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부분 동원령’을 선포한 직후, 러시아를 탈출하는 차량들이 러시아와 조지아 국경에 두 줄로 길게 늘어서 있다. photo AP·뉴시스
지난 9월 2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부분 동원령’을 선포한 직후, 러시아를 탈출하는 차량들이 러시아와 조지아 국경에 두 줄로 길게 늘어서 있다. photo AP·뉴시스

2022년 2월 23일, 나는 내 고향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었다. 이날은 러시아에서 ‘조국수호자의 날’이다. 한국의 국군의 날과 같은 날로, 모스크바 포클론나야 고라(경배의 언덕)에서는 성대한 불꽃놀이가 있었다. 그날 나는 친한 후배와 함께 모스크바국립대학교 중앙캠퍼스를 산책했다. 그때 후배에게 “우와, 하늘이 빨개졌네, 세계가 곧 망할 뜻이야”라고 했다. 그날 이 말은 사실 농담에 불과했다.

그런데 다음날 비극의 역사가 시작됐다. 2월 24일, 나는 일어나자마자 뉴스를 확인했고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을 알게 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공격명령을 내린 것이다.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러시아 공군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폭격하기 시작했다.

구소련에는 1941년 6월 22일에 발발한 독소(獨蘇)전쟁에 관한 이런 노래가 있었다. ‘6월 22일 새벽 4시에 키예프(키이우)가 폭격을 당해 우리는 (독소)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라는 가사다. 새벽 4시에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하달한 사람은 역사상 단 2명뿐이다. 아돌프 히틀러와 블라디미르 푸틴이다.

푸틴이 복귀하면서 러시아가 권위주의와 군국주의 길을 걷게 된 출발점을 찾아보면 2011년 9월 24일이었다. 이날 러시아 여당인 통합러시아당 대회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대통령은 “당대회가 당위원장 블라디미르 푸틴의 대통령직 추천을 승인하는 것이 옳다”는 말을 했다. 2008년부터 러시아의 2인자로 지냈던 푸틴은 이날 다시 러시아의 최고권력자로 복귀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이란 소문은 2021년 무렵부터 나왔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푸틴 정권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이 이야기를 별로 믿지 않았다. 21세기 유럽에서 어떻게 전쟁이 있을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전쟁 이야기가 외교적 수사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북한 정권이 몇 년마다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것”이라고 엄포를 놓으면서도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기억한 나 역시 푸틴의 행위가 허세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지난 9월 27일 러시아를 탈출해 육로로 카자흐스탄으로 향하는 차량들. photo AP·뉴시스
지난 9월 27일 러시아를 탈출해 육로로 카자흐스탄으로 향하는 차량들. photo AP·뉴시스

개전 직후 전 가족 이민 결정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월 24일 아침, 모스크바 서구(西區)의 집에 있었던 우리 가족은 전 가족 이민을 결정했다. 서울의 국민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던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사실 2010년대부터 러시아 국내 분위기가 나빠지면서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은 이민을 선택지로 고려하기 시작했다. 시민사회에 대한 탄압, 서방과의 갈등을 본 우리 가족은 푸틴이 어느 날 어떤 큰 비극을 일으키지 않을까 내심 걱정해 왔다.

이 계획에 따라 당초 지난 2월 28일에 귀국하려고 했던 나는 비행기표를 바꿔서 2월 25일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5월에 한국 국적 획득을 위한 귀화를 신청했고 현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부모님은 이스라엘 국적을 신청해 러시아를 떠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여동생은 전쟁 발발에 앞선 지난 2020년 이미 러시아를 떠나 이스라엘로 갔다. 여러 가지 이민 선택지를 고려한 여동생은 이스라엘에서 국적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찾아낸 것이다.

이스라엘 국적 취득에 대한 절차는 두 가지가 존재한다. 첫 번째는 일반귀화다. 일반귀화는 ‘영주권을 보유하면서 3년 거주’라는 조건이 붙어 있다. 다른 나라의 그것과 절차가 비슷하다. 두 번째는 유대인들을 위한 특별귀화다. 본인 또는 본인의 부모 1명 이상 또는 본인의 조부모 1명 이상이 유대인이고, 이 같은 사실을 입증하는 서류를 제출할 수 있으면 추가조건 없이 이스라엘에 도착한 직후 이스라엘 국적을 받을 수 있다. 본인이 결혼한 지 1년 이상 지났으면 배우자 역시 이스라엘 국적을 받을 권리가 주어진다.

