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29일 하동 십리벚꽃길 photo 최홍섭
2023년 3월 29일 하동 십리벚꽃길 photo 최홍섭

이해인 수녀는 ‘봄의 연가’라는 시(詩)에서 “우리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 봄이 그리워서 봄이 좋아서/ 나는 너를 봄이라고 불렀고/ 너는 내게 와서 봄이 되었다”라고 표현했다. 봄은 봄꽃에서부터 온다. ‘봄’이란 말은 ‘보다’에서 나왔고, 생명력 넘치는 봄꽃을 본다는 의미가 있으리라. 봄꽃은 겨우내 잠자던 생명체의 화려한 부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봄꽃의 개화(開花) 시기가 거침없이 빨라지고 있다. 예측이 어려워졌다. 과거에는 ‘4월 초순이면 어디에서 어떤 꽃이 핀다’는 관측이 틀리지 않았는데, 요즘은 빗나가기 일쑤다.

기상정보 전문업체인 케이웨더에 따르면, 올해 개나리와 진달래의 개화는 평년보다 1~5일 정도 빠를 전망이다. 개나리는 서귀포에서 3월 15일, 서울에서 3월 28일 각각 개화하고 진달래는 서귀포에서 3월 17일, 서울에서 3월 29일 개화할 전망이다. 물론 절정은 이보다 일주일 정도 더 걸린다. 올해 벚꽃 개화도 평년보다 1~7일 빠를 것으로 케이웨더는 예측했다. 3월 24일 서귀포를 시작으로 남부지방은 3월 22〜31일, 중부지방은 3월 30일~4월 7일에 개화할 것으로 보인다. 벚꽃의 절정도 개화 후 일주일 정도 걸리므로, 서울의 경우 4월 3일 개화하여 4월 10일 절정에 이를 전망이다.

‘봄의 전령사’인 매화로 유명한 전남 순천 매곡동이나 광양 매화마을은 이미 2월 중순부터 꽃이 피기 시작해 상춘객(賞春客)이 찾아오고 있다. 물론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3~4월 중 언제든 닥칠 수 있는데, 그러면 미처 피지 못한 꽃봉오리가 움츠러들면서 봄꽃 잔치를 망치기도 한다. 그래서 지방자치단체들이 운영하는 봄꽃축제 일정도 오락가락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벚꽃 축제인 진해군항제는 올해 제62회로 3월 23일부터 4월 1일까지 열린다. 1963년 제1회 때만 해도 4월 5일에 열렸으니 보름 정도 빨라진 셈이다.

바쁜 일상에 지친 현대인이 자연으로 달려가 화사한 봄꽃을 직접 만나면 색다른 활력을 얻을 것이다. 다만 전국의 봄꽃 명소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리므로 아침 일찍 도착하든지, 아니면 아예 오후 3시 너머 사람들이 좀 빠져나간 뒤 도착해 빠른 걸음으로 둘러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특히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처럼, 우리나라 봄꽃은 대부분 7~10일 정도 활짝 피기 때문에 그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 흔히 봄꽃 뉴스를 보고 나서 “다음 주말이나 한 번 가보지”라고 하면 이미 늦다. 약간은 부지런하게 날씨 동향을 체크하는 등 발품을 팔아야 한다. 살짝 땀이 나는 등산으로 산 정상에 있는 봄꽃 군락지를 찾거나, 지자체별로 개최하는 봄꽃 축제를 방문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반드시 가야 하는(Must-Go)’ 3~4월 봄꽃 명소 10곳을 소개한다. 물론 무슨 객관적 지표가 아니라, 필자의 경험에 따른 주관적 판단이다.

 

➊ 보성 일림산 철쭉

4월 하순이 되면 전남 보성에 있는 일림산(667m)을 꼭 가 보시라. 지금까지 숱한 등산과 꽃구경을 했지만, 일림산을 뒤덮은 철쭉 바다에 빠지는 순간만큼 황홀한 경험은 없었다. 보성 녹차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일림산은 완만한 등산 코스다. 용추계곡 입구부터 편백나무 숲을 지나 쉬엄쉬엄 올라간다. 느닷없이 야생화 천지인 평지가 나타나고, 골치산 작은봉우리에 도착한다. 거기에서부터 진분홍과 연분홍 철쭉이 하나둘 등장한다. 이윽고 골치산 큰봉우리에 이르면 일림산 정상까지 600m 구간에 물감을 퍼부은 듯한 핑크 쇼가 펼쳐진다.

