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월 15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시진핑 주석은 “북한의 호응을 전제로 ‘담대한 구상’이 잘 이행되도록 적극 지지하고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photo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월 15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시진핑 주석은 “북한의 호응을 전제로 ‘담대한 구상’이 잘 이행되도록 적극 지지하고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photo 뉴시스

북한의 핵 위협이 촉발한 미국의 전술핵 재반입 논의가 미묘한 지정학적 변화를 불러올 조짐이다. 미국에서도 한국에 전술핵을 재반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북한과 중국이 윤석열 정부를 향해 일종의 유화책을 제시하는 태도 변화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전술핵 재반입 무력화를 노리고 공산정권 특유의 화전(和戰)양면술을 구사하는 것이 아닌지 주목된다. 

가장 눈여겨볼 변화는 북한의 예상치 못한 움직임이다. 강도 높은 무력 도발과 대남 비방을 이어가던 북한이 지난 10월 돌연 윤석열 정부에 막후 접촉을 제안해왔고 실제 남북 당국 관계자들이 제3국에서 만남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북한은 윤석열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에 대해 설명을 해달라는 취지의 제안을 했다고 한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팀으로서는 북한이 ‘담대한 구상’에 관심을 표명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고무될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은 북한의 의도를 제대로 꿰뚫지 않고서는 우리가 또 북한에 이용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북한의 이번 남북 비밀접촉 제안은 미 전술핵의 한국 재배치와 핵공유를 선제적으로 저지하기 위한 평양과 베이징의 합작품일 가능성이 높다. 필자가 이런 판단을 내리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물밑 접촉의 구실이 됐던 ‘담대한 구상’의 내용이다. 잘 알다시피 윤 대통령은 지난 8·15 경축사를 통해 북한이 비핵화를 하면 식량 및 인프라 개발을 위한 경제협력을 제공하겠다는 비교적 ‘간단한’ 제안을 했다. 이 제안 직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명의로 조롱 섞인 비난 담화를 내놓았던 북한이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나 뒤늦게 관심을 보였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비핵화는커녕 지난 9월 8일 ‘핵무력 정책법’으로 대남 핵무기 선제공격을 법제화까지 하고 7차 핵실험 준비도 착실히 해온 북한이 ‘담대한 구상’에 진지한 관심을 뒀다고는 도저히 볼 수가 없다. ‘담대한 구상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다’는 북한의 요청은 남북 국장급 접촉을 이끌어내기 위한 구실에 불과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더구나 대남 직통 전화를 통한 접촉 제의가 아니라 홍콩 총영사관을 통한 우회적 제의라는 점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북한이 공식적인 접촉제의 시 괜한 오해를 살지 모른다는 점을 우려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핵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인정받은 가운데 중·단거리 탄도미사일 연쇄 도발로 전술핵 위협까지 가함으로써 한·미 확장억제 체제의 무력함을 만천하에 드러냈다고 자평해 왔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의 보수정부가 제시한 ‘담대한 구상’에 호응해 막후 접촉을 가졌다는 사실이 공개될 경우 평양으로서는 유엔 제재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한국에 손을 벌렸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11월 27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형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7형 시험발사에 참여했던 공로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그들의 노력을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김 국무위원장은 둘째 딸을 데리고 나와 과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photo 뉴시스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11월 27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형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7형 시험발사에 참여했던 공로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그들의 노력을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김 국무위원장은 둘째 딸을 데리고 나와 과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photo 뉴시스

11·3 한ㆍ미 국방장관 회담 앞둔 시점

가장 이상한 것은 제의 시점이다. 북한은 중·단거리 탄도미사일 도발을 통해 한반도 긴장을 극도로 끌어올린 와중에 돌연 접촉을 제의해왔다. 이는 자신들의 도발이 뜻하지 않은 위기 요인과 정세 변화를 불러왔다는 시급한 판단을 했다는 의미로 읽힌다. 북한의 입장에서 9~10월 중·단거리 탄도미사일 연쇄 발사 도발이 불러온 가장 큰 정세 변화가 뭘까. 북한의 전술핵 위협에 맞서 미 전술핵 재배치나 핵공유 체제 구축에 대한 한국 내 지지 여론이 크게 높아졌고 미국 내에서도 이와 관련된 논의가 일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제외하곤 북한이 관심을 기울일 만한 중대한 변화를 찾기 힘들다. 

