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공공의대 설립 등을 반대하며 벌어진 대한의사협회의 2차 총파업 당시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병원에서 한 전문의가 의사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2020년 공공의대 설립 등을 반대하며 벌어진 대한의사협회의 2차 총파업 당시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병원에서 한 전문의가 의사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photo 뉴시스

공공보건의료대학, 약칭 ‘공공의대’는 문재인 정부 때 이미 의료계 반발에 부딪혀 무산되었던 정책이다. 의료취약지역인 지방의 필수의료를 보완하겠다는 취지를 담아 추진되었던 정책으로, 대학이 학생의 수업료를 지원하는 대신 해당 지역에서 10년간 근무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11건의 각종 공공의대 신설 법안이 계류 중이다. 관련 법안이 처음 발의된 것이 2015년이니 8년째 표류 중인 셈이다.

그런데 최근 이 법안들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9월 16일 전북에 다녀온 다음의 일이다. 이 대표는 이날 전북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전북 공공의대 설립을 “신속하게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20일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기자들을 만나 한 번 더 공공의대 설립을 “조속히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가 공공의대를 강조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지역 발전 측면에서다. 현재 공공의대는 폐교되었던 전북 남원의 서남대 의대를 활용하는 방안으로 추진되고 있다. 실제로 발의된 법안 11개 중 6개가 경북 안동, 전남 목포, 충남 공주 등 특정 지역에 공공의대를 설립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전북을 방문하고 온 이 대표가 공공의대를 강력하게 원하는 전북 민심을 반영하는 측면에서 공공의대 설립 법안을 조속히 처리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해석된다.

두 번째는 최근 더욱 강조되는 지역의 필수의료 강화 차원에서 추진하는 것이다. 지난 7월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에 손꼽히는 서울 아산병원의 간호사가 근무 중에 뇌출혈로 쓰러졌지만 뇌수술을 집도할 의사가 없어 결국 사망했던 사건을 계기로 ‘필수의료’에 대한 논의에 다시금 불이 붙었다.

필수의료는 지금 보건복지 분야에서 가장 ‘핫’한 키워드다. 무엇이 필수의료인지에 대한 정의는 아직 분명치 않지만 대개 생명에 직접적 위험이 있는 질환에 대응하는 의료 분야로 통용된다. 뇌와 척수의 질환에 대응해 수술을 실행하는 신경외과나 심장·폐 등에 생긴 질환에 수술을 하는 흉부외과가 필수의료과로 분류되고, 산부인과나 소아청소년과 역시 이에 포함된다.

이 필수의료를 강화해야 한다는 정책적 방향은 윤석열 대통령도 후보 시절부터 강조해오던 바다. 윤 대통령의 보건의료 분야 공약의 주요 내용 중 하나는 ‘필수의료 국가책임제’였다. 후보 시절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의료적 재앙이 닥치더라도 중환자실, 응급실이 부족해 국민이 발을 동동 구르며 피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 방향도 필수의료를 강화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건복지부에는 ‘필수의료 확충 추진단’과 ‘필수의료TF’가 발족돼 있다. 지난 10월 5일 취임식을 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도 취임사에서 필수의료 확충을 강조했다. 조 장관은 국민건강보험에 대해 “필수의료 등에 대한 보장성을 강화하면서 재정도 면밀하게 관리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필수의료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지난해 전국 전공의 지원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흉부외과·외과 같은 필수의료과의 전공의 지원율은 한참 미달됐다. 전공의는 의사들이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기 전 거치는 수련 과정으로 레지던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공의 지원 수가 정원에 미달된 과목은 그만큼 전문의의 수가 줄어드는 것이므로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 지난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37.3%에 그쳤다. 또 외과 91.1%, 산부인과 90.2%, 흉부외과 56.3% 등도 모두 정원 미달이었다.

지방의 필수의료는 이미 무너진 상태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방에서는 필수진료과 의사를 찾기 어려운 곳이 대부분이다. 지방의료원은 지역의 공공보건의료기관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필수진료과 중 6개 진료과, 즉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흉부외과·비뇨기과 의사를 모두 확보한 지방의료원은 35곳 중 8곳에 그쳤다. 아파도 찾아갈 의사가 없는 상황이다.

지난 9월 16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전북도청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현장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9월 16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전북도청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현장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무너진 필수의료

