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와의 전쟁이 2년째 지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하마스와의 전쟁이 3개월을 넘은 이스라엘에서 민간인 정치지도자와 군 지도자들 간의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군이 조기 종전을 위해 독자적으로 러시아와 평화협상을 시도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의 경우 하마스 공격의 원인 조사를 두고 극우파 정치인들과 군이 충돌하는 양상이다.
지난해 10월 7일 벌어진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에서 하마스를 척결하기 위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전쟁 3개월째인 지난 1월 4일 이스라엘에서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주재로 각료들과 군 지휘관들 간의 연석회의가 열렸다. 가자지구를 무력으로 진압한 이스라엘이 가자전쟁의 다음 단계를 어떻게 수행해야 할지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런데 이 회의는 각료들과 군 장성들 간의 심각한 언쟁으로 중단되었다고 이스라엘 언론들이 전했다. 민·군 단결의 전통과 문화를 유지해온 이스라엘에서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이러한 갈등이 불거진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언론들은 우려했다.

각료와 군 지휘관 연석회의 파행으로 끝나
회의에서 갈등의 원인이 된 것은 군이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을 받으며 무기력하게 당하게 된 원인을 조사할 계획을 밝혔기 때문이다. 당시 하마스의 공격에 이스라엘 군은 수시간 동안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이스라엘 국민 1200여명이 사망했으며 240여명이 인질로 붙잡혔다. 하마스로부터 공격당한 지역은 테러리스트 수천 명의 육해공 동시 공격으로 유린되었다. 헤르지 할레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은 군이 하마스의 공격에 대비하지 못한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전직 장교들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했고 이 위원회에 이스라엘 군 참모총장과 국방장관을 지낸 샤울 모파즈(73)를 포함시킬 예정이었다.
모파즈는 1966년 군에 투신한 이후 1967년의 6일전쟁, 1973년의 욤키푸르전쟁, 1982년의 레바논전쟁은 물론 엔테베작전에도 참가한 베테랑이자 영웅이다. 참모총장을 지낸 뒤에는 정치에 투신하여 국방장관을 역임했다. 중도파 자유주의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그는 현역시절에는 가자지구에서 하마스와의 전투를 지휘했지만, 정치인이 된 후에는 팔레스타인과의 협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모파즈는 2005년 아리엘 샤론 총리가 가자지구에서 일방적으로 철수를 선언하고 유대인 정착촌을 모두 철거했을 때 국방장관으로 보좌했다.
군이 실패의 원인을 찾기 위해 조사를 벌이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한 조사에 특수조직인 군 내부의 사정을 잘 아는 경험 많은 전직 장성이 참여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극우파 각료들이 이에 강하게 반발한 것은 국내 정치논리와 전쟁 이후 가자지구의 처리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 정치권의 갈등을 반영한다.
현 네타냐후 총리는 1996년 처음으로 총리가 된 이후 여섯 번째로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다. 각종 비리혐의로 수사를 받던 그는 2022년 12월에 극우파 정당들과 연합하여 겨우 연정을 구성할 수 있었다. 네타냐후는 사법부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사법개혁을 실시해 나라를 혼란에 빠뜨렸다. 네타냐후가 자신의 비리를 은폐하려는 시도로 인식되기 십상이었다.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네타냐후의 개혁안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며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연일 지속되었다. 시위에는 예비군들도 많이 참가하였다.

극우 장관들의 참모총장 맹공격
이스라엘에서는 지역 단위의 예비군 조직이 활성화되어 있다. 제대를 한 이후에도 예비군 조직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예비군 조직은 지역활동이나 취업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중요한 예비군 조직이 시위에 나서는 일이 많아지자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은 지난해 3월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하여 사법개혁을 중단하라”고 촉구했으며, 네타냐후 총리는 그를 즉각 해임했다. 그러자 다음날부터 더 많은 시위가 일어났으며, 네타냐후는 결국 개혁일정을 연기했다.
