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일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KIA 타이거즈를 7 대 4로 꺾고 9연승을 이어간 롯데 선수들을 향해 팬들이 환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5월 2일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KIA 타이거즈를 7 대 4로 꺾고 9연승을 이어간 롯데 선수들을 향해 팬들이 환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봄데(봄에만 잘하는 롯데)’라는 마법의 두 글자는 오랫동안 롯데 자이언츠에 내린 저주이자 일종의 자기실현적 예언으로 기능해 왔다. 시즌 초반 롯데가 승승장구하면 어김없이 나오는 말이 바로 ‘봄데’다. “봄데는 뉴욕 양키스가 와도 쉽게 당해내지 못한다”는 야구계에 돌고 도는 격언(?)이다.

방송에 나오는 전문가들은 롯데의 초반 돌풍 원인을 집중 분석하면서 팬들의 기대심리를 한껏 자극한다. 미디어에선 ‘올해는 가을야구 가나’ ‘롯데가 달라졌다’ ‘올해는 봄데 아니다’ 같은 희망찬 타이틀로 팬들을 고문한다. 롯데 감독과 선수들도 인터뷰에서 ‘팀 전력이 강해졌다’ ‘팀 분위기가 좋다’ ‘팬들의 응원에 힘이 난다’면서 올해의 롯데가 과거의 롯데와는 다르다고 매년 강조한다.

하지만 꽃이 지고 봄이 지나는 자연의 섭리처럼 시즌을 치르면서 롯데의 성적은 점점 기울고, 시즌이 끝났을 땐 6위에서 9위 사이의 숫자로 조합한 ‘비밀번호’만이 남는다. 그리고 겨울 스토브리그가 되면 다시 구단, 선수단, 미디어가 한목소리로 ‘내년에는 정말 다르다’를 가스라이팅하고 팬들은 또 속을 거란 걸 알면서도 한 번 더 희망을 품는다. 롯데 팬에겐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 같은 이런 패턴이 롯데가 마지막으로 가을야구에 진출한 2017년 이후로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마르크스는 역사가 두 번 반복된다고 했지만 롯데의 가을야구 실패는 두 번이 아닌 다섯 번 연속 반복되고 있다. 그것도 희극이 아닌 비극으로만 점철된 채 말이다.

 

기대승률보다 높은 실제 승률… 운이 좋다?

올 시즌에도 롯데의 초반 질주가 심상치 않다. 롯데는 4월 한 달 동안 14승8패에 승률 0.636이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전체 1위로 4월을 마무리했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 시절인 2010년 이후 13년 만에 8연승을 질주했고 양승호 감독 시절인 2012년 이후 11년 만에 리그 단독 선두를 차지했다. 5월에도 첫 경기인 2일 KIA전을 승리로 장식하며 2008년 이후 15년 만의 9연승 기록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비록 10연승은 실패했고 어린이날을 전후로 폭우가 쏟아지면서 나흘 연속 우천순연으로 김이 새긴 했지만, 그 뒤 두산과 1승 1패를 기록했다. 5월 10일 기준 여전히 6할대 승률을 기록하며 1위 SSG 랜더스에 2경기 차 뒤진 2위에 올라 있다. 팬들은 마지막으로 속아본다는 심정으로, ‘이번엔 다르다’는 기대를 갖고 롯데를 바라본다. 반면 ‘봄데’라고 냉소하는 쪽에선 롯데가 언제, 어떻게 추락할지 관망하는 중이다. 과연 올해는 다를 수 있을까. 이번에야말로 한번 롯데를 믿어 봐도 좋을까.

사실 드러난 성적만 보면 시즌 초반 롯데의 연승 행진은 의외의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5월 10일까지 치른 경기 기준으로 롯데는 공격에서 126득점을 올리고 수비에서 129점을 허용했다. 야구는 상대보다 더 많은 점수를 내거나 적게 실점해야 이기는 스포츠다. 장기적으로 볼 때 실점이 득점보다 많은 팀은 높은 승률을 거두기 어렵다. 실제 득실점으로 구하는 롯데의 기대승률은 실제 승률(0.600)보다 훨씬 낮은 0.489로 10개 구단 중 6위다. 자신보다 순위가 낮은 4개 팀의 기대승률이 롯데보다 좋다.

