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한양대 생명과학과 최제민 교수(면역학)는 “한양대 교수가 될 때까지는 밀려 밀려 살았다”라고 말했다. ‘밀려 밀려 살았는데 교수가 되었다’는 그의 말에 어리둥절했다. 지난 3월 25일 만난 최 교수는 연세대 생명공학과 96학번이다. 대학 입시 합격자 발표 명단에는 이름이 없었고 추가 합격으로 들어갔다. 재수까지 했는데, 추가 합격을 하니 속이 편치 않았다. 대학 4년간 똘똘하게 보이는 동기 사이에서 조용히 지냈다.

 

‘밀려 밀려 교수가 되었다’

공부 잘하는 학과 동기 친구들은 의과대학과 치과대학 편입을 하기도 했다. 대학원 갈 때도 해외 유학을 가거나, 혹은 더 좋은 환경의 국내 대학을 선호했다. 대체로 모험적으로 도전하지 않고 그냥 흐름에 따라가는 친구들이 연세대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가 그런 경우였다. 양융 교수의 ‘식품화학연구실’ 소속으로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양 교수 실험실에 들어간 것도 밀려서였다. 생명공학과 3학년 때 실험실 실습 수업이 있다. 실험실 수업에  관심이 없어서 신청을 하지 않았다. 과 대표 동기가 대신 실험실 지원 신청서를 써줬다. 그 결과 배정된 곳이 식품화학연구실이었다.

학부생으로 실험실에 있을 때 대학원 선배 한 명이 ‘졸업하면 뭐하냐’고 물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잘 모르겠다”고 했다. 선배는 “잘 모르기는마, 우리 실험실 와야지”라고 했다. 밀려서 대학원 석사 과정을 시작했다. 석사 때 제주도 유자, 감귤류 껍질을 활용하는 연구를 했다. 항산화 연구, 노화 연구였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떤 일에 대한 ‘재미’를 발견했다. 최 교수는 “설레고 밤늦게까지 일을 해도 재밌고 주말이든 뭐든 그런 에너지를 끌어낼 수 있었던 게 석사 과정이었다”라고 말했다.

석사 마치고 박사과정에 들어가겠다고 지도교수에게 말했다. 양 교수는 “나 은퇴하는데”라고 했다. 최제민 학생은 지도교수가 언제 퇴임하는지도 모르고 살았던 거다. 지도교수의 말을 듣고서 박사 할 생각을 접고 취업하기로 했다. 두산그룹 공채에 회장 면접까지 봤다.

그때 연세대 생명공학과에 부임한 지 오래되지 않은 젊은 이상규 교수가 있었는데 어느 날 최제민 학생을 불렀다. “졸업하고 뭐하냐”라고 물어 “박사 하고 싶었는데, 지도교수님이 은퇴한다고 해서 못 하게 됐다”라고 답했다. 이상규 교수는 “그러지 말고,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된다”라며 자기 연구실에 들어오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최제민 학생은 “결혼도 해야 할 것 같고, 경제적인 부분도 고민된다”라고 하자 이 교수는 “그런 거 걱정하지 말라, 다 해결해 주겠다”라고 말했다. 최제민 학생은 “고민해보고 내일 다시 오겠다”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문을 닫고 나오자마자 생각이 바뀌었다. 박사과정으로 연구를 더 하고 싶었다. 결국 이상규 교수 밑에서 면역학 분야 연구를 하게 되었다.

