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의힘이 4년 전 총선에 이어 서울에서 또다시 무너졌다. 지난 4월 10일 제22대 총선에서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은 총 48개 의석이 걸린 서울에서 11석을 얻는 데 그쳤다. 4년 전인 지난 2020년 21대 총선 때 국민의힘의 전신인 미래통합당이 서울에서 8석을 얻은 것보다는 다소 나아진 결과라고는 하지만, 총 60석이 걸린 경기도와 함께 최대 승부처로 꼽히는 서울에서 밀리면서 전체 선거에서 또다시 참패했다.
국민의힘의 서울 지역구 현역 의원 가운데 21대에 이어 22대에 살아남은 사람은 윤석열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으로 서울 용산에서 5선에 성공한 권영세 의원을 비롯해, 서초갑의 조은희 의원, 송파을의 배현진 의원 단 3명이다. 반면 당 지도부의 현역 재배치 전략에 따라 다른 지역구로 재배치된 서울 강남3구(서초·강남·송파) 지역구의 현역인 태영호 의원(강남갑→구로을), 박진 의원(강남을→서대문을), 유경준 의원(강남병→경기 화성정), 박성중 의원(서초을→경기 부천을) 등은 모두 전멸했다.
국힘, 48석 중 11석… 3연승 후 참패
국민의힘이 서울에서 받은 이 같은 성적표는 2020년 총선 이후 치러진 3번의 선거결과와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 국민의힘은 여비서 성(性)추행 의혹으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한 뒤 치러진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시작으로 서울에서 내리 3연승을 거뒀다. 국민의힘은 2022년 대선 때는 윤석열 대통령을 앞세워 서울에서 50.56%의 표를 획득해 45.73%(서울)를 얻는 데 그친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현 민주당 대표)를 4.83%포인트 차로 눌렀다.
지난 대선 직후 치러진 2022년 6월 지방선거 때도 오세훈 현 서울시장을 앞세운 국민의힘은 58.7%의 표를 얻어 40.2%의 표를 얻는 데 그친 송영길 당시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현 소나무당 대표)를 무려 18.5%포인트 차로 눌렀다. 아울러 국민의힘은 당시 지방선거에서 서울에 걸린 25개 자치구청장 가운데 모두 17개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앞선 2018년 지방선거 때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이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게 패하고, 서울 25개 구청장 가운데 서초구청장 단 1개만 지켜냈던 것과 천양지차 결과였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중간평가 형식으로 치러진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서울에 걸린 48개 지역구 가운데 37개를 민주당에 내어주면서 불과 2년 만에 싸늘하게 식어버린 서울 민심을 재확인했다.

국힘, ‘정치 1번지’ 종로도 빼앗겨
특히 2022년 대선과 함께 치러진 재보궐선거 때 국민의힘이 탈환한 ‘정치1번지’ 서울 종로마저 민주당에 내어준 것은 뼈아프다. 종로 현역 의원인 국민의힘 최재형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인 민주당 곽상언 후보에게 6.79%포인트 차로 패했다. 이로써 민주당 곽상언 후보는 장인(노무현 전 대통령)의 옛 지역구인 종로를 다시 탈환했다.
국민의힘은 당초 종로를 지키기 위해 선거구 인구가 하한선에 미달하는 서울 중구를 인근 종로구와 통합하라는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의 권고를 물리치고 종로구 선거구를 2020년 총선 때와 마찬가지로 단독 선거구로 유지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현역 우위를 기대한 종로구를 빼앗긴 것은 물론 기형적 선거구인 중구·성동구갑, 중구·성동구을 2개 선거구마저 모조리 민주당에 내어줬다.
그나마 국민의힘 ‘잠룡(潛龍)’ 중 하나로 꼽힌 나경원 전 의원이 서울 동작을에서 생환한 것은 몇 안 되는 성과로 꼽힌다. 나경원 전 의원은 한동훈 총괄선거대책위원장 아래서 안철수 의원,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 윤재옥 원내대표와 함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이에 맞서 경찰 출신 류삼영 전 총경을 전략공천한 민주당은 나경원 전 의원의 예봉을 꺾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으나, 나 전 의원의 국회 복귀를 막지는 못했다.
국민의힘이 서울에서 거둔 몇 안 되는 성과라면 국민의힘과 합당한 비례대표 조정훈 의원(전 시대전환 대표)을 앞세워 ‘한강벨트’ 중 하나인 마포갑을 민주당으로부터 탈환한 것과, 서울의 변방으로 불리는 도봉갑에서 김재섭 후보가 민주당 안귀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것 정도다. 특히 조정훈 의원은 선거 전 여론조사부터 본투표 직후 출구조사 때까지 줄곧 민주당 이지은 후보에게 밀리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개표 결과 불과 599표, 0.6%포인트 차로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202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이후 서울에서 내리 3연승을 달리던 국민의힘이 4년 만에 또다시 서울에서 무너진 까닭으로는 여러 이유가 꼽힌다. 지난 문재인 정부 내내 서울 민심을 들끓게 했던 서울 아파트 가격 폭등에 따른 전월세비 급등과 세금폭탄 같은 이슈가 잠잠해진 대신,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를 둘러싼 당정 갈등,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주(駐)호주대사 임명, 황상무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회칼테러’ 발언 등 대통령실과 관련한 각종 돌발성 악재들이 총선을 앞두고 서울 민심을 덮친 것 등이 민심 악화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 2월 말부터 두 달 가까이 이어진 전공의 파업 장기화로 인한 서울 ‘빅5’ 병원의 병상가동률 저하와 같은 피로감 누적도 서울 민심을 돌아서게 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2022년 10월 서울 한복판에서 159명이 사망한 이태원 압사참사 때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경질 등 여론의 요구에 미온적으로 대처한 데 따른 누적된 불만 역시 참패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여의도 국회 세종 이전도 별무효과
총선을 불과 2주 앞둔 지난 3월 27일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발표한 여의도 국회의 세종 완전 이전이나 지난 대선 때부터 줄곧 주장한 산업은행 부산 이전카드도 결과적으로 서울에서 역효과만 불러왔다. 국민의힘은 국회 세종 완전 이전과 산업은행 이전을 통한 여의도 재개발을 총선 공약으로 제시했으나, 정작 여의도가 속한 영등포을에 출마한 국민의힘 박용찬 후보는 이 지역 현역인 김민석 민주당 의원과 리턴매치에서 1.15%포인트 차로 또다시 석패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국회 세종 완전 이전과 같은 초대형 이슈를 너무 늦게 ‘깜짝발표’ 하는 바람에 국민의힘 박용찬 후보는 국회 세종 이전과 관련한 공약은 공보물에도 넣지 못했다.
그나마 산업은행 부산 이전카드로 부산에 걸린 총 18석 가운데 17석을 확보한 것은 성과로 꼽힌다. 4년 전 21대 총선 때 부산에서 15석을 가져간 것에 비해 2석이 늘었다. 하지만 국회 세종 완전 이전과 산업은행 부산 이전 공약으로 의석을 얻은 만큼, 서울에서 잃은 의석을 상쇄할 수 있을지는 따져볼 문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행정수도 이전이나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과거 노무현 정부 때부터 시작된 민주당의 대표 공약”이라며 “수도 서울을 굳건히 지켜야 할 국민의힘이 부산과 충청 표심을 잡자고 어설프게 민주당을 따라하다가 결과적으로 서울마저 내어줬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