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 간 해묵은 갈등이 최근 마황(麻黃·Ephedra) 이슈로 다시 한번 촉발됐다. ‘위고비’ 등 다이어트 보조제 시장이 수백억원대 산업으로 성장하면서 ‘다이어트용 한약’의 원료인 마황의 안전성, 효능, 직역 권한 문제가 재차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의협은 마황의 주성분인 에페드린(Ephedrine)이 강한 교감신경 흥분 작용과 심혈관계 부작용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내세워 엄격한 규제 필요성을 주장한다. 반면 한의협은 마황이 오래전부터 전통의약에 사용된 핵심 약재임을 강조하며 한의사의 진단·처방에 따른 통제된 사용은 안전하다는 입장이다. 한의협 측은 의협의 ‘딴지 걸기’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어 해당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의협 측이 마황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논거는 ‘마황이 갖고 있는 위험성’과 ‘글로벌 규제 동향’이다. 의협은 마황의 주 성분인 에페드린 복용에 대한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04년부터 에페드린 함유 건강보조제의 판매를 전면 금지했다.
의약품으로 복용할 시에는 대한민국 식약처 및 미국 FDA, 독일 생약위원회 모두 ‘1일 에페드린 허용량’을 150㎎ 이하로 두고 있다. 이 가운데 의협과 한의협 양측은 허용 권장량의 기준을 놓고 대립하는 중이다. 의협은 일일 권장량 61.4㎎, 한의협은 150㎎을 주장하고 있다. 마황의 산지·수급에 따라 에페드린 함량이 변동될 수 있고, 심장박동 증가, 불면, 심근경색 등 심혈관계 질환 발생 사례가 과학적으로 보고되었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의협 측은 “마황은 권장량에 관계없이 위험성이 다분하고 일부 한의원에서 61.4㎎을 초과해 처방하는 곳이 많다”며 마황 사용의 전면 제한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한의학계 측은 마황을 비만치료로 사용하는 것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의협은 ‘마황 사용 현황 및 연구결과’ 자료를 통해 “식품으로서의 사용은 금지되어 있으나 한약재의 원료로 사용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미국 FDA에서는 ‘건강보조제’에 에페드린 함유를 금지하고 있고, 천식과 기관지 질환 등 치료에는 1일 복용량을 150㎎으로 허용하고 있다. 비만 치료에서의 1일 복용량은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의계는 이를 토대로 “의료인인 한의사가 치료 목적으로 투여하고 처방하는 데 있어서 전혀 문제가 없다”며 “한의약 가이드라인에 따라 처방될 경우 안전하고 효과적”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일부 부작용에 대해서는 “개인마다 권장량과 증상이 다르기 때문에 한의사를 통해서만 처방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용 자체가 위험’ vs ‘의료용은 안전’
김석희 한의협 홍보이사는 “FDA의 전면금지는 ‘식이보충제’에 관한 조치일 뿐 한의사의 진단·처방 아래 이뤄지는 의료적 사용까지 금지한 게 아니다”라며 “마황은 전통적으로 널리 써온 약재이고 식약처와 복지부가 금지하지 않은 품목을 ‘위험’으로 몰아가는 건 무리”라고 말했다. 그는 “임상 현장에서는 환자 체질에 따라 용량을 세밀하게 조절하고 복용 시간대와 사용법 등을 안전하게 관리한다”며 “기준 권고 범위를 지키고 복용하면 안전하게 통제 가능하다”고 말했다. 의협이 ‘권고량 초과 처방’을 문제 삼는 데 대해서도 반박했다. 김 이사는 “미국의 하루 섭취량 기준은 누구나 사서 먹는 식품·보충제에 대한 하한선일 뿐, 의료인의 임상 처방 상한선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양의학계가 마황을 쓰지 않으면서도 한의계 처방을 일괄 ‘금지’로 몰아가는 건 사실상 딴지에 가깝다”며 “실제로 고발·정정보도 요청 등으로 대응해 왔지만, 단체 차원의 포괄 비난은 법적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최근 다이어트 시장 흐름과 관련해선 “위고비 등의 등장으로 다이어트 한약의 입지가 줄어 의협과 이권다툼할 일이 없다”며 “한의계는 관련 연구와 자료를 지속적으로 축적해 왔고, 필요하다면 근거를 추가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의협 역시 한의사 측 주장에 재반박에 나서는 모양새다. 주간조선이 확인한 ‘마황 관련 대한한의사협회 의견에 대한 반론’ 자료에서 의협은 “대한한의사협회는 거짓 해명을 하고 있다”며 “미국 FDA가 비만치료 목적의 마황 사용을 인정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이들은 ‘비만도 마황 사용에 대한 의학적 정당성이 있는 것처럼 끼워넣어 거짓 해명을 하고 있다’ ‘1일 허용량 150㎎ 은 3일 이내로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등의 내용으로 한의협 측의 입장을 비판했다. 해당 반박문 작성에 참여한 한 의협 소속 의료진은 “한의사들은 경제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 위험성에 대한 고민 없이 환자에게 마황을 처방하고 있다”며 “한의협이 무책임하며 거짓된 근거로 국민과 언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대처와 관련해서는 “주무 정부 부처에서는 한약의 전문가인 한의사가 알아서 처방하면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수수방관 중”이라며 “규제와 제도 개선이 필수적이다”라고 강조했다.
마황 사용과 관련된 논란은 이미 약 10년 전부터 국내 의료계에서 발생해왔다. 양측의 직역 충돌이 발생할 때마다 마황, 봉침 등 효능과 부작용의 양면성을 가진 특정 치료법이나 약재들은 ‘의·한 갈등’의 도구가 되어왔다. 특히 2000년대 후반부터 다이어트 한약이 대중적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마황의 안전성 논란은 언론을 통해 주기적으로 보도된 바 있다. 2014년부터 의협은 마황 속 에페드린 기준을 감기약과 같은 61.4㎎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의협 측이 설명하는 마황의 부작용으로는 ‘발작, 어지러움, 고혈압, 사망’ 등이 거론됐다.
정부ㆍ식약처 중재 필요성도
1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는 논쟁이지만 정부와 식약처는 별다른 개입에 나서고 있지는 않다. 각 측 전문가들의 의견도 여전히 갈리고 있다. 오상우 동국대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마황은 교감신경을 흥분시켜 체지방을 태울 수 있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하여 양약 쪽에서도 써봤던 것”이라면서 “효과가 제한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심혈관질환 등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양의학에서는 비만 약으로 사용이 금지됐다”라고 언급했다. 반면 황만기 한의학 박사(서강대 겸임교수)는 “마황은 체내 열을 올리고 혈액순환을 개선하며 지방 분해를 촉진하고 식욕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며 “한의학적 치료는 비교적 안전한 방법으로 인식되고 있고 현대인의 비만 문제와 관련 기본적인 치료 방법에 대한 보완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