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 9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 계단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 통과를 규탄하는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 photo 뉴시스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 9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 계단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 통과를 규탄하는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 photo 뉴시스

윤석열 정부의 첫 국정감사가 지난 10월 4일 막을 올리자마자 또다시 여야(與野)의 ‘강대강(强對强)’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야당은 대통령의 순방외교 논란을 계속 부각시키며 강공을 펼치고 있고, 여당은 민주당과 MBC를 향해 ‘정언(政言) 유착’과 ‘자막 조작’ 등으로 반격 중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대장동·백현동, 성남FC 후원금 의혹과 김건희 여사의 논문 표절, 주가조작 의혹 등도 쟁점이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한 감사원의 문재인 전 대통령 서면조사 요구도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여야는 지난 3월 대선 직후부터 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추진을 놓고 강하게 부딪쳤다. 새 정부 출범 이후에는 대통령실 이전, 내각 인사청문회, 경찰국 신설 논란, 탈북어민 강제 북송 등으로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민주당은 현 정부가 출범한 지 석 달도 지나지 않아 ‘대통령 탄핵’까지 들먹이며 공격의 수위를 최고조로 높였다. 지난 7월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박근혜 정부 시절 비선 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다”며 “대통령의 권력 사유화는 반드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했다. 9월에도 정청래·박찬대 최고위원 등은 “윤 대통령의 임기가 보장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탄핵을 암시하는 발언을 했다. 최근에도 야당은 다시 20%대로 하락한 윤 대통령 지지율이 ‘정치적 탄핵 수준’에 이르렀다며 대여(對與) 공세를 더욱 강화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중도층·무당층 다시 증가 추세 

현 정부 들어 단 하루도 ‘허니문 기간’ 없이 야당의 ‘닥공(닥치고 공격)’과 여당의 반격이 이어지자, 사생결단 싸움에 피로감이 커지면서 여야 모두를 외면하는 중도층과 무당층(無黨層)이 늘고 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정치 성향이 중도라는 응답자가 지난 3월 30%에서 최근 35%로 증가했다. 엠브레인·케이스탯·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4개 조사회사가 공동으로 실시하는 전국지표조사(NBS·National Barometer Survey)에서도 3월엔 33%였던 중도층이 최근 39%로 늘었다.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는 무당층도 증가 추세다. 갤럽 조사에서 무당층은 최근 27%로 올해 들어 최고치였다. NBS 조사에서도 지난 3월 18%에서 최근 27%로 급증했다. 중도·무당층이 늘어나면서 윤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 이후 반 토막이 나는 동안 민주당도 지지율이 30%대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야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합리성을 우선시하는 중도층은 갈등과 대결보다 협치(協治)를 중시하는 특성이 강하다. 문재인 정부 때 중도층은 조국 장관 임명과 추미애 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파동에 대해 과반수가 ‘부적절하다’고 평가했다. 친문(親文) 핵심 지지층만 바라보고 국정을 밀어붙인 당시 여권의 ‘팬덤 정치’에 반감이 컸다는 조사 결과였다. ‘공정과 상식’에 민감한 중도층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과 부동산 실정(失政) 등에도 보수층과 함께 비판적이었다. 지난 3월 대선에서 윤 대통령의 당선은 보수·중도 동맹을 통해 국정 운영의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기 바라는 기대감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최근 갤럽 조사에서 중도층은 윤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잘한다’는 평가가 18%에 그쳤고 ‘잘못한다’가 73%에 달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은 보수·중도 동맹의 와해도 영향이 컸다.

169석의 거대 야당인 민주당도 ‘검수완박’ 법안의 강행 처리 이후 중도 민심이 등을 돌리면서 지지율이 침체에 빠지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의 취임 직전인 지난 5월 초 각 여론조사에서 ‘검수완박’에 대해 중도층은 보수층과 함께 다수가 반대했지만 민주당은 의석수로 밀어붙였다. 중도층에게 외면을 받더라도 새 정부 출범 전부터 협치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갤럽의 월별 통합 자료에서 중도층의 민주당 지지율은 대선이 치러지던 3월에 36%였지만 9월에 33%로 하락했다.

최근 조원씨앤아이 조사에서 중도층은 이번 정기 국회에서 여야가 예산심의나 국정감사 등을 ‘잘못할 것’(79.1%)이라는 의견이 ‘잘할 것’(16.3%)을 압도했다. 부정 평가자 중에서도 ‘매우 잘못할 것’(44.8%)이 절반가량에 달했고 ‘어느 정도 잘못할 것’은 34.3%였다. 여야가 사활을 걸고 주요 사안마다 충돌하면서 국민에게 한쪽의 선택을 강요하는 것에 중도층의 정치 혐오가 위험 수위에 달했다는 의미이다.

 

  “중도층이 저쪽으론 가진 않을 것” 

여야가 중도층으로 외연을 확장하지 않고 지지층만 바라보며 강대강으로 맞서는 것에 대해선 “양쪽 모두 지지율이 부진한 상황에서 우선 집토끼라도 단단히 결속시켜야 한다”는 초조감 때문이란 해석이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20~30%대인 윤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이 보수층이나 진보층 비율보다도 낮은 조사 결과가 꽤 있다”며 “여권은 보수층, 야권은 진보층 지지를 온전히 확보하는 게 급해서 중도층까지 지지를 확장할 여력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더 이상 지지율 추락을 막아야 하는 여권뿐만 아니라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커지고 있는 민주당도 지지층 단속이 급선무란 것이다.

여야가 “지금으로선 중도층이 우리 쪽으로 오긴 힘들지만 저 쪽으로도 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서로 강경 노선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전문가들은 “경제 위기를 극복하려면 정치권이 협치를 모색하며 민생을 지원할 방안을 찾아야 하는데 소모적 공방으로 정치 혐오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 허진재 갤럽 이사는 “민생 현안은 사라지고 정치 현안으로 여야가 사사건건 부딪치면서 지지층 결속에 치중하고 있다”며 “어느 한쪽에 실망해 지지를 철회해도 다른 쪽으로 이동하지 않고 중도·무당층이 늘어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했다. 여야 모두 상대가 헛발질을 해도 ‘반사이익’을 얻지 못하는 특이한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유산인 편 가르기에 의한 정치 양극화가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며 “정국을 이끌 책임이 있는 여권에 중도층을 포용할 리더십을 지닌 인물이 보이지 않는 것도 협치 공간이 좁아진 이유”라고 했다. 김 교수는 “여권은 중도·보수층을 견인할 새로운 정치를 보여줘야 하는데 지지율 방어에 급급한 상황”이라며 “강경 일변도 노선을 포기할 의사가 없는 민주당도 중도층이 공감할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정치권이 변화와 혁신에 눈을 감고 상대를 향한 ‘닥공’에 치중하면서 각자 고립된 ‘갈라파고스 정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기사에 인용한 자료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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