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와 우리 정부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로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남북의 강경 대응 속에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언급되며 불안감이 커지고, 탈북민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두고 찬반 여론이 갈리고 있다. 덩달아 대북정책을 둘러싼 내부 갈등도 불거지고 있다. 이에 대해 김천식 통일연구원장은 “북한은 체제보존이라는 우선적이고 절대적인 목표가 강고한 만큼, 일관되게 핵 개발을 추진해왔다”며 “우리의 대북정책은 북한을 변화시키는 데 한계가 있었다. 정권들이 저마다 접근법을 바꿔왔지만 어떤 정권도 목표했던 대북정책의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김 원장은 “최근 북한 내부에서 상당한 변화의 움직임이 보이는 만큼 이를 유의해서 관찰해야 한다”며 “북한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고 통일 의지를 계속 살려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통일부 정책총괄과장, 교류협력국장, 통일정책실장을 거쳐 이명박 정부에서 통일부 차관을 지낸 대표적 북한 전문가다. 지난 6월 13일 서울 서초동 통일연구원에서 김 원장과 만나 최근의 남북관계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 그간 정권이 바뀔 때마다 통일·대북정책도 변화했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정권마다 특색을 가지고 있어 통일·대북정책이 달라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실무자로서의 경험에 비춰 볼 때,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그 목표에 있어서는 일관성이 있었다. 전쟁을 방지하고 한반도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단기적 목표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을 위해 북한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장기적 목표다. 다만 정권마다 북한을 보는 시각과 접근법에 차이가 있었다. 유화적인 접근을 하는 정권도 있었고 현실주의적인 접근을 한 정권도 있었다. 그러나 핵개발을 막지 못했고 북한의 1인 영도체제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정권마다 추진했던 대북정책은 목표했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최근 북한 내부에서 한류가 퍼지고, 북한 주민들이 남한이 더 잘산다는 것을 이해하는 등 상당한 변화의 움직임이 있다. 때문에 북한도 소위 ‘반동문화사상 배격법’ ‘평양 문화어 보호법’ 등을 만들어 한류를 억제하고 북한 주민들의 눈귀를 가리려고 하고 있다. 이 점은 우리가 유의해서 관찰해야 한다고 본다.”
- 우리 정부의 정책방향 변화가 북한이나 국제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대북정책은 상대가 있는 문제다. 우리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일들이 있다. 북한은 대외적인 환경이나 우리 정부의 정책방향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미·중은 탈냉전 시기 협조적인 관계였지만 한반도에 대해서는 확고한 정책 없이 현상유지를 추구했다. 우리도 강대국들이 추구하는 현상유지 차원에서 정책을 펼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 미·중이 전략적 체제 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도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흐름을 잘 보면서 자주독립과 안보, 경제적 이익을 지키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 이번 정부 들어서는 통일부의 기능이 축소됐고 심지어 유명무실해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일반적으로 통일부의 존재 이유와 기능에 대해 많이들 오해하고 있다. 통일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가치와 체제를 선택하는 문제다. 남북 통일은 결국 체제 통일이고, 체제 선택의 문제다. 통일부는 가치와 체제 문제에 있어 가장 선두에 있는 부처다.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고, 이를 확산·보호하는 것이 최우선적인 기능이다. 또 통일부는 대한민국의 영토와 주권을 수호하는 부처다. 북한 지역까지도 우리의 영토이고, 북한 주민이 우리의 국민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국가기구로서 대변하고 있다. 남북 대화와 교류 협력 기능은 통일부 전체에서 30%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데, 그것을 전부인 양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 오해에서 벗어나는 것이 통일부로서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앞으로는 통일부가 역할과 사명을 충실히 수행해 ‘통일을 추구하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위상을 제대로 살려야 될 것이라고 본다.”
- 북한이 지난 6월 9일까지 네 차례 오물풍선을 살포했다. GPS 재밍이 병행되면서 단순히 심리전 의도가 아닐 것이란 분석도 있다. “원래 남북 간의 관계가 군사적 대치 관계이기 때문에, 북한의 어떤 행동이든 군사적 의미가 다 있다고 봐야 한다. 오물풍선은 남한 주민들에게 위기의식과 불안감을 조성해 정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려는 심리전적인 요소가 있다. 내부 갈등을 조장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물풍선은 북한의 저급한 수준을 국제사회에 드러낸 것이라고 본다. 또 오물을 보냈다는 점에서 북한이 체제를 선전할 우월한 문물이 없다는 것도 증명한 셈이다. 국제법인 바젤협약에도 위반된다.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냄으로써 우리 국민들의 반발과 염증만 더 키웠다.”
- 남북 간 긴장고조로 군사적 충돌 우려도 제기된다. “가끔 우리 국민들이 망각하지만, 남북 간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은 상수다. 북한 정권은 출범부터 지금까지 군사적 방법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고, 항상 그럴 준비를 해왔다. 그러나 실현되지 않는 이유는 우리도 그에 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 간 ‘군사적 균형’이 무너지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 우리는 대비태세를 강화해 군사적 충돌을 예방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힘에 의한 평화’는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우리가 강력한 군사력을 건설하고, 미국과 핵 동맹으로 북핵을 억제하고 있지만 만약 막을 힘이 없어지면 북한은 군사적 행동을 하게 돼 있다. 현재 전쟁 가능성은 높지 않고, 국지 도발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 정부의 9·19 군사합의 전면 효력정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등의 대응에 대해 평가한다면. “남북 간의 합의는 기본적으로 신사협정 개념이다. 위반 시 제재 수단이 없는, 상호존중과 상호주의가 적용되는 합의다. 상대방이 지키지 않으면 폐기되는 것이다. 북한이 해안포를 쏘고 미사일을 쏘면서 이미 합의가 폐기됐다. 때문에 9·19 군사합의서는 이미 실효된 것이라 본다. 정부의 전면 효력정지 결정은 이미 실효된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라고 본다. 또 대북 확성기 재개는 북한의 대남 도발에 대한 대응조치의 성격으로 이미 무효화된 군사합의서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북한 도발에 대한 대응의 성격이기 때문에 앞으로 북한이 어떻게 나오는가에 따라서 적절하게 대응하면 된다.”
- 우리 정부는 향후 어떤 방향으로 대응에 나서야 하나. “우선 국제질서가 아주 크게 전환하는 변곡점에 있는 상황에서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국가적 안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또 핵을 머리 위에 이고 살고 있는 만큼 핵 억지가 우선이다. 힘에 의한 억지가 현실적이라고 본다. 과거 대화로 평화를 구축하려고 했던 노력들은 모두 실패했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힘으로 막는 수밖에 없고, 이것이 성공해야 다음 단계인 대화로 넘어갈 수 있다. 더불어 포기하지 않고 북한 비핵화를 설득하고 제재하고, 국제사회에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 통일도 포기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추진해나가야 한다. 한 민족, 하나의 국가를 지향하고 남북 민족공동체를 강조해야 한다. 국제사회에도 우리의 통일 권리와 의무를 발신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