 

예일대 면역학자 보스웰 교수와의 만남

박사학위를 마치고 예일대학교로 박사후연구원으로 갔다. 이때도 밀려서 예일대학교로 갔다. 당초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프란시스코캠퍼스(UCSF)로 가려고 했는데 이상규 교수가 예일대학교로 가지 않겠느냐라고 했다. 이상규 교수는 예일대학교에서 면역학으로 박사학위를 했다. 예일대학교는 면역학 분야에서 세계 최정상이다. 면역학과를 만든 미국 내 최초의 대학이기도 하다. 결국 미국 동부 커네티컷주에 있는 뉴헤이븐의 예일대학교로 떠났다. 예일대의 면역학자 알프레드 보스웰 교수 실험실로 갔다. 그는 보스웰 교수에게 “죄송하지만 나는 1년만 있겠다”라고 말했다. 뉴헤이븐에서 만나는 주위 동료들에게도 “1년만 있을 예정”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렇게 한 건 스스로 다짐을 위해서였다.

시간이 지나 하버드대학교 T세포 면역학 분야 교수의 실험실로 옮기려고 했다. 보스턴에 가서 인터뷰도 했지만 연락이 없었다. 재촉하는 이메일을 몇 번 보냈다. 비자 문제로 더 이상 답을 기다릴 수 없어 보스웰 교수에게 “그냥 더 있겠다”라고 말했다. 보스웰 교수는 별 말 없이 “그래라”라고 했다. 그런데 다음날, 하버드대학교 교수로부터 “보스턴으로 옮겨오라”고 연락이 왔다. 가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보스웰 교수에게 하루 만에 “나 보스턴으로 가겠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예일대학교에서 3년을 보냈다. 좋은 경험들을 많이 했다. 첫 아이도 태어나고 행복하게 잘 지냈다. 평화로운 어느 날 한양대학교에서 이메일이 왔다. 지금은 그의 연구실 바로 옆방에 있는 당시 생명과학과 학과장이던 진언선 교수였다. 한양대학교 생명과학과에서 면역학 전공자를 찾고 있다고 했다. 이력서를 달라고 해서 보냈더니, 곧 인터뷰를 하러 한국에 오라고 했다. 어리둥절하게도 2010년 3월부터 밀려 밀려 한양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로 일하게 되었다.

최 교수는 “내게 오는 기회에 순응해왔던 것 같다. 나의 경우를 학생들에게 면담 때 들려준다”라고 말했다. “미래에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고민하는 학생들이 있다. 지금 이렇게 있어도 되는지 몰라 불안해한다. 그때 내 얘기를 들려준다. ‘나는 뭘 하고 싶다는 생각을 스스로 먼저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지금 여기까지 와 있다. 여러분이 한양대학교 들어올 정도로 훌륭한 학생들이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해도 잘할 수 있다. 지금 당장 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해도, 나중에 분명히 그런 시기가 올 테니 걱정하지 말고, 지금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라. 그러면 분명히 기회가 올 거다.’ 이렇게 얘기해준다.”

최 교수는 박사 때도 남들처럼 좋은 학술지에 논문을 쓰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박사 때인 2006년 4월 학술지 ‘네이처메디슨’에 논문을 썼다. 네이처메디슨은 의학 분야에서 최상위 학술지다. 사람에 곧 쓰일 법한 신약이 될 수도 있는 물질에 관한 연구가 주로 실린다고 최 교수가 설명해줬다.

네이처메디슨에 논문이 나왔을 때 최제민 박사는 이상하리만큼 아무렇지도 않았다. 주변에서는 난리가 났다. 언론에 기사도 많이 나왔다. 생명공학과의 연구교수 한 명이 이런 말을 했던 게 기억난다. “최제민 박사는 앞으로 다른 사람과는 다른 길을 가게 될 거야.” 한국에서 네이처메디슨에 논문을 쓰는 건 쉽지 않을 때였다.

