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4일 서울 롯데월드타워 스카이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photo 뉴시스
지난 10월 4일 서울 롯데월드타워 스카이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photo 뉴시스

집값 폭락 여부가 화두다. 한국종합주가지수(KOSPI)가 급락했으니 다음 차례는 집값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언론이 거의 매일 집값 동향 기사를 싣는다. 2021년 미국의 30년 고정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는 3%였는데 최근 6.7%로 급등했고 일부 상품은 20년 만에 최고 수준인 연 7%를 넘어섰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최근 7%를 돌파한 상품이 출시되어 집값 하락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금리 상승이 집값 하락을 일으키는 이유는 할인율, 즉 금리가 상승하면 자산 가치는 하락하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 7% 돌파는 2011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니 공포심을 느낄 만하다. 미 연준이 추가로 1% 이상의 금리 인상을 예고한 탓에 하락 폭은 더 커질 듯하다.

 

공포 부추긴 국토부 장관 

상황이 이런데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등 정책 당국자들은 ‘집값은 앞으로 더 떨어져야 한다’는 발언으로 공포심을 키웠다. 원 장관의 발언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미국 금융위기를 겪지 못한 20~30대 청년세대에 불안감을 안겨줬다. 2008년 이후 본격화된 초저금리 시대에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들에게 기준금리의 단기간 급등은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인 탓이다.

집값의 추가 하락을 주문한 사람이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2년의 전 세계 자산가격 급등과 최근의 급락을 일으킨 주범인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도 집값이 너무 올랐다고 지적했다. 코로나 19가 창궐한 시점부터 불과 몇 달 전까지 천문학적 규모의 돈을 풀어 주식, 부동산, 가상화폐 등 모든 자산에 거품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그런 말을 했으니 어찌 보면 기가 막힐 만한 일이다. 제레미 시걸 와튼경영대학원 교수는 미 연준이 코로나19가 발생한 뒤 종전 대비 통화량을 40% 폭증시켜 물가 폭등을 만들었다면서 제롬 파월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제롬 파월 의장이 사과를 할 대상은 미국 국민만이 아니다. 전 세계 시민들에게 무릎 꿇고 사죄를 해도 부족하다. 돈 풀기 정책의 뒤늦은 중단으로 인플레를 일으키더니 이번에는 자신의 과오를 만회하려고 허겁지겁 기준금리를 급등시켜 온 세상을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하의 물가상승)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다. 연준을 ‘샤워실의 바보’라고 부를 만하다.

 

주택공급 걸림돌 여전 

본래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부동산 시장은 폭락할 것인가. 아무도 알 수 없다. 올 초만 해도 집값이 상승할 거라는 의견이 대세였음을 고려할 때 집값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집값의 저점 시점을 거론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가격을 예측하는 것은 홀짝게임처럼 도박에 가깝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 2월 올해의 집값 전망을 묻는 경제일간지의 설문에 집값이 상승할 거라고 응답했다. 다만 조건을 붙였다. 금리를 포함한 거시경제 여건이 변하지 않는다는 가정에서였다. 설문에 응답한 시점이 2월 초니까 2월 하순에 발생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이었고 미 연준이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금리를 인상하기 바로 한 달 전이었다. 

설문조사는 일반적으로 예, 아니오의 단답식으로 구성된 4지 선다형의 객관식 질문으로 이루어진다. 통계 처리의 편리를 위해서다. 국가 정책 수립에 반영되는 설문조사도 단답식이 일반적인데 흥미성 기사로 실리는 설문조사에 설문 문항의 정교함과 답변의 다양성이 담겨지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래서 필자는 설문에 응답하면서 이 같은 설문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설문 결과가 어떻게 사용될 것인지를 짐작하기에 필자는 설문 항목의 극히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주관식 질문에 ‘거시경제 조건의 변화가 없다는 가정에서의 집값 예측’이라는 사족을 달았다. 그러나 며칠 후 신문지상에 실린 기사는 ‘부동산 전문가의 과반수가 2022년에도 집값은 오른다고 한다’는 것으로 나왔다. 결과만 보자면 필자 또한 잘못된 예측을 한 셈이다.

필자가 지난 2월 집값 상승을 점쳤던 이유는 주택공급이 눈에 띄게 늘어날 것 같지 않아서였다. 3월에 치러질 대통령선거에서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더라도 공급이 극적으로 증가하려면 국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야당이 공급확대를 위한 법령개정에 동의를 해야 하는데 부동산 3법이라는 악법을 만든 당사자들이 주택공급의 걸림돌인 분양가상한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의 각종 규제를 풀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 총선이 2년 넘게 남은 시점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시장 친화적인 제스처를 보일 것 같지 않다고 본 것이었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 photo 뉴시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 photo 뉴시스

