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막절을 맞아 예루살렘 뒷골목에 세워진 초막들. 유대인들은 선조들이 노예생활을 끝내고 이집트를 탈출한 것을 기리기 위해 초막절 7일간 초막을 짓고 생활한다. photo 뉴시스
초막절을 맞아 예루살렘 뒷골목에 세워진 초막들. 유대인들은 선조들이 노예생활을 끝내고 이집트를 탈출한 것을 기리기 위해 초막절 7일간 초막을 짓고 생활한다. photo 뉴시스

10월 10일부터 일주일간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외국인은 문화적 충격을 받을지 모르겠다. 대다수 주택은 물론, 관공서나 호텔에 크고 작은 초막이 세워져서다. 주로 마당이나 베란다에 초막을 세우는데, 그마저 없으면 옥상에도 설치한다. 여건이 안 되는 사람을 위해 시나고그(유대교 회당) 측에서 공동 초막을 세우기도 한다. 최대 성지인 ‘통곡의 벽’에도 대형 초막이 등장한다. 바로 이스라엘의 핵심 절기인 초막절(草幕節) 모습이다.

 

7일간 온 가족 초막 생활

초막절은 3500여년 전 모세의 인도로 430년간의 노예 생활을 끝내고 이집트를 탈출한 히브리 선조들이 40년간 광야에서 겪은 고난과 하나님(천주교에서는 하느님)의 은혜를 되새기는 데 목적이 있다. 유대인은 초막절 7일간 온 가족이 초막에서 식사하거나 잠을 잔다. 초막을 만드는 과정부터 가족친화적이다. 물론 어린이도 동참한다. 원래 감람나무, 들감람나무, 화석류나무, 종려나무 등을 재료로 사용했지만 요즘은 베니어판도 이용한다. 나무 틀에 천을 둘러 기본 형태를 만든 뒤, 바닥엔 널판지를 깔고 지붕에는 종려나무 가지를 얹는다. 다만 조건이 있다. 밤하늘의 별이 조금은 보일 정도로 열려 있어야 한다. 광야생활의 분위기를 살짝 맛보라는 뜻이다. 초막절에 종려나무 가지 수요가 늘면서 이집트에서 대량 수입도 한다. 초막 내부는 다양한 과일로 장식하고 식탁이나 의자를 가져다 둔다. 마치 크리스마스트리 같다. 가족이 둘러앉아 촛불을 켜고 음식을 먹으며 노래를 부르고 대화를 나눈다.

히브리대 박사인 권성달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 교수는 “초막을 만드는 일은 어린이에게 큰 기쁨이 된다”면서 “며칠간 초막을 함께 만들고 지키는 과정을 통해 가족의 정겨움과 끈끈함이 깊어진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조립식 초막을 파는 곳도 있지만 별로 인기는 없다. 필자는 수년 전 초막절 때 예루살렘 마밀라호텔에 머물렀는데, 식사도 기존 호텔 식당이 아니라 초막처럼 별도로 꾸민 장소에서 했다.

초막절 이틀째는 축구장이 거뜬히 들어갈 규모인 통곡의 벽 광장에 수만 명이 빽빽하게 모인다. 랍비가 구약성경 민수기 6장에 기록된 아론의 축복을 선포하는데, 사람들은 손에 종려나무 가지와 시내버들 등 네 가지 식물(아르바미님)을 들고 동서남북 흔들며 기도한다. 테러가 벌어질지 몰라 가끔씩 이스라엘군 헬리콥터가 주변을 맴돌기도 한다.

초막절이 끝나고 제8일은 히브리어로 ‘심하트 토라(토라의 기쁨)’라고 부른다. 토라는 모세 5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을 뜻하는데, 이날은 신명기의 마지막 장을 읽은 뒤 곧장 창세기의 첫 장을 읽는다. 토라의 영원성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행동이다.

사실 태음력을 사용하던 이스라엘은 태양력과의 조화를 위해 몇 년에 한 번씩 윤년을 둔다. 윤년이 아닐 경우 초막절은 우리나라의 추석날과 일치한다. 물론 근본 의미에서 차이가 나지만, 추수 감사와 가족 사랑이란 점은 비슷하다.

이스라엘은 21세기 세계 제일 하이테크 국가이면서도, 수천 년 내려온 절기를 지키는 전통의 나라다. 우선 안식일(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부터 철저하다. 안식일에는 버튼을 누르는 것도 노동이라고 보기에 주요 건물의 엘리베이터는 각 층마다 무조건 선다. 완행 엘리베이터가 된다. 그래서 “유대인이 안식일을 지킨 게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인을 지켰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절기도 비슷한 역할을 했다.