최제민 교수의 연구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다. 연구 주제는 다양하게 있으나 굵게 나누면 두 가지다. 첫 번째는 CTLA-4이고, 두 번째는 방관자T세포다. CTLA-4는 대학원 박사 때부터 했던 연구인데 지금도 계속한다. 방관자T세포는 한양대학교에서 시작한 주제다. CTLA-4는 면역세포인 T세포의 활성화를 억제하는 단백질이다. T세포의 세포막에 붙어 있다. 면역 관문(immune checkpoint)이라고 불린다. CTLA-4말고 다른 면역관문이 있는데 PD-1이다. CTLA-4와 PD-1 연구를 통해 면역관문억제제를 개발하여 면역항암제의 원리를 발견한 연구자들은 2018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바 있다. 짐 앨리슨(미국 텍사스대학교 MD앤더슨암센터) 교수는 CTLA-4 항체를 통해 항암면역치료를 가능케 했다. 혼조 다스쿠(일본 교토대학교) 교수는 PD-1을 발견하고, PD-1 항체를 통해 항암면역이 활성화된다는 것을 보여준 바 있다. CTLA-4와 PD-1의 원래 역할은 T세포 기능을 떨어뜨리는데, 이러한 분자들의 기능을 막으면 T세포들이 민감하게 활성화된다. 그래서 면역력이 강화된다. 이런 개념으로 약을 만든 게 요즘 주목받는 ‘면역항암제’다.

2021년 7월 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 표지 이미지. 최제민 교수 그룹 연구가 표지 논문으로 나왔다.
2021년 7월 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 표지 이미지. 최제민 교수 그룹 연구가 표지 논문으로 나왔다.

신약개발 회사 ‘제뮨’ 창업

최 교수가 박사과정 때 네이처메디슨에 발표한 연구는 CTLA-4의 신호전달을 증가시켜, 천식과 같은 염증질환을 치료를 할 수 있음을 보인 거다. CTLA-4를 통해 억제 신호를 보내면 T세포들이 좀 진정된다. 과도하게 활성화되는 걸 조절할 수 있다. 그러면 천식 증상이 완화된다. 당시는 효과적인 천식 치료제가 아직 없었기에 천식 연구가 중요했다.

한양대학교에 부임한 뒤에는 다시 박사과정 때 연구를 꺼내어 CTLA-4연구를 했는데, 자가면역질환 쪽으로 연구했다. 자가면역질환은 T세포의 면역이 과도해서, 자기 몸을 공격해서 생긴다. 면역계가 무릎 관절을 공격하는 게 류머티즘성관절염이고, 중추신경을 공격하면 다발성 경화증이다. 장에 염증을 일으키는 크론병도 자가면역질환이다. 최 교수는 이들 자가면역질환에 대한 치료제 개발 방향으로 연구를 확장했다. 최 교수는 “CTLA-4를 갖고 어떻게 하면 약을 만들 수 있을까를 연구했다. 정부 과제도 신약 개발 과제를 수주했고, 신약 관련 창업도 준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회사 이름과 로고까지 만들어놨고, 3월에 창업을 하려고 했으나 1~2개월 늦어질 것 같다고 했다. 회사 이름은 제뮨(Jemmune)이다. ‘Jemmune’이라는 로고 디자인이 그려진 종이가 연구실 책장 위에 놓여 있었다.

“T세포 중에 조절T세포라는 게 있다. 과도한 면역을 억제하는 일을 조절T세포가 한다. 면역을 너무 과도하게 하지 말라고 조절한다. 조절T세포가 없으면 면역이 너무 과도해진다. 자가면역질환의 경우 조절T세포가 있어야 면역반응을 억제할 수 있다. 그러니 조절T세포를 많이 만들 수 있으면 자가면역질환을 통제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조절T세포는 CTLA-4를 통해 작용한다. 내 목표는 CTLA-4 신호전달 조절을 통해 조절T세포를  많이 만들어, 자가면역질환을 통제할 수 있게 하는 약을 만들고 환자를 치료해보자는 것이다.”

