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연수구 인천신항컨테이너 터미널에 운송을 기다리는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photo 뉴시스
인천 연수구 인천신항컨테이너 터미널에 운송을 기다리는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9월 수출은 574억6000만달러, 수입은 612억3000만달러를 기록했다. 무역수지는 37억7000만달러 적자다. 지난 4월 이후 6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누적 무역수지 적자는 288억7600만달러까지 불어났다. 1996년 기록한 최대 적자 206억달러보다 82억달러가 많다.

수입은 너무 많이 늘고 있다. 7개월 연속 600억달러 이상을 기록했다. 역시 에너지 가격 급등이 문제다. 8월의 원유와 가스, 석탄 수입액은 1년 전보다 무려 82%가 늘어난 179억6000만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수입 폭증이 무역적자가 늘어나고 있는 원인의 전부는 아니다. 무역수지가 적자로 전환된 또 다른 이유는 수출증가율이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겨우 한 자릿수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증가는 하고 있지만 폭은 갈수록 줄고 있다. 수출증가율은 7월 8.7%에서 8월에는 6.6%, 9월에는 2.8%를 기록했다.

 

반도체 수출, 한국은 감소 대만은 증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그동안 우리나라 경제를 떠받쳐온 반도체 수출의 감소다. 지난 8월 반도체 수출은 1년 전보다 7.8% 줄어서 26개월 만에 처음으로 감소하더니 9월에도 114억8900만달러 수출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5.7% 줄었다. 대만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뚜렷해진다. 5월부터 8월까지 한국의 대중국 무역수지는 넉 달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대만은 흑자 기조를 벗어난 적이 없다. 차이는 반도체에서 갈렸다.

지난 8월 우리나라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은 1년 전보다 3.6%가 줄었다. 반면 대만의 반도체 수출은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중국이 경제제재와 군사적 위협을 가하는 가운데서도 오히려 21.8%가 늘었다. 미국의 기술 통제로 생긴 중국의 반도체 공급 부족 상황이 오히려 수출 증대의 기회가 됐다.

핵심은 반도체가 흔들리면서 우리나라의 수출산업이 가진 취약점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여년간 수없이 제기됐지만, 진전을 이루지 못한 우리 경제의 숙제는 반도체산업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는 산업구조의 문제다. 이른바 ‘반도체 착시 현상’은 그동안 우리 경제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어 왔다.

따지고 보면 반도체를 제외할 경우 우리나라의 대중 무역수지는 이미 2021년부터 적자였다. 2020년에도 10대 수출품목 중에 반도체와 바이오헬스를 제외하면 다른 모든 품목의 수출이 1년 전보다 감소했다. 우리나라 경제에서 반도체산업이 가진 비중은 재론(再論)이 필요 없는 수준이다. 2021년의 경우 우리나라의 전체 수출은 6445억달러였는데 이 가운데 반도체는 1280억달러로 20%를 차지했다. 2위인 석유제품의 466억달러와 3위 자동차의 409억달러를 합친 금액보다 많다. 상공회의소에 따르면 반도체 수출이 우리 경제성장률에 기여한 정도는 2021년의 성장률 4.1% 중에서 약 1.1%포인트로 추정된다고 한다. 반도체를 제외한다면 수출은 1000억달러가 줄고, 성장률은 1%포인트가 낮아진다는 말이다.

반도체 수출 부진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는 경기에 민감한 품목이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탓에 구매력이 감소하면서 수요가 줄고 재고는 쌓이며 반도체 가격은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D램 익스체인지’는 8월 말 기준으로 D램과 낸드플래시 메모리 가격이 각각 2개월과 3개월째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올해 1분기 3.41달러였던 반도체 D램 가격은 다가올 올 4분기엔 2.5달러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 반도체 생산 지표를 살펴봐도 어려운 사정이 드러난다. 통계청에 따르면 8월의 반도체 생산 지수는 전월 대비 14.2% 줄었다. 7월에도 3.5% 감소했으니 2개월 연속이다. 감소 폭은 2008년 12월 이후 13년 8개월 만에 가장 크다. 팔리지 않는 반도체가 재고로 쌓이면서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출하량 대비 재고량의 비율은 125.5%로 2020년 5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재고 물량을 모두 합치면 30조원 규모가 넘는다고 한다. 반도체 경기가 나아지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의 무역수지 개선은 불가능하다.

 

10여년간 한국의 주력업종 바뀌지 않아

반도체는 오랫동안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반도체가 우리나라 주력 수출품목이 된 건 1980년대 후반부터다. 반도체가 처음으로 수출품목 1위 자리를 차지한 것은 1992년이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반도체는 우리나라를 먹여살리는 대표산업이 됐다.

