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일 0시(한국시간), 2018 러시아 월드컵 준우승팀 크로아티아와 3위 팀 벨기에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곳에서 만났다. 2022 카타르 월드컵 F조 3차전, 16강에 진출하려면 크로아티아는 최소 무승부 이상, 벨기에는 반드시 승리가 필요했다.

전반 14분 크로아티아가 페널티킥을 얻었다. 크로아티아의 프리킥이 벨기에 진영에서 혼전을 만들었고 벨기에의 야닉 카라스코가 크로아티아 선수의 발을 밟았다. 경기의 흐름을 크로아티아 쪽으로 단숨에 가지고 올 수 있는 상황. 크로아티아의 레전드 루카 모드리치가 페널티킥을 준비할 때 헤드셋을 통해 VAR실의 이야기를 듣던 주심이 모니터를 향해 뛰어갔다. 

상황을 살펴본 주심은 두 손을 저으며 페널티킥을 취소하고 오프사이드를 선언했다. 프리킥 상황에서 공을 향해 뛰어들던 크로아티아 선수가 깻잎 한장만큼 앞서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눈이라면 쉽게 잡아내기 힘든 상황이었다. 만약 이 페널티킥이 원래대로 진행됐더라면 크로아티아는 승리를 거둘 지도 모를 일이었다. 벨기에와 이날의 경기 결과는 0대0 무승부였다.

폴란드 골키퍼 보이치에흐 슈체스니의 손이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의 얼굴에 닿은 모습. VAR끝에 선언된 페널티킥은 논란을 불러왔다. photo 뉴시스
폴란드 골키퍼 보이치에흐 슈체스니의 손이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의 얼굴에 닿은 모습. VAR끝에 선언된 페널티킥은 논란을 불러왔다. photo 뉴시스

SAOT, AI가 축구에 개입해

이번 월드컵에 쓰이는 VAR은 다른 리그에서 쓰이는 것과는 살짝 다르다. 우리에게 친숙한 해외리그인 프리미어리그와 비교해보자. 일단 서버실처럼 VAR을 운영하는 거점이 있으며 혹시나 발생할지 모를 고장을 대비하 각 경기장에도 VAR룸이 있다. 필드 위의 주심은 VAR실과 헤드셋을 통해 교신할 수 있고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피치사이드에 위치한 모니터를 확인하게 된다. 이런 큰 틀은 같다.

다른 점은 좀 더 진일보한 기술이 적용됐다는 점이다. 가장 주목받고 있는 건 반자동 오프사이드 판독기다. 이 기술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스포츠연구소와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가 함께 3년간 개발했다.

축구에서 오프사이드의 정의는 이렇다. 공격팀 선수가 상대편 진영에서 공보다 앞쪽에 있을 때, 자신과 골라인 사이에 상대팀 선수가 2명 이상 없으면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게 되며, 이때 패스를 받으면 반칙이 된다. 보통 골키퍼는 항상 아래에 위치하기 때문에 골키퍼 바로 앞에 위치한 상대팀 수비수보다 앞서 있는 경우 오프사이드가 선언된다.

이번 대회에서는 SAOT라는 새로운 시스템이 적용되고 있다. 경기장 지붕 아래 설치된 12대의 전용 카메라가 선수들의 신체 부위 29곳을 추적한다. 아디다스가 만든 축구공에는 센서(IMU)가 들어있는데 초당 500회의 데이터를 기록해 패스의 순간을 정확히 잡아낼 수 있다. 그리고 AI는 오프사이드에 필요한 이 두 가지 정보를 근거로 오프사이드 여부를 판단하 VAR실에 알린다. VAR 심판은 오프사이드 여부를 추가적으로 판단해 필드 위의 주심에게 알린다. 판정은 선수를 3D 모형으로 만들어 경기장 내 스크린과 방송으로 송출된다.

패스가 이뤄지는 순간은 정말 찰나인데 패스를 넣는 선수와 공을 받는 선수의 위치까지 동시에 인지해야 오프사이드를 판정할 수 있다. 선상을 오가는 부심 입장에서는 가장 잡아내기 어렵고, 그래서 오심이 종종 발생한다. 실제로 월드컵에서 VAR이 처음 적용됐던 2018년 대회에서는 오프사이드 오심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는 과거 정지화면에 선을 그어 알아내는 것보다 더 정확한 판정이 가능해졌다. 

게다가 VAR 덕분에 경기의 승패를 결정할 수 있는 페널티킥이 늘어나고 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은 VAR을 사용한 첫 대회로 2014 브라질 월드컵보다 페널티킥 수가 크게 늘었다. 문전 안에서의 거친 몸싸움과 태클, 핸들링을 발견할 수 있는 정밀한 수단이 생겼기 때문이다. 다만 논란도 거세다. 

자유로운 축구의 흐름에 방해된다는 지적도

12월 1일(한국시간) 열린 경기,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35·PSG)는 폴란드전에서 VAR를 통해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전반 36분 올라오는 크로스를 향해 메시는 헤더를 시도했는데 폴란드 골키퍼 보이치에흐 슈체스니(32·유벤투스)가 펀칭하기 위해 뻗은 손이 메시의 얼굴에 닿았다. VAR실에서는 이 접촉을 잡아냈고 주심은 모니터로 확인한 뒤 메시가 얼굴을 가격당했다고 판단해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이 판정은 축구 커뮤니티에서도 논란이었다. "이 정도로 페널티킥을?"이라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경기 후에도 평론가들의 비판이 나왔다. 잉글랜드 대표 출신인 앨런 시어러는 "접촉은 있었어도 이건 절대 페널티킥이 아니다"고 말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출신인 리오 퍼디난드도 "정말로 잘못된 결정이다"고 거들었다. 

실제로 페널티박스 내 벌어지는 몸싸움에 VAR은 적극적으로 개입 중이다. 이 떄문에 수비수들이 불리하다는 지적이 있다. 선수들이 코너킥 상황에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는 건 그동안 축구에서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하지만 공격수들의 움직임을 막기 위해 수비수들이 바디체크를 해오던 그간의 관행에 VAR이 등장하면서 페널티킥 선언 여부에 매우 민감해진 게 이번 대회의 분위기다. 한 번의 실수가 탈락으로 이어지는 월드컵에서는 이런 VAR이 절대 강자가 될 수 있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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