우리 가족의 경우 상황이 재미있다. 유대교 교리에 따라 모친이 유대인이라면 순수 유대인 자격이 있는 자로 인정받는다. 유대교는 이스라엘의 국교(國敎)이기 때문에 이스라엘도 이 개념을 적용한다. 나의 증조할머니는 유대인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법상 증조할머니(유대인)의 아들인 친할아버지도 유대인이었다. 자연히 나의 아버지는 유대인(친할아버지)의 아들, 어머니는 유대인 아들의 배우자, 그리고 여동생은 유대인의 손녀 자격이 각각 생겼다. 즉 우리 가족 모두 이스라엘 국적을 받을 권리가 생긴 셈이다.

지난 9월 29일 동원령을 피해 걸어서 조지아로 탈출하는 러시아 사람들. photo AP·뉴시스
지난 9월 29일 동원령을 피해 걸어서 조지아로 탈출하는 러시아 사람들. photo AP·뉴시스

이스라엘의 유대인 귀화정책 

한국에서 북한 이탈주민이 귀순하면 자동으로 대한민국 국적이 주어지는 것처럼, 이스라엘 역시 유대 핏줄이 있는 사람은 자동으로 국적을 부여한다. 이 같은 규칙이 생긴 이유는 과거 나치 독일의 인종주의 정책 때문이다. 나치의 ‘뉘른베르크법’에 따르면 유대인은 물론, 조부모 중 유대인이 1명 이상 있는 혼혈자들은 차별을 받았다. 이스라엘은 유대 핏줄 때문에 차별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유대 민족국가인 이스라엘에서 국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판단했다.

물론 나는 오랫동안 한국에 귀화할 꿈이 있어서 이 선택지를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동생은 러시아의 여러 문서보관서를 찾아서 우리 가족의 유대인 조상들에 대한 기록을 복사했다. 그리고 이 기록들을 모스크바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에 전달하고 귀화를 신청했다. 이스라엘대사관 영사부는 여동생의 귀화신청을 수락했고 여동생은 2020년 러시아를 떠나 이스라엘 국민 자격을 받았다. 현지에서 이스라엘의 국어인 히브리어를 배운 그녀는 지금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하이파라는 도시에 살고 있다.

여동생이 이스라엘에 정착한 것을 본 부모님은 당초 10월 말쯤 러시아에서 떠날 것을 결정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전황(戰況) 때문에 부모님은 계획을 조금 앞당겼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결과는 대부분 전문가들의 분석과 많이 달랐다. 용감하게 싸운 우크라이나 군대는 러시아의 공격을 막아냈다. 전격전으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점령하고 괴뢰정권을 세울 것이라고 예상됐던 푸틴은 4월 우크라이나 북방전선에 총후퇴 명령을 내렸다. 심지어 우크라이나 군대는 9월 하르키우주 대부분을 탈환했다.

반면 러시아 군대는 병력이 매우 부족했다. 지원병을 계속 찾은 러시아 정부는 살인죄로 감옥에 간 수감자까지 입대를 환영했다. 러시아 정부는 “6개월만 싸우면 사면받을 것”이라는 비공식적인 정책을 이행했다. 그러나 큰돈을 준다고 해도 전선에 가서 이웃나라와 싸우고 싶어 하는 지원병의 수는 계속 부족했다.

급기야 푸틴은 결국 지난 9월 21일 전례 없는 예비군 동원 대통령령을 하달했다. 러시아 예비군의 개념은 상당히 넓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건강상태 평가 1급부터 5급까지의 남자, 그리고 의사 등 전쟁에 쓸모있는 자격을 가진 여성들은 모두 동원대상자다. 면제대상은 해외에 거주하는 국민, 만 27세 이하 또는 50세 이상의 사람이다. 다만 만 18세부터 27세까지 남성은 일반징병 대상자고, 예비역 장교는 50세가 넘어도 동원대상이 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한국에 거주하는 나는 동원대상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1965년생으로 올해 나이가 57세인 나의 아버지는 대학교 시절에 군사교육을 받고 졸업하면서 예비역 장교로 임관된 터라 동원대상이 될 염려가 있었다. 

