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화제다. 제목이 시사하듯이 주인공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다. 그는 우리에게 대체로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두고도 “아예 보지도 말라”는 주장까지 난무한다. 물론 “보지 않고는 말하지 말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해방 공간은 국내외 정세가 요동치던 험악한 격랑이었다. 그런 격랑을 헤치고 이 전 대통령이 반도의 반쪽에 어렵사리 세운 나라가 오늘날 번영을 구가하는 대한민국의 시초다. 과연 번영의 과실은 자랑하면서도 그 시초를 부정하는 것이 온당한가. 마찬가지로 그 시초를 만든 사람을 폄훼만 하는 것이 능사인가. 아마 이런 반성이 ‘건국전쟁’ 흥행의 배경일 것이다.
아무 선입견 없이 이 전 대통령의 삶을 더듬어보면, 그가 얼마나 다양한 면모를 지닌 인물인지 알 수 있다. 그는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이자, 국제정치학자이자, 정치가다. 특히 고종 폐위 음모에 연루된 혐의로 5년 7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20대를 거의 옥중에서 보냈다. 거기서도 활발하게 논설을 썼다. 석방된 후 미국에 건너가 대학에 진학해 공부했다. 한편으로 활발하게 독립운동도 했다. 프린스턴대학에서 국제정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또한 그는 몇 권의 책을 쓴 저술가다. 그중에서도 그의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난 것이 바로 ‘일본의 가면을 벗긴다’(Japan Inside Out·1941)이다. 이 책은 일본인의 정신 구조와 당시 국제 동향을 종합해 볼 때 일본이 곧 미국을 공격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당시 미국에는 일본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이 풍미하여, 그의 경고에 귀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책이 나오고 넉 달 후에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자, 이 책은 비로소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영어로 쓰여져 미국에서 발간된 이 책의 청중은 미국인이다. 저자는 미국인들에게 일본의 폭주에 대해 좀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라고 호소한다. 그것이 미국의 안전과 세계의 평화를 위한 일이라고 강조한다. 물론 그의 가슴속에는 조선의 독립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당시 이미 그는 국제적으로 얽힌 일을 도모하려면 미국 조야의 여론을 움직여야 한다는 점을 인식했다. 아무런 힘이 없었던 그는 펜으로 미국 조야의 여론을 움직여보려고 한 것이다.
일본은 천황 숭배의 신도사상으로 무장한 나라다. 문제는 그것이 단순한 사상이나 종교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천황 통치하에 전 세계를 굴복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천황을 위해 자기 몸을 희생하는 애국자는 자동적으로 완전한 신이 된다고 믿는다. 이런 신비주의적 신도에 근거하여 그들은 극단적 애국심과 결합된 특이한 전쟁 심리를 발전시켜 왔다.
그러한 심리가 실질적 전쟁 준비와 맞물려 위험한 상황에 이르렀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미국, 영국, 일본 등은 해군 군축회담을 개최하여 해군력 상한선을 두었다. 그 밖에도 미국·일본을 비롯해 여러 나라가 중국의 독립을 보장한다는 협약을 맺었다. 하지만 1935년 무렵 비밀리에 전쟁 준비 태세가 최고 목표치에 달하자, 일본은 가면을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다른 나라들과 맺은 모든 조약을 파기하고 무방비 상태에 있는 중국을 침공했다.
이 전쟁의 피해는 중국인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있다. 중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도 피해를 입었다. 일본군은 외국 기자들을 구금하고 추방했다. 외국 선교사들도 내쫓았다. 실제로 많은 미국인들이 전쟁에 휘말려 있다. 심지어 일본군은 양쯔강에서 미국 전함을 공습·격침하기까지 했다. 이렇듯 전쟁의 불길은 점점 커지고, 점점 미국에 가까워지고 있다.
