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응원하던 창업자의 회사가 파산절차를 밟게 되었다. 경쟁 기업이 대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해 시장을 빠르게 선점하면서 투자사들이 추가 투자를 철회해 자금사정이 급속히 악화됐다. 어떻게든 급한 불을 꺼보려 애써보았지만 현금흐름이 넉넉지 않았던 회사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실패한 창업자는 나쁜 사람의 낙인을 얻게 된다. 밀린 월급에, 채무에, 실패한 창업가가 감당해야 하는 현실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창업 후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던 하이퍼커넥트의 안상일 대표는 ‘사업(모델)은 실패해도 경영에 실패하면 안 된다’ ‘서비스 첫날부터 무조건 돈을 벌어야 한다’는 말을 주문처럼 외우며 하루하루를 버텼다고 한다.

창업자는 성공을 위한 열망 못지않은 노력을 실패를 관리하는 데 써야 한다. 창업가의 일상은 실패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제품에 실패하고, 팀에 실패하고, 사업모델에 실패한다. 창업에 대한 문턱이 낮아지고 창업을 지원하는 사회적 인프라는 늘어났지만 실패의 결과는 온전히 창업자의 몫으로 돌아오는 게 냉혹한 현실이다. 창업지원기관들이 창업가들의 실패 경험을 자산으로 전환하고 재빨리 재기에 나설 수 있도록 돕는 원스톱 실패관리 서비스를 운영해주면 좋겠다.

2022년 7월 대한민국 스타트업 생태계에는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뼈에 새긴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많아졌다. 스타트업 창업가들은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또 어떻게 키워가고 있을까? 남들에게는 ‘성공’이라고 소개되는 결과를 얻고도 다시 도전에 나서고, 참혹한 실패의 결과를 안고도 다시 도전에 나선 창업가들이 실패를 껴안고 성공을 연료로 이어가는 여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N차 창업가들이 늘어났다

“장단, 그거 아세요? 요즘 MZ세대 창업가들 사이에 스터디 모임이 많아졌어요. 이 모임에는 의사, 변호사, 대기업 직장인은 끼기 어려워요. 자격증 허당도 많고, 대기업 다녀도 월급쟁이에 불과하잖아요? 작더라도 자기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있는지가 스터디 모임 가입 기준이에요. 의사, 변호사라도 공격적으로 경영을 하고 브랜드를 만들었다면 가능하고요.”

‘공정과 실리’라는 핵심 키워드를 갖고 있는 MZ세대에게 ‘창업가’는 힘들지만 쿨하게 내 욕망에 충실하며 살아갈 수 있는 직업이 된 것 같다. 정부의 지원과 대규모 설비투자에 기반해 성장했던 기존 대기업과 달리 사람이 유일한 생산 요소인 인터넷 산업의 성공방정식은 조금 다른 모습이다. 간간이 접해오던 창업가들의 회사 매각과 재창업 소식을 문서로 정리해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았다. 아마도 각 잡고 전수조사를 해보면 이보다 더 많은 사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뒤로하고 다시 창업에 나선 창업가들의 모습은,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창업가’에게 더 많은 기회와 가능성이 존재하는 나라가 되었으며, 창업가들의 촘촘한 생태계가 더욱 단단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징표이다. 실패하면 나쁜 놈, 성공하면 좋은 사람으로 쉽게 평가해 버리는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 우리 사회가 창업가의 실패를 품고, 더 많은 창업가의 도전을 응원하고 지원하고, 그 결과를 함께 나누면 좋겠다.

 

실패를 자산으로 성공할 때까지 도전

작년 초 커뮤니티 기반 오디오 서비스인 ‘클럽하우스’의 등장은 오디오 서비스에 대한 관심을 폭발적으로 키웠다. Z세대를 위한 오디오 스트리밍 서비스 스푼라디오도 후발 주자들의 거센 추격 속에서 성장을 향한 잰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하지만 오디오 시장은 빠른 부상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사그라들었다. 스푼라디오는 오디오 시장의 거친 등락세 속에서 추가 투자 유치에 실패하면서 뼈를 깎는 아픔의 시기를 보내야 했다.

최혁재 대표에게 스푼라디오는 두 번째로 만든 사업이다. LG전자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던 시절 ‘같은 기종의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배터리를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배터리 공유 서비스 ‘만땅’을 만들었다. 완충된 스마트폰 배터리를 저렴하게 판매하는 서비스 ‘만땅’은 순조로운 출발세와 함께 투자유치에도 성공했다. 장밋빛 전망과 함께 해외 진출을 시도하던 무렵 사업에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스마트폰에 내장 배터리가 장착되면서 ‘만땅’의 탈부착용 배터리는 하루아침에 쓰레기가 되었다. 한껏 부풀었던 기대만큼이나 깊은 절망과 함께 빚 청구서들이 날아들었다.

그를 다시 일으켜세운 건 아홉 명의 창업 동료들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성공과 실패를 함께 경험했던 동료들은 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서보자며 힘을 모아주었다. 사무실 보증금까지 빼내 다시 도전해 만들어낸 서비스가 오디오 스트리밍 플랫폼 ‘스푼’이다. 다행히 2016년 3월 서비스를 시작한 ‘스푼’은 2019년까지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2020년부터 서비스의 성장세가 꺾이고 2021년 하반기 추가 투자 유치에 실패하면서 다시 고통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내 손으로 뽑은 사람들을 내가 내보내야 한다는 마음에 첫 번째 실패보다 더 큰 고통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수백 번도 더 한 것 같습니다.”

