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북 현대가 올 시즌 K리그1 정상에 섰다. 1983년 출범한 한국 프로축구 최다인 통산 10번째 우승이다. 전북의 올 시즌 우승에 이바지했던 이승우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이승우는 지난해 창단 첫 승강 플레이오프를 경험하며 굴욕을 맛봤던 전북의 반등 비결로 ‘거스 포옛 감독의 리더십’을 꼽았다. 이승우가 포옛 감독의 리더십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꼽은 건 ‘훈련 외 사생활 보장’이었다.
이승우는 ‘자기가 수원 FC 시절 경험한 것이 아니란 것’을 전제로 이렇게 말했다. “수원 FC에 있을 때 김도균, 김은중 감독님도 포옛 감독님처럼 편하게 대해주셨다. 지금 전북 생활과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K리그 타 팀에서 뛰는 선수들 얘길 들어보면 조금 의아하다. 몇몇 지도자들은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을 때 선수들의 사생활 등 외적인 이유를 문제 삼는 것 같다. 그러다가 이기면 지도자의 전술 때문이라고 한다.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스트레스받는다. 그건 옳지 않다.”
이승우만 이런 얘기를 한 게 아니다. 올 시즌 K리그1 34경기에서 15골(2도움)을 기록 중인 전북의 리그 우승 주역 전진우는 ‘프로에서 처음 받아보는 외국인 감독 포옛의 특징’을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간단하게 얘기하면 공과 사가 명확하다. 포옛 감독님은 선수들에게 축구에 관해서만 얘기한다. 우리가 해야 할 게 무엇인지 명확하게 짚어주시는 거다. 축구 외적으론 자유다. 선수가 무얼 하든 간섭하지 않는다. 단 훈련이나 경기장에선 엄청난 집중력을 요구한다.”
대다수 선수가 공감하는 이승우·전진우의 주장
이승우·전진우의 주장에 많은 선수가 공감한다. K리그1에서 현역으로 활약 중인 A 선수는 “상당히 공감 가는 말”이라며 “감독의 뜻대로 준비하고 경기에 임해서 패했는데 그 원인은 늘 선수 탓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축구는 감독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제아무리 뛰어난 선수도 감독의 주문을 외면하고 마음대로 하면 기회를 받기 어렵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많이 개선되긴 했지만, 여전히 감독의 의견에 반대되는 의사를 표현하는 것도 매우 어렵다. 선수 선발은 감독이 결정한다. 감독의 눈 밖에 나면 선수 생활이 아주 힘들어진다. 축구계가 넓은 편이 아니다 보니 안 좋은 소문도 나곤 한다. 한국은 여전히 감독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걸 부정하긴 어렵다”고 짚었다. 선수들의 주장이 틀린 건 아니다. 실제로 개선돼야 하는 부분이 있다. 한국 축구는 매우 보수적이다. 특히 선수 선발 권한을 쥐고 있는 감독의 힘이 막강하다.
단 감독이 더 강하게 팀을 장악하고, 선수 개개인의 사생활에도 간섭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도 존재한다. 이승우나 전진우처럼 국가대표팀 경력이 있고, K리그1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이는 다르다. 그들은 어떻게 경기를 준비하고 실전에 나서야 하는지 안다. 그렇게 국가대표팀까지 가본 선수들이다. 지도자가 무언가를 시키거나 간섭하지 않아도 알아서 몸 관리를 한다. 경기에 나서면 최고의 경기력을 보인다. 그게 그들이 높은 연봉을 받고 국가대표팀을 오갈 수 있는 이유다.
K리그에서 뛴다고 해서 모두가 태극마크를 다는 건 아니다. 태극마크를 다는 선수는 극소수다. 프로축구 선수지만 자기관리가 안 되는 이가 생각보다 많다. K리그 B 구단 고위 관계자는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시즌 중엔 보통 경기 후 2일 동안 휴식을 취한다. 훈련은 길어야 90분 정도 한다. 프로축구 선수들은 생각보다 자유시간이 많다. 국가대표로 향하는 선수들은 이 시간을 아주 잘 활용한다. 자기가 무엇이 부족한지 알고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훈련한다. 사비로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해 훈련하는 때도 많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선수가 대다수다. 특히 주전급이 아닐수록 그 사례가 흔해진다. 팀 훈련 후 선수들이 무얼 하는지 살펴보면 휴대전화를 보거나 놀러 나간다. 자신이 경기에 나설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흥청망청 술을 마시는 일도 발생한다”고 했다.
