서는 2014년 러시아의 불법적인 크름반도 점령·병합으로 “상황이 완전히 돌변”했다. 러시아보다 상대적 약소국이지만 스웨덴보다 훨씬 강대한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러시아가 이런 짓을 저질렀다는 것은 스웨덴에도 똑같은 비극이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 이후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냉전 시기 GDP의 3%에 이르렀다가 탈냉전 시기에 1%로 급감했던 국방비를 올해에는 무려 30% 가까이 대폭 증액했다. 스웨덴은 내년 기준으로 GDP 대비 1.5% 수준의 국방비를 2026년까지 나토 기준인 2% 수준으로 늘릴 예정이다.

핀란드와 마찬가지로 스웨덴도 총력안보의 모범으로 주목받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청소년·퇴직자·교사·경찰 같은 사회 각계각층을 두루 참여시키는 스웨덴 국가안보는 러시아의 침략을 두려워하는 다른 유럽국들에 모범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비상사태에 대비한 스웨덴 정부의 웹사이트(https://www.msb.se/sv)에는 “스웨덴에 거주하는 16~70세의 모든 사람은 스웨덴 총력안보의 일부”라고 명시되어 있다. 사실 스웨덴의 ‘총력안보’는 핀란드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름반도 강탈 이후 이를 공식 안보·국방정책으로 채택했다. ‘위기 또는 전쟁이 오면(If Crisis Or War Comes)’이라는 20쪽 분량의 소책자는 “스웨덴이 공격을 받으면 (시민들의) 저항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스웨덴의 비밀병기는 ‘총력안보’

스웨덴은 특히 민방위 분야에 중점을 두고 모든 시민들에게 유사시에 대비하여 음식·식수·구급약 및 배터리가 필요 없는 라디오 등 2주일 분량의 물품을 가정에 보관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자연재해, 테러, 사이버 공격, 전쟁 등에 대비하는 스웨덴 민방위청은 군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최근 실시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군대에 대한 스웨덴의 대중적 지지도는 81%에 달했다. 이는 조사가 시작된 2012년 56%의 지지율을 기록한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이처럼 군에 대한 광범위한 대중적 지원과 호황을 누리고 있는 민간 기술의 결합으로 스웨덴의 최첨단 방위산업이 탄생했다. 지구상에서 인구가 불과 1000만명이고 국토 면적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보다 작은 소국들 중 첨단 전투기, 잠수함, 수상함, 보병전투차량(IFV), 포병 시스템을 독자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나라는 스웨덴이 유일하다. 역대 스웨덴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강력한 군사력의 보유를 위해서는 무기체계의 자급자족이 필수적이라고 확신했다.

신규 회원국으로서 스웨덴이 나토의 억제력 강화에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분야는 무려 26만7000개가 넘는 ‘섬’이다. 또한 총길이가 3200㎞에 이르는 해안선은 북극해-북해-대서양을 연결하는데 여기에는 전 세계 통신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데이터 케이블이 수면 아래 깊숙이 깔려 있다. 북유럽과 발트해 국가들로서는 이 지역을 통과하는 무역 없이는 경제적으로 생존할 수 없다. 

스웨덴 군대는 만(灣), 섬, 좁은 해협, 주요 해저 인프라가 집중된 수심 200피트 미만의 얕은 바다에서 신속·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유능한 해군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발트해, 서해(Western Sea), 북유럽 해역은 석유 및 가스 굴착장비, 수중 파이프라인, 통신·전력 수중 케이블, 해상 풍력발전 단지, 풍차 등이 밀집된 전략적 요충지다. 냉전 시대부터 소련과 러시아는 이 지역에 미국의 선박·함정이 들어오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괴롭히곤 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본격적인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지난 2년 동안 발트해에는 더 많은 나토 함정들이 출동했으며, 핀란드·노르웨이를 포함한 북유럽 국가들은 전기광학 센서와 도처에 산재한 선박 기지를 통해 러시아 선박·함정의 추적에 협력하고 있다. 노르웨이 서부 해안으로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러시아 선박·함정들을 추적하는 북유럽 국가들은 고정식·이동식 센서로 러시아 선박·함정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이동 상황을 실시간으로 각국으로 전달한다. 이제는 냉전 당시와 상황이 반대로 바뀐 것이다.

