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2일 노동당 제8차 당대회 폐막식에 참석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photo 뉴시스
지난 1월 12일 노동당 제8차 당대회 폐막식에 참석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photo 뉴시스

북한에서 지난 1월 5일부터 12일까지 8일간 조선노동당 제8차 당대회가 진행되었다. 2016년 제7차 당대회 후 5년 만이다. 북한에서 당대회가 중요한 이유는 ‘당’이 정권기관보다 우위에 있는 사회주의 체제의 특징 때문이다. 모든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맑스레닌주의의 당이론에 입각하여 ‘당’을 사회주의혁명의 사령탑인 ‘혁명의 참모부’로 규정한다.

이번 대회 첫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개회사를 통해 지난 5년을 “일찍이 있어본 적이 없는 최악 중의 최악으로 계속된 난국”이었다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경제발전 5개년 전략 목표가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되었다고 인정하였다. 이러한 정세인식은 유엔 등 국제사회의 지속적 대북제재, 코로나19 사태, 홍수·태풍을 비롯한 자연재해 등에 기반한다. 그러나 이러한 난관과 장애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은 “거대한 승리를 거두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김씨집단(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전형이다.

이번 대회는 코로나19 방역문제 등으로 축소 개최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대회 참가자가 7000명(중앙지도기관 성원 250명, 대표자 4750명, 방청객 2000명)으로 제6차 당대회 참가자 5054명보다 늘어났다. 또한 대회기간도 8일로 제7차 당대회 4일보다도 늘어났다. 김정은이 위기관리 역량을 과시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당대회에서는 사업총화와 토론도 3일간에 걸쳐 진행됐다. 당 사업총화란 제7차 당대회 이후부터 현재까지 지난 5년간의 당 사업을 점검, 평가하는 것이다. 김정은이 무려 9시간이나 사업총화 보고를 하였다. 김정은은 사업총화 보고 제1장(이룩된 성과)에서 “엄혹한 대내외 정세 속에서 정치사상적으로는 우리국가 제일주의와 인민대중 제일주의, 경제적으로는 자력갱생, 군사적으로는 핵무력과 국방력 강화로 극복해 비약적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각 부문별 사업성과를 내세웠으나 우리가 주목할 점은 상당 분량을 할애하여 핵무력 강화 성과를 선전하고 있는 부분이다. 핵기술의 고도화, 소량경량화, 규격화, 전술무기화를 달성했으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수중발사탄도미사일(SLBM), 초대형 수소탄 개발, 전지구권 타격 로케트, 초대형 방사포, 첨단 전술핵무기 등을 완성했다고 자랑했다. 또한 다탄 유도기술, 극초음속 활공비행전투부, 중형 핵잠수함과 무인타격장비, 군사정찰위성체계 등을 설계 완료했고 개발 단계라고 선전하였다. 이를 통해 북한 비핵화는 이미 물건너갔음이 확인되고 있다.

제2장(사회주의 건설의 전진)에서는 향후 경제발전 5개년 전략 전망계획과 각종 부문별 사업과업을 제시하였다. 여기서 내세운 핵심 주제는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인데, 이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강화, 지속되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제3장(조국의 자주적 통일과 대외관계)에서는 북한의 대남사업과 대외사업을 언급하고 있다. 김정은은 현 남북관계가 판문점선언 발표 이전 시기로 되돌아갔다고 평가하며, 문재인 정권이 군사적 적대행위와 반공화국 모략소동을 자행하여 남북관계 개선 전망은 불투명하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관계개선의 조건으로 ‘적대행위 중지와 북남선언의 성실 이행’을 적반하장(賊反荷杖) 격으로 내걸었다. 공개된 당 사업총화 요약본에는 구체적인 대남투쟁 지침이 제시되고 있지 않으나 전체본에는 수록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강 대 강, 선 대 선’의 전략 강조

대외관계에서는 미국과의 정상회담, 북·중회담과 북·러회담 등을 내세우며 북한의 대외적 지위가 비약적으로 상승했음을 강조했다. 대외 적대세력에 대해서는 ‘강(强) 대 강(强), 선(善) 대 선(善)’의 전략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미국을 혁명발전의 최대 장애물이라 규정하고 최대의 주적임을 명문화했다. 미국에서 누가 집권하든지 대(對)조선정책의 본심은 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결국 바이든 행정부 출범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대미전략에는 변함이 없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제4장(당 사업의 강화발전)에서는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 수립을 강조하며 당 중앙의 권위를 절대화하고 백방으로 옹위할 것을 독려하고 있다.