스푼라디오는 2022년 상반기 동안 처절한 생존 전쟁을 치렀다. 현금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신용보증기금의 지원사업을 통해 자금을 수혈받아 생존을 연장했다. 이후 모든 구성원들과 함께 서비스의 본질에 집중하며 개선을 이어갔다. 치열한 노력으로 고수익을 내는 DJ들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2022년 상반기를 결산해보니 창사 이래 처음으로 6개월 연속 흑자를 이루게 되었다. 창업 후 처음으로 외부 자금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이다. 최혁재 대표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지옥문 앞에서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는 순간, 나도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창업가의 내공은 잔인하지만 거쳐온 고통과 한숨의 깊이만큼 커진다. 이러한 내공은 책으로 배울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창업가의 경험은 복제되고, 확대되는 사회적 자산으로 귀하게 쓰여야 한다.

 

성공에 깊이를 더해 다시 도전

“왜 이 고생을 다시 하려고 하세요?”

공황장애와 심리치료까지 받아가며 죽음의 터널을 벗어난 경험을 해야 했던 창업가들은 왜 다시 창업에 나설까?

“돌아보니, 사업 초기 함께했던 동료들과 목표를 이뤄가던 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용의 디테일은 다르지만 재창업에 나선 창업가들이 다시 창업을 선택한 이유이다. 창업가들은 이를 ‘사업뽕’이라고 칭한다. 시장의 수요를 관찰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가설을 세워 적용했을 때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 그리고 고객의 반응을 통해 확신을 얻었을 때의 기쁨은 창업가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성취감이자 살아가는 이유이다.

이영일 해긴 대표는 대학시절 창업했던 모바일게임회사 컴투스를 2013년 게임빌에 약 700억원에 매각한 후 2017년 게임업계로 다시 돌아왔다. 해긴은 ‘홈런 클래시’ ‘오버독스’ ‘익스트림 골프’ ‘플레이투게더’ 등 모바일게임을 잇따라 내면서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이러한 해긴의 흥행몰이 속에 더 반가운 지표는 매출의 90% 이상이 해외 매출이라는 사실이다. 해긴의 2021년 매출은 332억원, 영업이익은 71억원이었다.

이러한 해긴의 성장세에는 이영일 대표가 첫 번째 창업 경험을 통해 배운 레슨런이 담겨 있다. 해긴은 순우리말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산다’는 뜻이다. 이영일 대표는 구성원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회사’를 꿈꾼다. 일에서 느끼는 재미뿐 아니라 경제적 보상도 제공되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필요를 철저히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대표 개인의 지분을 무상으로 증여하고, 스톡옵션도 투자사가 투자한 기업가치에 비교해 낮은 밸류로 지급하며 인재를 유치한다. 창업이 뭔지도 모르고 시작했던 컴투스 시절에는 창업자의 지분이 낮아 무상으로 지분을 나눠줄 수도, 스톡옵션 부여 시 투자사의 동의를 얻기도 어려웠다. 조직구조도 창업 경험을 바탕으로 최소 10~15년 경력자 중심으로 평균 20~30 명이 1~2년 정도 내에 게임을 만들 수 있도록 팀을 구성해 효율과 성공 가능성을 높였다.

이영일 해긴 대표뿐 아니라 인터넷과 모바일 창업가들은 대체로 성공의 경험을 개인화하는 대신 새로운 도전에 나서 성공 경험을 확산하고 있다. 신선식품 정기 배송 서비스를 만들어 배달의민족에 매각한 조성우·이진호 공동창업자는 사업 매각 후 각각 모바일 세탁 구독 서비스 런드리고(조성우 대표), IT 기반 반찬 가게 슈퍼키친(이진호)을 창업했다. 실시간 아파트 정보앱 ‘호갱노노’ 팀은 직방에 인수되어 3년 동안 일한 후 다시 뭉쳐 온라인커뮤니티 서비스 ‘카페노노’를 창업했다. 이는 기존 팀이 작은 성공을 이룬 뒤 다시 창업에 나선 사례에 해당한다.

창업팀의 시작은 모두 초라하다. 처음부터 ‘와우’의 탄성을 얻는 팀은 그리 많지 않다. 창업 아이디어에 대해 일단 ‘Why not’으로 응원을 전하는 실리콘밸리와 달리 대한민국의 현실은 ‘Why’를 묻고, 또 묻는다. 어쩌면 계속되는 ‘Why’ 속에서도 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고, 지켜내는 과정이 K-스타트업의 오늘을 만들어낸 저력일지도 모른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창업가의 꿈’에 자신의 인생을 투자해 성공을 이뤄낸 창업팀이 고단한 창업의 경험을 뒤로하고 다시 창업에 나서고, 또 다른 창업팀의 성공을 이뤄내는 모습이 창업생태계가 생물처럼 진화하고 번식하는 방법이라고 할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성공한 창업가들이 투자사를 만들어 새로운 도전에 단비를 제공하고, 경험을 이식하는 것 역시 글이나 말로는 전할 수 없는 창업의 경험치를 확산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꼭꼭 씹어 후세대에게 전하는 창업가들의 노고가 어제보다 나은 대한민국의 오늘과 내일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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