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다시 ‘정책’ 논의는 보이지 않는다. 4·10 총선까지 50여일이 채 남지 않았지만, 국회 각 정당 지도부와 총선 출마자들은 당내 공천과 계파 간 신경전, 여야 비위 지적에만 열을 올릴 뿐이다. 유권자가 뒷전이 됐던 지난 대선, 지방선거 당시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게다가 이번 총선을 앞두고는 정책 기조에 대한 숙고 없이 표심 따라 이합집산하는 양당 정치인들의 모습만 두드러지는 모양새다.
이에 정치에이전시를 표방한 비영리단체 ‘뉴웨이즈(NEWWAYS)’는 지난 2월 17일 양당을 제외한 제 3지대 정당 대표 및 부대표를 초청해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구체적으로는 녹색정의당의 김유리 부대표, 새진보연합의 오준호 공동대표, 진보당의 홍희진 공동대표 등을 불렀다.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의 경우 토론회 당시 합당을 이룬 상황이었지만, 당 내부 사정으로 전날 불참을 선언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수도권 내 2030세대 무당층 유권자 100여명도 참석해 각 정당 대표자들에게 직접 정책 관련 질의를 하는 시간도 가졌다. 뉴웨이즈의 박혜민 대표는 “정치권에선 2030세대 무당층을 캐스팅보터 혹은 스윙보터라 일컫는데 사실 이들은 자기들만의 기준을 세우고 뽑고 싶은 사람을 뽑는다는 점에서 보다 적극적인 의미의 ‘퓨처 보터’라 명명하는 것이 맞을 것”이라며 “이번 토론회에 별도로 초청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토론회는 2시간 넘게 진행됐으며 정당별로 제한된 시간 안에 기후위기, 저출산·고령화, 수도권 과밀화 및 지방 소멸, 2030세대 등의 주제를 논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주간조선은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 및 출마 후보자들의 정책 논의가 부각될 필요가 있다는 판단하에, 이날 거론된 내용 중 일부를 대담회 형식으로 뉴웨이즈 측과 함께 재구성했다. 여기에는 현 정치권이 총선을 앞두고 당장 고민해야 할 지점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

홍희진 진보당 공동대표(이하 홍)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평등한 서울’이란 슬로건을 내걸었다. 지금의 당정이 이야기하는 메가 서울과는 정반대되는 내용이다. 지역 소멸을 해결해 주겠다며 서울 같은 메가시티를 다른 곳에 또 만들어주겠다는 식의 접근은 유효하지 않는다는 점을 담고 있다. 메가시티를 여러 곳에 형성하는 게 아니라 어느 지역에서든, 그 지역이 메가시티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는 지역이 되는 게 우선이라 본다. 사무직의 남방 한계선은 성남 판교, 기술직은 용인이다라는 말도 있지 않나. 결국 수도권에 모든 경제력이 집중돼서다. 돈이 몰리면 거기에 일자리가 생기고 일자리가 생기면 청년들이 찾는다. 한국형 지역재투자법, 공공지역은행 설립 관련 법안 신설 등이 필요하다.”
오준호 새진보연합 공동대표(이하 오) “세 가지 측면에서 논해보려 한다. 마찬가지로 지방에 머물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전 국민 기본소득 지급과 함께 재생에너지 발전에 따른 햇빛배당, 바람 배당 등으로 부를 분배해 그 조건을 만들 수 있다. 두 번째, 지방의 산업·행정이 수도권과 경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수도권에 끌려가지 않는 산업 특화가 필요하다. 이 점에선 오히려 메가시티 전략이 효과적이다. 교육 정책도 마찬가지다. 국내 유일의 활주로를 설치해 항공 부문에서 특화 교육을 하는 충남 태안의 한서대와 같이 특화된 교육기관이 유치돼야 한다. 또 지방 대학을 권역별로 묶어 연합 입시를 치르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세 번째, 지방의 부가 유출되지 않게 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지역 공공기관들이 각자의 조달력을 활용해 지역 내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토록 하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역 공공은행 설립으로 지역 내 자본이 다시 지역 경제에 투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와 관련한 일례로는 미국의 노스다코타 공공은행이 꼽히기도 한다.”
김유리 녹색정의당 부대표(이하 김) “녹색정의당에선 1호 공약으로 지역 소멸 관련 5대 약속을 제시하기도 했었다. 몇 가지만 이야기하자면 앞서 언급됐듯 특별법 입안으로 지역 공공은행을 설립해 산업 및 금융 자본이 지역 소상공인과 협동조합에 흘러 들어가 저금리 대출이 가능케 하고, 이것이 궁극적으로는 지역 일자리 형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봤다. 또 지방대 무상교육 실시, 최근 이슈이기도 한 지역 공공의대 및 공공병원 설립으로 삶의 여건을 끌어올리는 게 우리가 구상한 정책이다. 이 모든 것을 포함한 지역 전반의 인프라 강화를 위해선 현 지방교부세 법정률인 19.24%를 상향 조정하는 것이 필수다. 재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실현하기 어렵다. 다만 이 과정에서 공항 설립 등의 무조건적인 토건 사업이나 수도권으로 진입하는 교통편의 확대 등의 시도는 지양해야 한다. 인접 지역 간 교통 인프라 강화 등이 우선이다.”