이스라엘의 7대 절기는 레위기 23장에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지시에서 시작됐다. 크게 봄의 절기 4개(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칠칠절)와 가을 절기 3개(나팔절, 속죄일, 초막절)로 구분된다. 그중에서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을 3대 절기라고 한다. 이때는 반드시 예루살렘에 와서 절기를 지키도록 했다. 이스라엘 신앙공동체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기간이다.

이스라엘의 한 랍비가 자신이 만든 초막을 소개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스라엘의 한 랍비가 자신이 만든 초막을 소개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안식일에는 엘리베이터도 ‘완행’으로

유대인의 3대 절기는 ‘출애굽 감사’와 ‘추수 감사’라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유월절은 이집트 탈출, 칠칠절은 이집트에서 나온 뒤 시내산에서 율법 받은 것, 초막절은 광야 생활 40년 등 모두 출애굽과 관련이 있다. 동시에 유대인들은 일 년에 세 번 추수하는데 유월절 시기에는 첫 보리, 칠칠절에는 첫 밀, 초막절에는 포도·올리브·대추야자·석류 등 첫 과일로 제사 드린다. 특히 사회 소외계층도 함께 축제에 참여토록 했다. 7개 절기 중에서도 가장 즐거움을 강조하는 초막절에는 더욱 그렇다. 레위기 23장 22절은 “너희 땅의 수확물을 거둘 때 밭의 가장자리까지 거두거나 수확한 후에 남겨진 이삭을 거두려고 밭으로 돌아가지 말라. 가난한 사람들이나 외국사람들을 위해 남겨 두라”라고 적혀 있다. 신명기 16장 14절도 절기를 지킬 때는 노비와 고아와 과부도 함께 즐거워하도록 해야 한다고 명령했다. 이렇게 이웃과 함께하는 것은 절기의 주요 정신이다. 그동안 코로나19로 절기 행사가 많이 위축되었지만, 이제 다시 예전 모습을 찾고 있다.

7대 절기 중에서 가장 성대한 유월절(逾越節)은 유대력 1월 14일 저녁이다. 한자와 영어를 보면 이해가 쉽다. ‘넘을 유(逾)’에 ‘넘을 월(越)’을 적고, 영어로는 ‘Passover’다. 이스라엘 백성을 풀어 주지 않고 고집 피우는 이집트 파라오에게 하나님이 내린 10번째 재앙은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든 장자를 죽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른 집은 죽음의 천사가 넘어(over) 지나갔다(pass).

유월절 다음날부터 일주일간 진행되는 무교절(無酵節)은 이집트를 탈출할 당시 무교병(Matzah·누룩을 넣지 않고 구운 빵이나 과자) 먹은 것을 기념한다. 신속한 탈출을 위해 빵을 발효시킬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에 무교병을 먹었다. 또 쓴나물을 무교병과 함께 먹는데 이는 이집트에서 보낸 고난을 상기시킨다. 무교절 기간에는 곳곳에서 누룩을 없애기 위해 대청소를 한다. 이스라엘 전역의 상점에서는 누룩이 든 모든 과자와 빵, 국수 등을 흰 종이로 덮어 버린다. 책꽂이의 책도 모두 끄집어내어 한 페이지씩 먼지떨이로 털어내기도 한다. 이런 청결한 습관 덕에 유대인은 유럽에서 전염병에 잘 감염되지 않았는데, 오히려 이 때문에 마녀사냥을 당하기도 했다.

초실절(初實節)은 무교절 기간 중에 들어 있다. 안식일이 지난 다음날, 즉 일요일이 된다. 보리의 첫 한 단을 제사 드리는 절기다.

그리고 칠칠절(七七節)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과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한다. 초실절로부터 7주가 지난 다음날, 곧 50일째 되는 날이다. ‘다섯 오(五)’와 ‘열흘 순(旬)’을 이어(5×10=50) 오순절이라고도 부른다. 신약성경 사도행전에는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칠칠절은 밀의 첫 수확을 드리는 최대 농경제다. 국내에서는 맥추절이라고도 하는데, 대맥인 보리가 아니라 소맥인 밀을 의미한다. 대부분 영어 성경은 ‘Wheat harvest(밀 수확)’라고 분명히 표기하고 있다. 칠칠절에는 밤샘 공부하는 전통이 있는데 치즈케이크 등을 먹으면서 구약성경 룻기를 읽는다.

