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석 국무총리가 배추농사에 2억원을 투자해 월 450만원을 수령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배추농사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월 450만원은 연간으로 환산하면 연봉 5400만원으로 대도시 여느 직장인 부럽지 않은 수입이다. 연간 수익률로는 무려 27%로, 2.5% 내외 시중은행 1년만기 정기예금 금리의 10배가 넘는 ‘기적의 수익률’이다. 한국인의 밥상에 매일 오르는 배추에 투자해 미국 유학까지 간 김민석 국무총리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나 농촌진흥청장에 더 어울린다는 우스갯소리도 회자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배추농사는 결코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국민의힘 주최로 열린 국민청문회장에 배추 18포기가 올라온 지난 6월 30일 찾아간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의 안반데기마을. 해발 1100m에 자리한 안반데기마을은 국내에서 민가가 있는 가장 높은 지역으로, 국내 최대 고랭지 여름배추 재배단지다. 낙석방지 그물망이 곳곳에 쳐진 산길을 굽이굽이 따라 안반데기마을로 올라가니 여름철 좀처럼 만나기 힘든 선선한 냉기가 온 몸을 휘감았다. 차에 표시된 수은주는 22도가량으로, 비슷한 시간 강릉 시내 수은주 34도와는 10도 이상 차이가 벌어졌다.
국내 최대 고랭지 여름배추밭
마을 한가운데 피덕령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독수리날개 모양의 배추밭이 광활하게 펼쳐진 안반데기마을은 여름배추 재배 준비로 여념이 없는 듯했다. 1960년대 화전민들이 일궜다는 급경사의 개간지에 펼쳐진 배추밭은 배추 모종을 심기 위해 가지런히 밭갈이를 마친 상태였다. 배추를 실제로 재배할 영농인력들은 1.5톤 트럭과 봉고 등을 타고 와 물과 농약 등을 댈 관로를 일일이 점검했다. 엄지손가락 크기만 한 배추모종을 트럭에 옮겨 담는 캄보디아 출신 외국인 농사인력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일부 밭에는 배추 모종들이 어른 팔꿈치 간격으로 대오를 맞춰 가지런히 심어져 있었다.
안반데기마을을 관할하는 강릉시 왕산면 대기4리의 조정래 이장에 따르면, 현재 마을에는 20여 가구가량이 남았는데, 전부 고랭지 배추 농사에 종사하고 있다.
이 일대 배추밭은 대부분 생산자단체인 관할 농협과 협약을 맺고 물량을 넘기거나 도매시장이나 김치공장 등지에 물건을 대는 산지유통인(수집상)과의 ‘포전(圃田)거래’를 통해 거래된다. 지주가 자기 토지에 배추 모종을 심은 뒤 산지유통인과 평당가로 모든 수확물(배추)을 한 번에 넘기는 ‘밭떼기 계약’을 맺고 실제 생산과 수확, 유통 등은 모두 산지유통인이 책임지는 방식이다.
사람과 차가 오가기 쉽지 않은 안반데기마을은 대략 평(3.3㎡)당 1만5000원 이상에 포전거래가가 형성돼 있다. 인근 평창 지역의 평당 1만3000~1만4000원보다 1000~2000원 더 높다. 대개 5톤 트럭 1대에 실을 수 있는 배추 물량에 해당하는 300평 배추밭 기준으로 치면, 450만원(1만5000원×300평)의 목돈을 거머쥘 수 있는 셈.
하지만 배추농사 농민들이 거머쥘 수 있는 목돈은 배추 생육기간에 해당하는 석 달에 한 번에 그친다. 안반데기만 해도 배추농사는 ‘단모작’으로 5월부터 밭갈기 등 농사준비에 착수해 6월에 모종을 심고 9~10월 추석 전 배추를 수확하는 구조다. 하늘 아래 첫 동네인 안반데기는 추석만 지나도 하늘에서 서리가 내리는 터라 겨울과 봄에는 농사를 짓지 않는다. 결국 목돈을 쥘 수 있는 것은 산지유통인과 ‘포전거래’ 계약을 체결하거나 수확한 배추를 농협 등에 납품하는 1년에 단 한 번.
날씨와 병충해로 인해 그해 작황이 좋지 않으면 농약과 비료 값조차 건지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배추농사에 투자해 매달 450만원을 수령했다는 말에 배추농민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이유다. “투자를 해서 돈을 다달이 얼마를 받고 하는 것은 사실 있을 수가 없는 얘기”(김대희 한국농촌지도자 평창군연합회장)라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이상고온으로 매년 재배면적 축소
최근 기상이변으로 인한 이상고온과 농촌인력 고령화는 더 큰 걸림돌이다. 과거 먹을 것이 없어 산으로 올라간 화전민들이 밭을 일군 강릉 안반데기마을을 비롯해 평창, 정선, 태백 등지가 고랭지 배추농사로 재미를 봤던 것은 전적으로 한여름에도 선선한 날씨 때문이다. 해발 600m 이상 고지대에 있는 이 일대에서는 선선한 기후로 한여름에도 아삭한 식감을 내는 배추를 전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공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이상고온으로 강원도 일대 고랭지배추 재배면적은 매년 축소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와 강원도 등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강원도 일대 고랭지배추 재배면적은 3774㏊로 2000년 7461㏊에 비해 사실상 반토막 난 상태다. 고랭지배추는 생육온도가 섭씨 15~20도인데, 지난해도 폭염으로 작황이 좋지 않았다. 때문인지 안반데기에서는 본격적인 배추농사를 앞두고 병충해 예방을 위해 뿌려대는 매캐한 농약 냄새가 곳곳에서 진동했다.
농촌고령화로 인해 영농인력 구하기도 하늘의 별따기다. 산지 급경사지에 위치해 과거에는 밭갈이에 소를 이용했다지만 지금은 포크레인을 이용한다. 안반데기마을만 해도 배추 재배는 강릉 시내에서 모집한 영농인력들이 담당하고 있다. 농사인력을 전문적으로 공급하는 강릉 시내 한 인력업체에 따르면, 영농인력들의 하루 일당은 건장한 남성 기준으로 17만원에 달한다. 게다가 시내와 거리가 멀어 10명 이상씩만 버스를 타고 움직인다고 했다.
조정래 이장은 “물량에 따라 시세를 잘 받아야 하는데, 적자를 보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대관령원예농협 채소사업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이상기온으로 배추가 많이 망가져 시세가 역대급이었다”며 “점점 기온이 올라서 고랭지 농사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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