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억 마이바흐 굴리는 신흥교회
6억 등 3대 굴리는 장학재단
5억 페라리 굴리는 금융투자회사
5억 벤틀리도 3곳
페라리 458 이탈리아
페라리 458 이탈리아

시골길 한적한 곳에서 벤츠 S클래스, BMW 7시리즈, 아우디 A8 같은 고가 수입차를 만나게 된다면, 그 차의 명의가 영농조합법인이나 농업회사법인일 가능성이 크다. 원래 농업인의 생산성과 소득 증대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영농조합법인과 농업회사법인의 명의로 등록된 1억원 이상 고가 수입차가 전국에 132대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중에는 2억원이 넘는 ‘벤츠 S63 AMG’나 ‘벤츠 S600L’ ‘BMW 760Li’는 물론 고가 SUV인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4.4D’ ‘포르쉐 카이엔 터보S’, 고가 스포츠카인 ‘포르쉐 911 터보 S 카브리올레’ 등도 있다.

주간조선이 입수한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의 ‘1억원 이상 수입 자동차’는 올 상반기 기준 11만903대로, 이 중 영농조합법인·농업회사법인 등 소규모 자영업자와 법인이 고가 수입차를 소유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11만903대 중 법인과 개인사업자 명의로 등록된 차는 7만393대(63.5%). 이 중 업무용이 분명한 버스와 트럭을 제외하고 승용차, 승합차, 스포츠카가 5만6041대다. 전체 1억원 이상 수입차 중 50.5%, 거의 절반인 셈이다. 또 1만9700곳의 법인·사업자가 1대 이상의 1억원 이상 고가 수입차를 보유하고 있었다.(리스나 렌트 차량 제외) 2대 이상 보유한 법인·사업자도 7700여곳에 달했다.

고가 수입차 소유주 중 법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공개된 적은 있지만 누가 어떤 차를 가지고 있는지 상세하게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제는 법인 소유인 5만6000여대의 수입 승용차·승합차·스포츠카가 원래의 목적대로 ‘업무용’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탈세·절세의 목적으로 운용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는 점이다. ‘벤츠 S500’을 보유하고 있는 P 영농조합법인(충북 괴산 소재)은 주간조선이 차량 용도를 묻자 처음에 “우리 회사에는 벤츠가 없다”고 부인하다가 “영업하는 데 타고 다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발뺌했다. 회사 명의의 차량이 벤츠 S500이라며 추궁하자 “사장이 타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누가 봐도 개인 용도로 쓰일 만한 스포츠카를 법인 명의로 등록한 농업회사법인도 있다. 곡류를 취급하는 J 농업회사법인(전남 진도 소재)은 ‘포르쉐 911 터보 S 카브리올레’를 가지고 있는데,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용도를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펜션을 운영하는 충남 태안 소재 J 영농조합법인은 고급 SUV인 ‘포르쉐 카이엔 터보 S’를 소유하고 있다. 농어촌관광진흥법에 따라 숙박업도 영농조합법인을 세울 수 있다. J법인 관계자는 “대표가 운행하는 차량인지에 대해서는 답변해 드릴 수가 없다”며 차량의 용도가 개인적인 것임을 간접적으로 밝혔다.

원래 영농조합법인은 생산성과 소득을 높이기 위해 농업인(농업 목적으로 구입하거나 임대한 농지에서 1년 이상 농사를 지은 사람) 5명 이상이 모여 만드는 생산자 단체다. 1인 1의결권을 가져 농업인의 협동 생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법인이다. 반면 농업회사법인은 농업인 1명만 있어도 설립이 가능하고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돼 소득 증대 목적이 강화된 법인이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청해진해운 실소유주로 알려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영농조합법인 제도를 이용, 재산을 관리·축적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바 있다. 당시 유병언과 유씨 일가는 7개의 영농조합법인을 이용해 2000만㎡(약 60만평)의 부동산을 보유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두 법인은 본래는 농업인의 소득 증대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 농업 소득에 대한 법인세는 물론 농지로 이용할 토지에 대한 부동산 취득세, 등록세 등이 면제되고 재산세와 부가가치세가 감면된다.

지난해 경북에 설립한 영농조합법인 대표 박모씨는 “법인 설립 전에 컨설팅도 받고 조언도 받는데, 그때 성공한 조합 대표들이 타고 다니는 것이 고가 수입차, 대형 세단이었다”고 말했다. “농업회사법인과 영농조합법인이 수입차를 가지고 있을 이유가 있나요. 세금도 줄일 겸, 가족들도 탈 겸, 좁은 농촌 사회에서 과시도 할 겸 법인 명의로 타고 다니는 거죠.”

이런 경향은 농촌과 도시를 가릴 것 없이 드러난다. 조금만 성공했다 하면 고가 수입차를 마련해 사장은 물론 사장 가족까지 타고 다니는 게 마치 ‘기업문화’처럼 퍼져 있다. 1억원 이상 고가 수입차를 가지고 있는 법인 숫자만 2만곳에 가까우니 웬만큼 이름을 들어본 기업은 물론 이름도 생소한 기업까지 모두 성공한 기업인 행세를 하며 고가 수입차를 타고 다니는 셈이다.

