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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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대륙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2개의 전쟁을 계기로 전 세계 주요 정보기관들 간의 ‘스파이 전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의 뉴스 웹사이트인 데일리비스트(DB)는 이를 가리켜 글로벌 정보분야에서 ‘적자생존의 시대’가 열렸다고 진단했다. 우선 하마스의 기습적인 10·7 테러공격을 사전에 막지 못한 이스라엘 정보기관들은 비난의 화살을 받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마스의 공격을 놓쳤는지에 대한 해답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10월 7일의 참담한 정보실패에도 불구, 하마스 지도부를 탐지·식별·제거하는 ‘정보 표적화(intelligence targeting)’에 관한 한 모사드·신베트 같은 정보기관의 실력은 여전히 세계 최정상급이다.

10·7 정보실패는 미국의 실패이기도 하다. 미국이 지정한 테러단체(하마스)의 손에 수십 명의 미국인이 사망했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이들의 죽음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는 성명을 발표하지 않은 것은 이례적이다. 그러나 당연히 미국의 최우선 관심사는 러시아와 중국이다. 먼저 러시아도 침략전쟁에 우크라이나가 결사적으로 항거할 것으로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정보실패를 겪었다. 설상가상으로 전쟁 직후 서방국들이 600명 이상의 러시아 외교관들(정보요원 포함)을 추방하자 해외 작전수행 능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지난해 11월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이 하르키우에서 공격을 기도하던 러시아 정보원을 체포하면서 러시아 군사정보국(GRU)은 또다시 타격을 입었다. 이와 관련, 미 국방정보국(DIA)의 스콧 베리어 국장은 전장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러시아 정보기관의 실력을 ‘F’로 평가했다. 한마디로 수준 이하란 의미다.

러시아가 허둥대는 반면, 중국의 정보기관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 크리스 레이 FBI(미 연방수사국) 국장은 최근 CBS 인터뷰에서 중국을 가리켜 “이 시대, 이 세대의 결정적 위협(the defining threat of this generation in this era)”이라며 “우리의 아이디어, 혁신, 경제안보, 궁극적으로 국가안보에 이보다 더 광범위하고 포괄적 위협을 가하는 국가는 없다”고 평가했다.

중국 베이징 국가안전부 건물. photo CNN
중국 베이징 국가안전부 건물. photo CNN

美 정보기관에 선전포고한 中 국가안전부

하버드 케네디스쿨의 칼더 월튼 교수는 지난해 7월 ‘새로운 스파이 전쟁’이라는 제목의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9·11사태 이후 미국이 글로벌 대테러전쟁에 정신이 팔려 있던 지난 2005년 “중국의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MSS)가 미 정보기관과의 전쟁을 선포했다”고 전했다. 당시 중국 국가안전부의 내부 보고서에 의하면, 중국은 미국이 중동의 수렁에 빠져 중국 정보기구의 비밀스러운 성공을 눈치채지 못한 것에 ‘환호’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중국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2010~2012년 사이에 중국 내에서 활동하던 주요 미 중앙정보국(CIA) 네트워크가 사실상 ‘전멸’한 사건을 들었다. ‘중국은 어떻게 미국의 스파이 활동을 무력화시켰나’란 제목의 기사(2017년 5월 20일 자)에 의하면, 중국 정부는 미국 CIA의 스파이 활동을 체계적으로 해체하여 2년에 걸쳐 12명 이상의 정보원을 살해·투옥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참사를 초래한 ‘정보 유출(intelligence breach)’을 수십 년 만에 최악의 사건 중 하나로 평가한다. 아직도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으나, 일부는 CIA 내부 첩자가 미국을 배신한 것으로 확신한다. 한마디로 반간(反間)이 주범으로 지목된 것이다.