‘Jemmune’ 로고 디자인 옆에는 논문 표지 이미지가 놓여 있다. 2021년 7월 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 표지다. 이 학술지 표지 논문으로 최 교수의 CTLA-4 관련 연구가 실렸다. 최 교수가 그걸 손으로 가리켰다. “천사처럼 보이는 세포가 저기에 보이지 않느냐? 날개가 달려 있고, 노란색으로 표현돼 있다. 오른쪽 아래에는 악마로 형상화한 세포를 보라색으로 그려놓았다. 그림의 배경은 뇌다. 중추신경계에 자가면역질환인 다발성 경화증을 일으키는 데 나쁜 역할을 하는 세포가 있다. 그걸 악마라고 해서 보라색으로 칠했다. 과학적인 표현은 아니고, 조금 이해하기 쉽게 그려놓은 거다. 연한 노란색으로 표현한 약물이 보라색 세포에 들어가면, 나쁜 세포가 천사로 바뀐다. 다발성 경화증을 치료할 수 있는 후보 물질이 된다.”

최 교수 설명이 건너뛰면서 순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최 교수가 보여주는 그림을 보니, CTLA-4가 T세포 막에 Y자로 박혀 있었다. CTLA-4의 윗부분은 세포 밖에, 아래쪽은 세포막 안쪽으로 드러나 있다. 세포막 안쪽, 다시 말하면 세포질에 있는 CTLA-4 부분(도메인)이 면역조절에 중요하다. 이 도메인은 사이토플라스믹(cytoplasmic)이라고 한다. 사이토플라스믹 도메인이 앞의 논문 표지에 ‘노란색 약물’로 표현됐다.

일반적인 T세포는 어떤 자극을 받으면 CTLA-4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다시 없애버린다. 조절T세포는 CTLA-4 단백질을 만들어 세포질에 상시 갖고 있다. 조절T세포 기능에서 CTLA-4는 아주 중요하다. CTLA-4 중에서도 신호전달을 담당하는 사이토플라스믹 도메인 부분이 중요하다는 걸 최 교수 그룹은 알았다. CTLA-4 단백질의 도메인들 중에서 어떤 게 중요한 기능을 하는가를 확인하는 작업을 일일이 했고, T세포를 조절T세포로 바꾸는 신호전달에 관여하는 건 사이토플라스믹 도메인이라는 걸 알아냈다. 

사이토플라스믹 도메인을 T세포 내부로 전달하면 내부에서 FOXP3라는 전사인자(단백질)가 만들어진다. FOXP3가 발현됐다는 건 T세포(Th17세포)가 조절T세포로 성격이 바뀌었다는 걸 말한다. 즉 FOXP3가 있으면 “나는 조절T세포입니다”라고 말하는 생체 표식이 된다. 나쁜 역할을 하는 Th17세포는 좀 줄이고, 좋은 역할을 하는 조절T세포는 늘리면 다발성 경화증과 같은 중추신경계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 이게 2021년 어드밴스드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 내용이다.

그리고 사이토플라스믹 도메인 펩타이드를 T세포에 잘 들어가도록 하는 약물전달 시스템 개발 연구가 이에 앞서 있었다. 이 연구는 2015년에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했다. 최 교수는 “조절T세포는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면역학 분야”라고 말했다. 조절T세포는 인체 면역의 자기관용(self-tolerance)과 항상성 유지에 매우 중요하다는 걸 알아냈으나, 이걸로 약을 만들어낸 성과는 아직 없다. 최 교수는 “실제 사람에게 쓸 수 있는 약이 나오면 조절T세포를 발견한 사람과 약을 만든 사람은 노벨상을 받을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조절T세포로 자가면역질환 치료