서울에 빈집은 사실상 없다 

미국은 코로나19가 창궐한 뒤 자국 경제를 살리겠다면서 자그마치 5조달러(약 7200조원)나 되는 돈을 찍어 시장에 풀었다. 그 돈의 상당량은 해외로 흘러나가 전 세계 자산가격을 끌어올려서 이미 2021년 하반기에 물가상승의 조짐이 있었다. 클린턴 정부 시절 재무장관이었던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이때부터 양적 긴축과 금리 인상을 주문했지만 제롬 파월 연준 의장과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인플레가 ‘일시적’이라면서 ‘돈 풀기’ 정책을 고집했다. 모하마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경제고문은 지난 9월 말 C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화폐를 증발하는 양적 완화 기간이 길어질수록 참혹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작년부터 여러 차례 경고했는데도 연준이 ‘지각 긴축’에 나서더니 지금은 너무 급하게 금리를 올려 세계경제를 위기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리나라의 증권 전문가들은 미국이 강달러를 이용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식민화 정책’을 벌이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미국 금융자본은 2014년에 발생했던 그리스를 포함한 남유럽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국가들의 재정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돈을 빌려줘 떼돈을 벌었듯이 이번에도 고의로 유동성의 공급과 회수 시점을 조절해 향후 10년 동안의 먹거리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달러 강세가 전 세계 경제를 망가뜨리고 부동산을 포함한 자산가격을 추락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킹 달러’를 실감한다. 역사적으로 반복되는 미국의 약탈적인 통화정책을 보면 제3세계 국가에서 추앙받는 ‘양털깎기’ 이론을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양털깎기는 거대한 자본을 가진 국제 유대자본이 막대한 규모의 돈을 풀어서 자산의 가격 거품을 만든 다음 통화량을 갑자기 줄여 경제 불황과 가격 폭락을 유도해 마치 양털을 깎듯 헐값에 알짜배기 기업과 부동산을 매수한다는 음모론이다. 물가상승이 본격화됐는데도 연준이 의도적으로 금리 인상 시기를 늦춘 뒤 뒤늦게 과격한 금리 인상을 함으로써 해외로 빠져나갔던 달러자본을 고금리를 미끼로 미국으로 불러들여 전 세계 자산가격의 폭락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양털깎기 이론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연준의 ‘지각’ 금리 인상은 연준의 2가지 목표인 ‘물가 안정’과 ‘최대 고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는 과정에서 실업률 등 경기의 선행지표가 아닌 후행지표를 중시하다가 발생한 참사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어느 견해가 옳든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은 한국의 집값을 하락시키고 있으며 미국이 금리 인상을 멈출 때까지 추가 하락이 예상된다는 것이 문제다.

그러나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집값 하락은, 특히 서울의 집값 하락은 기우에 가깝다. 주택공급 측면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서울의 빈집 비율(공가율)은 지난 수년 동안 3%대에 머물고 있다. 정부가 빈집의 비율을 계산할 때 재건축·재개발 등으로 철거를 앞둔 쓸 수 없는 집까지 거주가능한 집으로 계산하는 실태를 고려한다면 서울의 빈집은 사실상 없다. 게다가 코로나19 이후의 인력난이 부채질한 건설노임 상승과 올해 본격화된 원자재 가격 상승은 주택공급을 제약한다.

이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8·16 공급대책’으로 발표한 270만호 공급은 달성되기 어렵다는 평가도 나온다. 부동산114는 국토교통부의 2005~2021년 17년간 연평균 주택 인허가, 착공, 준공 물량 데이터를 분석해 인허가에서 착공·준공 단계에 들어가기까지 15~18%의 물량이 감소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대통령 선거공약인 270만가구 인허가 물량에 대입하면 착공까지 40만가구, 준공단계까지 48만가구가 실체화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목표로 삼은 계획량보다 적게 공급되는 현상은 영국에서도 나타난 바 있다. 보리스 존슨 총리 시절 영국 정부는 이런 만성적인 주택 공급난을 해소하기 위해 외국 건설인력에게 내주는 비자 조건을 완화하고 각종 보조금 등을 건설사에 지급하며 공급 촉진책을 시행했다. 건설숙련인력의 부족이 공급 속도를 늦춘다는 것을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건설근로자공제회의 2021년 자료에 따르면 한국 또한 영국처럼 건설현장의 숙련인력이 부족해 정부의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부동산114는 서울은 인허가 물량의 94%가 실제로 준공된다고 분석했다. 만성적인 공급부족에 시달리는 서울시에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영국 정부가 그러했듯이 인허가 물량의 확대는 물론이고 준공비율 100%가 달성될 수 있도록 정부의 직·간접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것이 바로 서울에서는 집값 폭락이 나타날 수 없다고 보는 이유다. 

 

지금의 하락은 미 연준 작품 

지금의 집값 하락은 미국 연준의 작품이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5년간 20번 이상의 부동산 대책을 내놓으면서 집요하게 추구했던 집값 하락을 연준은 지난 3월부터 시작된 5번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해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현재의 집값 하락은 주택공급을 확대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게 핵심이다. 정부는 미국발 금리 인상으로 발생한 집값 하락을 반가워할 때가 아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집값 하락을 촉발했으니 미국이 금리 인상을 멈춘 뒤 금리를 다시 인하한다면 집값은 다시 꿈틀거릴 것이다. 철저히 자국 중심주의로 치닫고 있는 미국의 행태를 고려할 때 금리 인상이 언제 멈추고 다시 인하할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정부는 아파트를 짓는 데 평균 30개월이 걸린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두 손 놓고 집값 하락을 반길 때가 아니다. 지금부터 준비해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서둘러 각종 공급 규제를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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