미국은 지난해 2월 4일 본토 영공을 유유히 돌아다니던 ‘스파이 풍선(spy balloon)’이 발견된 사건으로 화들짝 놀랐다. F-22 스텔스 전투기가 6만피트 상공에서 공대공 미사일로 격추한 것으로 사건이 일단락되었다. 중국 외교부는 문제의 비행체가 △중국에서 발원(發源)한 것이 맞고, △민수용 성질에 속하며, △기상 등 과학연구용이며, △제트기류로 초래된 통제능력의 한계로 예정된 항로를 심각하게 이탈했다면서 ‘불가항력(force majeure)’에 의한 ‘의도하지 않은(unintended)’ 실수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수로 스파이 풍선이 미 본토로 날아왔다는 주장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일례로 비행경로를 모델링한 워싱턴대의 린 맥머디 교수는 비행체가 제트기류 같은 불가항력적 요인으로 인해 북미대륙까지 넘어왔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당시 비행체가 날아온 몬태나주 맘스트롬(Malmstrom) 공군기지는 최신예 ICBM 미니트맨-Ⅲ(Minuteman-Ⅲ) 약 150기가 위치한 초(超)민감시설이다. 문제의 비행체는 장소를 이동할 수 있는 ‘기동력(ability to maneuver)’까지 갖춰 단순한 풍선으로 볼 수도 없다. 

결론적으로, 의문의 비행체는 간첩질을 위해 날린 풍선이며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미국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NBC방송은 지난해 12월 말 복수의 미국 전·현직 관리의 발언을 인용하여 “미국 영공에 출몰했던 중국 정찰풍선이 미국 업체의 네트워크망을 통해 비행경로 결정 등 자국과 통신을 주고받았다는 정보당국의 분석이 나왔다”고 전했다. 이러한 통신방식으로 스파이 풍선이 단시간에 고대역폭의 대용량 데이터를 수집하여 중국으로 전송했다는 것이 합리적 추론이다.

영국에서도 중국 스파이 용의자가 붙잡힌 사건을 계기로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 

 

영국 뒤흔든 中 간첩 크리스 캐시 사건

지난해 9월 ‘선데이타임스’ 보도에 의하면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크리스 캐시(28)라는 이름의 영국 남성이다. 영국의 MI5는 하원 ‘중국 리서치 그룹’에 소속된 이 연구원을 ‘중국 스파이’ 혐의로 체포했다. 그는 기밀정보·민감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몇몇 의원, 그리고 톰 투겐다트 안보장관과 알리시아 컨스 하원 외교위원장 같은 고위층을 두루 접촉한 것으로 알려진다. 당국에 의하면 그의 활동은 하원에서 중국에 비판적인 매파 의원들이 무관심(apathetic)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는 전형적인 영향력 및 선동선전 전술의 일종이다. 

사안을 위중하게 인식한 영국의 리시 수낵 총리는 인도 G20 정상회의에서 중국의 리창 총리에게 공식적으로 항의하여 엄청난 외교적 파문이 일었다. 당시 총리실 대변인은 “영국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중국의 간섭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스파이 사건을 놓고 일국의 수장이 상대국에 항의하는 장면이 사태의 심각성을 방증한다.

지난해 초 ‘글로브앤드메일(Globe and Mail)’은 캐나다 정보기관 보고서를 인용하여 중국 정보기관이 저스틴 트뤼도 총리를 집권시키고 중국 이익에 적대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보수당 의원들을 낙선시키기 위해 ‘영향력 공작’을 펼쳤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노력에는 출처불명의 정치 후원금과 중국 유학생들의 선거운동 자원봉사 강요 등이 포함되었다. 이는 중국이 지난 수년간 호주 의회에 침투하여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성공한 사례와 판박이다.

이런 종류의 침투는 인도 언론에 등장한 뉴스에 비하면 약과에 불과하다. 일례로 지난해 9월 타임스오브인디아에 실린 ‘의문의 가방들을 둘러싼 12시간의 드라마’란 제목의 기사에 따르면, 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뉴델리의 타지팰리스호텔에 도착한 중국 대표단이 ‘의심스러운 장비’가 담긴 가방 20개를 보안 검색대에 올리지 않아 호텔 보안 직원과 12시간 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이 호텔은 브라질 대통령의 숙소로 사용되었으며, 바이든 대통령이 묵고 있는 ITC마우리아호텔과도 매우 가깝다. 결국 중국 측이 장비를 인도 주재 중국대사관으로 가져가기로 합의하면서 소동이 마무리되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중국이 서방세계를 표적으로 삼는 대담한 작전의 수행에 주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호주의 알렉스 조스케(Alex Joske)가 2022년 출간한 ‘스파이와 거짓말(Spies and Lies)’이라는 저서가 자세히 설명했듯이, 중국 국가안전부는 “통일전선 네트워크, 비즈니스 제국, 공공외교, 대학과의 공생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

지난해 10월 중국의 스파이 활동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모임을 가진 ‘파이브아이스’ 정보기관 수장들. photo The Print
지난해 10월 중국의 스파이 활동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모임을 가진 ‘파이브아이스’ 정보기관 수장들. photo The Print

중국에 포섭된 벨기에 극우 정치인

중국의 비밀요원이 3년 이상 돈을 미끼로 벨기에 극우 정치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온 사건은 또 다른 충격을 주었다. 이는 중국이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정치적 지형이 형성되도록 어떻게 영향력 공작을 벌이는지를 보여준다. 