K리그 C 구단 감독도 비슷한 고충을 토로했다. 해당 구단 감독은 “국가대표는 다르다. 알아서 한다. 국가대표 선수에게 어느 부분이 ‘부족하다’고 하면, 그 선수는 팀 훈련을 마치고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훈련한다. 그런데 대다수가 안 그런다. 하나하나 가르쳐 줘야 한다. ‘어느 부분이 어떻게 얼마만큼 부족하니 오늘 팀 훈련을 마치고 이 훈련을 반드시 하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사생활에도 간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프로선수라고 보기 힘든 경기력을 보인다. 팬들 앞에서 그래선 안 되는 거 아닌가”라고 했다.
K리그 D 구단 감독도 의견을 전했다. D 구단 감독은 “내가 제일 아쉬운 건 새 시즌 준비를 시작할 때다. 선수들이 휴식기를 보내고 오면 운동이 하나도 안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선 체력훈련으로 시즌 준비를 시작한다. 유럽은 다르다. 선수들이 비시즌 기간에도 운동을 꾸준히 한다. 선수단을 소집하면 체력훈련 없이 전술훈련에 들어갈 수 있는 이유다. 유럽에선 그게 당연하다. 요즘 이런 걸 하나하나 지적하면 선수들과 갈등이 불거진다”고 했다.
프로축구 팀만 29개 시대 눈앞, 앞으로 더 깊어질 고민
K리그는 내년부터 29개 구단 체제가 된다. K리그1엔 12개 구단이 유지되고, K리그2엔 3개 구단이 늘어서 17개 팀이 경쟁을 벌인다.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중 축구만큼 팀 수가 많은 건 없다.
그렇다고 축구가 최고의 인기스포츠는 아니다. 올 시즌 K리그1에서 홈 경기 평균 관중 수가 1만명 이상인 팀은 절반인 6개다. 엄연히 프로스포츠인 K리그2에선 14개 구단 중 2개 구단만 평균 관중 1만명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 최고 인기스포츠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프로야구는 올해 1231만2519명의 관중을 모았다. 10개 구단 중 7개 구단이 홈 100만 관중을 달성했고, 1경기 평균 관중은 1만7101명을 기록했다. 그런 프로야구의 구단 수는 프로축구의 절반도 안 되는 10개에 불과하다.
팀이 늘어나면 더 많은 선수가 프로의 세계에 들어선다. 그 선수들의 수준은 국가대표 선수를 수두룩하게 배출하는 전북과 크게 다르다. 하나하나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선수가 축구계에 더 늘어날 것이다. 한국 축구가 발전하고 프로축구의 경제적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해서 프로축구단이 늘어난 게 아니라,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일단 팀 수부터 늘리고 보자’란 식으로 팀 수를 늘리면서 생겨난 문제다.
프로다운 선수, 지도자, 프런트가 무궁무진하거나 훌륭한 육성 시스템을 구축해 나간다면 문제 될 건 없다. 프로축구답게 좋은 경기력으로 돈과 비용을 지급한 팬의 눈을 사로잡고, 구단이 자생력을 갖춰가면서 수익화에 다가선다면, 프로축구단 수는 늘어나는 게 맞다. 그런데 현재 축구계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조차 알기 힘든 구단이 상당수다. 구단과 축구 발전은 등한시하고 개인의 이익을 우선하는 경우가 너무 흔하다. 선수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프로의 세계에서 지도자가 이것저것 가르치고 사생활에까지 간섭하는 건 우스운 일이다. 2024년 K리그1의 선수단 평균 연봉은 3억499만5000원, K리그2의 평균 연봉은 1억3070만원이었다. 프로는 배움의 장이 아니라 증명하는 곳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