사실 김정은의 입장에서는 한국에 미 전술핵 재배치가 이루어지거나 한·미 또는 한·미·일·호 4국 핵공유 체제가 구축될 경우 대남 전략에 큰 차질이 불가피하다. 특히 10월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면 윤 정부가 11·3 한·미 국방장관 회담 등을 통해 전술핵 재배치나 핵공유를 요구하는 것을 막는 일이 시급한 과제였다고 볼 수 있다. 일단 ‘담대한 구상’에 대한 관심을 표명함으로써 사실상 작동 불능 상태의 확장억제 체제를 유지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라고 판단했을 개연성이 높다.

북한이 막후 접촉을 통해 노린 것이 미 전술핵 재배치나 핵공유 체제 구축을 저지하는 데 있었다면 11·3 한·미 국방장관 회담 결과는 북한 입장에서 그리 나쁘지 않다. 전술핵 재배치나 핵공유 합의에는 한·미 당국이 분명히 선을 그으면서 기존의 확장억제를 재확인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과의 회담 직후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전술핵 재배치는 하지 않기로 했으며 대신 미 전략자산의 상시 배치에 준하는 확장억제 체제를 갖춘다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우리의 외교안보 부처 고위 관계자들도 지난 10월 초순부터 전술핵 재배치 여론이 고조되기 시작하자 적극적인 방송 출연 등을 통해 전술핵 재배치는 한반도 비핵화에 부담이 되고 미국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물론 윤 정부의 외교안보팀이 북한이 ‘담대한 구상’에 관심을 표명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전술핵 카드’ 배제라는 결정을 내렸을 가능성은 낮다. 이번 접촉이 국장급 레벨에서 시작해 차관급 레벨로 올라갔다는 점에서 남북 간 비핵화를 위한 경제협력 제공 방안과 정치·군사적 신뢰 구축 방안에 대해서도 보다 진전된 논의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 11·3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윤 정부가 전술핵 재배치나 핵공유를 논의하지 않기로 결정하기까지는 비핵화에 대한 북측의 의지를 가늠하는 등 종합적 판단을 거쳤을 것이다. 만약 우리 정부가 미 측에 적극적으로 전술핵 카드를 요구할 경우 북한의 비핵화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최종 판단했을 수 있다. 