지난해 9월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의하면 중국 국가안전부 소속의 장교인 다니엘 우(Daniel Woo)는 전 벨기에 상원의원이던 프랭크 크레이엘만을 통해 중국의 홍콩 민주주의 탄압부터 신장의 위구르족 학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슈에 대한 유럽 내 논의에 영향을 미치도록 조종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2022년 말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었을 때, 다니엘 우는 크레이엘만에게 유럽 의회의 우파 의원 2명을 설득해 미국과 영국이 유럽의 에너지 안보를 약화시키고 있다고 공개 발언을 하도록 요청했다. 그가 크레이엘만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는 “우리 목적은 미국과 유럽의 관계를 분열시키는 것”이라고 적혀 있다. 뿐만 아니라 다니엘 우는 그레이엘만에게 대만에서 개최되는 회의를 방해하는 데 도움을 요청했고, 문제의 두 사람은 중국이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국제적 압력을 받는 상황에서, 모(某) 가톨릭 추기경이 코로나19를 정치화하지 말도록 브로커에게 돈을 먹이는 방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미 정보당국은 이런 메시지가 중국 국가안전부의 전형적인 정치적 영향력 공작의 특징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주목되는 것은 싱크탱크인 제임스타운 책임자이자 전직 CIA 방첩담당관 출신의 피터 제임스 같은 전문가들의 관점에서 상기 사건이 중국 정보기관의 특징, 즉 국가안전부가 어떻게 지역별 지부에 자율성을 부여하는지를 잘 보여준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중국공산당과 국가안전부가 방향을 제시하지만, 구체적 실행 방식은 각 정보요원과 그의 끄나풀(sources)들에게 맡기는 것으로 보인다.

하버드대 월터 교수에 의하면, 서방과 미국에 대한 정보공격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린 중국은 시진핑 치하에서 세계 제1의 ‘사이버도둑(cyberchief)’으로 등극했다. 이와 관련 더타임스는 지난해 9월 ‘세계 제패를 노리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중국’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중국이 세계 최대 규모의 지식재산권 도둑질로 최근 들어 연간 6000억달러의 부당이익을 취한다고 분석했다. 중국 국가안전부의 일차적 임무는 중국을 세계 최고의 군사·경제 대국으로 만들고, 기존의 기술지형(technological landscape)을 뒤엎어 타국이 미국의 기술이 아니라 중국의 기술에 의존하도록 만들려는 시진핑의 중국몽을 실현시키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시진핑 체제에서 통과된 일련의 엄격한 국가보안법을 통해 중국 기업들이 정보기관의 요구가 있을 때마다 반드시 협조하도록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사실상 모든 기업활동과 간첩활동을 융합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에 있어 인재 양성 프로그램과 문화 교류는 이름만 바꾼 스파이 활동이다. 또한 중국은 서방국에 있는 중국인 커뮤니티(차이나차운 등)를 악용하여 표적으로 삼은 인물의 협박 또는 중국 내 가족 위협 같은 비열한 방식으로 정보를 넘기도록 압력을 가한다. FBI에 따르면 시진핑 체제에서 세계 최고의 사이버도둑이 된 중국은 다른 모든 국가들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미국인의 개인 및 비즈니스 데이터를 훔치고 있다. 2021년 FBI는 12시간마다 새로운 중국 관련 방첩 수사를 개시한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2023년 7월 영국 의회 정보 및 안보 위원회는 중국 정부가 영국 경제의 모든 부문에 침투했다고 보고했다.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중국 정보기관도 서방 정보기관이 준수하는 규칙과 전혀 다른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 미국·유럽의 스파이 기관과 달리 중국 국가안전부는 법치주의나 독립적인 정치적 감독을 받지 않는다. 중국 국가안전부는 중국 인민에게 공개적 책임을 지거나 자유 언론의 감시를 받지 않는다. 이러한 차이점 때문에 중국의 간첩활동이 대수롭지 않다는 식으로 폄하하는 데 자주 사용되는 “모든 국가가 스파이 짓을 한다(all states spy)”는 식의 표현은 위험할 정도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서방국과 달리 중국·러시아 정보기관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의미한 방안은 거의 없다. 실제로 중·러의 정보활동은 작전의 효율성 면에서만 제한을 받는다. 즉 빠져나갈 수 있는 범위가 거의 무한대라는 의미다.

