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대 대선의 승부를 갈랐던 키워드 중 하나는 ‘종합부동산세(종부세)’였다. “종부세를 장기적으로 재산세로 통합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은 사실상 종부세 폐지를 의미했고 여기에 서울의 집값 높은 지역과 그 인근 지역이 호응하며 표가 몰렸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쏟아진 여러 분석들은 집주인들의 표가 세 부담을 줄이겠다는 윤 대통령 쪽으로 향했다는 증거들을 쏟아냈다. 한국리서치는 수도권 기초지자체별 아파트매매실거래가와 후보 득표율과의 관계를 분석했는데 여기에서 드러난 흥미로운 패턴 중 하나는 아파트매매실거래가가 평(3.3㎥)당 2000만원(1㎡ 당 약 606만원) 이상인 기초지자체에서 실거래가가 높아질수록 이재명 후보 득표율이 떨어졌다는 점이다.
한국리서치 측은 “이런 흐름은 서울의 기초지자체가 주도하지만, 과천(이재명 득표율 39.23%, 1㎡ 당 아파트매매실거래가 2205만원)이나 성남 분당(이재명 득표율 42.34%, 1㎡ 당 아파트매매실거래가 1591만원)과 같은 경기도의 대표적인 고가 아파트 지역도 포함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 지역은 상대적으로 종부세를 경험했거나 잠재적으로 경험할 지역들이다.
현 정부 들어 종부세 대상자는 대폭 줄었다. 국세청은 2023년 귀속 종부세 납세인원을 49만5193명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전년(128만2943명)보다 61.4%나 감소한 수치다. 여기에는 집값 하락이라는 시장 요인, 정부가 취한 여러 제도적 조치가 함께 영향을 줬다. 사실상 종부세는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됐는데 대통령실은 종부세 폐지를 포함해 중산층의 부담이 과도하거나 징벌적 요소가 있는 세금을 중심으로 전반적인 세금제도 개편을 언급한 상황이다. 사실상 또다시 부동산이 정국의 중심에 서는 모양새다. 그리고 이번에는 종부세 외에도 상속세가 도마 위에 올랐다.

‘부자들만 내는 세금’ 아니게 된 상속세
지금으로부터 1년 전인 2023년 4월, 상속세 과세체계를 점검해보자는 취지로 국회에서 한 토론회가 열렸다. ‘상속세 유산취득세 방식 긍정적 검토 토론회’라는 이름이었다. 정부는 현행 상속세가 ‘유산세’ 방식인 것을 ‘유산취득세’로 전환하려고 하는데 이것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였다. 흥미로운 건 이 토론회 주최자들이 민주당 의원들이었다는 점이다.
당시 토론회를 준비했던 한 의원실 관계자는 “흔히 아는 듯 모르는 듯 그냥 지나가는 토론회가 아니라 민주당이 상속세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는지 궁금했기 때문인지 언론에서도 관심을 많이 가졌던 토론회였다”고 말했다. “부의 대물림을 용인하느냐, 우클릭하느냐와 같은 비판 때문에 걱정했지만 의외로 환기 효과가 컸다. 정부가 상속세 문제를 치고 나오면 어떻게 할 건지, 변화가 필요하다면 어느 수준에서 적절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건지 등을 민주당도 논의할 필요가 있지 않겠나. 부동산 문제에서 열세가 되는 걸 사양하고 싶은 당 사정도 있었다.”
현행 상속세에서 기준이 되는 건 상속세 공제한도 10억원이다. 상속세를 내야 할 사람과 내지 않아도 될 사람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상속세는 보통 일괄 공제의 경우 고인의 배우자 5억원, 자녀들 5억원 등 10억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초과분에 대해 과세한다. 1997년 1월 1일부터 적용된 이 기준은 28년째 그대로 적용 중이다.
1997년께 10억원에 해당하는 아파트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60평대 정도 등 극히 소수의 물건뿐이었다. 반면 28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와 달라졌다. 절대 숫자는 많지 않지만 상속세 과세 대상의 증가 속도는 가파르다. 국세청이 발간하는 ‘국세통계’에 따르면, 2022년 상속세 납세인원(피상속인수)은 1만9506명이다. 바로 전해인 2021년(1만4951명) 대비 30.5%(4555명)나 증가했다.
이렇게 된 건 자산 가격의 상승이 원인으로 꼽힌다. 부동산 정보제공업체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해 시세 기준 10억원이 넘는 서울 내 아파트는 전체의 절반 이상인 53.1%로 나타났다. 최근 평균 거래가도 10억원을 넘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4월 서울아파트 거래량은 4350건으로 평균 거래금액은 11억4312만원이었다. 거래 지역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서울 내 상당수 자가 아파트 소유자는 상속세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고물가 여파에 수도권 집중 현상 등을 고려하면 10억원 이상 아파트 비중이 드라마틱하게 줄어들 가능성은 적다. 상속세의 적용 기준 10억원이 더 이상 부의 상징이 아니듯 상속세 역시 더 이상 ‘부자들만 내는 세금’이라고 하기에는 그 대상이 점점 많아지는 추세다.


