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인이 북적이는 도쿄 시부야 번화가. photo 뉴시스
행인이 북적이는 도쿄 시부야 번화가. photo 뉴시스

한때 세계 경제 넘버원을 노렸으나 오히려 30년간 가라앉아 있던 일본 경제가 부활하는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 3월 19일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日本銀行·BOJ)은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을 벗어나기 위해 2016년 2월부터 유지해온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8년 만에 해제하고, 2007년 2월 이후 17년 만에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이에 따라 기준금리는 마이너스(-) 0.1%에서 0~0.1%로 인상되었다.  다른 돈 풀기 정책도 중단했다. 보통 마이너스 금리란 시중은행들로 하여금 중앙은행에 맡기는 자금에 오히려 비용을 물림으로써, 시중은행들이 가계나 기업에 돈을 싼 금리에 더 빌려 주도록 유도하는 부양책이다. 따라서 이번 결정은 예상보다 큰 정책변화로,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일본 경제가 드디어 ‘잃어버린 30년’으로 통칭되는 장기 침체에서 탈피하여 성장 궤도에 복귀하는 신호라고 보고 있다. 물론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이 “디플레이션 탈피에 이르지 못했다”는 입장을 유지했고 일본은행도 추가적인 급격한 금리 인상은 없다고 밝혔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디플레이션은 끝났다’로 모아진다.

일본은행 측은 이번 금리 인상의 배경에 대해 “물가 상승과 임금 상승의 선순환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오랫동안 꿈쩍도 하지 않던 일본의 물가는 코로나19 부양책으로 돈이 풀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덩달아 오르기 시작했다. 지난해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신선식품 제외)는 전년 대비 3.1% 올라 1982년 이후 41년 만에 가장 큰 폭의 상승률을 기록했고, 올 1월에도 2.0% 상승했다. 올 한 해 일본의 물가상승률은 일본은행의 목표치인 2%를 웃돌 것으로 보인다. 임금인상률도 5%를 넘어설 것이 확실시된다. 일본 최대 노동조합 조직인 렌고(連合·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가 올해 첫 임금협상 결과, 5.28%의 임금 인상을 발표하면서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전망에 부쩍 힘이 실렸다. 임금인상률이 3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자 시장에서는 당초 예상했던 4월이 아닌 3월 금리 인상설이 확산되었다. 때마침 일본의 대표적 주가 지수인 닛케이225가 벽두부터 상승세를 보이더니, 3월 4일에는 4만 선을 돌파했다.

일본 관료, 기업들 “이제 기회가 왔다”

그래서 일본의 관료나 기업인 사이에는 “이제는 기회가 왔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고 한다. 특히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반도체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가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TSMC는 파운드리에서 헛발질을 계속 해 온 삼성전자를 멀리 따돌리고 세계 1위를 확고하게 지키는 곳.

로이터통신은 지난 3월 18일 “TSMC가 일본에서 첨단 반도체 패키징(조립 포장) 설비를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TSMC가 대만이 아닌 해외에 첨단 패키징 라인을 설치하기는 처음이다. 구체적으로 TSMC는 대만에만 있는 ‘칩 온 웨이퍼 온 서브스트레이트(CoWoS)’ 첨단 생산 라인을 일본에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CoWoS는 칩을 서로 쌓아 처리 능력을 높이는 동시에 공간을 절약하고 전력 소비를 줄이는 고정밀 기술로, 이미 애플과 엔비디아를 모두 사로잡은 바 있다. 이런 기술이 일본으로 들어온다면, 일본 정부는 지원금을 아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반도체의 큰 약점인 칩 제조 인프라를 든든하게 구축할 수 있어서다.

이미 TSMC는 일본 구마모토현(縣)의 양배추 밭에 있는 축구장 40개 크기의 부지에다 생산기지를 속속 구축하고 있다. 지난 2월 24일 일본 구마모토에선 TSMC가 86억달러를 투자해 신설한 반도체 공장 개소식이 열렸다. 이 공장은 TSMC의 자회사 JASM이 운영을 맡으며, 예정대로 올해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일본 정부는 TSMC에 30억달러 이상의 보조금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공장 건설을 위해 수천 명의 노동자를 구하는 데도 도움을 줬다. 모리스 창 TSMC 창업자는 이 자리에서 “TSMC 일본공장은 일본 반도체 산업의 르네상스를 시작하는 지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대만은 우리나라보다 15년 앞선 1895년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와는 정서가 좀 다르다. 당시 일본은 자기도 서구 열강에 못지않게 식민지 경영을 잘할 수 있다는 모범 사례를 만들기 위해 처음부터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초창기 대만에 온 일본인 중에 기업가와 투자자가 많았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들은 낙후된 대만 경제의 활성화를 통해 고용 창출과 생활 향상에 기여했다고 한다. 그런 인연이 있기에 대만과 일본의 화학적 연대는 꽤 끈끈하다고 볼 수 있다.