오늘날 서방세계와 중·러 같은 수정주의 국가들 간의 신냉전에서 스파이 활동 측면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정보 갈등의 ‘극명한 비대칭성(stark asymmetry)’이다. 냉전시기 미국·소련은 컴퓨터를 사용한 정보수집의 산업화를 통해 서로의 암호체계(crytology)를 공격했다. 오늘날 스파이 활동은 지상·해저·성층권, 심지어 우주로까지 확대되었다. 구냉전 시기 서방 첩보기관이 ‘철의 장막’에 가려진 폐쇄적 경찰국가에 대한 신뢰할 만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웠지만, 오늘날 신냉전 시기에는 오웰식 국내 감시 시스템을 갖춘 중국·러시아에서 효과적으로 활동하기가 훨씬 더 어려워졌다. 반면 중·러는 과거 소련이 그랬던 것처럼 개방적·민주적 및 자유로운 서방 사회에서 기밀을 훔치는 것이 비교적 용이하다.

 

‘파이브아이스’ 스파이 수장들의 모임

지난해 10월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 5개국으로 이뤄진 ‘파이브아이스(Five Eyes)’ 국가들의 정보기관 수장은 미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대학에서 ‘신흥기술 안보회의’를 열었다. 회의 목적은 ‘중국이 제기하는 경제 스파이 행위의 위협에 공동대응’. 당시 크리스 레이(Chris Wray) FBI 국장은 중국을 가리켜 “이 시대, 이 세대의 결정적 위협(the defining threat of this generation in this era)”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의 FBI, 영국의 M15, 그리고 호주·캐나다·뉴질랜드 정보기관 대표들이 특정국의 정보위협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모인 것은 처음이다. 한마디로 중국이 시도하는 ‘기밀 도둑질’을 사전에 탐지 및 저지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방첩기관의 스파이 사냥꾼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회의 장소로 실리콘밸리가 위치한 스탠퍼드대학을 고른 것도 전략적 선택이었다. FBI는 미국의 첨단기술 도둑질에 초점을 맞춘 중국 간첩들의 절반 이상이 ‘베이 지역(Bay Area·샌프란시스코 중심의 광역도시권)’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파이브아이스 정보 책임자들의 최대 우려는 중국이 서방의 인공지능(AI)을 노린다는 점이다. AI는 각국이 정보 수집·분석을 개선할 수 있는 기술이며, 향후 수년간 경제적 이익 창출의 원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회의가 열릴 무렵,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AI 개발에 사용될 수 있는 첨단반도체의 중국 수출·판매를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FBI의 레이 국장은 중국이 미국의 기술 노하우를 도둑질한 다음, 도둑질한 지식을 사용하여 더 많은 것을 도둑질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대규모 해킹에 써먹기 위해 인공지능을 사용하고 있다. 사실상 우리가 개발한 기술을 역으로 사용하여 우리 것을 더 많이 훔치려 한다”고 덧붙였다. 정보 책임자들에 의하면 중국은 해킹, 중국 유학생들에 대한 회유·압력, 서방기업 정보원, 서방기업과 합작투자 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AI 같은 핵심기술 도둑질에 혈안이 되어 있다. 중국이 AI에 꽂힌 이유는 AI가 국가안보와 경제발전 모두를 송두리째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AI보다 더 중요한 이슈가 있다. 일례로 파이브아이스 회원국인 캐나다 안보정보국(CSIS)의 데이비드 비뇨(David Vigneault) 국장은 “중국이 게임의 룰을 바꿨다(changed the rules of the game)”는 사실을 서방국 정부·기업들이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의 법률이 전 세계 어디에서든지 자국민이 중국 정보기관에 정보를 제공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말하자면 중국공산당은 필요하면 언제·어디서건 중국인들에게 “비밀을 누설하도록 강요할 수 있는 방법”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미 정보당국은 중국공산당이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에게 규칙을 강요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본다. 그래서 미 법무부는 반체제 인사들을 겨냥한 감시·협박·납치 등에 악용될 수 있는 중국의 ‘불법 해외 경찰서(illegal overseas police stations)’를 폐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게임의 룰’ 자체를 송두리째 변화시킨 중국의 스파이 활동은 전혀 새로운 차원의 위협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미·중 스파이 기관들 간의 경쟁을 냉전시대 미국의 CIA와 소련의 KGB가 벌이던 ‘유령 게임(a game of ghosts)’에 비유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주목할 만한 차이가 있다. 중국은 소련과 달리 AI 같은 신기술을 이용하여 소련이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미국 정보기관에 도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중국의 국가안보국은 군사용·민간용 기술을 개발하는 미국 기업에 대한 정보 수집을 강화하고 있으며, 중국공산당은 몇 년 전과 달리 AI, 양자컴퓨팅, 생명공학, 로봇공학, 암호학 및 기타 첨단도구를 개발하는 중국 기업에 대한 데이터 수집에 자원을 쏟아붓고 있다. 오늘날 중국은 상대국의 재래식 군사력이나 지도부의 전략계획 못지않게 신흥기술에 대한 정보를 중요시한다. 미국도 2021년 ‘중국임무센터(China Mission Center)’ 신설 등의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이런 노력이 여전히 부족하며, 중국의 기업·군대가 미국 정부가 놀랄 정도로 혼연일체로 변모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냉전시대 ‘유령 게임’에서 달라진 것들

