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 프라이머 대표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자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자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

 

금리인상, 긴축 재정,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대란까지 우울한 경제 전망이 가속화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상장폐지에 이른 ‘루나 쇼크’는 스타트업 생태계에도 부정적인 전망을 이식시켰다. 성장 가능성만 보고 거침없는 투자를 결정하던 투자사들도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위기 상황은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옥석을 가리는 기회로 작용할 것이다.

지금의 모습은 2000년 3월 10일, 코스닥 지수가 2834.4로 사상 최대치를 찍고 같은 해 연말 525.8포인트로 80% 이상 추락하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인기몰이를 하던 프리챌, 아이러브스쿨, 네띠앙, 엠파스 등의 인터넷 기업들이 거품 붕괴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묻지마 투자’가 만들어낸 각종 비리와 정치스캔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경제 전반에 아수라장을 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20년 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20년 전 벤처 생태계와 오늘날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뭐가 달라졌을까? 스타트업, 투자사, 정부, 지원기관으로 구성된 스타트업 생태계가 촘촘하게 짜여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그중에서도 선배 창업가들이 만든 초기 투자사의 역할에 주목하고자 한다. 창업이라는 험난한 여정을 경험한 선배들이 만든 초기 스타트업 투자사는 때로는 매의 눈으로, 때로는 엄마의 마음으로 스타트업을 응원하고 지원한다. 그런 그들의 노력은 스타트업 생태계가 눈속임과 겉치레 대신 진정성과 땀방울을 중심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중심축 역할을 한다.

 

용감하고 현명한 돈

2010년 대학생이던 스타일쉐어 윤자영 대표는 창업 특강에서 연사로 온 프라이머 권도균 대표를 만났다. 창업이 뭔지도 모르던 학생이었지만 그는 권 대표께 다가가 길거리 패션 공유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서툴지만 열정적인 태도를 인상적으로 느꼈던 권 대표는 윤 대표에게 그의 생각을 정리해 이메일로 보내 달라고 했다. 수많은 예비 창업가들을 만나왔던 권 대표는 그가 연락할 확률이 그리 높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윤 대표는 혼자서 끙끙거리며 작성한 사업계획서를 보내왔다. 창업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문제라고 느끼는 내용과 나름의 해결방법을 정리해 권 대표에게 보낸 것이다. 그렇게 권 대표와 윤 대표는 투자자와 창업가의 인연을 맺게 되었다. 

사업 아이디어와 창업팀만 있는 상황에서 스타일쉐어가 인정받은 기업 가치는 2억원이었다. 하지만 10년 후 스타일쉐어가 자회사인 ‘29㎝’와 함께 무신사에 매각되면서 인정받은 기업 가치는 3000억원이다.

시작 당시의 기업 가치와 인수 시 기업 가치만을 놓고 보면 해피엔딩의 아름다운 스토리로 보인다. 하지만 맨땅에 헤딩하며 고군분투한 10년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창업 초기에는 돈도 못 버는 커뮤니티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에서 일하겠다는 개발자를 찾기 어려웠다. 투자자인 권 대표는 특강을 위해 방문했던 IT고등학교에 다니던 개발자들을 스타일쉐어에 연결해주었다. 어찌어찌하여 앱서비스를 개발했지만 수익모델도 없는 서비스에 투자자들이 선뜻 나서지는 않았다. 이 때 바닥을 드러내는 통장을 채워준 것은 ‘어쩌면 가능한 도전’을 현실로 만들어 주고 싶었던 선배 창업가들이었다.

스타일쉐어처럼 스타트업의 아이디어가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투자자의 돈은 스타트업이 도전을 시작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스타트업의 투자는 성장 과정에서 단계별로 기업 가치가 평가되고 이에 따라 투자금의 규모가 정해진다. 창업 초기 단계일수록 성공확률이 낮기 때문에 기업 가치도 작고, 투자금 규모도 작다.

2022년 5월 현재 초기 투자 단계에서만 50개 이상의 투자사 & 엑셀러레이터(회사 설립 전후에 종잣돈을 투자하고 경영 노하우와 비즈니스 네트워크 제공)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2011년 배달의민족에 3억원을 투자한 본엔젤스 벤처파트너스는 독일계 딜리버리히어로가 4조7500억원에 인수해 8년 만에 1000배의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스타트업 초기 투자는 실패 확률이 높다. 잭팟이 터진 소수의 투자가 실패한 투자의 손실을 보충하는 역할을 한다. 성공한 창업가 선배들이 초기 투자에 집중하는 이유는 성공한 잭팟이 손실을 보충해주는 역할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초기 단계일수록 창업가로서의 경험을 전달하는 과정을 통해 성공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주기(pay it forward)’ 

초기 창업 기업의 성공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사업모델이 좋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초기 스타트업 투자사들이 투자를 결정하는 요소는 ‘사람’이다. 아주 매력적이고 설득력 있는 사업 계획도 시장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그러한 변화를 이겨내고 성공을 일궈내는 것은 창업팀이 갖고 있는 마인드셋과 역량이다. 