사람 키가 넘는 철쭉 터널을 지나가면 잠시 천국의 입구에 왔나 싶다. 일림산 정상에 서면 멀리 고흥반도 서쪽의 득량만 바다를 배경으로 철쭉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매서운 바닷바람을 맞고 자라서 빛깔은 더욱 선명하다. 철쭉꽃 면적만 100㏊로 전국 최대 규모다. 도심에서 찌든 삶은 가끔씩 이런 데서 위로를 받아야 한다. 주말에는 엄청난 주차대란을 각오해야 하지만, 고생한 만큼 보상이 따르는 곳이다. 철쭉으로는 경남 합천·산청에 있는 황매산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2023년 3월 15일 광양매화마을
2023년 3월 15일 광양매화마을

➋ 광양 매화마을

섬진강을 코앞에 두고 있는 광양시 다압면 매화마을. 우리나라의 봄을 가장 먼저 알려 주는 곳이다. 멀리는 지리산 천왕봉이 보이고 박경리 소설 ‘토지’에 나오는 최참판댁 평사리 들판도 펼쳐져 있다. 올해 제23회 광양매화축제는 3월 8일부터 17일까지 ‘광양 매화, K-문화를 담다/봄의 서막: 매화’라는 주제로 열린다. 전액 축제상품권으로 돌려주긴 하지만, 일단 입장료를 받는다고 한다. 7~18세는 4000원, 19~64세는 5000원이다. 이곳은 매년 극강의 주차전쟁을 치르는데, 주최 측은 둔치 주차장을 대폭 확대하고 셔틀버스 운행구간을 확대하는 등 대책을 마련했다. 광양 매화마을은 홍쌍리(81) 식품명인이 운영하는 청매실농원으로 더욱 유명하다. 흰색 매화는 물론, 분홍 물감에 적신 듯한 홍매화 숲의 농염한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➌ 하동 십리벚꽃길

경상도와 전라도가 만난다는 화개장터에서 시작하여 쌍계사까지 이어지는 6㎞의 하동 십리벚꽃길은 3월 말이 되면 연방 입이 벌어지는 화사함으로 인기가 높다. 입구에 서면 ‘한국의 아름다운 길’이란 간판이 보인다. 1931년에 심은 벚나무 1200그루와 홍도화 200그루가 도로 양쪽에 자리 잡고 있다. 화개중학교부터 북쪽으로 500m 남짓한 구간이 단연 하이라이트다. 엄청난 차량 정체를 뚫고 운전하거나 직접 걷다 보면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온다. 올해도 야간 개장을 할 전망인데, 빨강·파랑·보라 등으로 변하는 조명이 세련되고 운치가 있다. 진해군항제도 마찬가지이지만, 벚꽃은 절정기 타이밍을 지나쳐 버리면 아주 볼품없는 모양새가 되어 버린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➍ 창원 천주산 진달래

경남 창원시 의창구에 있는 천주산(638m)은 3월 말부터 4월 초에 꼭 가보기를 추천한다. 물론 치열한 주차전쟁을 치러야 한다. 천주암이나 달천계곡에서 시작하는 등산로는 모두 땀을 좀 흘려야 정상의 진달래 군락지에 도착한다. 다소 힘들긴 하지만 핑크빛 낙원이 모든 걸 보상해 준다. 천주산은 이원수 선생이 쓴 ‘고향의 봄’의 배경이 된 곳으로, 연분홍과 진분홍 진달래가 바다처럼 어우러져 가히 몽환적인 꽃대궐을 연출한다. 외국인도 소문을 듣고 많이 찾아온다. 보성 일림산과 창원 천주산은 봄꽃 시즌이 되면 휴가를 내서라도 가봐야 하는 산이다.

 

➎ 순천복음교회 매화

순천은 3월 2일 제6회 매곡동 탐매축제가 열리는데, 이미 2월부터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그중에서도 순천복음교회는 교회 앞 정원이 가로·세로가 각각 50m 정도에 불과하지만, 빼어난 조경미(造景美)로 최근 매화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이미 매화로 유명한 매곡동 탐매마을이나 선암사의 인기를 위협할 정도다. 이국적인 양식의 교회 건물에다 교회 앞 작은 연못은 붉디붉은 홍매화와 절묘한 조화를 이뤄 사진작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담임 목사가 2012년부터 전남 지역의 매화나무를 수집해서 조성했다는데 현재 홍매화 130그루, 백매화 45그루 등이 있다고 한다. 교회 주소가 ‘전남 순천시 왕지로 113’으로 아직 대중교통이 원활하지 않고, 주차장도 넉넉하지 않은 점을 감안해야 한다.

