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국민의힘은 막판까지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를 향해 ‘단일화’ 러브콜을 보냈다. 이 후보가 여러 차례 독자 완주를 천명했는데도 보수 단일화의 불씨를 지핀 것이다. 이 후보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단일화 관련 연락을 일절 받지 않았는데, 그러자 지난 25일 신성범 국민의힘 의원이 이 후보의 유세 현장을 무작정 찾아 설득을 시도하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사전투표 첫날인 29일 새벽에는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가 직접 국회 의원회관을 찾아 부재 중인 이 후보를 기다리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일도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단일화에 적극적인 것은 후보인 김문수계를 포함한 ‘범친윤계’였다. 이들은 공개적으로 단일화를 언급했다. 물밑에서도 대선 본선 후보 확정 이후 지속적으로 이 후보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당권을 주겠다’ ‘집권 후 총리를 제의하겠다’는 식이다. 반면 친한동훈계 의원들은 회의적이다. 단일화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고, 본인들에게 좋지 않다고 본다는 것이 일각의 의견이다. 이와 관련해 이동훈 개혁신당 선거대책위원회 수석대변인은 지난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었던 바 있다. “저와 이름이 같은 한모씨의 측근들이 자주 전화를 주십니다. ‘절대 단일화하지 말고 반드시 끝까지 완주해서 투표용지에 이름을 올려야 합니다(라고)’.”
이처럼 친윤과 친한이 동상이몽을 꾸는 까닭은 간단하다. 대선 이후 있을 전당대회 당권 때문이다.
이준석은 처음부터 무관심… 그럼 왜?
상대방인 이 후보는 처음부터 단일화 생각이 없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조기대선이 가시화되고 나서부터 독자 완주를 계속 천명해 왔다. 국민의힘이 제안하는 당권 약속, 총리 약속 같은 것은 이 후보 개인적 경험으로도 믿기 힘든 약속이었다. 이 후보는 2022년 본인이 당대표였음에도 윤리위원회를 통해 당 대표 직무가 정지되고 끝내 축출된 바 있었다. 무엇보다 이 후보 측은 이번 대선이 비상계엄과 탄핵정국에서 이어지는 보궐 대선이기 때문에, 귀책사유가 있는 국민의힘과의 단일화는 얻을 것이 없는 행동이라고 본다.
이준석 캠프는 ‘보수가 이기는 유일한 시나리오’란 김문수 후보가 사퇴하고 본인과 이재명 후보의 1 대 1 구도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준석 후보는 지난 26일 “국민의힘과 김 후보가 정말 이재명 후보를 막는 것이 중요하고 진정성이 있다면, 그냥 오늘 즉각 후보를 사퇴하면 된다”고 말한 바 있다. 국민의힘도 이 같은 이준석 캠프의 견해를 알고 있었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감정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애초에 단일화 가능성에 대해 높게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친윤계가 ‘단일화 밀당’을 거두지 않고 있는 것은 역시 다음 전당대회를 대비한 포석이라는 평이다. 먼저 대선 패배의 외적 요인부터 찾는다는 것이다. 계엄과 탄핵은 바로 자신들이 지지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고, 자신들이 윤 전 대통령을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직전까지 옹호해 왔기 때문이다. 김상일 정치평론가는 “사표 방지 심리를 자극하면서도 정국 주도권을 쥐려는 의도”라며 “이준석 후보의 표를 가져오면서도, 대선에 패배한다면 그 책임론을 일단 이 후보에게 전가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애초 한덕수 전 총리와의 단일화를 추진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정치 경험이 없는 한 총리로 대선을 치르고, 공백 상태인 당권은 친윤계가 장악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단일화가 성사되어 이준석 후보가 입당하거나 개혁신당과 합당한다 하더라도, 차기 전당대회에서 당권 경쟁이 유력한 한동훈 전 대표보다 이준석 후보가 ‘덜 부담스럽다’는 평도 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이 후보는 한 전 대표와 사이가 좋지 않기도 하고 당내 기반도 없다”며 “들어오기만 한다면 당권에서 제압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이처럼 친윤계가 ‘윤석열 이미지’를 어느 정도 희석하며 전당대회를 준비하는 까닭에, 구여권 내외에서 가장 유력하게 언급되는 시나리오가 ‘안철수 옹립설’이다.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두 차례 모두 찬성표를 던졌던 안철수 의원은 이번 대선에서 도리어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김문수 후보를 가장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는 “나경원 의원, 원희룡 전 장관 등의 잠룡들이 당권보다는 서울시장 등 다른 역할을 생각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친윤이 안 의원을 내세운다는 이야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안 의원은 당내에서 매번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타는 독자노선을 걸어 왔는데, 이번에 확실한 노선을 정한다면 그래도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며 “김 후보 지원유세 현장 분위기도 안 의원에게 매우 호의적”이라고 말했다.
당원 마음 못 얻는 한동훈
친한계는 ‘단일화’에 진저리를 친다. 한 친한계 인사는 “단일화는 효과가 없는데 우리 당이 할 게 없으니까 목매어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며 “윤 전 대통령과 부정선거에 선을 그으면서 자강하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가 요구하는 그런(계엄, 탄핵 청산) 것들은 하기 싫으니 단일화하는 시늉만 한다”며 “뭐하러 이 후보에게 매달려 그러느냐, ‘쪽팔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상일 평론가는 “기본적으로 친한의 어젠다인 ‘반계엄 반탄핵’을 받으라는 것이 클 것”이라고 했다.
전당대회 출마 의지가 강하다고 전해지는 한 전 대표의 당권 장악 가능성은 어떨까. 또 다른 친한계 인사는 한 전 대표의 당권 장악 가능성에 대해 “지금 정치인들 가운데 한 전 대표처럼 사람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 있나. 김 후보보다 인기가 많다”며 “지금 김 후보를 따라다니는 사람들이야 거의 다 자통당(자유통일당)이나 ‘윤 어게인’을 외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하지만 전당대회는 당원의 선거다. 한 전 대표에게 여전히 남은 ‘배신자’ 이미지가 족쇄인데, 한 전 대표가 김 후보 지원에 늦게 뛰어들었다는 것이 당원들에게는 이를 가중시켰다는 평이다. 친한계로 분류되는 한 국민의힘 의원은 “한 전 대표가 유세에 늦게 참여하는 바람에 당원들이 ‘밉게’ 생각한다”며 “유세를 다녀봐도 이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상병 평론가는 “한 전 대표는 여전히 친윤계에 대한 감정이 통제가 되어 보이지 않는다”며 “유세에서도 친윤을 저격하는 등 ‘정치 초보’라 맺고 끊는 것이 너무 확실한데 자꾸 이러면 김문수가 아닌 자신을 위한 선거운동이 돼 버린다”고 지적했다.
박 평론가는 “(한 전 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도 하고, 당 대표도 나오고, 대선도 나오는데 너무 가볍다”며 “현 지도부에 대한 불신이 너무 커서 한 전 대표가 유력하겠지만 안철수 의원이 나오면 판세가 알 수 없어진다”고 말했다. 앞선 의원도 “한 전 대표가 전당대회에 나오면 좋겠지만 이번에 만일 진다면 상처가 너무 크다”며 “당권도 당권이지만, 원내에 진입하는 방법부터 모색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친윤과 친한의 동상이몽이 정확히 어떻든, 국민의힘이 대선 이후 당권 경쟁에 들어서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