상황은 수도권 대도시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2월에는 경기도 수원에서 재택치료를 받던 생후 7개월 아기가 응급실을 찾지 못해 헤매다가 안산의 대학병원으로 이송된 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아 환자를 볼 수 있는 의료진이 없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필수의료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이제 이견이 없다. 다만 문제는 어느 분야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이다. 이 내용을 두고 각자의 의견이 부딪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윤석열 정부의 보건의료정책 밑그림을 그린 것으로 알려진 박은철 연세대 보건정책 및 관리연구소 소장은 필수의료의 개념을 “모든 의료가 필수의료가 될 수 있다”며 다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은 분야와 중증질환 등을 고려해 가장 먼저 해결할 수 있는 분야부터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필수의료 확충 방안은 일반적인 상황에서 각 과의 의료진을 확보하는 것에 그쳐 있었지만, 앞으로는 야간이나 응급상황에서 세부전문과목의 의료진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예를 들어 신경외과만 해도 척추 분야를 전공하는 인력은 부족하지 않다. 다만 뇌를 다루는 의사가 부족하기 때문에, 세부전문과목의 차원에서 필수의료를 지원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입장에서 앞으로는 필수의료를 지원할 때 세부전문과목 의료진이 충원될 경우 가산점을 부여하는 등의 방안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렇게 필수의료의 세부전문과목 인력을 강화하는 방안 외에도 크게 고려해야 하는 사항들이 있다. 즉 수가를 인상하고 지역 의료를 강화하는 것 등이다. 이를 테면 현재는 응급·야간·공휴일의 수가는 기관을 세 개 등급으로 나누어 가장 낮은 등급을 받은 기관은 페널티를 받게 돼 있다. 그러나 박은철 소장은 “응급 의료행위에 대해 가산점을 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지, 페널티를 주는 방식으로 진행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지역 의료를 강화할 때도 지원을 해주는 것을 중요시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박은철 소장은 “현재 230개 공공병원 중에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 것은 10%에 불과하다”면서 “그런데 여기에 공공병원을 더 늘리자는 주장은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대신 이미 잘 운영되고 있는 지역 상급종합병원에 중심적인 역할을 부여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공병원 중에서도 상급종합병원에서 위탁 운영하는 곳, 예를 들어 서울 보라매병원이나 경기도 일산병원 같은 경우는 매우 잘 운영되고 있다. 이처럼 각 지역의 상급종합병원이, 대구·경북에서는 경북대병원이 지역 의료기관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대학 교수라는 타이틀을 붙여주고 충분히 지원을 해주면 의료진이 원하는 돈과 명예 둘 다 충족시킬 수 있다. 지금은 의료진조차도 지방 소형의료기관에 대한 신뢰가 없다.”

 

공공의대는 또 다른 규제 될 수도

박 소장은 마치 산업계의 스타트업 시스템처럼 민간 주도의 혁신 전략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한 선도적인 사례가 만들어지면 모두가 따라 할 것”이라며 경기도 안성에 설립된 ‘안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예로 들었다. 박 소장은 “민간 주도의 의료 시범사업을 충분히 지원하고 성공할 경우 벤치마킹할 수 있도록 동력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하자면 의료 정책에는 ‘규제’가 아니라 ‘지원’이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는 공공의대 역시 규제의 일환이 될 수 있다. 의무 복무기간을 10년으로 강제해 봤자 10년이 지나면 대부분의 의사는 지역을 떠난다. 실제로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에서 공개한 자료를 보면 공공의대 제도를 도입한 대만의 경우 의무 복무기간이 끝나고 취약지에 남아 있는 의사는 16%에 불과했다. 이상운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은 “의료 환경을 개선하고 정부와 지자체가 충분히 지원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욱이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는 1980년대 이후 가파르게 늘어나면서 이제 미국, 일본 등에 비견할 만한 수치를 보이고 있다. 의과대학의 수도 40개에 달하는데 인구 수와 비교해 보면 미국 155개, 일본 80여개에 비해 그다지 적은 편이 아니다. 다만 한 의과대학의 정원이 적고 쏠림현상이 심하다는 것이 문제다.

그런데 지금 논의되는 공공의대는 정원이 50여명에 불과한 ‘미니 의대’로 신설된다 하더라도 매년 3058명씩 배출되는 학생 수를 극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수준이다. 의료 환경을 바꾸지 않고 무작정 공공의대를 만들면 질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박은철 소장은 “의대 하나를 만드는 데 많은 예산이 필요한데 공공의대는 ‘좋은 의대’가 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좋은 의대는 기초의학과 임상의학 분야가 골고루 갖추어진 대학인데 현실적으로는 상위권 의대도 이를 충족시키기 어렵다. 박 소장은 “의대 정원을 장기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환경의 변화 없이 공공의대 한두 곳 신설하는 것으로는 예산만 낭비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정재현 대한병원의사협의회 부회장 역시 “의료 인력 수급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는 문제로 의대 하나를 신설한다고 필수의료 부족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공공의대 신설은 단지 지역의 요구에 따른 포퓰리즘 정책에 가깝다며 “지역구 표를 얻기 위해 무분별하게 발의하는 의대 신설 법안들은 철회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계가 반발하는 모양새라 이 문제는 지난 몇 년간 그랬던 것처럼 언제든 보건의료계의 뇌관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제1야당과 보건당국 책임자가 공공의대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조규홍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고령화 등에 따른 의료수요 증가로 의사 수요는 증가하고 있으나 의대 정원은 2006년 이후 3058명으로 동결돼 있다”며 “의료계와 적정 의사인력 확충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춘숙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도 남원시에서 공공의대 설립 추진을 위해 국회를 방문할 때마다 “법률안이 조속히 통과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미 의료계는 지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의 한복판에서도 총파업을 강행한 바 있다. 한 의료인 단체 관계자는 “공공의대 설립 법안이 추진된다면 코로나19 상황도 나아진 만큼 그때보다 더 큰 반발이 조직적으로 일어날 것”이라며 “이 문제가 단지 의사들의 밥그릇 문제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한 방안도 생각 중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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