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주석에게 선물한 원형쟁반을 들고 있는 김길수 장인.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시진핑 중국 주석에게 선물한 원형쟁반을 들고 있는 김길수 장인.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11월 1일 이재명 대통령은 경주 소노캄호텔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 앞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두 가지 선물을 건넸다. 하나는 최고급 본비자(本扉子) 나무로 제작한 바둑판, 다른 하나는 전통 공예품인 나전칠기 자개 원형쟁반이었다. 이튿날 공개된 공식 사진에서 공예계의 관심은 곧바로 나전칠기 쟁반에 쏠렸다. 대통령실 측은 나전칠기 쟁반에 대해 “나전칠기 자개 원형 쟁반은 오랜 역사를 가진 우리의 전통 나전기법으로 만든 것으로, 오래 이어져 온 한·중 간 우호 관계를 지속해서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길 희망한다는 마음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의 시각은 달랐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국가 원수에게 증정할 만한 수준의 작품이 맞는지, 작품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등의 의문이 잇따랐다. 50년 넘게 공예 분야에 몸담아온 이칠용 근대황실공예문화협회 회장은 “시진핑 주석에게 선물한 자개 원형쟁반은 관광상품 수준의 제품으로, 예술 작품이라고 부르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해당 작품에 대한 평가를 듣기 위해 11월 3일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김길수 장인을 찾았다. 그는 대한민국 명장 심사위원을 지냈고, ‘명인’ 칭호를 받은 업계에서 손꼽히는 장인이다. 김 장인은 뜻밖의 사실을 털어놓았다. 시진핑 주석에게 전달된 나전칠기 쟁반이 “나의 공장에서 제작된 제품”이라는 것이다. 그는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다가 알았다”며 “보는 순간 ‘저건 우리 공장 제품이네’ 싶었다”고 말했다. 국가 정상에게 전달된 선물을 만든 장인이라면 자부심을 드러낼 법도 했다. 그러나 김 장인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걸 작품이라고 하긴 좀 그렇습니다. 공산품이라서요.” 그가 말한 ‘공산품’은 업계에서 통용되는 표현으로, 관광기념품처럼 저렴하게 판매하기 위해 대량 생산한 제품을 뜻한다. 즉 대통령이 외국 정상에게 전달한 선물이 실제로는 장인의 예술 작품이 아니라 상업용 기념품이었다는 의미다.

김 장인은 오래전부터 ‘암수 호랑이 두 마리’가 등장하는 도안을 즐겨 사용해왔다. 이번에 시진핑 주석에게 전달된 쟁반이 그것이다. 특별전에 출품하기 위해 수 개월간 공을 들인 작품도 있고, 대량으로 제작해 납품한 상품도 있다. 겉보기에는 비슷해 보여도 예술성과 완성도는 전혀 다르다. 만나 보니 장인은 그저 묵묵히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는 전통 도안을 지키며 꾸준히 자신의 ‘호랑이 작품’을 만든다. “호랑이는 동물의 왕이고, 목단은 꽃의 왕입니다. 소나무는 절개, 대나무는 선비를 뜻하죠. 늘 산속의 호랑이를 그립니다. 백두산의 기상을 담는 거죠.” 그의 설명은 장인의 철학을 담고 있었지만, 작품 판매가 어려워 ‘공산품’ 대량 생산에 나서는 현실은 씁쓸했다. 그는 현실적 이유로 작품 활동보다 생계를 우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무리 정성 들여 만들어도 팔리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한 달 동안 재료비와 시간을 들여 완성했다가 안 팔리면, 그다음 달엔 뭘로 먹고삽니까. 결국 팔리는 걸 만들 수밖에 없죠.”

그의 말은 현실이었다. 김 장인의 공장은 주로 100개 단위로 상품을 납품한다. 이번에 이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에게 선물한 원형쟁반 역시 그런 납품 제품 중 하나였다. 김 장인은 “해당 제품의 납품가는 개당 9만원이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도매가 9만원짜리 상품이 시진핑 주석에게 전달된 것이다. 이 제품들은 제자들이 제작에 주로 참여하고, 장인은 품질을 관리하는 감독 역할을 맡는다. 그는 “작품에 사용하는 재료와 이런 상업용 제품의 재료는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라며 “이번 쟁반은 나무를 다듬은 것이 아니라 나무 가루를 압축해 만든 MDF 소재로, 일종의 합판”이라고 설명했다. 이 나전칠기 쟁반을 팔고 있는 서울 인사동 한 전통공예품 매장 관계자는 “그 제품이 시진핑 주석에게 선물된 바로 그 쟁반”이라며 “얼마 전 외교부 직원이 구입해 갔다”고 말했다. 매장 내 판매 가격은 20만원이었다.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에게 건넨 선물’이라는 유명세가 붙은 덕분에 최근 판매량이 늘었다는 것이 관계자 설명이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에게 나전칠기 자개 원형쟁반을 소개하는 이재명 대통령. photo 뉴스1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에게 나전칠기 자개 원형쟁반을 소개하는 이재명 대통령. photo 뉴스1

“다섯 발톱 ‘용’ 만들고 싶어”

그는 “시진핑 주석에게 선물한다는 걸 알고 만든다면 어떻게 만들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용이 들어가는 쟁반을 만들겠다”고 답했다. “발톱은 다섯 개로 해야죠. 네 개는 왕, 다섯 개는 황제를 상징하니까요. 바탕은 붉은색으로 하고, 크기는 33~36㎝쯤이 적당할 겁니다. 완성하는 데 한 달 정도 걸리겠죠.”

다시 “그렇다면 작품 의뢰비는 어느 정도가 적당하겠느냐”고 묻자 그는 “100만원만 받으면 좋겠습니다.” 한 달 동안 매달려야 하는 정교한 작업에 금액이 너무 적지 않느냐고 되묻자,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평생을 이 일만 해왔습니다. 그저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논란에 대해 “해당 작품은 외교부 의전 쪽에서 준비한 것으로, 나전칠기 분야의 저명한 명인의 작품”이라고 밝혔다. 그는 “작품은 검증 과정을 거쳐 선정됐으며, 외교부와 관계부처가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고 덧붙였다. 작품 가격 논란과 관련해서는 “정상 간 선물의 가격은 통상적으로 공개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바둑판이 메인 선물이었고, 나전칠기 쟁반은 함께 전달된 추가 선물”이라며 “두 작품이 조화를 이루도록 준비했고, 중국 측에서도 만족감을 표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이칠용 회장은 “국가 정상에게 증정하는 선물은 해당 분야 전문가들의 엄정한 검증을 거쳐야 하지만, 지금까지는 공예인에게 의견을 묻는 절차가 전혀 없었다”며 “무엇이,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장인들에게 평생의 노력을 인정받는 소중한 기회”라며 “전통문화를 살린다는 측면에서 보다 세심한 배려와 절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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