사실 기업인 입장에서도 사장 ‘체면’에 맞게 타고 다닐 차라면 고가 수입차를 고르는 것이 이득이다. 현행 소득세법과 법인세법상 업무용 차량을 구입할 때는 구입비, 취·등록세, 자동차세, 보험료, 유류비, 수리비까지 전액 무제한 경비 처리가 가능하다. 자연히 인정되는 소득도 줄고 세금을 줄일 수 있다. 1억원인 ‘렉서스 LS430’을 법인 명의로 타고 다닌다고 가정해보자. 5년간 구입비 1억원에 자동차세 약 488만원, 보험료 약 700만원, 고가 수입차 평균 수리비 약 270만원에 1000만원은 훌쩍 넘을 기름값까지 합하면 약 1억5000만원 비용이 절감되는 셈이다.

더군다나 리스를 한다면 구입비 없이도 세금을 줄이면서 고가 수입차를 몰 수 있다. 서울 강남에 있는 벤츠 전시장에서 일하는 이모씨는 “최근 들어 개인 리스 차량이 늘어나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압도적으로 법인 명의의 리스 차량이 많다”고 말했다. “제 돈 들여 애매한 가격의 국산차를 탈 바에는 법인 명의로 수입차 타는 것이 이득이죠. 허술한 제도와 수입차가 가지는 상징성이 겹쳐 만들어진 게 지금의 ‘수입차 천국’입니다.” 이씨는 “수입차 영업사원들은 아예 대놓고 법인 명의로 구입하라고 권유한다”고도 말했다. “도로에 벤츠가 하나둘씩 나타나는 걸 보고 ‘아, 나도 법인 명의로 벤츠 타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 같아요. 이제는 아주 작은 중소기업 사장도 벤츠 타겠다고 오는 걸요. 마치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 같아요.”

(좌) 벤틀리 컨티넨탈 GT 스피드. (우) 포르쉐 911 터보 쿠페.
(좌) 벤틀리 컨티넨탈 GT 스피드. (우) 포르쉐 911 터보 쿠페.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흔히 회사 사장쯤 되면 회사 명의로 좋은 차 타고 다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암암리에 불공정함에 동의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열심히 돈을 모아 벤츠 S클래스 수입차를 산 사람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작은 회사 사장이 별 어려움 없이 세금도 절약하며, 기름값도 안 내고 수입차를 몰고 다닌다면 ‘불공정하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겠지요.” 제 값을 내고 차를 사는 것이 아니라 편법으로 고가 수입차를 몰고 다녀도 아무 문제없는 게 현실이다. 유독 영농조합법인이나 농업회사법인에서 수입차를 많이 구입한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다.

스포츠카는 업무용으로 사용할 수 없겠지만 스포츠카를 법인 명의로 구입한 사례는 매우 많다. 사원 수 10명이 채 안 되고 연 매출액이 30억원에 불과한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N 인테리어 회사는 1억6000만원짜리 스포츠카 ‘포르쉐 911 카레라 S’를 회사 명의로 소유하고 있다. 사원 수가 5명이 안 되는 것으로 알려진 서울 마포구 도화동의 S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는 1억9000만원짜리 스포츠카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를 회사 명의로 구입했다. 연 매출액이 25억원인 서울 중구 필동의 P 광고회사도 2억7000만원짜리 ‘포르쉐 911 터보 S’를 가지고 있다.

4억4200만원짜리 ‘페라리 599 GTB 피오라노’는 경남 김해의 D 자동차 부품 회사 명의다. 3억5000만원짜리 ‘페라리 캘리포니아’는 치킨 브랜드로 알려진 경기도 고양시의 C 요식 업체가 가지고 있다. 차값이 2억9000만원인 스포츠카 ‘람보르기니 가야드로 LP560-4’는 광주의 S 토목 엔지니어링 회사 명의이고, 동시에 100여개의 카페를 오픈하며 설립된 T 프랜차이즈 회사 역시 ‘람보르기니 가야드로 LP560-4 스파이더’를 가지고 있다. 페라리나 람보르기니는 최고가의 스포츠카 브랜드로 두 명밖에 탑승할 수 없는 차들이다. 일반 도로주행용으로는 잘 이용되지 않는다.

법인 명의의 차량 중 최고가에 속하는 것은 8억원 안팎으로 거래되는 ‘벤츠 마이바흐 62’다. 벤츠 마이바흐 62는 국내에 총 578대가 있다. 이 중 한 대는 배우 배용준이 차린 기획사 키이스트 명의로 돼 있는데, 세간에는 배용준 본인이 마이바흐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D 금융투자회사는 5억원에 가까운 초고가 스포츠카 ‘엔초 페라리’를 소유하고 있고, 벤틀리의 5억원짜리 대형 세단 ‘뮬산’도 A 가구회사, S 주류회사, H 건설사 등의 명의로 돼 있다.

