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연수차 일본에 와서 장기 체류를 하다 보니 외식을 할 기회가 많다. 한 달 넘게 부지런히 이 집 저 집을 다니다 보니 가장 대중적인 종류로 소바와 우동, 라면, 덮밥, 카레 그리고 도시락집, 5가지가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격도 우리나라 돈으로 4000~5000원이면 충분하고 심지어 3000원대 메뉴도 있다. 6000~7000원이면 내용물이 꽤 그럴듯해지고 만원이 넘는 것은 아주 드물다. 대부분 메뉴가 우리나라보다 30% 정도 싸다. 세계적으로 물가가 결코 싸지 않은 도쿄가 이 정도이면 우리나라 외식비가 얼마나 비싼지 알 수 있다. 어쨌든 앞서 열거한 5가지 메뉴는 일본을 대표하는 메뉴이기도 하다. 일본 여행을 통해, 또는 한국에서도 충분히 접한 음식들이지만 자세히 알아두면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다.

 

1 우동과 소바

다누키 우동
다누키 우동
가케 소바
가케 소바

일본 대표 면 요리에는 우동(うどん)과 소바(そば)가 있다. 밀가루로 만든 우동 면이 두껍고 넓은 모양에 농밀한 식감을 가지고 있다면, 메밀가루로 만든 소바는 어두운 색깔에 가늘고 담백하면서 약간 거친 식감을 가지고 있다. 재료는 다르지만 조리법은 비슷하다. 상호에는 소바를 표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우동을 같이 취급한다고 보면 된다. 가장 대표적인 메뉴 몇 가지를 소개한다.

가케(掛け)우동과 가케소바는 삶은 면에 특별히 다른 재료를 넣지 않고 국물만 부은 것으로 가장 단순하고 기본적인 형태의 면 요리이다. 대부분 3000원대로 가격도 싸다. 자루(ざる)우동과 자루소바는 ‘대나무로 만든 발’을 의미하는 자루에 찬 면을 내어놓고 쯔유 소스에 찍어 먹는 우동이나 소바를 말한다. 가케우동과 가케소바가 뜨거운 면 요리의 대표라면 자루우동과 자루소바는 차가운 면 요리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야키(燒き)우동과 야키소바는 면을 고기와 야채 등의 재료와 함께 볶아 간장과 조미료로 맛을 낸 것으로 일본 특유의 볶음 면 요리다. 길거리 음식으로도 많이 만날 수 있다. 덴푸라(天ぷら)우동과 덴푸라 소바는 우동과 소바에 덴푸라를 넣은 것으로 새우 덴푸라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 기츠네(きつね)우동과 기츠네 소바는 유부 우동과 유부 소바에 해당한다. 기츠네는 일본말로 ‘여우’라는 뜻이다. 일본의 민간 설화 중 여우가 유부를 좋아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유부 껍질이 여우 털과 비슷한 느낌이어서 이름이 지어졌다는 설도 있다.

다누키(たぬき) 우동과 다누키 소바에서 다누키는 ‘너구리’라는 뜻이다. 일본에서 너구리는 조화를 부리고 사람을 잘 속이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우동과 소바에 이런 이름이 붙은 데에는 재미있는 유래가 있다. 덴푸라를 만들 때 튀김 찌꺼기를 덴카스(天かす)라고 부른다. 음식점에서 덴푸라 우동이나 소바라고 팔면서 실제는 따로 건져 둔 덴카스를 넣는 곳이 생기면서 사람을 속였다는 의미로 ‘다누키’라는 말을 붙인 것이다. 지금은 바삭하게 씹히는 식감 덕분에 오히려 별미 요리로 둔갑했다. 야마가케(山かけ) 우동과 야마가케 소바는 면 위에 마즙을 쳐서 먹는 우동이나 소바를 말한다. 마즙 특유의 부드럽고 농밀한 식감이 면과 어울리며 품격 있는 맛을 선사해 준다. 쓰키미 우동과 쓰키미 소바도 있다. 쓰키미는 일본어로 달구경이란 의미다. 면 위에 날달걀을 깨서 넣는데, 노른자는 보름달을 흰자는 구름 같다고 해서 ‘달구경’이란 이름이 붙었다.