특히 저자는 중국 내 미국인이 처한 상황을 본토 미국인들에게 아주 감성적으로 전달하려고 한다. “중국인에 대한 이 전쟁(중일전쟁)은 백인종에 대한 전쟁이기도 했다. 일본인들은 미국인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들까지도 뺨을 후려갈기고, 발길로 차고, 폭탄으로 위해를 가했다.” 또한 미국인들이 민감하게 여기는 언론 및 종교의 침해 사례를 다양하게 소개한다.
사실 지난 30여년간 미국은 일본과 평화적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최근까지 그리 심각한 충돌은 없었다. 하지만 일본이 각종 조약을 차례차례 파기하고 중국을 침략했다. 자신들의 야욕을 확대하는 데 방해가 될 만한 미국과의 충돌도 불사할 조짐이다. 이제 미국은 일본의 도전에 응전할 것인가, 외면할 것인가 하는 기로에 서 있다. 하지만 조금도 머뭇거릴 이유나 유가 없다. 군사력을 증강하고 일본을 군사적으로 막아서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호소다.
저자는 이즈음 상하이, 인도차이나, 홍콩, 버마, 네덜란드령 동인도제도, 태국, 필리핀 군도, 괌, 하와이, 알래스카, 호주, 멕시코,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 각지의 전쟁 관련 동향을 간략하게 분석한다. 또한 다양한 전장 사례도 제시하고, 각종 국제회담 내용도 알기 쉽게 소개한다. 당시 한국인으로 이만한 국제적 정보와 시야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특히 저자는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벌인 선동·선전 활동에 주목한다. 일본의 거물 정치인이 아예 미국에 눌러앉아 미국 대통령과 개인적 친분을 나누며 선전 활동을 총괄한다.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학자나 기자를 전선이나 본국에 초청하여 향응을 베푼다. 일본적 아름다움을 다루는 신문이나 잡지 기사가 넘쳐난다. 어디를 가나 일본인들이 주최하는 파티가 열린다.
한편 미국은 투쟁적인 평화주의자, 반전주의자들이 많은 나라다. 그들은 무턱대고 전쟁을 반대한다. 전쟁이 무조건 악한 것이라면 워싱턴 기념비나 링컨 기념관도 다 부숴버려야 한다. 평화를 신봉한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국가를 위해 싸우지 않겠다는 사람은 간첩이나 마찬가지다. 일본의 선전 공세와 평화주의자들로 인해 미국은 일본의 야심을 모르고 있다.
임박한 전쟁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 대 전체주의의 대결이다. 독일·이탈리아가 유럽 대륙을 석권하고, 일본이 중국과 아시아를 점령하고 있다. 미국은 민주주의의 작은 섬으로 고립되어 있다. 민주주의 국가들은 너무 늦어서 소용없어질 때까지 방어적 자세를 고수하는 경향이 있다. 이제라도 미국이 군사적으로 나서서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
이 책이 나온 1941년은 세계대전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무렵이다. 그때 한국인이 국제적 감각을 발휘하여 영어로 미국인들을 상대로 이런 논설을 썼다는 것이 놀랍다. 특히 엄청난 전쟁의 도래를 정확히 예견하고, 그것을 민주주의 대 전체주의의 대결로 포착한 것은 탁견이다. 이 책에 대해 소설가 펄 벅 여사는 “진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너무 진실인 것이 두렵다”는 서평을 쓰기도 했다. 당시 이 전 대통령만큼 국제감각을 가진 사람도 드물었을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은 악인도 아니고 의인도 아니다. 공과 과를 가진 현실 정치인이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평가하면 그만이다. 문제는 그가 그런 과정도 없이 악인화되었다는 점이다. 악인 또는 의인을 전제하고 거기에 모든 것을 꿰어맞추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소설이다. 역사의 소설화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이제라도 영화로든 책으로든 자료로든 그에 대해 충분히 알아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다. 도대체 누가 무슨 권리로 “아예 보지도 말라”고 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