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월 5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월 5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때 한국갤럽 조사에서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59%에서 48%로 11%포인트 급락했다. 반면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부정 평가는 28%에서 40%로 치솟았다. 정당 지지율도 여당이던 새누리당이 45%에서 39%로 하락하며 요동쳤다.

하지만 최근 ‘이태원 참사’ 이후 대통령·정당 지지율 흐름은 8년 전과 달랐다. 갤럽 조사(11월 1~3일)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지율이 29%로 일주일 전 30%에서 1%포인트 하락에 그쳤다. 케이스탯·엠브레인·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이 함께 격주로 실시하는 전국지표조사(NBS·10월 31일~11월 2일)에선 이태원 참사 전후로 윤 대통령 지지율이 31%에서 변화가 없었다. 한길리서치·쿠키뉴스 조사(11월 5~7일)에선 윤 대통령 지지율이 33.6%로 지난달 조사보다 2.3%포인트 올랐다.

정당 지지율도 변화가 크지 않았다. 갤럽 조사에서 국민의힘(33→32%)과 민주당(35→34%)은 각각 1%포인트씩 하락했다. NBS 조사도 국민의힘(35→32%)과 민주당(33→31%)의 지지율 하락 폭은 2~3%포인트였다. 한길리서치 조사에서도 국민의힘(34.3→31.8%)과 민주당(34.7→33.9%) 모두 한 달 전 조사에 비해 지지율이 떨어졌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대형 참사가 정부·여당에 악재(惡材)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번 사고가 일방적으로 여권에 책임이 있다는 여론이 아직까지는 지배적이지 않다”며 “전 국민이 생중계로 구조 실패 과정을 지켜봤던 세월호 참사와는 분위기가 다른 것 같다”고 했다.

여야(與野)의 지지율이 모두 하락하면서 무당층(無黨層)과 중도층이 늘어난 것을 주목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갤럽 조사에선 이태원 참사 전후로 지지 정당이 없는 무당층이 26%에서 29%로 증가했고 중도층도 35%로 올해 들어 최고 수준으로 늘어났다. NBS 조사에서도 무당층(26→30%)과 중도층(33→35%)의 증가가 뚜렷했다. 대형 사고 직후 중도·무당층이 늘어난 것은 세월호 참사 때에도 비슷했다. 당시 갤럽 조사에서 여당인 새누리당(45→39%)뿐만 아니라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25→24%)도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무당층이 25%에서 34%로 급증했다. 502명의 생명을 앗아간 19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 이후에도 당시 김영삼 대통령 지지율(45→33%)은 크게 하락했지만, 여당이던 민자당(28→25%)과 야당이던 민주당(25→20%) 모두 지지율이 하락하고 무당층(23→30%)만 늘었다.

정국 주도권 경쟁의 중대 분수령

전문가들은 “대형 사고 직후 여야 모두 지지율이 떨어지고 중도·무당층이 늘어나는 현상이 이번에도 나타났다”며 “사고 원인과 책임 규명 과정을 중도·무당층이 신중하게 관망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민심은 앞으로 정부·여당의 사태 수습과 이 사건에 대한 야당의 정치적 행보를 지켜보고 있는 중도·무당층이 어느 쪽으로 쏠리느냐에 따라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여야의 대응에 따라 정국(政局) 주도권 경쟁에 중대한 ‘여론의 분수령’이 될 것이란 얘기다.

갤럽 자료에 따르면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직후 박근혜 대통령은 지지율이 40%대로 하락했지만 그때까지는 국정 운영에 대한 긍정 평가가 부정 평가를 앞섰다. 하지만 지지율이 한 단계 더 떨어지면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서는 ‘데스크로스’ 현상이 취임 후 처음 일어난 것은 두 달이 지난 6월 중순이었다. 세월호 참사 책임을 지고 사퇴 의사를 밝힌 정홍원 총리 후임으로 내정됐던 안대희 총리 후보자와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연이은 낙마가 결정타였다.

허진재 한국갤럽 이사는 “대형 참사 이후 사고의 원인과 책임 규명뿐만 아니라 수습 과정에서 뒤따르는 공직자 인사(人事)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면 타격이 클 수 있다는 사례”라고 했다. 윤 대통령과 여당으로선 아직 안심할 때가 아니란 것이다. 야당도 ‘대형 참사가 기회’란 생각은 오산(誤算)이란 견해가 많다. 지난 정부에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정쟁에 치중하며 시간을 끌었던 것에 대한 피로감 때문에 중도·무당층을 중심으로 “일단 지켜보자”는 기류가 강하다는 것이다. “여야 모두 자신의 입맛에 맞게 민심을 해석하며 착각에 빠지면 안 된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견해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최근 민심은 여야 모두에게 경고장을 날렸다”라며 “국가적 재난의 재발 방지를 위해 ‘정부와 국회가 제대로 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라고 했다. 배 소장은 “이번 참사로 경찰과 소방 등 공공 구호 조직과 지자체, 정부 행정조직이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하지만 국민은 야당의 손도 들어주지 않고 있다”고 했다. 불과 6개월 전까지 집권 여당이었고 지금도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이 이태원 참사를 정권 퇴진의 정쟁 수단으로 삼거나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 방탄용으로 활용하려 한다면 오히려 악재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도 언론 기고문에서 “상황을 방치하다 참변에 이르게 만든 경찰과 지자체 등의 책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다만 안전 문제는 정파의 이해관계를 뛰어넘어야 할 문제인데 다짜고짜 정권 책임부터 외치는 것은 너무 정략적인 모습”이라고 했다.

‘대형 참사가 기회’란 생각은 오산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정부는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빨리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며 “진솔한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해 국가 안전 시스템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메시지도 국민에게 밝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민주당이 집권할 때 국가 안전 시스템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의문을 지니고 있는 국민도 많다”며 “이번 참사를 전적으로 정부·여당 탓으로 돌리거나 ‘무조건 퇴진’을 외치는 것은 감점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야당 일각에서 윤석열 정부를 신군부에 빗대며 “이태원에서 젊은이들을 사지에 좁은 골목으로 몰아넣고 떼죽음을 당하게 만들었다”는 주장처럼 민심과 동떨어진 ‘재난의 정치화’는 자책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 이후 야당도 지지율이 정체인 것에 대해선 “강경 포퓰리즘으로 일관하고 있는 민주당에 대한 중도층의 거부감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며 노란봉투법과 양곡관리법 등을 밀어붙이고 종부세 인하와 금융투자소득세 유예를 ‘부자 감세’라며 반대하는 야당에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며 “여권에 초대형 악재가 터져도 중도층이 안 움직이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기사에 인용한 조사 자료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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