조절T세포를 약으로 만든 성과는 왜 아직 없는 것일까? 면역학자들은 세포치료제 방식으로 조절T세포 약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을 해왔다.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프란시스코캠퍼스의 제프리 블루스톤 교수가 그중 한 명이다. 블루스톤은 자가면역질환 연구자이고, 자가면역질환인 제1형 당뇨병을 대상으로 조절T세포 치료제의 임상시험 연구를 이끌었다. 블루스톤 교수가 바로 최제민 교수가 연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예일대학교로 ‘밀려 밀려’ 가기 전에 찾아가려고 했던 바로 UCSF 교수다. 그리고 세포치료제 방식이란, 피를 뽑아내 그걸 갖고 조절T세포를 몸 밖에서 많이 만들고, 주사로 다시 몸에 찔러 넣는 걸 가리킨다. 블루스톤의 접근은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쥐 실험에서는 완벽히 작동했으나, 사람 몸에서는 효과가 없었다. ‘천사’를 찔러 넣었으나 그게 몸 안에 들어가면 ‘악마’로 변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악마’로 바뀌지 않도록 보완하는 전략으로 임상 연구를 다시 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반면 최제민 교수는 몸 안에 많이 있는 T세포를 이용해 조절T세포를 많이 만들어내자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몸에 수없이 많은 T세포에 일정한 자극을 주면 조절T세포로 바뀐다. 기초연구는 끝났다. 신약으로 만들어내려 한다. 신약 개발까지는 수없이 많은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가 만들고 있는 기업 ‘제뮨’이 그런 일의 초기 단계 작업을 하게 될 것이다. 최 교수는 “누가 최초의 조절T세포로 약을 만들어낼지 모르나, 성공한다면 그래서 인간의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한다면 조절T세포를 발견한 사람들과 함께 노벨상을 받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최 교수 말을 듣고 “그러면 노벨상에 대한 기대가 크겠다”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나는 그런 목적성은 한 번도 가진 적이 없고, 누군가 노벨상을 받게 될 때에 그 연구주제의 한 부분 정도라도 기여하고 싶다”라고 답했다.

최제민 교수의 두 번째 연구 주제는 ‘방관자 T세포’다.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할 때다. 옆 실험실은 IL-18 과발현 생쥐 모델을 갖고 호흡기 질환인 만성 폐쇄성 폐질환을 연구하고 있었다. IL-18은 신호전달물질인 사이토카인의 일종이다. 사이토카인은 세포와 세포가 서로 소통하는 메시지를 담은 물질이다. 면역학 분야에서 많이 등장하는데, 특정 사이토카인은 T세포를 어떤 T세포로 분화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옆 실험실 연구자와 너스레를 떨며 얘기하고 있었는데, 그가 동물실에 가야 한다고 했다. 마침 최제민 박사는 바쁘지 않았다. 그를 따라갔다. IL-18을 과발현시킨 생쥐는 호흡기 내과에서 폐염증 반응 연구를 위해 쓰고 있었다. 생쥐를 기도 부분만 열어 폐를 꺼내고 그런 뒤 쥐는 폐기했다. 최제민 박사는 면역학자이니, 면역기관인 비장이나 림프절을 봐야 한다. 그래서 좀 열어봐도 되냐고 했고, 열어보니 비장과 림프절이 비대해 있었다. 이는 T세포가 완전히 활성화되어 있다는 걸 말하는 신호다. 버리는 생쥐들을 달라고 했다. 그걸 갖고 연구했다.

연구는 2012년 호흡기의학분야 최상위 학술지 ‘미국 호흡기학회지’에 보고했다. 또 이를 기반으로 한양대학교에 와서 더 깊게 들어가, 방관자 T세포 연구를 진행하여 자가면역질환의 새로운 기전을 제시하는 성과를 내놨다. 연구 결과는 2019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보고하였다. 최 교수가 연구 내용을 설명해줬고, 이 또한 흥미로웠다. 하지만 지면 사정상 다 옮기지 못한다.

최 교수에게 “운이 좋아서 좋은 연구를 하셨다”라고 말했더니 그는 “운은 다른 사람에게는 어쩌다 다가오는 선물과도 같은 것일 수 있으나,  하루하루 진실하고 성실하게 열심히 하고 있으면 여러 기회들이 스쳐 지나가버리지 않고, 나에게 머물러 오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