하루아침에 이 모든 사람들이 동원명령서를 받아 우크라이나 전선에 나갈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이날 러시아에서는 “푸틴은 2월 24일 우크라이나 국민에 대한 선전포고를 했고, 이제 러시아 국민들에 대한 선전포고를 했다”는 말이 화제가 됐다.

다행히 푸틴의 예비군 동원은 공식적으로 ‘총동원’이 아니라 ‘부분적 동원’이었다. 동원대상 자격이 있는 국민들도 동원명령서를 직접 수령하기 전까지는 출국할 수 있었다. 러시아 국민들은 출국 비행기표를 앞다퉈 구매하기 시작했다. 러시아를 떠나는 모든 국제선 비행기표가 며칠 만에 매진됐다. 나의 부모님도 서둘러 이스라엘로 출국하는 비행기표를 구매하기 위해 나섰다. 9월 21일 푸틴의 ‘부분 동원령’ 선포 연설 생방송이 끝나자마자였다.

지난 9월 24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동원령에 항의하는 한 남성이 러시아 무장경찰에 체포되고 있다. photo AP·뉴시스
지난 9월 24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동원령에 항의하는 한 남성이 러시아 무장경찰에 체포되고 있다. photo AP·뉴시스

아르메니아, 조지아 거쳐 이스라엘로 

하지만 이스라엘로 향하는 직항편이 없었다. 모스크바에서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과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를 차례로 경유해 이스라엘 텔아비브로 향하는 비행기표를 사야 했다. 몰도바 국적 플라이원항공, 아르메니아항공 그리고 조지아항공을 차례로 타야 하는 비행기표는 평시보다 4~5배나 더 비쌌다.

우리 가족처럼 비상 출국을 결심한 러시아인들은 줄잡아 수십만 명이었다. 비행기표를 구매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고 육상으로 출국했다. 여권이 없는 사람들은 러시아 국내 신분증으로 입국을 허용하는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아르메니아 등지로 떠났다. 심지어 내전(內戰) 중인 시리아로 대피한 러시아인이 있다는 소문까지 떠돌았다.

다행히 부모님은 푸틴의 동원령 선포 일주일 뒤인 9월 28일 성공적으로 모스크바의 브누코보공항에서 플라이원 비행기에 탑승해 러시아 국경선을 넘어 아르메니아로 출국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아르메니아 예레반에서 하루를 머문 뒤, 조지아 트빌리시를 경유해 10월 첫 번째 주말 무사히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도착했다. 출국에 앞서 친할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모스크바의 아파트는 이미 정리했다. 아파트를 정리한 돈과 부모님의 계좌에 있던 돈을 합쳐 이스라엘에 있는 여동생한테 보냈다.

사실 다른 러시아인,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피해자와 비교하면 우리 가족은 참 운이 좋다. 우리 가족 모두 살아 있고, 건강하고, 재산도 그대로 남았다. 또 심적으로 준비된 상태에서 합법적으로 러시아를 떠날 수 있었다. 가족 모두 한국과 이스라엘 같은 선진국 국적을 받을 기회가 생겼다. 지금도 전쟁의 여파로 파괴된 우크라이나에서 떠난 사람, 푸틴을 위해 살인하고 싶지 않아 러시아에서 떠나는 남자들, 특히 떠날 수 없거나 떠나지 못한 사람들의 비극적인 운명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우리 가족의 부담과 고생은 고생도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의 진짜 친구, 조지아 

한편 9월 21일 동원령 비극 이후 국제사회를 바라보는 러시아인들 역시 어느 나라 정부가 진짜 러시아 국민의 친구인지도 알게 됐다. 유럽연합(EU)은 러시아인들에게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지 않았다.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핀란드, 그리고 폴란드는 “비자가 있어도 입국이 불허될 것”이라고 선포했다. 이들의 공식 설명은 “러시아인들이 푸틴을 대통령으로 뽑았으니 외국에 나가지 말고 혁명(革命)을 일으키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들은 공산주의 시대에 소비에트연방(소련)의 구성원이었던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이상 발트 3국) 또는 공산정권이 있었던 폴란드가 왜 수십 년 동안 독재정권을 타도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냉전시기 서방이 소련과 폴란드인민공화국에서 떠난 사람들을 왜 받아들였는지에 대한 설명 역시 없었다.