당 규약에서 당의 최고강령과 사회주의 기본정치방식이 김일성주의(주체사상)와 김정일주의(선군사상)임을 재확인하고, 기본정치방식으로 인민대중 제일주의 정치를 추가하였다. 당 위원장의 직제를 ‘총비서’로 바꾸고 각급 당위원회 위원장, 부위원장 직제를 책임비서, 비서, 부비서로 하고 정무국을 비서국으로, 정무처를 비서처로 개정했다. 이는 2016년 제7차 당대회 이전 직제로 회귀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당 검열위원회를 없애고 그 기능을 당 중앙검사위원회에 이관하고 당 정치국의 권한을 강화했다. 당 규약 서문에 명시된 이른바 남조선혁명 과업인 민족해방 민주주의혁명과 전조선혁명(적화통일)을 규정한 부분에 대한 개정 언급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조선노동당의 최종 목적이 남조선 해방을 통한 공산주의사회(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 건설임을 재확인할 수 있다.

이번 당대회에서는 당 중앙지도기관에 대한 선거도 실시했다. 당 중앙위원으로 김정은 등 138명을 선출하고, 당 후보위원 110명을 선출하였다. 연이어 선거 형식을 빌려 김정은을 당 총비서에 추대하였다. 또한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1차 전원회의를 열고, 당 정치국 상무위원, 정치국 위원, 정치국 후보위원,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당 중앙검사위원회 위원을 선출하고 당 중앙위원회 부장과 노동신문 주필을 임명하였다.

예상대로 조용원 제1부부장 실세로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조용원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일약 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 비서에 선출된 대목이다. 이미 필자는 ‘김정은 수행 빈도 1위 조용원 부부장을 주목하라’는 본지 기고문(주간조선 2018년 7월 13일 자)을 통해 조용원이 직책은 낮지만 김정은의 핵심 측근으로 향후 역할이 제고될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당의 핵심 성원인 정치국 위원(상무위원 포함)은 19명이다.<표 참조> 이 중 군사칭호(군계급)를 가지고 있는 위원은 8명으로 군부의 위상을 엿볼 수 있다. 여기에는 당의 골간부서(조직지도·선전선동)와 통치무력(군) 및 체제유지 정보사찰부서(국가보위성·사회안전성), 대남부서(통일전선부) 등의 책임자들이 다 포함되어 있다.

정치국 후보위원은 11명이 선출되었는데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이 탈락된 점이 흥미롭다. 이번 대회에 김여정은 그간의 행보로 볼 때 직책 상승이 예상되었으나 도리어 정치국 후보위원 탈락과 함께 당 제1부부장에서 부부장으로 강등된 사실이 지난 1월 12일 김여정 명의의 대남 담화에서 확인되었다. 김여정의 힘은 백두혈통과 절대통치자 김정은의 친여동생이라는 후광이다. 수령유일 영도체제로 실세란 존재할 수 없는 북한에서 유일하게 의미 있는 인물이 바로 김여정이다. 따라서 비록 직책이 강등되었다 할지라도 김여정은 여전히 북한의 2위 서열이다. 김여정을 직책으로 대하고 무시할 간부는 단 한 명도 없다. 언제든지 김정은 명령에 따라 직책의 벼락 상승이 가능한 인물이다. 향후에도 김여정의 북한 내 영향력은 지속될 것으로 판단된다. 본지에서도 필자가 여러 번 언급했지만 향후 김여정이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나 대장 정도의 군사칭호를 갖게 된다면, 그때는 김정은 유고 시 비상 후계구도에서 1인자로 부각할 것이다.