 

2 라멘

일본 라멘에는 육수와 소스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소스를 기준으로 기본적인 3가지를 들자면 소금 베이스의 시오라멘(しおラ-めん), 간장 베이스의 쇼유라멘(しょうゆラ-めん), 그리고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처음 시작된 미소 베이스의 미소라멘(みそラ-めん)이 있다. 이 밖에 규슈의 후쿠오카 특산인 돈코츠라멘(とんこつラ-めん)도 유명하다. 돼지뼈를 푹 삶은 국물을 사용하는 돈코츠라멘은 1980~1990년대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일본 라면 육수에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요즘엔 미소라멘, 쇼유라멘, 시오라멘도 돼지뼈를 우려낸 육수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돼지뼈와 쌍벽은 닭뼈 육수이다. 흔히 도쿄식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라멘 육수의 원조 격이다. 비록 돈코츠 육수에 선두 자리는 빼앗겼지만 여전히 닭뼈 육수만을 고집하는 집도 많고 닭뼈에 돼지뼈를 섞어 사용하기도 한다.

일본 라멘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특별한 고명(具)이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이 멘마와 차슈다. 둘 다 중국요리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워낙 인기가 높다 보니 조연의 역할을 떠나 그 자체로 술안주 등의 독립 제품으로 팔릴 정도가 되었다. 멘마(メンマ)는 죽순을 데쳐서 발효시킨 후에 건조하거나 염장한 것을 말한다. 특유의 꼬릿한 맛 때문에 호불호가 갈린다. 차슈(チャーシュー)는 돼지 등심이나 삼겹살을 전용 양념장에 며칠 재운 뒤 갈고리에 꿰어 오븐 등에 익혀서 만든 중국의 고기 요리를 말한다. 우리나라 냉면의 편육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3 돈부리모노(丼物)

돈부리의 정(丼)이라는 한자는 사전에 井(정)의 본자(本字)라고 되어 있으며 뜻과 발음도 같다. 현재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는 쓰지 않는 단어인데 유독 일본에서는 돈부리라는 음식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정식으로는 돈부리모노(丼物·どんぶりもの)라고 불리는 이 음식은 일본식 덮밥을 말한다. 밥 위에 얹는 재료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가장 유명하고 보편적인 것이 규동(牛丼·ぎゅうどん)이다. 밥 위에 우리나라 불고기처럼 양념한 소고기를 얹은 덮밥인데 이런 합성어에서는 ‘丼’ 자가 그냥 ‘동’으로 발음된다. 같은 이치로 덴푸라(てんぷら)를 얹으면 덴동(てんどん)이 되고 장어(우나기·うなぎ)를 얹으면 우나동(うなどん)이 된다. 다만 돈카츠(とんカツ)를 얹은 경우에는 발음의 편의상 돈동이 아니라 가츠동(カツどん)이라고 부른다. 규동과 더불어 닭고기와 달걀을 같이 넣은 오야코동이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데, 어떤 식당에서는 ‘반반 메뉴’를 파는 곳도 있다. K푸드의 인기를 업고 김치갈비동(キムカル丼)도 인기를 끌고 있다. 돈부리는 서민들의 한끼 식사로 인기가 많다. 요시노야(吉野家), 마츠야(松屋) 같은 전문 체인점들을 거리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4 카레(カレ-)

카레라고 하면 카레라이스를 의미한다. 인도 커리가 19세기 말 영국 해군을 통해 들어와 커리 수프와 일본식 덮밥을 결합한 형태로 탄생한 것이 카레라이스다. 완전히 일본 음식으로 토착화됐다. 2015년 전일본카레공업협동조합의 조사에 의하면 일본 국민 1인당 연 79회 카레 음식을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즘 유행하는 카레라이스는 검은 카레(黑カレ-)다. 일종의 블랙마케팅으로 밀가루나 스파이스들을 불판에 로스팅하여 검게 만들거나 오징어먹물, 코코아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후쿠진즈케라는 쓰케모노(절임식품)를 곁들임 반찬으로 내놓는다. 소금에 절인 무, 오이, 가지 등 7가지 채소를 잘게 썰어 간장과 설탕, 맛술에 담근 것으로 복을 불러온다고 해서 칠복신(七福神)에 빗대 후쿠진즈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5 벤토(弁当)

고 이어령 교수는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대표하는 것 중 하나로 벤토(도시락)를 소개했다. 벤토는 일본을 상징하는 대표적 식문화의 하나로 내용물에 따라 값도 천차만별이어서 3000원대의 싼 벤토에서부터 만원이 넘는 것도 있다. 그중 일본적인 요소를 모두 갖춘 장르로 에키벤이라는 것이 있다. 에키벤은 역에서 파는 벤토를 의미하는데 지역의 특성에 맞추어 종류도 엄청날 뿐 아니라 가격, 디자인도 다양하다. 이것을 먹기 위해 기차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있을 정도이며 관광 안내서에 전국의 도시락 지도까지 있다. 일본에서 판매되고 있는 에키벤은 수천 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3대 진미 - 우니, 가라스미, 고노와타… 전 세계 미식가들이 예찬한 맛

