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형마트 밀키트존. photo 뉴시스
서울의 한 대형마트 밀키트존. photo 뉴시스

“밀키트 이미 레드오션, 너무 많이 생겼어요.”

“이제 끝물, 줄줄이 폐업.”

“1년 좀 안 된 인근 4군데 임대 주루룩… 빠질 타이밍인 거 같아여.”

회원수 100만명이 넘는 자영업자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밀키트’ 창업 관련 글들이다. 순식간에 사라진 ‘대만 카스테라’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글도 있다. 코로나19 이후 거리두기 대표 수혜 업종으로 꼽힌 밀키트 시장은 최근 1년 사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거리두기 해제 이후 밀키트 시장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여전히 공격적으로 가맹점 수를 늘리고 있는 프랜차이즈들과 창업 시장의 온도 차는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밀키트는 밀(meal)과 키트(kit)의 합성어로 누구나 간편하고 쉽게 조리할 수 있도록 식재료와 양념으로 구성된 반조리 식품이다. 불고기, 부대찌개, 샤부샤부, 족발, 보쌈, 파스타 등 온갖 메뉴가 쏟아지고 있다. 1인 가구 증가에다 코로나19로 집밥 수요가 늘면서 프랜차이즈 전문점들도 우후죽순 생겼다. 온라인 창업 플랫폼 ‘마이프랜차이즈’(이하 마이프차·대표 김준용)에 따르면 현재 밀키트 프랜차이즈 브랜드는 100여개에 달한다. 2020년 등록된 브랜드는 6개에 불과했다. 가맹점 수의 증가 속도는 더 빠르다. 2020년 10개였던 밀키트 가맹점은 현재 1000개가 넘는다. 1년여 만에 100배가 늘어난 것이다.

밀키트 프랜차이즈 전문점은 왜 이렇게 빨리 늘어났을까? 프랜차이즈는 가맹점을 최대한 늘려 물류 등 각종 비용을 효율적으로 만듦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이뤄야 성공한다. 무조건 가맹점주를 많이 모집해 적재적소에 오픈해야 한다. 짧은 시간에 가맹점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진입장벽이 낮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창업 비용이 다른 업종에 비해 적게 든다. 마이프차에 따르면 밀키트 전문점의 평균 창업 비용은 5366만원(중위수 4810만원)이다. 밀키트와 함께 코로나 특수를 노린 스터디카페의 경우 평균 창업 비용이 1억6821만원에 달하고, 최소 100㎡(약 30평) 이상의 공간이 필요한 것과 비교하면 밀키트 전문점은 작은 공간에 소자본 창업이 가능하다. 또 무인점포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에 인건비가 들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대부분 브랜드들은 ‘인건비 걱정 없는 무인 점포’ ‘투잡 가능’ ‘소자본 창업’ 등을 내걸고 가맹점을 모집하고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문제가 숨어 있다. 진입장벽이 낮다는 것은 경쟁도 치열하다는 말이다. “새로 문을 여는 곳은 무인 밀키트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 달 새 길 하나를 두고 경쟁점이 2~3곳 신규 창업을 하는 곳도 있다.

또 ‘무인 점포’라고 해서 진짜 일손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니다. 완제품을 공급하는 브랜드도 있지만 대부분 신선 재료는 점주들이 사서 직접 해결해야 한다. 창업 카페에 한 밀키트 점주가 올린 글을 보면 현실을 알 수 있다.

“소스 하나 보내놓고 본사 업무는 없습니다. 죄다 아웃소싱 업체들 연결해주는 구조입니다. 야채는 직접 마트 가서 소비자가로 사서 포장해야 합니다. 밀키트 4~6가지 혼자 제대로 하려면 못 합니다. 매일 마트 가서 야채 사가지고 와서 씻고 자르고, 회전 안 된 야채들은 눅눅해져 폐기하고 이것만 해도 3~4시간이 걸려요. 야채 다듬고 나면 소분해야 하고 별짓을 다해야 합니다. 돈 많이 벌어 바쁜 게 아니고 설거지하고 야채 다듬는 데 하루 종일 걸립니다. 비효율이에요. 본사에 로열티 꼬박 내고 노예짓 하는 겁니다.”