크리스 밀러 미(美) 터프츠대 교수는 “현재 일본 기업이 첨단 반도체 완성품을 생산하지는 못하더라도, 일본 기업의 반도체 장비나 소재가 없으면 첨단 반도체를 아예 만들 수 없으므로 일본은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서 계속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일본 정부는 반도체 투자가 경제 부흥의 촉매가 될 것으로 보고 TSMC 제1 공장과 착공 예정인 제2 공장에 모두 1조2000억엔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외국 업체의 신규 투자를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2022년 8월 일본 정부 주도로 도요타·소니·키옥시아·NEC·소프트뱅크·NTT 등이 손을 잡고 설립한 라피더스(라틴어로 빠르다는 뜻)는 IBM을 비롯한 미국 측의 협력을 받으면서 2027년 목표로 최첨단인 2나노미터(㎚·10억분의1m) 공정의 반도체 양산을 추진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2나노미터 공정이 가능할지 의문을 제기하는 관측이 많지만, 삼성전자가 요즘같이 부진할 경우 일본이 빠른 시간에 따라 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다. 일본 정부는 2021년 ‘반도체·디지털 산업전략’을 수립하고 약 4조엔의 예산을 확보하는 등 반도체 부활에 돈을 퍼붓고 있다.

그러면 한때 세계 1위를 구가하던 일본 반도체와 경제는 어쩌다가 이렇게 궁색한 처지가 되었을까. 일본은 1960년대 후반부터 서독을 누르고 세계 2위권 경제대국에 진입했었다. 도쿄 아키하바라는 불야성을 이루었고, 일본 업체 조지루시가 만든 코끼리밥솥은 한국 관광객들의 필수 구매 대상이 되었다. ‘메이드 인 재팬(Made in Japan)’은 든든한 보증수표이자 선망의 대상이었다.

美와의 갈등으로 ‘메이드 인 재팬’ 몰락 

하지만 1980년대 중반부터 미국과 반도체 갈등을 겪으면서 몰락이 시작되었다. 미국은 1970년대 두 번의 오일쇼크를 겪으며 반도체 기업들이 움츠러들었다. 일본은 이를 기회라고 판단, 대규모 투자를 감행했다. 칩을 만들 때 수율(收率)을 올리고 가격을 낮추었다. 순식간에 D램 시장을 장악했다. NEC·도시바·히타치·후지쓰·미쓰비시·마쓰시타 등 6인방이 1988년 세계 10대 반도체 기업을 휩쓸 정도였다. 1980년만 해도 미국 기업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60%가 넘고 일본은 30%였지만, 1987년 일본은 80%를 돌파했고 미국은 10%까지 추락했다.

반도체 과잉 공급으로 가격이 떨어지자 미국 기업들은 벼랑에 몰렸다. 인텔은 1985년 D램 사업을 포기했고, TI는 대규모 해고를 진행했으며, 모토로라 등도 생산라인을 중단하거나 축소했다. 미국 업체들은 정부를 향해 살려 달라고 호소했다. 당시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행동에 나섰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는 1985년 6월 미국 통상법 301조를 걸고 나왔다. 미국 상무부는 일본에 대한 덤핑 조사에 나섰고, 미국 업체 마이크론은 NEC·히타치·미쓰비시 등 7개 일본 기업을 상대로 반(反)덤핑 소송을 냈다. 미국 정부는 일본 반도체 제품에 대해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칼을 빼든 미국은 계속하여 정부 차원의 저가 공세 금지, 일본 메모리 반도체 내수시장 20% 이상을 외국기업이 점유하도록 할 것, 외국 반도체 기업의 대(對)일본 직접투자 허용 등의 조항을 담은 미·일(美日)반도체협정을 1986년 체결했다. 일본엔 불리한 조항이었지만, 압박을 견디지 못해 협정에 서명했다. 그때부터 일본 반도체는 서서히 하향곡선을 그렸다. 미국은 이를 기회로 삼아 1996년까지 2차와 3차 협정을 추가 체결했다. 드디어 1993년 무렵 재역전에 성공했다.

미·일 반도체협정과 함께 일본 경제에 직격탄을 가한 것은 또 있다. 1985년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일본 등 G5 재무장관은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환율 조정에 합의했다. 달러 강세를 멈추기 위해 일본 엔화 가격을 조정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른바 플라자합의를 통해 달러는 약세로 돌아섰다. 달러당 240엔이던 엔·달러 환율은 1987년 120엔까지 수직 하락했다. 엔화 강세로 일본산 반도체의 수출경쟁력은 크게 하락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미국 제품에 밀리기 시작했고, 반사이익을 누린 한국과 대만은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일본 구마모토현 TSMC 공장. photo 뉴시스
일본 구마모토현 TSMC 공장. photo 뉴시스

플라자합의 7년 뒤 삼성전자 D램 1위

실제로 플라자합의 7년 뒤인 1992년 삼성전자는 D램 분야 세계 1위에 올라섰고, 인텔은 일본 NEC로부터 전체 반도체 세계 1위를 빼앗았다. NEC는 1995년 2위, 2000년 3위, 2006년 10위로 밀려난 뒤 상위 10위권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일본이 빼앗긴 반도체 시장점유율 45% 중에서 30% 정도는 한국·대만·중국으로, 나머지 15%는 미국으로 이동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일본 경제는 우리가 배워야 할 모델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를 지나면서 부동산과 증시의 버블(거품) 붕괴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일본 경제는 초라해졌다. 특히 일본 근로자의 임금은 오르지 않고 물가나 외식비도 큰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저렴한 중국산 공산품이 들어오면서 물가 하락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른바 디플레이션 국가가 되었고, 이런 현상이 지난 30년간 지속되었다. 일본에서는 일왕(日王)의 연호를 기준으로 1989년부터 2019년까지를 ‘헤이세이(平成) 30년’ 또는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부른다.