아주 소규모의 회사라도 업무용 차는 있다. 고급 SUV로 유명한 1억~1억5000만원짜리 ‘포르쉐 카이엔’은 연 매출액 5억원인 G 자동차 부품 회사, 정규직 사원 수가 2명인 K 금속 도매 회사에서도 가지고 있다. 전자 대리점 명의의 1억1000만원짜리 ‘벤츠 S350 BlueTec’도 있다.

종교단체나 재단법인들도 고가 외제차 소유 대열에서 빠지지 않았다. 불교재단인 경기도 양평의 S 재단은 1억2000만원짜리 ‘벤츠 S350 CGI L’을 보유하고 있다. 경기도 가평에 본부가 있는 기독교계 E 신흥종교는 7억6800만원 ‘마이바흐 62’와 2억3500만원 ‘롤스로이스 고스트’를 갖고 있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R 장학회는 6억9000만원짜리 ‘마이바흐 62S’와 2억1000만원짜리 ‘벤츠 S600’, 1억6000만원짜리 ‘벤츠 SL55 AMG’를 갖고 있었다.

자동차시장에서 고가 수입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그 대부분이 법인 명의의 차라는 것이 알려지며 이를 규제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생겨났다. 지난 8월 6일 정부가 발표한 ‘2015 세법 개정안’에서는 업무용 차량의 비용 처리 문제에 대한 방안이 담겼다. 정부는 임직원 전용 자동차 보험에 가입하면 구입·유지비 등의 50%까지 비용으로 인정해줄 것이라고 밝혔다. 나머지 50%도 인정받으려면 운행 일지를 작성하면 된다. 혹은 업무용 차량에 회사 로고를 부착하면 100% 비용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은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권순조 국회입법조사처 행정사무관은 “회사 로고를 부착하더라도 운행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고 임직원 전용 보험 역시 가입하고 사적으로 타면 된다”며 이번 세법 개정안에 허점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도리어 이번 개정안으로 영세 자영업자에게 부담이 가중된다는 지적도 있다. 부부 두 명이서 수도권 지역 출장 청소업체를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진짜 업무용으로 쓰이는 차는 아예 고려하지도 않고 만든 개정안인 것 같다”고 비판했다. “비용을 인정받으려면 전용 보험에 가입하라는데, 그 부담이 얼마나 커질지는 알 수 없어서 불안합니다. 운행일지도 물리적인 부담은 아니지만, 무척 부담됩니다.” 만약 이들이 운행일지를 쓰지 못해 50%만 비용을 인정받는다면 세금을 얼마나 내야 할까. 1600만원짜리 트럭 ‘포터’를 구입했다고 하면 5년간 726만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반면 약 2억원인 대형 세단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 GTS’를 가진 삼성전자의 경우 5년간 6700만원의 세금을 내지 않을 수 있다.

‘회사 사장이라면 회사 차’라는 인식은 외국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다. 업무용 차량의 경비 인정 기준이 엄격하기 때문이다. 캐나다에서는 3만캐나다달러(약 2682만원), 일본은 300만엔(약 2963만원)까지만 비용으로 인정한다. 영국은 친환경차를 제외하면 비용을 85%까지만 인정한다. 미국은 업무용으로 운행할 수 있는 운행거리를 정해두고, 종업원이 아닌 사장은 업무용 차량을 쓰지 못하며, 출퇴근은 업무 범위에 포함시키지 않는 등 엄격한 기준을 두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이들 국가와 마찬가지로 기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속속 나오고 있다. 벌써 국회에 제출된 법안만 해도 5개다. 김종훈 새누리당 의원(서울 강남을)이 구입비 3000만원, 연 유지비 600만원까지만 비용으로 인정하자는 개정안을 내놓았고 같은 당 함진규 의원(경기 시흥갑) 역시 구입비 4000만원까지만 인정하자는 개정안을 제출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자료에 따르면 개인사업자와 법인이 지난해 비용으로 지원받은 금액은 6300억원에 이른다. 고가 수입차 문제가 형평성의 문제를 넘어 세수 부족의 한 원인이 된다는 얘기다. 자료에 따라 다르지만, 수입차의 사적 사용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최소 5500억원에서 최대 1조5000억원까지 세수가 확보될 것으로 전망된다. 경실련은 “업무용 차량에 대한 공평하고 합리적인 과세가 조세 정의는 물론 세수 부족도 해결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면서 “세법 개정안에 대한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바로잡습니다

본지는 2015년 9월 7일 커버스토리에서 ‘단독: 1억 이상 수입차 굴리는 법인·사업자 1만9700곳’이라는 제목으로 1억원 이상의 수입차를 굴리고 있는 법인이나 사업자에 대해 다루면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영농조합법인 제도를 이용, 재산을 관리·축적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라는 내용을 보도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고 유병언 회장이 영농조합법인 제도를 이용하여 재산을 관리하거나 축적한 사실이 없으며, 7개의 해당 영농조합법인의 부동산은 유 전 회장 일가의 재산이 아니기에 이를 바로잡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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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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