당대회 마지막 날(1월 12일)에는 김정은이 당대회 관련 결론을 내리고 제8차 당대회 결정서를 채택하였다. 김정은은 결론에서 “사회주의 건설의 주체적 힘, 내적 동력을 비상히 증대시켜 모든 분야에서 위대한 새 승리를 이룩해 나가자는 것이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의 기본사상, 기본정신”이라고 강조하였다. 또한 ‘이민위천, 일심단결, 자력갱생’을 제8차 당대회의 구호로 설정하였다. 이어 김정은의 폐회사를 끝으로 당대회는 폐막되었다. 당대회 결정서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간략한 보도문을 통해 향후 5년의 사회주의 건설 목표를 담은 우리식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실천강령임을 밝히고 이를 완수하라고 독려했다.

이번 당대회의 의미와 시사점은 뭐라고 봐야 할까. 첫째, 김정은이 제8차 당대회를 소집하고 무려 8일에 걸쳐 진지하게 대회를 진행하는 모습을 연출한 배경에는 권력 공고화와 통치에 대한 자신감이 깔려 있다. 권력장악에 대한 자신감이 없으면 개회사와 당 사업총화 보고서 등에서 경제발전 5개년 전략이 거의 목표치에 미달했음을 자인하거나 식량난 등을 언급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만장일치로 추대하면 될 총비서를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 선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둘째, 북한이란 불법단체(대한민국 헌법상)가 ‘정상적인 국가’임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이번 대회서 당 사업총화와 토론을 3일에 걸쳐 진행한 것과 당 사업 결정문을 채택하기 전에 당대회 사상 처음으로 ‘부문별 협의회’를 진행하여 진지한 토론과 의견을 수렴하는 형식을 취한 것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는 공산당 조직운영 원리인 이른바 ‘민주집중제’(민주주의 중앙집권의 원칙)를 구현하고 있음을 연출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이 원칙은 당 규약 제11조와 북한 사회주의 헌법 제11조에도 명시된 원칙이다.

남북관계 개선 어려울 듯

북한은 당대회가 당의 최고기관이라고 선전하며 당 사업총화 결정서 채택과 총비서 등 당 중앙지도기관을 각급 당 대표들이 토의해 ‘선거’하여 결정한다고 되어 있지만 이는 형식적 절차일 뿐 이미 김정은이 짜놓은 각본에 따라 거수기 노릇을 하는 것임을 유념해야 한다. 북한이 규정된 절차와 과정을 이행하는 정상적 집단이라는 것을 보여주어 이른바 김정은 통치의 ‘절차적 정당성’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셋째, 통치 10년 차에 들어선 김정은이 향후 어떠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조선혁명전통과 선대(先代) 수령(김일성·김정일)의 유훈을 계승하여 조국통일(적화통일)과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을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북한의 대남전략에는 변함이 없음을 보여준다.

넷째, 북한의 비핵화는 불가함이 확인되었다. 당 사업총화 보고에서 문재인 정권이 업적으로 자랑하는 판문점선언(2018년 4월 27일)과 평양공동선언(2018년 9월 19일)의 핵심 과제인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북핵 폐기)에 대해 아무런 언급 없이 도리어 핵무력 강화를 강도 높게 선언하고 있는 데서도 확인된다.

다섯째, 향후에도 남북관계는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다. 김정은이 당 사업총화에 이를 명백히 언급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완전히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문 정권은 역대 한국 정부 중 가장 우호적으로 북한을 대했다. 북한 간첩공작부서의 숙원사업인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폐지하고 대북전단 금지를 법제화했다. 또 개성공단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서해표류 공무원 사살 등의 연이은 만행에도 제대로 항의나 경고도 못 하며 김정은을 ‘받들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적반하장 격의 대남 협박이었다. 그런데도 문 정권과 집권당에서는 ‘연내 김정은 답방과 정상회담’을 주장하고 있으니 전혀 상황 파악이 안 된 것 같다. 북한은 2021년에도 대남 적대정책에 기반을 두고 간헐적으로 전술적 차원의 ‘평화쇼 2.0’를 선보일 것이다.

북한은 1월 17일 개최될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4차 회의에서 헌법 개정을 통해 국무위원회 등 행정기관에 대한 조직과 인사 개편 등을 시도하며 김정은 통치 10년 차를 정비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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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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