한동안 세계 2위를 자랑하던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2010년 중국에 밀려났고 지난해에는 독일에도 뒤지면서 세계 4위로 떨어졌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일본인들의 1인당 명목GDP는 2024년 기준 3만4555달러로 우리나라(3만4653달러)에 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할 젊은이들에게 디플레이션은 의욕을 꺾어버리는 독물 역할을 했다. 경제는 물론이고 사회도 활력이 떨어졌다. 혼자 골방에 처박혀 있는 젊은이, 열정과 에너지가 필요한 연애도 기피하는 청년 등의 뉴스가 자주 나올 정도였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 photo 뉴시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 photo 뉴시스

아베노믹스와 기시다의 임금 인상 정책

그래서 수년 전부터 일본 정부는 디플레이션과의 전쟁을 벌여 왔다. 특히 아베 전 총리는 ‘아베노믹스’란 이름으로 2012년 대대적인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중앙은행이 통화를 시중에 직접 공급해 경기를 부양하는 통화정책) 정책을 펼쳤다. 아베의 뒤를 이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임금 인상을 통해 수요를 자극하는 전략으로 바꾸었다. 복지 확대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정책도 함께 내놓았다. 그런 정책은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지난 2년 가까이 2%대의 물가상승률을 유지하면서 임금도 꾸준히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이번에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해제하고 사실상 디플레이션 탈출을 선언하게 된 배경이다.

이 같은 일본의 움직임과 우리나라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코로나19 이후 일본에는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면서 ‘오버 투어리즘(과잉 관광)’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졌고, 일본 호텔 숙박비도 큰 폭으로 뛰었다. 올 2월 일본을 찾은 외국인 279만명 가운데 한국인이 82만명이나 되었다. 하지만 금리 인상 추세가 계속되고 엔화 강세가 되면 여행객 숫자는 많이 줄어들 전망이다.

그동안 일본의 임금이 크게 오르지 않는 사이 한국은 가파르게 오르면서, 국가 간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10인 이상 기업에 종사하는 상용근로자 월 임금총액을 분석한 결과, 2002년 우리나라는 179만8000원으로 일본(385만4000원)의 절반에 못 미쳤다. 하지만 20년 뒤인 2022년에는 399만8000원으로 일본(379만1000원)을 추월했다. 한국 대기업 임금은 2002년 228만4000원에서 2022년 588만4000원으로 올랐다. 이 기간 임금 인상률이 157.6%에 달했다. 같은 기간 일본 대기업의 임금은 483만6000원에서 443만4000원으로 오히려 6.8% 감소했다. 디플레이션 속에 잠재적 능력을 숨기고 있던 일본에 비해 한국은 외형적 성장은 빨랐다. 문제는 자칫 일본이 걸어갔던 길을 다시 밟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실제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011년 이후 계속 떨어지면서, 작년에는 1.4%로 25년 만에 일본(1.9%)에 뒤졌다. 게다가 일본처럼 저출산과 고령화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그대로 답습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망할 것 같던 소니TV도 화려하게 부활

한국 기업들은 한동안 일본 기업들을 투명인간 취급했지만, 이제는 긴장할 때가 되었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소니를 따돌렸고, 현대차는 도요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반면 일본 경제는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가격 폭락이 수반된 장기침체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일본 경제는 본받아서는 안 될 반면교사(反面敎師)의 사례로 전락했다. 하지만 이제 반도체 분야에서 정부와 재계가 손을 잡고 뛰는 일본이 소재·부품·장비의 압도적 경쟁력을 바탕으로 강력하게 부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영균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의 설명처럼, 과거 소니는 자신의 핵심역량만을 추구하다 보니 새로운 트렌드에 대응하지 못하는 핵심경직성(Core Rigidity)에 빠졌고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장으로 빠르게 전환하는 데 실패했다. 그렇게 망한 것 같았던 소니의 TV도 최근 프리미엄 제품 시장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일본의 파워가 다시 꿈틀거리는 느낌이다.

한국기업 전문가인 야나기마치 이사오 게이오대학 종합정책학부 교수는 “일본인들의 조심스러운 성향상 과거 버블경제의 문제점을 기억하고 있기에 소비가 금방 늘어나지는 않고 경제 부활을 금방 선언하기도 힘들 것”이라며 “반도체의 경우 한국과도 다시 협력을 검토할 수 있는데 ‘제조는 한국, 소재·부품·장비는 일본’처럼 상호 보완이 가능한 부분의 시너지 효과가 클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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