“낮은 마진율, 신선도 관리, 식자재 컴플레인, 가혹한 노동력” 등을 열거하며 밀키트 창업을 말리는 해당 글에는 댓글이 수백 개가 달렸다. 그중에는 “밀키트가 많이 생겨 잘되는 줄 알았는데 현실을 알았다”는 댓글이 많았다.

밀키트 가맹점들의 더 큰 문제는 시장의 구조이다. 밀키트 시장이 커지면서 대기업들이 뛰어들었다. 가맹점들의 진짜 경쟁자는 길 건너 타 브랜드의 점포가 아니라 대기업이라는 말이다. 밀키트 전문업체 프레시지를 선두로 CJ제일제당(쿡킷), hy(잇츠온), 이마트(피코크), 동원F&B(맘스키트) 등 대기업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이미 시장은 대기업이 주도권을 잡았다.

유명 맛집, 유명 셰프를 앞세워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는 대기업 브랜드들을 중소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따라 잡기는 힘들다. 소비자들도 프레시지, 마켓컬리, 쿠팡 등에서 주문하면 새벽에 문 앞까지 가져다주는 세상에 굳이 발품을 팔아 밀키트 전문점에 갈 이유가 없다. 더구나 대형마트에 가면 온갖 브랜드의 밀키트들이 다른 식재료들을 밀어내고 진열대를 채우고 있다. 이마트는 지금 전국 점포들이 앞다퉈 밀키트존을 만들고 있다.

 

창업 한 달도 안 돼 폐점 잇따라

중소형 프랜차이즈는 물류 전쟁에서도 대기업들과 경쟁이 안 된다. 밀키트는 유통과 진열을 거쳐 소비자 밥상에 올라가기까지 신선함이 생명이다. 채소 등 신선재료가 들어가는 메뉴는 회전율이 빨라야 한다. 대형마트들은 유통기한이 가까워지면 대폭 세일을 통해 재고 처리를 하지만 가맹점들의 경우 이마저도 어렵다. 재고도 떠안아야 하고 마진율도 크지 않은 상황에서 할인 이벤트로 버티는 것은 악순환으로 가는 길이다. 또 대기업은 재료를 대량으로 구매해 마진을 최대한 남길 수 있지만 가맹점의 경우 일반 마트에서 소비자가로 식재료를 사서 소분 포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재고 관리는 어렵고 마진은 낮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전국 가맹점 수가 200곳이 넘는 한 브랜드의 경우 4월에만 개점 한 달도 안 된 점포 3곳이 폐업했다.

중소 프랜차이즈의 밀키트 전문점이 설 자리는 없을까?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는 ‘반짝’ 떴다 사라진 대만 카스테라와는 다르다는 입장이다. 1인 가구, 캠핑족 증가와 함께 코로나19 이후 자리 잡은 ‘집밥’ 트렌드가 엔데믹 시대에도 유효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리서치기업 유로모니터는 2025년 밀키트 시장 규모를 7253억원으로 전망한다. 2021년 3000억원에서 2배 이상 커진다는 것이다. 시장 규모가 1조원은 넘어야 들어오는 대기업들의 진격은 그만큼 성장 잠재력이 크기 때문이다. 중소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동네 장사로 틈새를 노려야 한다. 신규 브랜드 중에는 무인 점포 대신 대면 서비스를 내세우기도 한다. 밀키트 창업의 최대 장점이 창업 비용의 경쟁력인 만큼 ‘로 리스크 로 리턴’으로 생각하고 기대 수익을 맞춰야 한다. 판매량 예측으로 로스율을 줄이는 등 비용 관리를 철저히 하면 안정적인 운영도 가능하다.

마이프차 김준용 대표는 “무인으로 운영이 가능한 점포라 할지라도 안정기에 들어가기 전까지 점주가 꾸준히 매장에 나가 분위기를 보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밀키트뿐만 아니라 모든 무인 창업은 철저한 상권분석, 창업 직후 3개월 내 마케팅, 그리고 점주의 관심과 노력이란 삼박자가 맞춰졌을 때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