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0일 국민의힘 부산시당에서 부산에 출마한 국민의힘 총선 후보들이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를 확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4월 10일 국민의힘 부산시당에서 부산에 출마한 국민의힘 총선 후보들이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를 확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2주 전, 부산에 출마한 한 국회의원 후보 캠프 관계자는 “수도권이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2월만 해도 부산에 출마한 국민의힘 후보들은 어렵지 않은 승리를 장담했다. 부산 내 몇몇 험지를 제외한다면 여론조사 지표가 나쁘지 않았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느낀 바닥 민심도 괜찮았다. 하지만 3월 중순 이후부터 쏟아지는 여론조사에서는 급격하게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됐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변했다는 게 이들의 중론이다. 텃밭이었던 곳이 접전지로 바뀌었고 접전을 벌이던 곳은 험지화됐다.

당시만 해도 정부와 여당의 ‘중앙발 악재’는 부산 지역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이종섭·황상무 논란’에 이어 ‘대파 논란’까지 일면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옮겨 갔던 부산 유권자들의 시선도 다시 윤석열 대통령을 향했다. 특히 현 정부 들어 수도권과 동조해 움직이는 부산의 민심은 무서웠다. 윤 대통령 국정 운영에 대한 높은 부정 평가는 부산 국민의힘 후보들 진영에 악재가 됐다.

 

사전투표함에서 여당 표 적지 않게 나와 

그런데 막상 4·10 총선의 뚜껑을 열어보니 국민의힘은 부산에서 압승을 거뒀다. 전국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한 것과는 결이 다른 성적이다. 지상파 3사 출구조사는 부산 18개 선거구 중 11곳을 경합으로 분류했다. 대혼전이었다. 수도권과 동조한 흐름이 부산에서도 나타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개표 결과 부산 18개 선거구 가운데 북갑을 제외한 17개 선거구에서 국민의힘은 승리했다. 출구조사와 달리 개표가 시작되자마자 우세 지역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뒤지고 있던 곳도 자정을 넘어서면서 역전을 이뤄냈다.

부산·울산·경남(PK)에는 총 40개 의석이 걸려 있다. 이곳에서 국민의힘은 34석, 민주당은 5석, 진보당은 1석을 얻었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32석, 민주당은 7석을 얻었는데 이번에는 국민의힘 의석수가 2석 늘었고, 민주당은 2석 줄었다.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부산 1석(북갑), 울산 1석(동구), 경남 3석(김해 갑·을, 창원성산)을 가져갔다. 격전지로 분류됐던 낙동강 벨트에서도 사실상 국민의힘이 완승했다.

이런 결과를 두고 “PK에서만큼은 보수층이 강하게 결집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보수층 결집의 모습은 몇몇 결과에서 목도할 수 있다. 하나는 3자 구도로 치러지며 민주당의 우위가 예상됐던 수영구다. 수영구는 1995년 지역구가 만들어진 뒤 2008년 총선에서 유재중 무소속 후보가 당선된 걸 제외하면 단 한 번도 보수정당이 놓친 적이 없는 곳이다. 당시에도 친이계의 공천학살로 친박 무소속으로 나선 유 후보가 이길 수 있었다. 이곳에서 민주당이 얻은 가장 높은 득표율은 2020년 21대 총선에선 강윤경 민주당 후보가 얻은 41%였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양지지만 장예찬 후보가 공천에서 탈락한 뒤 무소속 출마를 강행해 3자 구도가 만들어졌고 여러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 후보의 우세를 점쳤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50.33%를 얻은 정연욱 국민의힘 후보가 유동철 민주당 후보(40.47%)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유 후보는 민주당이 얻을 수 있는 표를 최대한 끌어왔지만 패할 수밖에 없었다. 여론조사에서 20%대를 기록하던 장 후보가 막상 본선에서는 9.18%를 얻었고 줄어든 표는 정연욱 후보 쪽으로 향했다. 인위적인 단일화는 없었지만 수영의 보수 여론이 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자연스러운 단일화가 일어났다.

사전투표율이 30%를 돌파하고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때만 해도 PK에서도 ‘야당 바람’이 한층 강하게 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막상 사전투표함을 열자 민주당 후보 진영에서 많이 당황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개표 초반 봉인을 해제한 사전투표함에서 생각보다 여야 후보 간 격차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층이 사전투표장으로 대거 향했다는 증거다.

이렇게 일거에 보수결집이 일어나게 된 이유를 어떻게 봐야 할까. 부산의 한 정가 관계자는 “부산은 큰 도시고 이 때문에 바람이 불면 옆 지역구로 확 퍼진다. 부산과 붙어있는 양산과 김해 등 낙동강 벨트 지역도 부산의 영향을 쉽게 받는다. 야당 바람도 쉽게 번지지만 반대로 보수가 결집하는 분위기도 똑같이 확산되기 쉽다”고 말했다.

 

“부산을 위해 민주당은 뭘 해줬나” 

민주당은 이번 총선을 앞두고 PK지역 공천에 공을 많이 들였다. 과거에는 후보를 구하는 것조차 애를 먹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해볼 만한 표밭이 됐고 두꺼운 인재풀을 갖추고 있다. 이번 공천에서도 민주당은 구청장 출신 등 지역밀착형 인사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상당한 경쟁력을 보였다. 그런데 왜 PK에서는 수도권과 전혀 다른 성적표를 받아들어야 했을까.

‘부산 홀대’ 분위기라는 본질적인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는 지적이 많다. 민주당 부산시당 관계자는 “200석이 나올 것 같으니 보수가 결집했다고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좀 더 이곳 분위기를 들여다봐야 한다. 국민의힘이 PK에서 해준 게 뭐 있냐고 말할 수 있지만 민주당 중앙당도 부산이 직면한 문제에 그동안 미온적으로 대처해 왔다. 산업은행 이전은 부산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슈인데 부산에서는 민주당의 비협조가 문제라는 분위기가 흐른다”고 말했다.

부산일보와 부산 MBC가 공동으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의뢰해 3월 8~9일 실시한 여론조사(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에서 여야 공통 공약으로 채택해야 할 지역 현안 1위로 꼽힌 것이 산업은행을 포함한 공공기관의 부산 이전 문제였다. 그리고 지역 정가에서도 산업은행 부산 이전과 관련해서는 민주당의 실책이 있다고 본다.

지난해 12월 13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부산을 찾았을 때도 산업은행 부산 이전의 핵심인 산업은행법 개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 3월 선거운동을 위해 재차 방문했을 때도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부산 발전을 위한 공공기관 이전 문제에 대해 민주당도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며 원론적으로 답변했다. ‘국민의힘이 부산에 해준 건 없지만 민주당 너희들도 부산에 해준 게 없지 않냐’는 유권자들의 심리적 장벽이 부·울·경을 붉은색으로 물들게 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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