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경기도 구리시 조선왕릉 동구릉 내에서 견치석 제방을 허무는 공사가 한창이다. photo 이동훈 기자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경기도 구리시 조선왕릉 동구릉 내에서 견치석 제방을 허무는 공사가 한창이다. photo 이동훈 기자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인 조선왕릉 동구릉(東九陵·사적 제193호)이 공사판으로 변모했다. 문화재청이 동구릉 경내를 가로지르는 물길인 동구천의 석축 제방을 허물고 새로 석축을 쌓는 공사에 착수하면서다. 동구릉은 조선왕조의 개창자인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健元陵)을 비롯해 9기의 왕릉이 운집해 있는 조선 최대 왕릉군이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릉(40기) 가운데 보존상태가 가장 좋은 곳으로 꼽힌다. 한데 문화재청이 공사를 시작하면서 경내 곳곳에 공사가림막이 쳐지고 포크레인 등 중장비가 출몰하면서 왕릉을 찾는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문화재청이 동구릉 경내 하천변 석축을 인위적으로 허문 까닭은 물길 옆 석축 제방을 쌓아 올린 방식이 ‘견치석(犬齒石)’ 양식이라는 이유에서다. 견치석 석축은 성곽이나 축대를 쌓을 때 송곳니처럼 생긴 돌을 마름모꼴로 쌓아 올리는 방식이다. ‘개의 송곳니’를 닮았다고 해서 견치석 또는 견치돌로 불리는데, 특유의 견고함으로 일본에서 축성 방식으로 유행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국내에 들어왔고, 국내에서도 옹벽과 축대를 쌓아올릴 때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전국 곳곳의 하천과 산비탈 등에서는 견치석 석축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데 석축의 기능 이상 유무와 상관없이 견치석 석축이 이른바 ‘일제 잔재’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수년 전부터 인위적으로 헐리는 등 수난시대가 시작됐다. 급기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현상변경이 엄격히 금지된 동구릉 경내에서조차 견치석 제방 허물기에 나선 것. 문화재청은 동구릉 경내 하천의 견치석 제방을 허물고, 육중하고 길다란 장대석을 수평으로 쌓아 올리는 이른바 ‘전통 한식(韓式) 석축’으로 조성 중이다. 하지만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정에 앞서부터 세월의 흔적이 녹아든 견치석 석축보다 인위적인 느낌이 강해 문화유산의 역사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견치석 제방 허물고 한식 석축으로

실제로 지난 10월 5일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동구릉을 찾았을 때, 과거 능참봉이 머물렀던 재실 입구부터 능역으로 들어갈 때 만나는 첫 번째 묘역인 익종(추존)과 신정왕후의 합장릉인 수릉 앞까지 이어지는 동구천 변에는 파란 공사가림막이 길게 쳐져 있었다. 공사가림막 안쪽의 하천 옆으로는 기존에 제방을 이뤘던 견치석이 빠져 수북이 쌓여 있었고, 그 옆으로 새로 쌓아 올릴 육중한 돌들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동구천 변에는 제방 옆으로 심어진 족히 수십 년 이상 된 나무들이 많은데, 제방을 이룬 견치석이 빠지면서 뿌리를 절반 이상 드러내고 있었다.

문화재청의 공사를 바라보는 관람객들의 시선은 엇갈린다. 태조 이성계를 비롯한 조선왕과 왕비들의 무덤이 있는 곳인 만큼, 일식 견치석 석축보다 한식 석축이 더 어울리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있다. 반면 별다른 문제도 없는 멀쩡한 석축을 허물고 다시 석축을 쌓는 것이 예산낭비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동구릉에서 만난 한 관람객은 “개울가 석축이 일본식이라고 허물고 다시 쌓는다면, 동구릉 경내에 있는 서양식 화장실도 다 허물고 조선식 푸세식으로 바꿔야 할 것”이라며 “공사한답시고 조용한 분위기만 망쳐놨다”고 지적했다.

