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전 미 대통령이 좋아했던 ‘어니스트 티’. 코카콜라가 인수했지만 판매 부진을 겪다 2022년부터 판매가 중단됐다. photo USA Today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이 좋아했던 ‘어니스트 티’. 코카콜라가 인수했지만 판매 부진을 겪다 2022년부터 판매가 중단됐다. photo USA Today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입맛을 사로잡은 ‘어니스트 티(Honest Tea)’는 지난 2007년 음료업계 거인들 간의 인수전에 휘말린 바 있다. ‘어니스트 티’를 최우선 인수 대상으로 삼은 업체는 코카콜라. 하지만 코카콜라의 신규사업투자팀인 벱(VEB·Venturing and Emerging Brands)은 인수전 초기부터 비상이 걸렸다. 같은해 7월부터 어니스트 티의 공동 창업자인 골드먼(Seth Goldman)과 네일버프(Barry Nalebuff)에게 M&A(인수합병) 러브콜을 집요하게 보내는 와중에 차 음료 분야에서 코카콜라를 앞지른 펩시가 M&A 전선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어니스트 티’와의 투자 협상이 한 번 불발됐던 세계 1위의 식음료 회사 네슬레도 코카콜라보다 더 좋은 조건을 다시 제시한 것이다.

세계 1, 2위를 다투는 거대 기업의 삼파전은 해를 넘겼다. 그동안 힐러리 클린턴과 맞붙은 오바마 상원의원은 민주당 대선 후보로 지명됐다. 여론의 집중을 받은 오바마 덕분에 오바마의 차로 알려진 어니스트 티의 주가도 덩달아 급상승했다. 이에 다급해진 코카콜라 북미 지역 사장 샌디 더글러스(Sandy Douglas)가 다시 적극적인 구애에 나섰다. 당시 ‘어니스트 티’ 창업자 골드먼과 네일버프의 최대 고민은 인수가격이 아닌 어느 회사가 ‘어니스트 티의 창업 미션을 잘 살려줄 수 있느냐’였다. 이를 간파한 더글러스는 어니스트 티의 창업 미션을 보장해주기로 했다.

 

‘정직한’ 이미지 필요했던 코라콜라의 구애

‘공정거래 원칙을 지키며 달지 않은 유기농 음료를 만든다’는 어니스트 티의 창업 미션은 ‘정직한 차를 만들어 사업으로 세상에 기여하겠다’였다. 담배 다음으로 해로운 음식으로 치부되고 있는 탄산음료 세계 1위 기업인 코카콜라의 기업 이미지 세탁에 어니스트 티의 ‘정직한’ 이미지는 절실했다. 매년 4000종이 넘는 새로운 음료가 선보이기 무섭게 사라져버리는 미국의 음료 시장에서 대부분 음료 회사들은 단맛에 빠진 대다수를 위해 점점 더 당도가 높은 음료를 경쟁하듯 출시했다. 반면에 어니스트 티는 대중 음료 시장에서 소수를 겨냥한 ‘달지 않은 차’로 틈새시장을 확보한 보석 같은 존재였다.

3000개가 넘는 음료를 비교한 후 어니스트 티를 첫 번째 인수 대상으로 정한 코카콜라의 로망은 코카콜라 CEO인 무타 켄트(Muhtar Kent) 회장까지 등판시켰다. 무타 켄트가 어니스트 티의 공동 창업자인 골드먼와 네일버프에게 “어니스트 티를 코카콜라 아류로 키우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코카콜라의 DNA를 바꿔 어니스트 티처럼 운영하려 합니다”라고 ‘영화 속 대사’처럼 말한 것이 협상 타결의 결정타였다. 1년여 동안 진행된 코카콜라의 끈질긴 러브콜이 성사되는 순간이었다. 네일버프는 이 순간을 2013년 자신이 쓴 책 ‘어니스트 티의 기적(Mission in a Bottle)’에서 ‘어니스트 티에 코카콜라가 감동한 순간’이라고 서술했다. 물론 네일버프와 골드먼 자신도 무타 켄트의 달달한 멘트에 감동했다. 

2008년 3월 어니스트 티의 주식 40%를 4300만달러에 매입한 코카콜라는 3년이 지난 2011년 어니스트 티 브랜드를 완전히 인수했다. 2009년 1월 20일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받은 골드먼은 오바마 대통령을 위한 한정판 차를 만들어 백악관에 전달하기도 했다. ‘어니스트 티는 백악관은 물론 미국 대통령 전용기와 헬기 안에도 구비되어 있는 필수품이 됐다’라며 모두가 어니스트 티의 성공신화에 찬사를 보낼 때 어니스트 티와 코카콜라의 결합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낸 기자가 있었다.