일부 국가들의 정책은 달랐다. 러시아와 짧은 국경선이 있는 노르웨이는 국경선을 차단하지 않았다. 조지아, 아르메니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몽골 등도 나라의 문을 열었다. 동원령으로 살인의무를 부여한 푸틴 정권으로부터 대피하는 러시아 사람들을 환영했다. 이들 나라의 시민활동가들은 난민돕기 운동을 벌였고, 봉사에 참가한 사람들의 숫자도 적지 않았다.

이스라엘로 향하는 와중에 며칠간 조지아 트빌리시에 머물렀던 내 부모님도 환대를 받았다. 부모님이 조지아 전통양념을 사러 트빌리시 시장을 찾았을 때다. 양념을 판매하는 조지아 남성은 “조지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조지아에도 가끔 러시아 사람들에게 안 좋은 말을 하는 놈들이 있지만, 그런 쓰레기들 얘기를 듣지 마십시오. 저희는 여러분을 환영하고 사랑합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2008년에는 러시아와 조지아 사이에 전쟁에 있었다. 이 남성과 같은 조지아인들은 특히 어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전날인 2월 23일, 나와 모스크바 거리를 같이 산책하며 불꽃놀이를 봤던 후배도 러시아를 떠나 조지아로 향했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온 지 며칠 안 됐을 때 그 후배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당시 러시아에 전시상태 선포 소문이 파다했을 때다. 그녀는 국경이 차단될 수 있다고 두려워하며 “러시아에서 즉시 떠나고 싶다”고 내게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조지아 트빌리시까지 가는 편도 비행기표를 사주었다. 조지아의 비자 정책은 지구상에서 가장 개방적이다. 대부분 국가의 국민은 조지아에 방문하면 360일 동안 무비자로 거주할 수 있다. 정치적 이유로 러시아를 떠난 사람들 중에서도 조지아에 살게 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조지아에 도착한 그 후배는 나의 사촌동생 보리스 칸토로비치와 만났다. 사촌동생은 2019년 푸틴 정권을 규탄하는 시위에 참가했다가 러시아의 준(準)군사조직인 국가근위대로부터 폭행을 당한 뒤 러시아를 떠나 조지아로 망명했다. 조지아로 망명한 사촌동생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부터 우크라이나 난민을 도와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사촌동생이 세운 ‘트빌리시 봉사단’은 30만달러 이상의 지원금을 모아 우크라이나 난민 1만5000여명에게 도움을 줬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주변국에 기회 

시대마다 이 시대의 영웅들이 있다. 독일 베를린에는 ‘에미 체덴 거리’가 있다. 에미 체덴은 히틀러의 나치 군대에 복무하고 싶어 하지 않는 남성들을 자기 집에 감추어 준 독일 여성이다. 러시아의 대피자를 환영하는 나라들도 그때와 같은 활동을 하고 있다. 그들은 러시아인들도 구출하면서 러시아군의 병력 보충을 막는 방식으로 우크라이나 주민들을 돕고 있다. 

나 역시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도와주는 단체나 러시아에서 반전시위에 나갔다가 벌금형 처벌을 받은 사람들을 도왔다.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지만, 지원하는 것은 안 하는 것보다 낫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다’라는 말이 있다. 조지아, 아르메니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몽골 등 이웃 국가 국민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러시아인의 스토리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많은 블로거들은 “푸틴 정권이 종말을 맞이하면 새로운 러시아는 반드시 도와준 사람들을 잊지 않고, 어두운 시대에 구원의 손길을 뻗친 나라의 국민을 위한 기념관을 세워야 한다”는 글을 썼다.

러시아 주변 국가들의 이 같은 정책의 바탕에는 인도주의와 합리주의가 있다. 러시아인들이 고향을 떠난 이유는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었다. 설문조사를 보면 러시아 이민자의 3분의1가량은 IT 전문가들이었다. 90% 이상은 영어 구사능력이 있는 사람이란 조사도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복지대상자가 되기보다는 전문직 근로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불과 2달 만에 조지아의 국내총생산(GDP)이 11%로 성장했다는 조지아 통계청을 인용한 보도도 있었다. 조지아로 향한 러시아 이민자들의 지출이 급증하면서다.

2022년 2월 24일, ‘악인(惡人)’ 1명 탓에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시대가 개막됐다. 이 시대는 우크라이나인들은 물론 반전(反戰) 러시아인들에게도 피와 눈물을 안겨줬다. 그러나 이와 함께 이 시대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주변 국가들에 새로운 기회를 선사했다. 이 기회를 잘 사용하는 나라는 성공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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