우니

우니(うに·성게알)의 맛과 향은 정말 매력적이어서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유럽, 남미 등에서도 미식가들이 손꼽는 먹거리의 하나이다. 우니를 흔히 성게알이라고 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알이 아니라 성게마다 5개씩 있는 생식샘을 일컫는다. 일본어로는 발음은 동일하지만 성게 자체를 가리킬 때는 한자로 해담(海胆)을, 성게알은 운단(雲丹)으로 표현한다. 식용으로 활용하는 우니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보라성게(무라사키 우니·むらさきうに)와 말똥성게(馬ふんうに)이다. 보라성게알은 비교적 알이 크고 수분 함량이 많으며 겨자처럼 옅은 노란색을 띤다. 맛은 아이스크림같이 부드러우면서 과즙 같은 단맛과 함께 짭조름한 바다향을 풍긴다. 프랑스인들은 그 부드러운 농밀함을 푸아그라에 비교하기도 한다. 말똥성게알은 알 크기가 비교적 작고 단단하며 주황색을 띤다. 맛은 약간 쌉싸름하면서 고소한 느낌이 난다. 우니는 몸통에서 꺼내자마자 조금씩 녹기 시작하기 때문에 멀리 운송할 때는 명반(백반)을 사용하거나 바닷물과 비슷한 농도의 소금물로 염장을 한다. 홋카이도산 우니를 단연 최고로 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기타 무라사키우니(북방보라성게)와 에조 바훈우니를 최고로 치고 있고 값도 비싸다. 최근에는 칠레, 러시아 등지에서 수입하여 비교적 싼 값에 공급하기도 한다.  

 

가라스미

가라스미(からすみ·숭어 어란)는 ‘당나라의 벼루(唐墨)’라는 뜻인데 완성된 어란의 모양이 당시 당나라에서 수입된 벼루와 닮은 데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의 건어물 상점에서는 동양 사람들을 보면 ‘가라스미’를 외치며 호객행위를 할 정도로 상용어가 되었다. 가라스미는 다양한 생선의 알을 사용할 수 있지만 일본에서는 예로부터 숭어의 어란을 가장 높게 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숭어 어란이 유명하다. 소금 절임만을 하는 일본에 비해 우리는 소금물 처리 후 간장을 희석한 국물로 저장하고 매일 3~4차례씩 참기름을 어란에 칠하면서 말린다. 대만의 우위즈(烏魚子), 이탈리아의 보타르가(Bottarga)도 각국을 대표하는 유명한 어란이다. 가라스미는 식감이 마치 경질치즈를 씹는 것처럼 부드럽고 깊이가 있는데 얇게 썰어 혀로 천천히 음미하면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비싼 것이 흠이라 작게 미니어처 버전으로 만들어 팔기도 하고 가라스미 맛을 흉내 낸 유사품을 팔기도 한다.  

 

고노와타

고노와타(このわた·해삼창자)는 해삼창자를 깨끗이 씻은 뒤 물기를 빼고 소금으로 염장한 뒤 젓갈로 만든 것이다. 일본어로 해삼을 나마코(なまこ)라고 부르는데 이것이 준말로 고(こ)가 되었고 우리말의 ‘의’에 해당하는 ‘노(の’)와 내장을 뜻하는 ‘와타(わた)’가 붙어 고노와타가 된 것이다. 고노와타는 해삼내장 특유의 콤콤하면서도 깊은 풍미에 해산물의 짭짤한 맛이 잘 어우러져 가히 진미라는 명칭에 손색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고노와타들은 대부분 중국산이다. 그냥 술안주로 먹어도 좋고 흰 쌀밥에 얹어 먹으면 별미다. 흰살 생선과 맛이 잘 어울리기 때문에 광어 같은 생선과 함께 먹으면 특유의 향과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일본에서는 고노와타를 이용한 다양한 요리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오징어 또는 단새우에 고노와타를 섞은 고노와타아에(このわた和え), 차완무시에 고노와타를 섞은 고노와타무시(このわた蒸し), 미소에 고노와타를 섞은 고노와타지루(このわた汁)가 있는가 하면 고노와타를 재료로 한 술도 있다. 식당에서는 해삼과 고노와타를 같이 내면서 ‘고노와타오야코(このわた親子和え)’라고 부른다. 오야코는 부모와 자식이라는 의미이다.

 

도쿄= 글·사진 김원곤 서울대 흉부외과 명예교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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