볼티모어 선의 기자 안드레아 워커(Andrea K. Walker)는 2008년 4월 16일 자 기사에서 친환경 기업이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사업을 구축한 어니스트 티가 결이 전혀 다른 파트너인 코카콜라와 함께 사업을 확장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위험한 행보라고 지적했다. 안드레아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문화는 항상 충돌할 수 있으며 상호 동화되면서 정체성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버지니아커먼웰스대학의 마케팅 교수 데이비드 어번(David Urban)의 주장을 인용했다. 덧붙여 어니스트 티는 자신의 사회적 사명을 앞으로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코카콜라를 좋은 파트너로 굳세게 믿은 골드먼은 “이 결합은 사람들에게 더 지속 가능한 건강음료를 제공하기 위해 세계 최대의 음료 회사와 협력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코카콜라와 독점 계약을 맺은 맥도날드에서 어니스트 티가 판매된다면 차 재배자들도 훨씬 더 안정적으로 유기 농업을 할 수 있습니다”라고 강변했다. 실제로 맥도날드와 서브웨이 등 10만개 이상의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유기농 주스 음료인 어니스트 키즈(Honest Kids)는 현재도 잘 팔리고 있다.

코카콜라가 투자를 시작한 2008년 어니스트 티를 취급하는 매장은 1만 5000곳이었지만 지금은 15만곳으로 확대됐다. 매출도 편입되기 직전인 2010년 7100만달러에서 2013년 1억1000만달러를 기록했다. 미국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가 뽑은 ‘최고의 기업’에 선정되는 영광까지 누렸다. 2015년 7월의 경우 북미시장에서 코카콜라의 매출이 전년도보다 3% 줄었어도 순이익은 20% 증가했는데 여기에 어니스트 티의 판매 신장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건강을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탄산음료를 피하면서 탄산음료 판매량은 감소하는 추세였지만 어니스트 티의 매출은 매년 두 자릿수의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2022년부터 판매도 않고 매각도 않는 상태

2019년 어니스트 티의 매출은 6억달러를 넘겼다. 이를 계기로 어니스트 티는 신규사업투자 부문에서 10억달러 규모의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는 메인 포트폴리오로 옮겨갔다. 골드먼은 이때까지 코카콜라에서 어니스트 티 브랜드를 위해 일하다가 코카콜라를 떠났다. 골드먼이 떠난 코카콜라는 2006년에 처음 출시한 자사 개발 RTD 차 골드 피크(Gold Peak)를 어니스트 티 대신 주력상품으로 밀기 시작했다.

한국 코카콜라사도 골드 피크를 2017년 미국, 캐나다에 이어 전 세계 세 번째이자 아시아 최초로 국내 시장에 내놨다. 우바산 홍찻잎을 직접 우린 프리미엄 아이스티 ‘골드 피크 티’라고 병 라벨에도 표기했고 보도자료도 배포해서 한국의 언론에도 ‘직접 우린 차’로 소개됐다. 그런데 여기에는 사실과 다른 점이 있다. 코카콜라 본사가 ‘골드 피크 티’에 농축액을 희석하지 않고 진짜 차로만 우려낸 공법을 적용한 것은 2019년부터다. 따라서 한국에서 판매한 ‘골드 피크 티’는 펩시에 뭇매를 맞고 차의 전쟁에서 패퇴한 한물간 상품일 확률이 매우 높다.

가장 성공적인 비탄산음료 인수사례로 자타가 공인하던 어니스트 티는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가장 비극적인 상품으로 전락한 상태다. 2022년 5월 23일 코카콜라는 연말부터 어니스트 티 음료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코카콜라 북미 사업부 RTD 티 그룹 이사인 사브리나 탠돈(Sabrina Tandon)은 성과가 저조한 ‘좀비’ 브랜드로 분류해 생산을 중단하면서도 “어니스트 티 ‘브랜드’는 매각하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이 소식을 접한 골드먼은 오장육부가 끊어지는 아픔을 호소하며 트위터에 11개에 달하는 폭풍 트윗을 날렸다.

애지중지 키워 재벌에게 시집 보낸 착한 딸이 뒷방 신세가 된 셈이다. 차라리 파혼을 해주면 좋겠지만 코카콜라의 생각은 달랐다. 어니스트 티와 같이 유망한 중소기업을 인수해서 키우는 방법이 정석이지만 펩시 같은 경쟁자가 못 가지도록 아예 ‘식물화’하는 냉혹한 변칙전략도 있다. 코카콜라가 감동한 어니스트 티의 기적은 사라지고 상처만 남은 셈인데 창업자 골드먼 역시 넋 놓고 울고만 있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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