4월 성적만 놓고 보자. 롯데 선발진에서 제 역할을 해준 투수는 ‘5선발’ 후보였던 나균안(4승 무패)밖에 없었다. 타선에서도 OPS 20위권에 이름을 올린 선수가 단 한 명도 없었고, 안권수(4월 타율 0.312)와 잭 렉스(OPS 0.806) 정도가 위협적인 타자였다. 4월 롯데의 팀 평균자책은 4.75로 전체 9위에 불과했고 팀 OPS도 0.687로 10개 팀 가운데 6위에 그쳤다. 페어 지역 안으로 형성된 타구를 아웃 처리한 비율을 나타내는 수비지표 DER(수비효율)은 0.652로 전체 꼴찌(리그 평균 0.688)였다. 이 전력으로 9연승을 거두고 단독 선두에 올랐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 때문에 냉소적인 전문가 중에선 롯데의 4월 성적이 상당 부분 우연과 운에 기댄 결과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포수에서 투수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나균안은 지난 4월 한 달간 4승 무패를 기록하며 롯데의 상승세를 견인했다. photo 뉴시스
포수에서 투수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나균안은 지난 4월 한 달간 4승 무패를 기록하며 롯데의 상승세를 견인했다. photo 뉴시스

끈질기고 빠른 공격, 승계주자 막는 수비

물론 “이번엔 다르다” 쪽에 힘을 싣는 의견도 있다. 지난 4월 롯데를 상대 팀으로 만난 모 구단 코치는 “작년에 붙었을 때와는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며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롯데가 예년보다 훨씬 끈끈하고 까다로운 팀이 됐다는 인상을 받았다. 타자들도 투수들도 중요한 승부처에서 강한 집중력을 보여줬다. 1회부터 9회까지 내내 신경 쓰이고 ‘귀찮은’ 팀이란 느낌이다.”

이런 ‘느낌’의 실체를 보여주는 몇 가지 지표가 있다. 팀 잔루 수가 대표적이다. 5월 10일 기준 롯데는 10개 구단 중에 가장 적은 383개의 잔루를 기록했다. 그리고 일단 한번 주자가 나가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다가(2스트라이크 후 커트율 76.1%, 3위) 어떻게든 배트에 맞혀 인플레이 타구(파울이 아닌 경기장 내로 집어넣는 타구)를 만들고(컨택률 81.4%로 2위, 헛스윙 13.2%로 최소기준 1위, 타석당 삼진 16.4%로 최소기준 2위), 주자를 한 베이스 더 보내며(추가 진루 확률 28.2%, 4위), 홈까지 불러들이는 야구(득점권 타율 0.315, 2위)로 잔루를 최소화했다.

예년보다 적극적으로 ‘뛰는 야구’를 시도하는 것도 눈에 띈다. ‘빅보이’ 이대호가 떠난 자리를 안권수, 황성빈, 김민석 등 젊고 빠른 선수들로 채우면서 롯데는 팀 도루 4위(21도루, 성공률 75%)에 각종 주루지표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팀으로 변신했다. 현재 롯데의 주루기회 대비 득점확률은 29.6%로 전체 1위, 평균 대비 추가 진루는 플러스 6으로 전체 2위다. 한때 느린 주자들 때문에 안타 3개로 한 점을 뽑는 야구, 2루 주자가 단타에 홈으로 파고들지 못하고 3루에 멈춰 서는 야구를 했던 롯데가 이제는 훨씬 효율적이고 짜임새 있는 팀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더 많은 인플레이 타구를 만드는’ 롯데의 공격 콘셉트는 수비할 때 ‘인플레이 타구 허용을 최소화하는’, 정반대 방향으로 적용된다. 한 롯데 관계자는 “잘 맞은 타구나 큰 것을 내주기보다는 최대한 ‘어렵게 가자’는 전략으로 임한다. 볼넷을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치기 좋은 공을 주지 않으면서 상대가 강한 타구를 만들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볼넷, 볼넷으로 주자가 늘어나더라도 하위타선으로 연결돼서 실점 없이 위기를 벗어난 장면이 여러 차례 나왔다”고 전했다.