남북 막후 접촉과 관련해 필자가 또 하나 주목한 것은 지난 11월 16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한·중 정상회담에서의 발언이다. 이날 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관련해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을 촉구하는 윤 대통령에게 다소 엉뚱하게도 “북한의 호응을 전제로 ‘담대한 구상’이 잘 이행되도록 적극 지지하고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대체 이 말은 무슨 의미일까? 일의 진행 순서를 보면 시진핑의 이 발언은 북한이 ‘담대한 구상’에 대한 관심을 표명함으로써 남북 막후 접촉이 이뤄진 후에 나왔다. 시진핑의 이 언급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남북 막후 접촉이 북한에 대한 시진핑의 압박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다. 북한의 과도한 도발이 한국에서의 전술핵 재배치 또는 핵공유 지지 여론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을 엄중하게 보고 그 같은 여론이 윤 정부의 정책으로 현실화하지 않도록 하라고 권유했거나 압박했을 가능성이다. 또 다른 하나는 우리 정부를 향한 시진핑의 메시지다. 보다시피 북한이 ‘담대한 구상’에 호응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적극 돕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사실 시진핑으로서는 발리 G20 정상회담 기간 중 굳이 한·중 정상회담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윤 대통령이 프놈펜 아세안(ASEAN) 정상회의 기간에 한·미·일 정상회담 등을 통해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과 3국 공조 강화를 천명하면서 한국 외교가 보편적 가치와 규범에 기반하고 있다고 강조한 것에 대해 중국은 내심 불쾌하게 여겼을 것이다. 또 11·3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전술핵 재배치나 핵공유를 추진하지 않는다는 합의가 나온 만큼 한·중 정상회담의 시급성이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시진핑이 3년 만에 한·중 정상회담을 갖기로 결심한 것은 불과 회담 10시간 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시진핑은 미 전술핵의 한국 재배치 저지라는 전략적 판단에 따라 막판에 한·중 정상회담을 결정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중 정상회담을 갖기로 결심한 데는 11월 11일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의 발언과 이후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공개된 바이든 대통령의 언급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추측된다. 설리번 보좌관은 북한의 도발이 지속될 경우 “역내 미군의 군사력을 증강시킬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고, 사흘 뒤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의 위협에 대비해 “미국과 한·일 등 동맹을 보호하기 위해 추가적인 방어행위에 나설 수 있다”고 밝혔다. 미 국방부 역시 지난 10월 27일 발표된 ‘핵태세검토(NPR)’에서 ‘유연한 핵전력’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핵무기의 지역적·세계적 전진 배치를 해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시진핑으로서는 설리번의 ‘역내 미군의 군사력 증강’ 언급과 바이든의 ‘한·일 등 동맹 보호 위한 추가적인 방어행위’ 언급을 한국에 대한 전술핵 재배치와 괌 또는 오키나와에 대한 중·단거리 핵탄도미사일 배치로 이해했을 가능성이 높다. 마침 마크 에스퍼 전 미 국방장관도 최근 출간된 회고록 ‘성스러운 맹세(A Sacred Oath)’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2019년에 미·러 중거리핵탄도미사일제한협정(INF)을 파기하고 신형 중거리핵탄도미사일 생산에 나선 목적은 중국의 중거리 핵탄도미사일 능력 강화에 대응하는 데 있었다고 공개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시진핑 역시 김정은이 남북 막후 접촉을 이끌어낸 것처럼 윤 정부의 ‘담대한 구상’을 높이 평가하면서 북한이 호응할 경우 적극 도울 수 있다는 미끼를 던졌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시진핑의 목적이 언론이 평가한 대로 첨단기술 이전 차단과 공급망 배제 등 미국의 대중 탈(脫)동조화에 한국이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데만 있었다면 회담이 25분 만에 끝나지는 않았을 개연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시진핑은 전술핵 재배치 무력화를 노린 ‘담대한 구상 지원 의사 표명’이라는 할 말만 하고 회담을 끝낸 것이다.

지난 11월 3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일 한ㆍ미 국방장관 회담 후 이종섭 국방부 장관(오른쪽)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이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11월 3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일 한ㆍ미 국방장관 회담 후 이종섭 국방부 장관(오른쪽)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이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photo 뉴시스

시진핑 “담대한 구상 이행되도록 지지 협력”

중국이나 북한이 왜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에 이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는 다시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현재 중국은 본토 연안을 따라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방향으로 둥펑-41 장거리 탄도미사일과 둥펑-21·17 등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배치해 놓았다. 이를 통해 미 해·공군의 접근 자체를 차단하고 거부하는 ‘반접근과 지역거부(Anti-Access/Area Denial)’ 전략을 일관되게 추구해 왔다. 그런데 한국에 전술핵이 재배치될 경우 이 전략 자체가 무력화될 수 있다. 미 전술핵의 한국 재배치가 이루어질 경우 미 해·공군의 중국 본토 접근은 물론 역내 자유로운 이동을 견제하지 못하게 돼 역내 군사 패권을 확보하는 데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는 궁극적으로 공산당의 권력 안정에 위협이 될 수 있다.

미 현실주의자들인 할 브랜즈와 마이클 베클리는 저서 ‘위험지대(Danger Zone)’에서 ‘위기가 현실화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시진핑표 안보 전략의 핵심이라고 평가한다. 시진핑이 2012년 주석 취임 이후 행한 연설들을 통해 국가안보와 관련해 일관되게 제시한 메시지가 “중국이 직면한 모든 위협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는 김정은을 압박해서라도 반드시 막아야 할 위기 요인일 수밖에 없다. 중국이 유엔 제재를 우회해 북한에 원유를 제공하고 있다는 김숙 전 주유엔 대사의 분석을 전제로 할 경우 시진핑의 그 같은 권유 또는 압박이 있었다면 김정은으로서는 수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북한 역시 마찬가지라고 봐야 한다. 한국에 전술핵이 재배치될 경우 북한은 더 이상 전술핵 탑재가 가능한 탄도미사일 발사 도발로 한국에 핵위협을 하기 어려워진다. 더 나아가 핵위협을 통한 대남 적화통일이라는 원대한 목표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커진다. 김정은으로서는 ‘핵은 핵으로만 대응할 수 있다’는 원칙이 한반도에서 관철되는 것을 가장 꺼릴 수밖에 없다.  