우리나라는 수출과 수입을 합한 금액을 국내총생산으로 나눈 무역의존도가 미국의 세 배, 일본의 두 배가 넘는다. 이 때문에 우리 경제를 전망할 때 고려하는 중요한 변수는 두 가지였다. 국제 유가와 반도체 가격이다. 국제 유가를 알면 수입을 예상할 수 있었고, 반도체 가격을 알면 수출 전망이 가능했다. 3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2013년 이후 반도체의 위치는 더욱 공고해졌다. 지금 우리나라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대표되는 메모리 분야 세계 1·2위의 기업을 가진 반도체 강국이다. 수출 비중 20%를 차지하는 반도체는 우리나라 국내총생산에서 약 8%, 광공업생산에서 10%를 웃도는 비중을 차지한다. 지난 30여년간 우리 경제의 성장축이었고 앞으로도 한동안은 이런 흐름이 바뀌지 않을 것이다. 반면 한 나라, 그것도 6대 제조업 강국 중 하나인 곳의 국가 경제가 오로지 반도체 경기만 쳐다보는 모습이어서는 곤란해진다. 경기의 흐름에 민감하니, 반도체가 어려워지면 곧바로 수출이 타격을 받고 전체 국가 경제가 흔들리는 상황을 걱정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사실 정부도 반도체 의존 심화라는 우리 경제의 문제점을 알고 산업 재편의 필요성을 오래전부터 고민해왔다.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미래산업은 반도체를 포함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차세대원전, 수소, 5G·6G 통신, 첨단바이오, 우주항공, 인공지능과 로봇 등 다양하다. 유망하다고 하는 산업은 모두 망라하고 있지만 정작 신성장 동력을 찾는 작업은 아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 경제에는 지난 10여년간 제대로 된 구조조정이 없었다. 이 때문에 산업의 역동성은 계속 떨어졌고 최근 10년간 신산업의 부상 없이 이른바 10대 주력업종(석유정제, 화학제품, 철강, 금속제품, 반도체, 전자제품, 전기장비, 기계류, 자동차, 선박)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자동차와 조선, 철강, 정유와 화학 등의 산업에서는 최대 고객이었던 중국이 이제 한국의 최대 경쟁자로 떠오른 상태이기도 하다. 주력산업의 경쟁력은 하락하고 있으나 이를 대체할 신산업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심지어 반도체 기술의 경우 메모리 반도체에서만 격차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시스템 반도체 기술은 여전히 미국이 주도하고 있고 3나노 극초미세 공정 기술은 대만과 경쟁하고 있다. 언젠가 우리 반도체산업의 경쟁력이 다른 나라에 추월당할 수도 있고 세계 각국의 대규모 투자로 반도체산업의 부가가치가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런 날이 오면 반도체에 편중된 한국 제조업의 전체 경쟁력이 위기를 맞게 된다.

획기적인 사고의 전환을 요구받는 때다. 당장 정부의 R&D 투자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 2020년 우리나라의 GDP 대비 R&D 투자는 정부와 민간부문을 합쳐 4.8%로 5.4%의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였다. 하지만 숫자는 현실을 왜곡한다. 중요한 것은 ‘GDP 대비 R&D 투자 비율’이 아니라 투자의 절대 규모다. 우리나라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나라는 미국과 중국, 독일, 일본 등이기 때문이다. R&D 투자 규모에서 미국은 우리보다 10배, 중국은 6배, 일본은 2배, 독일은 50% 이상 많다. 비율을 따질 게 아니란 얘기다. 특히 중국은 기초연구비만 우리나라 R&D 예산 전체 규모와 맞먹는다.

 

혁신은 정부가 아닌 개별 기업의 몫

당연히 규모부터 획기적으로 늘려야 할 필요가 생긴다. 물론 규모를 늘린다 해도 한계는 있다. 선택과 집중이 불가피하다. 투자 대비 성과나 효율을 높여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산업정책에 대한 재검토도 필요하다. 산업정책은 정부가 산업구조를 변화시킬 목적으로 시행한다. 농업 비중을 줄이고 제조업 비중을 늘리는 것과 같은 거시 정책이 될 수도 있고,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의 특정 업종이나 특정 기업을 키우는 미시 정책이 될 수도 있다.

그간 우리나라의 산업정책은 정부가 육성하고자 하는 업종과 기업을 선정해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정부가 선택된 소수의 기업을 위해 수입품에는 고관세를 부과해 시장을 막아주고, 은행을 통해서는 저금리 자금을 공급하면서 각종 특혜를 줬던 시스템이다. 지금은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혁신성장을 이루어낼 수 없다. 게다가 특정 산업이나 기업을 찍어서 육성하는 정책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제재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할 일은 시장이 기능을 회복하고 기업이 활력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수준까지다.

선진국의 산업정책은 기존 산업에 묶여있던 노동과 자본이 원활하게 새로운 산업에 재배치될 수 있도록 노동과 금융시장의 기반을 재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혁신은 개별 기업의 몫이다. 유망산업을 모두 망라해서 조금씩 지원한다고 혁신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정부의 역할은 혁신이 가능한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있다. 사회안전망을 적극적으로 강화하면서 동시에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고, 미래산업을 정부가 찾는 게 아니라 시장이 직접 찾아 키우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이 과정에서 신산업에 부합되기 어려운 전통적 규제의 개혁이 필요하다. 규제 개혁의 과정에 반드시 필요한 게 이익집단 간의 갈등을 중재하고 관리하는 일이다. ‘타다’의 경우처럼 신기술이 등장하고 이익집단이 충돌할 때 사회적 타협점을 찾아내는 일이야말로 정부와 국회가 주도적으로 해야 하는 역할이다. 최근 무역적자의 배경에는 결국 우리 산업의 경쟁력 저하 문제가 있다. 언제까지 우리가 반도체 하나에만 기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반도체 이후 한국을 먹여살릴 다른 산업도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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