가을 절기로 유대력 7월(티슈리)의 첫날인 나팔절(喇叭節)은 ‘로쉬 하샤나’라고 불리는 이스라엘 설날이다. 나팔 소리로 새해를 알리고 사과를 꿀에다 찍어 먹으며 “샤나 토바(좋은 새해 되세요)”라고 서로 인사한다. 유월절이 있는 유대력 1월을 새해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최근에는 나팔절 쪽이 더 유력하다. 태양력으론 2022년 9월 26일이 유대력 5783년 첫날이 된다. 유대인 학자들은 아담의 창조가 BC 3760년에 벌어진 것으로 보기에 5783년(3760+2023)이 된 것이다.

나팔절부터 열흘이 지나면 대(大)속죄일(贖罪日)인 ‘욤 키푸르’다. 과거 대제사장이 성전의 지성소(Holy of holies)에 연중 한 번 들어가는 날이었고, 거국적으로 금식하며 회개하는 날이다. 현재 이스라엘 인구의 절반 정도는 세속적 유대인인데, 이들도 속죄일만은 평소 안 가던 회당에 가기도 한다. ‘욤 키푸르’란 말은 국제뉴스에서도 유명해졌다. 1973년 10월 6일 속죄일에 아랍이 이스라엘을 침공하면서 벌어진 제4차 중동전쟁을 ‘욤 키푸르 전쟁’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설마 이런 날에”라고 방심하던 이스라엘군은 초반에 큰 타격을 입었다. 북쪽에선 시리아가 골란고원을, 남쪽에선 이집트가 시나이반도를 공격했던 것. 이후 중동의 판도는 많이 바뀌었다. 결국 1979년 캠프데이비드협정을 통해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평화조약을 맺는 쪽으로 진행이 되었다.

속죄일이 끝나고 닷새간 열심히 준비하면서 맞는 절기가 마지막 초막절이다. 물론 현재 이스라엘에서 지키는 7대 절기의 세부 내용은 토라보다는 구전(口傳) 전승에 따라 토라를 해석한 ‘미쉬나’와 이를 쉽게 풀이한 ‘탈무드’에 더 의존하는 편이다. 그래서 구약성경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도 적지 않다.

 

속죄일에 터진 4차 중동전쟁

7대 절기는 아니지만, 부림절(Purim)과 수전절(Hanukkah)은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인기 높은 명절이다. 부림절은 페르시아에 유배된 동족 유대인들을 구하려고 왕비 에스더와 사촌오빠 모르드개가 당시 유대인 말살 계획을 갖고 있던 하만의 계략을 물리친 스토리다. 지금도 부림절이 되면 에스더를 추억하듯 알록달록 예쁜 복장이 등장한다. 수전절은 BC 165년 시리아 왕조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에 의해 더럽혀졌던 성전을 되찾아 정화한 것을 기념하는 날로, 성전 촛대에 기름도 없는데 8일간 기적적으로 불이 켜졌다는 스토리가 더해진다. 2022년에도 부림절(3월 17일)과 수전절(12월 19일)은 이스라엘은 물론, 미국에서도 큰 축제로 열린다.

그러면 유대교를 뿌리로 하는 기독교는 이런 절기를 어떻게 바라볼까. 기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성경의 모든 언약과 제사를 완성했고 더 이상 율법이 아닌 은혜의 시대에 있으므로 과거의 절기는 상관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절기의 의미를 배우자는 움직임은 있다. 가령 유월절은 예수의 죽음, 초실절은 예수의 부활, 오순절은 성령의 강림, 나팔절이나 초막절은 예수의 재림을 각각 지칭하거나 상징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한발 더 나아가 국가 이스라엘의 번영을 중시하는 기독교 시온주의자들, 그리고 세대주의(종말에 교회 못지않게 이스라엘을 중시하는 신학 흐름) 신봉자들은 “예수님은 요한복음 7장에서 초막절을 지키는 등 절기를 준수했다”면서 “이제 기독교인도 이스라엘의 7대 절기를 다시 지켜야 한다”고 파격적인 주장을 한다. 물론 정통 기독교계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다.

필자는 이스라엘의 절기를 보면서, 우리나라도 과거 민족사의 아픔을 생생하게 되새기고 승화시키던 절기가 부러웠다. 지금은 각종 공휴일이 그저 노는 날로 여겨지고 있고, 대체휴일까지 생기면서 그 의미는 더욱 퇴색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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