이제 공은 윤석열 정부에 넘어갔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역대 정권은 보수나 진보를 막론하고 남북 관계에서 뭔가 성과를 내고자 애써왔다. 5년 단임 정권에서 남북관계야말로 여론을 움직일 가장 큰 치적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과거 김영삼 정권도 미·북 갈등이 극도로 고조된 상황에서 김일성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하다 김일성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무산된 것을 안타까워했다. 윤석열 정부 역시 독자 브랜드인 ‘담대한 구상’이라는 방식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이뤄내겠다는 의지가 클 수밖에 없을 것이고 나아가 ‘담대한 구상’을 매개로 보수정부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싶은 욕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북한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우리에게 접촉을 제의해온 의도가 진짜 미 전술핵 재배치나 핵공유 카드를 무산시키는 데 있다면 북한과의 접촉이 비핵화가 아니라 거꾸로 북한의 핵무력 강화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이용될지 모른다. 더 나아가 미국과 역내 군사 패권 경쟁을 벌이는 중국에만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비판도 감안해야 한다. 

 

북ㆍ중이 전술핵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 

이 같은 맥락에서 윤 정부의 외교안보팀, 특히 국가안보실은 전술핵 재배치 또는 핵공유가 ‘담대한 구상’을 추진하는 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여기는 부정적인 태도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 장애물이라기보다 오히려 ‘담대한 구상’의 실현에 가장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때까지만 전술핵을 재배치한다는 전제 아래 북한을 압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전술핵 카드를 우리가 손에 쥐고 “비핵화에 나서면 경제협력 제공과 함께 정치·군사 신뢰 조치 구축에 나서겠다”고 설득하는 것이 훨씬 효과가 클 것이다. 북한이 자신의 핵 위협이 한국의 전술핵 재배치로 인해 더 이상 먹혀들지 않게 됐다고 여길 때 비로소 ‘담대한 구상’에 호응하고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북한은 지난 11월 18일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7호 시험 발사에도 성공했다. 북한은 미 전술핵 재배치 추진 가능성을 일단 봉쇄하는 데 성공했다고 판단되자 미 전략자산이 한국으로 전개되는 것까지 완전히 막기 위해 한 단계 높은 도발을 감행했다고 봐야 한다. 이는 역으로 한·미 확장억제 체제가 마침내 종언을 고했으며 전술핵 재배치가 더 이상 늦춰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에 전술핵 재배치를 하면 북·중 두 나라에 의한 모든 형태의 핵위협을 억제할 수 있는 핵균형을 최소한 이룰 수 있다. 이는 1977년 소련의 중거리 핵미사일 SS-20의 동독 배치에 맞서 헬무트 슈미트 당시 서독 총리가 미 중거리핵미사일 퍼싱-Ⅱ를 서독에 배치하기로 대담한 결정을 내린 후에야 1987년 미·소 중거리 핵미사일 제한협정(INF)이 체결되고 동독에서 SS-20이 완전 철거된 데서 확인된다. 바이든 미 행정부에서도 화성17호 성공 소식을 접한 뒤 한·미 확장억제의 ‘유효 기간’이 끝났고 뭔가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 우리 국방부에서도 화성17호 시험 발사 전후로 한·미·일·호 간 아시아핵기획그룹 같은 다자 핵공유 체제를 실무적으로 검토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서 국가 경영의 두 축인 안보와 경제에서 리더가 견지해야 하는 가장 바람직한 패러다임은 현실주의다. ‘자유 예찬론자’인 윤 대통령은 자신의 ‘담대한 구상’이 북한의 전술핵 위협 고조라는 엄중한 현실을 오히려 가리는 이상적 비전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을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서독의 슈미트 전 총리가 사민당 소속의 진보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냉전 종식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 퍼싱-Ⅱ배치라는 ‘이중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도 그가 현실주의 정치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정치에서 원대한 비전을 내세우는 사람은 병원에 가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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