“정부 감세카드에 말려들 필요 없다”
기존 한국의 상속세는 망자가 남긴 재산에 일괄적으로 세금을 매기는 유산세 방식이다. 현행 상속세율은 과세표준 1억원 이하의 경우 10%, 1억원 초과〜5억원 이하 20%, 5억원 초과〜10억원 이하 30%, 10억원 초과〜30억원 이하 40%, 30억원 초과 땐 50%를 적용받는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8개국 중 상속세를 운영하는 곳은 24개 나라인데 유산세 방식을 적용한 곳은 한국을 포함해 덴마크·미국·영국 등 4개 나라뿐이다. 상속세를 운용하는 나머지 국가들은 재산을 물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물려받는 사람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유산 취득세’ 방식을 택하고 있다.
유산취득세는 유산세와 과세 방식이 다르다. 고인의 재산에 과세하는 대신, 물려받는 사람의 상속액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한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사망해 두 자녀가 공제를 하고도 30억원을 상속받는다고 치자. 유산세라면 이 30억원에 일괄 세금을 부과하지만 유산취득세라면 자녀들이 균등하게 나눠 받을 경우 각각 15억원에 상속세를 매긴다. 상속액이 클수록 세율은 높아지니, 나눠서 물려받는 유산취득세가 상대적으로 세금을 적게 낼 수 있다.
정부, 특히 기재부 측 논리는 ‘응능부담(應能負擔)’이다. 납세자의 부담능력에 맞게 공평하게 과세를 해야 한다는 뜻으로 각자가 물려받은 상속액만큼 세금을 내는 것이 원칙에 맞다고 본다. 게다가 이미 세금을 내고 형성한 자산에 다시 세금을 부과한다는 이중과세 논란, 이미 물려받은 만큼만 세금을 내는 증여세와의 과세체계 통일이 필요하다는 지적 등 풀어야 할 오래된 문제들이 남았다.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던 추경호 의원도 이미 여러 차례 정부 주도의 세제 개편을 언급하며 “현행 상속세 제도를 유산취득세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1년 전 토론회를 통해 상속세 문제를 당내에서 조심스럽게 논의했던 민주당은 최근 입장을 선회하는 모습이다. 22대 비례대표로 원내에 입성한 임광현 민주당 원내부대표는 “집값 상승 등으로 중산층 상속세 대상자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세 부담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상속세법 개정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임 원내부대표는 국세청 차장 출신이다.
과연 현재의 유산세 방식을 적용한 상속세는 유산취득세로 변할 수 있을까.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원내 다수당인 민주당의 스탠스가 중요하다. 민주당 입장에서 감세 정책은 양날의 검이다. 일단 우클릭을 통해 오른쪽 진영으로 지지를 확장하기 위한 행보로 볼 수 있다. 지난 대선 패배의 결정적 원인이 부동산 이슈란 걸 인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변화다.
반면 우클릭은 필연적으로 전통 지지층의 반발을 부른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증세를 하면서 표를 달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노무현·문재인 정부의 자산불평등 시정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 상속세는 부의 대물림을 완화해 불평등을 줄이는 과세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세 부담을 줄이면서 상속세의 목표는 고수하기 위한 균형점을 찾는다는 점에서 현 정부의 무조건적인 감세와는 결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런 기조에서 민주당은 유산취득세 전환에는 신중하다. 대신 실질적인 세 부담을 줄이는 쪽으로 상속세를 완화하는 방안이 제시된다. 현행 상속세율의 과세표준을 높이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는 이슈 주도권 다툼의 측면도 엿볼 수 있다. 앞선 재선 의원은 “총선에서 참패한 정부·여당이 불리한 포지션에서 감세 카드를 던지며 전환하려고 하는데 여기에 우리가 말려들 이유가 없다. 상속세를 당장 바꿀 수도 없고 논의해야 할 부분이 많아서 우선 순위로 두지는 않을 것 같은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상속세 변화 장애물 될 재정건전성
과세하는 방식만 바꾼다고 끝날 일이 아니라는 건 그만큼 들여야 할 시간도 적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한 국책연구원 관계자는 “상속세를 바꾼다면 과세방식 외에도 상속공제나 세율의 구간, 사전증여의 적용 범위 등 고려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걸 조정하는 것도 많은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세수 부족’이라는 장벽이 있다. 우리의 경우 상속세의 세수 의존도는 점점 커져갔다. 지난해 8월 한국조세연구포럼 학술대회에 발제자로 나섰던 백경엽 예산정책처 세제분석2과장은 “우리나라의 2022년 상속세 및 증여세 징수액은 14조6000억원이며, 국세수입(395조9000억원) 대비로는 3.69%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000년(1.06%)과 비교할 때 국세수입 대비 비중이 2.63%포인트 상승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상속세를 유산취득세로 전환하는 방식이든, 상속세를 인하하는 방식이든, 무엇을 선택하더라도 국가 재정이라는 곳간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이를 채우는 작업이 필요할지 모른다. 지난해 56조4000억원의 세수 펑크에 이어 올해도 세수 여건이 녹록지 않다는 점은 감세를 고민하는 정부와 여당 입장에서 고민스러운 선택을 하게 만
든다.
백 과장은 “상속세를 인하하는 방향으로 개편할 수 있지만 이에 상응해 소득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향후 안정적인 재정 운용이 가능할 것”이라며 “이러한 개편을 위해서는 소득세 납세자들에 대한 상당한 이해와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정치가 힘을 발휘하곤 있지만 재정건전성이라는 난제를 만나는 순간, 상속세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한 퍼즐일 수 있다는 얘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