초기 스타트업 투자사들은 투자를 결정하기에 앞서 다양한 방법으로 창업팀의 진정성과 역량을 검증한다. 좋은 실패를 한 창업팀에는 새롭게 투자를 집행해 다른 사업을 권하기도 한다. 실패를 통해 얻은 자산이 있는 만큼 성공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선배 창업가들이 만든 대표적 초기 투자사인 본엔젤스 벤처파트너스는 올해 1월 1200억원 규모의 초기 투자 펀드를 결성했다. 이번 펀드가 여타의 펀드와 다른 의미를 갖는 이유는 본엔젤스 벤처파트너스의 투자를 받아 성공한 창업가, 임직원들의 출자금이 57%에 이른다는 사실에서다. 선배 창업가의 투자를 받아 성공한 창업가들이 다시 후배 창업가들의 성공을 돕는 자본의 선순환 사례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는 초기 스타트업 투자사가 단순히 창업 기업의 자금 지원책에 한정되지 않고 창업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파트너임을 보여주는 기회라 더 반갑고, 감동적이었다. 선배 창업가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었던 스타트업 초기 투자사는 현재 투자금 외에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형태와 대기업의 자금과 시설을 활용한 투자사가 있다. 그리고 개인들이 참여하는 엔젤투자조합과 크라우드펀딩도 제도화되어 형태도 다양해지고, 투자사의 수도 50개 이상으로 많아졌다. 민간의 스타트업 투자를 적극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공공기관이 한국벤처투자주식회사다. 한국벤처투자주식회사는 정부 각 부처가 출자하는 모태펀드를 조성해 민간의 스타트업 투자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벤처투자는 올해도 1조6000억원의 펀드를 조성해 스타트업 투자를 지원할 예정이다.

스타트업 커뮤니티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문화적 자양분은 ‘먼저 주기(pay it forward)’의 문화이다. 성공한 창업가 선배는 스타트업 투자사라는 비즈니스 형태로 ‘먼저 주기’의 문화를 구현하고 있다. 책 ‘스타트업 커뮤니티 웨이’(클라우드나인)의 저자 브래드 펠드는 스타트업 커뮤니티가 스타트업의 성공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강조한다. 창업에 성공방정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업마다 저마다의 사정과 상황에 놓여 있어 저마다의 방정식을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타트업 커뮤니티는 스타트업의 개별적인 성공방정식이 작동하도록 하는 근원적 힘을 제공한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할 때 창업가 선배들이 초기 스타트업 투자사를 통해 일궈온 이제까지의 노력은 앞으로 대한민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더 많은 성공 사례가 등장하게 될 것임을 기대하게 한다. 

 

선배 창업가들이 만든 투자사들

본엔젤스, 프라이머, sopoong… 교육부터 멘토링, 커뮤니티까지

스타트업 생태계 내에서 스타트업 투자사들이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는 파트너로 자리 잡기까지 중추적 역할을 해온 선배 창업가들이 만든 대표적인 투자사를 꼽는다면 본엔젤스, 프라이머, sopoong이 있다. 이들은 금전적 수익 외에 스타트업 생태계의 성장을 위한 교육과 멘토링, 커뮤니티 운영을 해온 공통점을 갖고 있다. 투자금이 창업가와 투자자라는 관계의 핵심을 구성하고 있지만 스타트업의 성공을 돕는 일련의 활동들이 스타트업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어가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본엔젤스 벤처파트너스 2007년 크래프톤 장병규 의장과 본엔젤스 벤처파트너스의 대표를 맡고 있는 송인애, 강석흔 세 명이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당시는 대한민국에 초기 스타트업 투자회사가 존재하지도 않는 상황이었다. 검색엔진 서비스 ‘첫눈’을 네이버에 매각한 후 얻게 된 여유자금을 스타트업 투자에 활용하려고 보니, 창업과 투자는 전혀 다른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체계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송인애, 강석흔 두 사람과 함께 외국의 사례를 공부해가며 만들게 된 스타트업 투자회사가 본엔젤스였다. 본엔젤스는 2007년 설립된 이래 현재까지 총 230여개의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본엔젤스 투자사 중 4개의 기업이 기업 가치 1조원 이상의 유니콘기업으로 성장했고, 22개의 기업이 M&A(인수·합병), 2개의 기업이 IPO(기업공개)에 이르렀다. 본엔젤스 벤처파트너스는 초기 투자사의 시작을 만든 기업인 만큼 우리나라의 스타트업 환경에 맞게 교육과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고 있다. 오랜 시간을 두고 형성된 본엔젤스의 창업가 동문 네트워크는 자연스럽게 경영 전반에 대한 조력과 네트워크 확장으로 연결되어 후배 창업가들의 성공을 돕고 있다. 프라이머 2010년 선배 창업가들의 DNA를 후배 창업가들에게 전달하고 복제하여, 후배 창업가들의 성공을 돕기 위해 설립한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다. 숨고, 호갱노노, 스타일쉐어, 마이리얼트립, 아이디어스, 데일리호텔 등 217개 스타트업에 투자했고, 스타트업의 후속 투자를 적극 연결하고 지원한다. 프라이머는 시즌별로 배치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스타트업을 발굴해 투자하고, 멘토링을 통해 성장을 지원하고 있다. 프라이머 권도균 대표는 KG이니시스, 이니텍 창업자로 스타트업 창업가들의 성공을 돕기 위해 전방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의 책 ‘스타트업 경영 수업’은 스타트업 창업가들에게 유용한 창업 가이드가 담겨 예비 창업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권 대표는 자신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기술 창업을 했던 만큼 직장인들의 스텔스(모드) 창업(비밀스럽게 창업을 준비하는 방식, 주로 직장인이 일과 후 주말 시간을 이용해 창업하는 경우를 말한다)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지원하고 있다.   sopoong(social power of network group) 2008년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창업한 이재웅 대표에 의해 설립된 대한민국 최초의 소셜벤처 투자 & 엑셀러레이터다. 비즈니스를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스타트업을 발굴해 투자하고, 엑셀러레이팅을 통해 성장을 돕는다. 최근 사회적 화두인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환경, 사회, 지배구조)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2008년부터 꾸준히 ESG에 대한 관심을 두고 관련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해온 차별점을 갖고 있는 투자사다. 현재까지 총 103개의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sopoong은 투자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의 확산과 커뮤니티 형성을 위한 노력을 다방면으로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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