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노벨상을 수상한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행동경제학자인 다니엘 카너먼 프린스턴대 교수가 미국인들을 상대로 실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미국인 600명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며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특정 지역에 질병이 몰아닥쳤다. 프로그램 A를 실시하면 당신들 중 200명을 살릴 수 있다. 반면 B를 택하면 살아날 확률은 3분의 1이며, 사망할 확률은 3분의 2다.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A나 B나 똑같습니다. 600명 중 200명을 살리는 것이나, 600명 중 3분의 2가 사망한다는 것이나 같은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질문을 받은 미국인들 중 무려 78%가 A라는 선택지를 택했다고 합니다. 이런 결과를 두고 카너먼 교수는 인간의 손실 혐오 경향을 설명합니다. 똑같은 의미를 담고 있더라도 ‘죽는다’ ‘잃는다’는 부정적인 말 보다는 ‘산다’ ‘얻는다’와 같은 긍정적인 말로 표현된 쪽을 택한다는 겁니다. 이 실험은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선택지도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실험 결과에서 보듯 인간의 뇌는 어쩌면 낙관론이 우세하도록 진화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신경과학자인 탈리 샤롯이 쓴 ‘설계된 망각’이라는 책에도 낙관론으로 세팅돼 있는 우리의 뇌에 대한 다양한 설명들이 나옵니다. 예컨대 이런 것들입니다. ‘뇌는 꼼수를 써서 긍정적 착각을 부추긴다.’ ‘낙관 편향은 우리를 행복하게 지켜주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성향이다.… 장밋빛 안경을 벗고 사물을 더 분명히 보면 사람들은 우울해진다.’ ‘낙관적인 사람이란 그동안 온갖 실망스러운 경험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밋빛 안경을 통해 미래를 보는 사람이다.’

우리의 뇌가 낙관 편향으로 진화돼왔으면 사실 우리가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또 스트레스를 덜 받기 위해서, 행복해지기 위해서 일부러 모든 것을 장밋빛 안경을 쓰고 바라볼 필요도 있습니다. 하지만 ‘낙관 편향’이 낳을 수 있는 비극에 대해서도 ‘설계된 망각’은 경고합니다. ‘경제학자들은 낙관 편향이 2008년 금융 붕괴의 근본적 원인이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낙관 편향이 사적인 구역, 즉 집값과 월급은 올라갈 테지만 이자율은 일정하게 유지될 거라고 믿은 개인들의 시야뿐만 아니라 정부 공무원, 신용평가기구, 금융분석가들의 시야마저 흐리고 있었으므로 다들 계속해서 터무니없이 높은 이익을 예상했던 것이다.’

이쯤 되면 낙관 편향은 우리의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서는 경계해야 할 대상임이 분명합니다. 특히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마냥 낙관론에 빠져드는 것은 공동체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제가 뇌과학까지 들먹이면서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충분히 짐작하실 걸로 여겨집니다. 최근 우리 경제를 낙관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들이 연일 관심을 끌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듯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야당 지도자가 ‘달나라’ 운운했지만 대통령은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입니다. 하지만 근거가 뚜렷해 보이지 않는 대통령의 낙관론으로 인해 오히려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의 현실 오독(誤讀)은 이유가 뭘까요. 이번주 하주희 기자가 쓴 글을 보면 약간의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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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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