시진핑 치하에서 중국 정보기관의 스파이 활동은 강력한 국가안보의 초석이라는 점이 뚜렷하게 부각되었다. 일례로 2022년 10월 중국공산당은 국가안전부 수장인 천원칭(陳文淸·경찰 출신)을 24명으로 구성된 정치국 위원으로 승진시켰다. 이는 수십 년 만에 최초로 스파이 수장이 정치국 위원에 오른 일대 사건이다. 국가안전부는 미국의 CIA(해외분야)와 FBI(국내분야)의 권한·책임이 결합된 강력한 권위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다. 승진한 직후 천원칭은 시진핑을 ‘핵심’ 지위로 부르며, 모든 직원들에게 “진심으로 충성하라”고 강조했다. 이로써 중국 스파이 기관이 정권수호의 최전방 돌격대라는 점이 더욱 분명해졌다. 

파이브아이스 국가들이 중국을 “전례 없는 위협”으로 규정하며 날을 세우자, 중국 국가안전부도 최근 자국 방산업체에 근무하던 제3국 국적의 황(黃)모씨가 영국 MI6의 사주를 받아 중국 내에서 간첩활동을 벌인 사건을 적발했다고 공개했다. 중국은 지난해 7월 ‘반간첩법’을 제정한 이래 더욱 공격적으로 간첩행위 의심자들을 잡아들이고 있다. 중국전문가인 경희대 주재우 교수에 의하면 반간첩법의 목적은 “사이버공간과 외국, 외국인을 망라하고 중국 공산 정권에 도전하는 모든 개체와 세력에 대한 처벌”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사정은 어떠한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넘긴 것에 대한 비판이 높지만 보다 근본적 문제는 우리 실정법의 허점이다. 간첩죄는 형법 제98조(간첩), 군형법 제13조(간첩) 등에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형법 제98조의 간첩죄는 적국(敵國)을 위해 간첩 활동을 해야 적용할 수 있는데, 북한은 헌법상 국가가 아닌 반국가 불법단체에 불과하다. 그래서 법규 적용에 한계가 있다. ‘간첩’을 ‘간첩’으로 부르지도 못하는 지금의 상황은 절대로 정상이 아니다. 최근 대만 잠수함 제조업체가 한국의 대우조선해양에서 유출된 기술로 자국 내 잠수함을 제조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우리도 모르는 사실을 대만 국회의원이 알려줬다고 한다. 우리 정보기관은 뭐하고 있었느냐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산업스파이’ 사건이 총 96건이었다. 반도체·디스플레이·자동차·이차전지 등이 표적이다. 그러나 기술 유출은 핵심 정보를 다 털린 뒤에 늦게 발각된다. 앞으로 기술 유출 범죄는 개인적 일탈·범죄가 아닌 국가 차원의 제도적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신냉전 스파이 전쟁 시대에 우리 정보기관의 각성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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