김 “저출산 정책이란 것 자체가 굉장히 지엽적이다. 인구 정책이란 것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일자리, 주거, 노동 안정 등 삶의 필수 영역인 것들이 확보되지 않으면 저출산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연금 문제 또한 마찬가지다. 보통은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이 두 가지 인상안을 두고 치열한 논의를 벌인다. 미래 세대 부담이 커지니 보험료율은 인상하자는 입장, 반대로 소득대체율을 올리거나 다층적인 다른 연금제도를 부수적으로 만들자는 입장 등이다. 일부 청년 중에는 국민연금을 못 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논의가 과연 효용이 있겠나. 중요한 건 삶의 전반적인 조건을 개선하는 거다. 접근 자체를 달리해야 한다.”
홍 “공감한다. 보험료율 등 인상 폭을 두고 줄다기리만 할 뿐 정작 새로운 상상은 못하고 있다. 진보당에선 사업주와 가입자가 일대일로 부담하는 연금 구조에 국가가 개입해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결과적으론 연금 부담 비율을 가입자와 사업자, 국가가 1대 1대 1로 취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독일과 벨기에에선 이와 같은 방식으로 국고 보조를 연동해 국민연금을 보장하고 있다. 지금의 연금제도가 변화하는 일자리 시장에 적합하지 않다는 점도 상기해야 한다. 평생직장은 옛말이 됐고 프리랜서, 비정규직 등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가 생겨나고 있다. 연금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 또한 주요 과제다.”
오 “생산가능인구 증대로 당장의 정책적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본다. 여성, 노인 등 구직을 단념한 비경제활동 인구를 경제활동 인구로 전환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배우자 출산휴가, 육아휴직 강화, 급여 증대 등으로 일과 돌봄 측면에서 남녀 분담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중산층이 매력을 느낄 만큼의 양질의 보육 시설 확대가 필요하다. 그리고 좀 더 적극적인 노동 정책이 수반돼야 한다. 취업이나 직업 훈련을 개인에게만 맡기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한국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0.5%가량이다. 1%가 훨씬 넘는 선진국들과 대비된다. 65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현 정부가 제공하는 일자리만 봐도 대부분이 저임금 직무다. 생산가능인구가 유지돼야 저출산에 따른 연금 고갈 압박 또한 줄어들 거라 본다. 동시에 집중해야 할 게 있다면 AI(인공지능) 기술 혁신, 이를 활용한 인력에 대한 투자로 생산성을 높이는 일이다.”
2030세대가 겪는 일자리·주거 등 불안전성은 어떻게 최소화할 수 있다고 보나.
홍 “최근 화두가 됐던 전세 사기 피해가 2030 세대의 불안전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라 본다. 결국 두 가지 접근이 필요하다. 경제적 측면에서의 안정감 부여, 사회적 고립에 따른 우울·불안감 해소다. 전자와 관련해선 실업급여, 이직급여 지급 외에도 국민연금 의무 가입, 고정금리 소액 안전 대출, 월급 300만원 보장 등을 골자로 한 이른바 ‘청년 추락 방지 세트’를 당에서 고민하기도 했다. 후자와 관련해선 코로나19 확산 시기를 거치며 이른바 ‘조용한 학살’을 겪는다는 1990년대생에 집중했는데, 이들의 자살 시도율은 상대적으로 높다. 청년 스트레스 센터 설립 등 네트워킹을 통한 고립감 해소 등이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본질적으론 각 청년들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잘 살 수 있는가에 사회가 제대로 답을 줄 수 없었기 때문이라 본다. 2030 세대 불안전성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으며 이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오 “그래서 우리는 모두에게 기본을 보장하는 복지사회를 모토로 삼고도 있다. 청년뿐 아니라 모두의 보편적 삶의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관점이다. 기본소득 정책 또한 이런 맥락에서 거론하고 있다. 혹자는 기본소득을 줘봤자 청년들이 노량진 학원 등에 다 쓸 거라 소용없는 짓이라 하는데, 기본소득 사회가 지금의 사회와 같을 거라 상상하면 안 된다. 삶의 존엄을 노후까지 보장하는 기본소득 사회가 된다면 청년들부터가 더 다양한 기회, 디딤돌을 찾아 움직일 거다. 각종 수당 지급 또한 이런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김 “개별 정책이 아닌 공공의 영역에서 책임 있는 돌봄 체계, 생애주기별 국가 서비스가 만들어질 때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청년 본인들의 정치 참여도 물론 중요하다고 본다. 필요 정책을 요구하고 입안될 수 있도록 지속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김 “녹색당과 정의당이 지난 1년간의 연합과정에서 깊이 고민한 안건 중 하나다. 기후위기는 온실가스 감축 등의 ‘대응’, 그리고 이미 일어나고 있는 문제이기에 이에 발맞춘 ‘적응’이라는 두 축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본다. 대응 정책에서 중요한 건 에너지 전환이다. 산업 전반을 봤을 때 화석연료를 대체할 기술은 충분하다. 다만 기존 산업 간 이해관계로 이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최하위 수준에 머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결국 시장의 논리가 아닌 공공의 영역에서 국가가 직접 에너지 산업을 관리해야 한다. 2022년 8월 폭우로 서울 관악구 반지하 주택에 살던 일가족이 숨진 사건을 기억할 거다. 기후위기가 주거권 등 국민의 삶과 직결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녹색정의당에선 이를 주거권과 연결 지어 1인 3주택 소유를 제한하고, 그 이상의 주택은 공공이 매입해 그린 리모델링 등을 거친 공공임대주택 등 건립안을 검토한 바 있다. 주거권은 헌법에서도 보장하고 있지 않나. 에너지 효율을 확대하고 또 다른 기후위기 참사를 막기 위한 방안이다.”