화엄사 주최로 열린 제3회 화엄사 홍매화 사진 콘테스트 수상작인 ‘비 속의 매화’. photo 신성자
화엄사 주최로 열린 제3회 화엄사 홍매화 사진 콘테스트 수상작인 ‘비 속의 매화’. photo 신성자

➏ 지리산 화엄사 홍매화

전남 구례에 있는 화엄사는 지리산 노고단으로 올라가는 등산로의 초입에 있는 큰 절이다. 화엄사 내의 원통전과 각황전 사이에 위치한 홍매화는 아름다운 자태로 명성이 자자하고, 올해 국가유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도 했다. 조선 숙종 때 원통전과 각황전의 중건 기념으로 홍매화를 심었다고 전해진다. 문화재청은 “화엄사 홍매화가 검붉은 화색과 두 줄기가 꼬인 수형으로 국민들의 높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고, 수목(樹木)의 줄기나 가지가 굴곡을 만들며 자라는 형질을 가지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화엄사 홍매화는 2월 중순부터 꽃망울이 올라오기 시작해 3월 초·중순 검붉은 꽃을 피운다. 화엄사 측은 2월 25일부터 3월 23일까지 ‘색을 듣고 소리를 보는 홍매화’라는 주제로 프로와 스마트폰 카메라 사진으로 나눠 제4회 홍매화 사진 콘테스트를 진행한다.

비슬산 정상 고원지대에 조성된 참꽃 진달래 군락지. photo 월간 산
비슬산 정상 고원지대에 조성된 참꽃 진달래 군락지. photo 월간 산

➐ 달성 비슬산 진달래

보통 진달래 시즌의 마지막은 대구시 달성군 비슬산(1084m)이 장식한다. 화산 분지 모양의 100만㎡(약 30만평) 정상 고원지대에 진분홍 참꽃(진달래) 잔치가 벌어진다. 천상의 화원인 셈이다. 이곳에서 영화나 드라마도 많이 찍었다. 작년에는 4월 15일부터 이틀간 제27회 비슬산 참꽃문화제가 열렸는데, 올해는 다소 앞당겨질 전망이다. 참꽃 절정기가 되면 산 초입에서 정상 부근 대견사까지 유료 순환버스를 타는 관광객들, 그리고 유가사 등지에서 올라온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최근 수년간 꽃샘추위로 냉해를 자주 입었는데, 올해는 예전의 화려한 모습을 재현할지가 주목된다.

2022년 3월 22일 구례 산수유축제 photo 최홍섭
2022년 3월 22일 구례 산수유축제 photo 최홍섭

➑ 구례 산수유마을

보통 광양 매화마을을 구경한 사람이면, 차량으로 1시간 거리에 있는 구례 산수유마을도 같이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전남 구례 산동면에 있는 산수유마을은 지리산 만복대를 병풍 삼아 광대한 마을 전체가 옐로(yellow) 파티를 벌인다. 올해는 3월 9일부터 17일까지 제25회 구례 산수유꽃 축제가 열린다. 보통 지리산 잔설(殘雪)이 녹기 전에 산수유 꽃이 피는데, 전국 산수유 생산량의 70%가 여기에서 나온다. 현천마을, 반곡마을, 상위마을 등이 관광객에게 인기 높은 곳이다. 1000년 전 중국 산둥성(山東省)에 사는 처녀가 시집오면서 가져온 산수유 시목지가 관광의 기점이다. 구례 산동면 처녀들은 입에 산수유 열매를 넣고 앞니로 씨와 과육을 분리했는데, 그런 산동면 처녀와 입을 맞추는 것은 보약보다 이롭다고 알려져 남원이나 순천 등지에서 며느리로 들이려는 경쟁이 치열했다고 한다.

 

➒ 서울 성동구 응봉산 개나리

서울 성동구 강북강변로 옆에 있는 응봉산(95m)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개나리 군락지다. 산수유와 노란색 경쟁을 벌이는 것이 개나리다. 응봉산은 암반층 지질인데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개나리의 본산으로 변했다. 조선시대 임금이 사냥할 때 이곳에서 매를 놓아 꿩을 잡았다고 해서 매봉우리, 즉 응봉(鷹峰)이라고 이름 지었다. 규모는 동네 뒷산 수준이지만 3월 중순부터 4월 초순까지 산 전체가 노랗게 물들면서 장관을 이룬다. 개나리 축제도 동시에 벌어진다. 밤이 되면 한강과 도심 불빛이 어우러져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서울에 살면서도 잘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➓ 부천 원미산 진달래동산

부천 원미산(167m) 진달래동산은 도심에 자리 잡았으나 진달래의 양과 질에서는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 수도권에 살면서 남쪽 지방까지 가기 힘든 사람들이 진달래를 감상하기에 충분한 곳이다. 분홍 진달래 사이로 흰 진달래가 유독 눈에 띈다. 이곳은 지하철 7호선 부천종합운동장역에서 가깝다. 3월 말에서 4월 초까지 가장 진달래 상태가 좋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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