그런데 네타냐후 연정에 참여한 극우파 인사들은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 등 이스라엘이 이미 철수한 지역을 다시 차지하자고 주장한다. 대표적 인물이 시온주의당 소속의 스모트리치 재무장관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한창 내정이 혼란스럽던 지난해 3월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 유대인 정착촌을 만들도록 허용하는 조치를 취했다. 2005년 가자지구에서 철수한 이후 27년 만에 가자지구 불간여정책(disengagement)이 뒤집힌 것이다. 이전까지는 국방부가 정착촌 건설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그런데 네타냐후는 정착촌 건설 승인권을 국방부에서 빼앗아 스모트리치에게 넘겼다. 스모트리치는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를 ‘유대 및 사마리아’라고 부른다. 그는 6개월 동안 이 지역의 정착촌에 1만3000채의 유대인 주택 건설을 승인했다. 그리고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습격한 것이다.
군이 하마스 공격의 원인을 조사하다 보면 정착촌 건설 금지 정책을 폐지한 네타냐후 총리내각에 책임이 돌아갈 수도 있다. 그러니 당연히 극우파 각료들은 군의 원인 조사에 반발한다. 지난 1월 6일 각료와 장성들 간의 연석회의에서 극우정당 소속 각료들이 할레비 참모총장을 향해 다양한 비판을 쏟아냈다.
“우리에게 지금 왜 조사가 필요한가? 군병력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보다도 조사하느라 더 바빠진다.”
“당신이 모파즈를 지명했나? 당신 미쳤어?”
할레비 참모총장은 자신에 대한 비판이 집중되자 “이는 10월 7일 이전의 정책들을 전반적으로 조사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진행되는 전쟁에 활용할 전술적 교훈을 얻기 위한 조사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내일 당장 조사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고도 할 수 있다”며 이번 조사는 “레바논에서 헤즈볼라와의 전쟁을 준비하는 군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극우파 장관들의 참모총장 공격이 지속되자 군 출신인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이 나서 장관들이 참모총장을 과도하게 욕보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나는 조사에 대해 모르지만, 참모총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참모총장이 조사위원회를 꾸리기로 결정했다면, 나는 그를 지지한다. 그것은 장관들이 간여할 바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군인들이 정치인들의 승인 없이도 조사를 지시할 수 있는지를 놓고 논쟁이 일어났다.

‘두 개의 정부’ 용인 못 한다는 극우 장관들
극우파 장관들은 군에 대해 비판할 점이 많지만, 전쟁이 진행 중이므로 공개적인 비난은 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스모트리치 장관도 “군에 대해 할 말이 많지만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수년간 군이 잘못을 저질러도 정치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허용되었지만, 이번에는 반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극우파 정당 소속인 이타마르 벤 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이 조사위원회에 모파즈 전 장관을 임명한 것을 비판하며 “모파즈 전 참모총장은 가자지구에서 유대인 정착촌을 철수시킨 ‘불간여정책의 우두머리’다”라고 비난하자, 비상각료회의에 참여하는 군 참모총장을 지낸 베니 간츠 전 국방장관이 폭발했다. 간츠는 “이는 전문적인 조사이다. 그게 불간여정책과 무슨 상관이 있나? 정치적 조사가 아니다. 군사작전 조사이다. 제기랄, 참모총장은 전투 목적에 도움이 되도록 일어난 일을 조사하고 있다”라고 쏘아붙였다.
논쟁이 지속되자 네타냐후는 회의 종료를 선언하며 할레비에게 “언젠가는 당신도 장관들의 말을 듣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 장관은 회의가 끝난 뒤 언론에 “현재의 안보내각이 우리 국방정책에 적절한 결정을 내리고 있는지 정부가 재고할 필요가 있다.… 그 회의에서 일어난 사건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군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그들은 참모총장을 잔인할 정도로 공격했다”고 개탄했다.