홍 “우리도 비슷한 관점이다. 온실가스 감축 방안이 없는 게 아니다. 이를 모른 척하는 게 문제다. 관건은 의지다. 앞선 논의에서 더 나아가 짚고 싶은 점은 기후위기가 곧 불평등 문제와도 연결된다는 점이다. 일련의 위기는 앞서 언급한 사례처럼 취약계층에 더 큰 영향을 준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전기, 물, 가스 등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공이 책임지고, 보편 공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궁극적으론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이것을 무상에 가까운 수준으로 공급해야 한다고 본다.”
오 “좀 더 구체적인 대안을 내보려 한다. 탄소 배출 행위를 우선적으로 줄여야 하는데 그 우선 방안이 탄소세 부과다. 다만 탄소세 부과에 따른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 거둬들인 세수의 일부는 기후 배당으로 나누는 식으로 진행하면 기후위기를 늦출 수 있다고 본다. 저소득층은 오히려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이미 용혜인 새진보연합 대표는 이와 관련한 법안을 발의한 상황이다. 당에선 2035년까지 전력 부문에서 RE100(기업 사용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을 달성하고 이와 관련한 재원은 기후채권 발행 등으로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각 지자체들을 대상으론 풍력 및 태양광 발전부지 제공을 의무화해 과감한 투자, 그리고 정의로운 분배를 실현토록 해야 한다고 본다.”
오 “사실 국회 내 발의 법안이 적은 건 아니다. 이슈가 터지면 이와 관련한 수백여 개의 법안이 올라온다. 그러곤 입법 경쟁을 벌이곤 하는데 문제는 정작 합의 절차를 밟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적대적인 정치가 여전히 지속돼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결국 원내 정치 세력이 다원화돼야 한다.”
김 “공감한다. 인종·성·종교·계급 등 여러 기준으로 분화된 집단이 각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이른바 ‘정체성 정치’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진 않지만, 적어도 국회의 구성이 우리 인구 구성과 어느 정도 닮아야 한다. 지금은 그러지 못하고 이것이 결국 매 선거마다 정책 외면을 불러온다고 본다.”
홍 “결국 표심 정치만을 행해서다. 사실 일련의 정책 논의는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안정적으로 영위할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하지만 표심에만 집중하다 보니 정책이 논의된다 해도 모두 파편적이며 정책 간 시너지를 기대하기 어렵다. 국민들 입장에선 정치 효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오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면 이런 장면이 있다. 반란군과 진압군이 동시에 올라오는데 진압군이 지속해서 망설이다 결국 때를 놓쳐 비극을 맞는다. 정치도 마찬가지라 본다. 앞서 논의된 주제들처럼 사회 곳곳에 적재된 문제가 많다. 이를 적기에 개혁해야만 사회가 나아질 수 있다. 이번 총선은 이를 할 수 있느냐 못하느냐를 결정하는 기로라 본다.”
김 “현재 우리가 절망의 시대에 있다는 진단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여기서 정치가 혐오의 대상이 되고 다수가 무력감을 느낄 때, 그래서 정치에 등을 돌릴 때 이 사회는 기득권이 원하는 대로 굴러가게 된다. 정치를 이렇게 전락시키는 곳이 어디인지 면밀히 살펴줬으면 한다.”
홍 “당이 어떤 고민으로 무슨 정책을 준비하는지 보일 수 있는 자리가 더 생겨났으면 한다. 유권자들의 생활을 바꾸는 정치를 하겠다. 지켜봐 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