동구릉 경내 견치석 하천제방이 1970년대 동구릉 정비 과정에서 국내 기술자가 국내 기술로 쌓아 올린 것이라 굳이 허물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있다. 동구릉이 본격 정비된 것은 1950년대 말, 주한미군들이 휴가 중 쓰는 외화획득을 위해 풍광이 수려한 경승지를 찾는 과정에서였다. 이후 문화재청의 전신인 구(舊)황실 재산사무총국은 1961년부터 동구릉을 일반에 공개했고, 박정희 정부 때인 1970년대에는 동구릉을 비롯한 조선왕릉에 대한 대대적 정비가 이뤄졌다. 문화재청도 2020년 동구릉 역사경관 복원·정비 연구보고서에서 “동구릉 경내 견치석 석축 호안은 1970년대 초 정비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히고 있다. ‘견치석=일제 잔재’란 인식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셈이다.

견치석을 뽑아내고 장대석을 수평으로 쌓아 올리는 이른바 ‘전통 한식 석축’이 동구릉 조성 당시의 원형에 가깝느냐에 대해서도 의문부호가 뒤따른다. 동구천만 해도 상류라고 할 수 있는 선조의 목릉과 태조의 건원릉 일대는 주변 계곡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흙과 나무가 자연스럽게 둔덕을 이루는 자연제방과 비(非)정형의 돌들을 어지럽게 쌓아 올린 제방이 주종을 이룬다.

하지만 하류에 이르면 1970년대 동구릉을 정비하면서 쌓아 올린 견치석 제방과 수년 전부터 ‘전통 한식 석축’이란 이름으로 쌓아 올린 장대석 석축이 혼종을 이룬다. 한데 견치석을 뽑아낸 자리에 대신 쌓아 올린 이른바 ‘전통 한식 석축’은 성곽돌에나 어울릴 정도로 주변 석재에 비해 덩치가 크고, 기계로 다듬어낸 티가 역력했다. 1970년대 자리 잡은 이래 이끼가 끼면서 주변 환경에 녹아든 견치석 석축만도 못하다는 평가다.

 

문화재청, 왕릉 경관훼손 방치

견치석 허물기는 ‘일제 잔재 청산’이란 그럴듯한 명분 아래 관급공사를 수주하는 비즈니스모델이 되면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다. 전국 각지의 사찰 등 문화재에 있는 견치석 석축들이 ‘일제 잔재’라는 낙인이 찍혀 하나둘씩 허물어졌다. 심지어 “일제가 민족정기 훼손을 위해 견치석 석축을 장려했다”는 말까지 나왔고, 이에 따라 문화재도 아닌 하천변과 산비탈, 공원묘원 등에 있는 견치석 석축 상당수도 ‘일제 잔재’라는 오명을 덮어쓰고 허물어졌다. 견치석 석축이 있었던 곳들은 이른바 한식 석축과 콘크리트 옹벽으로 대체됐다. 결국 동구릉 역시 이른바 ‘견치석 제거’ 바람을 피해가지 못한 셈이다.

서울 태릉과 경기도 김포 장릉 등 조선왕릉의 경관훼손 때 제 목소리를 못 냈던 문화재청이 멀쩡한 석축 제거 같은 일에만 힘을 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태릉은 지난 문재인 정부 때 태릉 앞 태릉골프장에 아파트 1만 가구를 짓기로 하면서 경관훼손 논란이 불거졌다. 김포 장릉 앞에서도 3400여 가구 아파트가 올라가면서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정 당시의 경관이 크게 훼손됐다. 문화재청이 뒤늦게 공사중지 명령을 내리고 일부 철거를 권고했으나, 법원은 건설사의 손을 들어줬다. 동구릉 다음으로 규모가 큰 고양시 서오릉(西五陵)도 ‘창릉신도시’를 건설하기로 하면서 경관훼손 위기에 처해 있다. 경관훼손 등 현상변경이 계속될 경우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위가 박탈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에 따르면 견치석 석축제거를 위한 동구릉 내 수계정비는 오는 12월까지로 예정돼 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의 한 관계자는 “해당 부분은 견치석 모양으로 돌들이 쌓여 있는 곳으로 동구릉의 원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동구릉 내 수계는 변형되거나 석축이 쌓이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연차적으로 수계정비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이에 투입되는 예산은 올해만 8억원가량이다. 이 관계자는 “동구릉 수계가 길고 돌들이 흘러내린 곳들도 있다”며 “수계정비가 끝나면 같은 방식(견치석)으로 쌓인 재실에서 매표소 앞까지 이르는 수계도 정비해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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