이날 회의는 미국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이스라엘 방문을 앞두고 열렸다. 미국이 추진하는 가자전쟁 전후 처리 방안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이기도 했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 정부는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lestinian Authority)를 개혁하여 궁극적으로 가자지구를 통치하게 하는 ‘두 나라 방안(two-state solution)’을 구상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최근 두 나라가 사이좋게 공존하는 것이 궁극적인 해결방안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바이든 행정부는 전쟁 이후 가자지구 통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블링컨의 이번 방문 회담 주제에 가자지구에 대한 불간여도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이번 여행에서 모든 대화가 수월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지역이 직면한 어려운 문제들이 분명히 있다. 우리는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한다. 국무장관은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하는 것이 미국의 책무라고 믿고 있다. 그는 수일 내에 그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네타냐후는 미국과의 그러한 토론을 기피하려 한다. 왜냐하면 하마스가 패퇴한 이후 가자지구의 민간 사무를 처리하는 데 팔레스타인자치정부가 모종의 역할을 맡는 내용이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스라엘 극우파 정치인들은 두 나라 해결방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들의 입장은 가자지구를 다시 팔레스타인이 통제하면 5년 후든 10년 후든 결국 영원히 이스라엘 공격의 근거지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니 가자지구를 이스라엘이 영원히 점령하자는 입장이다. 지난 1월 4일 회의도 원래는 안보 각료 및 군 지휘관들과 하기로 계획했는데, 스모트리치와 벤 그비르 등 극우파 장관들의 압력 때문에 군 참모총장을 비판하는 각료들이 포함되었다.
극우파가 있는 통합정부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공헌했던 중도파 야당 지도자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는 이 회의가 “전례 없는 깊은 낭떠러지로 떨어진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는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에 장관들이 참모총장을 비판하고 총리가 이를 말리지도 않았다.… 군대에 복무한 적도 없는 벤 그비르 같은 장관들이 이스라엘 영웅인 모파즈를 공격했다. 다른 장관들도 군 장교들을 모욕했다. 이것은 내각이 아니라 국가적 재난이다”라고 개탄했다.
젤렌스키 무시하고 협상 나선 잘루즈니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에서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발레리 잘루즈니 육군 참모총장 간의 불화가 심각한 양상이다. 러시아와의 전쟁을 이끄는 인기 높은 두 지도자 간의 갈등은 그동안 서구 언론에도 간간이 보도되었다.
특히 지난여름 세계적 관심사였던 우크라이나의 반격작전이 이렇다 할 성과 없이 끝난 후 두 사람 간의 갈등이 본격화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잘루즈니 총장에게 공격을 지속하라고 다그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면 잘루즈니 총장은 강력하게 방어망을 구축한 러시아군을 상대로 공격을 지속할 경우 많은 희생자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였다. 일선 지휘관들은 젤렌스키의 의견을 무시했다고 한다.
잘루즈니 총장은 지난해 11월 영국 이코노미스트 기고문에서 드론 정찰과 발전된 기술 때문에 양국 모두 기갑전력의 진격이 불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더 이상의 전진은 가능해 보이지 않으며, 우크라이나가 더욱 발전된 무기를 공급받지 못하면 “아름다운 돌파구(beautiful breakthrough)”에 다다르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 대통령 비서실 차장은 잘루즈니 장군이 “전략적 사고의 깊이를 보여주었지만 우크라이나의 전쟁 노력을 해칠 위험성이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 기고문 때문에 외국 관리들이 “당신들 정말 막다른 골목에 처한 상태인가?”라고 물어온다며 “이게 우리가 달성하고자 했던 효과인가?”라고 되물었다.
최근에는 잘루즈니 장군이 독자적으로 러시아와 평화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세이무어 허시는 최근 게재된 기사에서 잘루즈니 총장과 러시아의 발레리 게라시모프 참모총장 간에 평화협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협상에는 러시아가 점령한 크름반도와 4개 지역의 안보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동의하는 내용도 포함된다. 단 나토 병력이 우크라이나에 주둔하지 않으며 방어무기만 배치하는 것이 조건이다. 협상에 관여하는 미국 관리들이 “이는 충동적 이벤트가 아니다. 잘루즈니가 신중하게 만들어냈다. 그는 ‘전쟁은 끝났으며, 우리는 빠진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는 ‘전쟁을 지속하는 것은 우크라이나의 다음 세대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허시는 전했다. 이 관리는 “백악관은 이 협상에 절대 반대한다. 그러나 협상은 진행되고 있다. 푸틴은 반대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잘루즈니로부터 “이는 군끼리 해결할 문제이며, 당신이 끼든 안 끼든 우리는 협상을 지속할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잘루즈니 장군이 개인적으로 협상을 하는 목표는 병사들의 희생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젤렌스키도 최근 AP 회견에서 “우리의 소망을 신속하게 달성할 힘이 충분치 않다. 우크라이나는 지난여름 반격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젤렌스키의 지지도는 전쟁 이후 95% 수준에서 65%로 하락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