올해 들어 스웨덴 총리와 국방장관이 국민들에게 ‘정신적’ 전쟁 대비를 촉구한 가운데, 독일과 에스토니아 장관들은 러시아가 5~8년 이내에 NATO를 공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나토·러시아 간에 예상되는 정면 충돌 시나리오 중 우선순위가 높은 것은 △발트해 일대의 수중 인프라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 △나토의 가장 취약한 고리로 간주되는 ‘수왈키갭(Suwalki Gap)’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 2가지가 꼽힌다. 이 중 러시아가 발트해 수중 인프라를 공격하는 시나리에 대해 포린폴리시(FP)는 “나토의 새로운 발트 블록이 해결해야 할 제1의 과제”라고 평가했다.

FP에 의하면 스웨덴의 전광석화 같은 나토 가입으로 발트해 일대에 새로운 전략적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현대 역사상 최초로 러시아를 제외한 이 지역의 모든 국가가 단일 군사동맹에 소속되자, 혹자는 발트해를 ‘나토의 호수’로 선언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배를 떠나서, 강력한 북동부 블록의 탄생은 푸틴의 불법적 침략전쟁이 유럽에 초래한 가장 중요한 전략적 역풍이다. 북유럽, 발트 3국, 폴란드, 독일 등 새로 단일전선으로 통합된 ‘발트 블록’은 나토의 파워를 회복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새로운 발트 블록의 탄생

새로 등장한 발트 블록의 최우선 당면과제는 해양 인프라 보호와 에너지 안보라는 두 가지 중첩된 현안을 해결하는 것이다. 앞서 간략히 언급한 대로 발트해에는 서쪽의 북해와 마찬가지로 항만, 터미널, 해저 파이프라인, 송전 케이블, 통신 케이블 등 핵심 인프라가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발트해 연안 국가들은 러시아 에너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인프라 확장, 해상 풍력단지 건설, 새로운 해저 송전선 투자 등에 나서고 있다. 이런저런 형태의 투자들은 이미 혼잡한 발트해에 핵심 인프라 네트워크의 밀집도를 더욱 높이게 될 것이다.

나토는 수왈키갭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이곳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국경을 따라 약 60마일(약 97㎞) 너비로 형성된 전략적 통로로, 러시아의 속국인 벨로루시와 러시아의 역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를 연결하는 회랑이다. 이는 발트 3국(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과 나토의 나머지 국가를 연결하는 접경선이기도 하다. 만일 우크라이나가 무너지면 다음 표적은 수왈키갭이 될 것으로 단언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나토에 가입한 핀란드와 스웨덴은 여러 면에서 수왈키갭 방어와 동유럽 안보에 기여할 수 있다. 양국의 나토 가입은 동유럽과 발트 연안 국가들을 나머지 동맹국들로부터 고립시키려는 러시아의 공격 계획을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이는 러시아의 잠재적 침략을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스웨덴·핀란드는 모두 북유럽과 발트해 지역의 험난한 지형에서 효과적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유능한 첨단군대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의 합류로 집단방어 역량이 향상된 나토는 보유 자원을 수왈키갭과 동측면 방어에 집중할 수 있을 전망이다. 또 핀란드·스웨덴이 나토에 포함되면서 합동·연합 훈련, 정보 공유, 작전계획 수립 등을 포함한 안보·군사 협력이 더욱 확대될 수 있다. 이는 유사시 수왈키갭에서 발생하는 모든 형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병력·장비 배치, 전반적 상황인식, 준비태세 강화 등에 기여할 것이다. 핀란드·스웨덴의 가입은 유럽의 집단적 방어역량 및 억제력에 대한 강력한 정치적 의지와 동맹의 공고한 결속력·결의도 상징한다.

핀란드·스웨덴의 나토 가입으로 지구상에 남은 중립국은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뿐이다. 그러나 두 나라도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독일 주도의 유럽영공방어계획(ESSI)에 가입하여 중립적 색체를 희석시켰다. 러시아의 불법적 침략에 안보 위협을 느낀 중립국들이 미국·서방 중심의 동맹진영과 제휴하면서 사실상 유럽 대륙에서 중립주의 시대가 종말을 맞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냉전시기에는 서방·공산 진영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펼치다가 지금은 새로운 나토 회원국 신분으로 대전환을 이룬 핀란드·스웨덴 사례는 “약소국은 균형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자신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균형외교’가 아니라 ‘생존외교’임을 뼈저리게 절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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