실제 롯데 투수진은 타석 대비 인플레이 타구 비율이 67.8%(최소기준 3위)로 상대에게 좀처럼 페어지역 타구를 내주지 않고 있다. 롯데 불펜투수들의 물려받은 주자 실점률은 28.6%로 SSG와 함께 공동 1위다. 앞의 투수가 주자를 남겨놓고 내려가도 뒤에 올라오는 투수가 실점 없이 막아낼 때가 많았다는 의미다.

앞의 롯데 관계자는 “스프링캠프 때부터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강조하고 주지시킨 부분이 현재까지 잘 이뤄지고 있다”면서 “타자들에게는 끈질기게 승부하면서 주자를 한 베이스 보내는 전략을, 투수들에게는 볼넷을 주더라도 어렵게 승부하는 방향성을 강조했는데 지금까지의 결과는 기대 이상”이라고 만족감을 표했다.

 

주축 선수들 부진해도 다른 선수들이 메워

지난해까지 롯데는 몇몇 특정 스타 플레이어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SSG에 이어 전체 2위로 4월을 마감한 지난해 4월을 되짚어보자. 월간 MVP 한동희와 이대호, 안치홍, 전준우 등 주축 타자들이 공격을 이끌었다. 마운드에서는 외국인 에이스 찰리 반즈가 혼자 6경기를 책임졌고, 토종 에이스 박세웅까지 호투해 강력한 선발진을 자랑했다. 그러나 이 간판 스타들의 페이스가 떨어지고 부상자가 나오기 시작하자 ‘얇고 납작한’ 선수층이 서서히 한계를 드러냈다.

반면 같은 4월의 돌풍이라도 올해는 밟아가는 과정이 다르다. 작년 4월 MVP였던 한동희가 최악의 부진에 시달리고, ‘FA 대어’로 롯데에 새로 합류한 노진혁·유강남이 공격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못하는 가운데서도 롯데는 연승을 달렸다. 댄 스트레일리-찰리 반즈-박세웅으로 이어지는 1~3선발이 한 달간 모두 합해 1승밖에 올리지 못하는 최악의 부진 속에서도 롯데는 단독 선두에 올랐다. 스타와는 거리가 먼 ‘나머지’ 선수들이 골고루 활약하고 제 역할을 해주면서 핵심 선수들의 부진을 효과적으로 메운 결과다.

야구는 평균의 스포츠다. 스타 선수들이 초반에 아무리 부진해도 시즌을 치르면 점점 원래 갖고 있던 통산 기록에 근접해가며 제 모습을 찾아가기 마련이다. 4월까지 평균구속 142㎞/h대로 고전했던 스트레일리는 5월 첫 등판(9일 두산전)에서 평균 145㎞/h의 빠른 볼을 던졌다. 지난 4월 네 차례의 선발 등판에서 1승 1패, 평균자책점 7.58, 자책점 16점을 기록하며 최악의 출발을 보였던 반즈는 다음 날인 10일 두산을 상대로 6과 3분의2이닝 동안 단 한 점의 실점 없이 2피안타 8탈삼진을 기록하며 호투해 승리투수가 됐다.

롯데 관계자는 “스트레일리와 반즈가 초반 부진을 겪은 뒤 메커니즘상의 문제를 교정하는 시간을 가졌다. 상당 부분 문제를 개선하는 데 성공한 만큼 조만간 원래 모습을 되찾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외국인 듀오와 박세웅이 분발하고, 한동희와 주전 야수들이 타격감을 회복한 5월 이후 롯데는 4월보다 더 강한 팀이 될 수 있다. 매년 너무 짧게 끝난 롯데야구의 봄이 올해만큼은 시즌 내내 계속될 것으로 기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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