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 1월 1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우주항공청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 등 우주항공청 관련 법률안 3건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우주항공청 설립을 위한 후속조치를 본격적으로 추진한다고 밝히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 1월 1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우주항공청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 등 우주항공청 관련 법률안 3건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우주항공청 설립을 위한 후속조치를 본격적으로 추진한다고 밝히고 있다. photo 뉴시스

오는 5월 27일 우주항공청(KASA)이 공식 출범한다.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한 우주항공청법에 따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외청으로 설립되는 우주항공청은 우주항공 분야의 기술 개발과 산업 진흥을 전담하고, 항공우주연구원과 천문연구원이 소속기관으로 편입된다. 이미 KAI(한국항공우주산업)가 둥지를 틀고 있는 경남 사천은 본격적인 우주항공복합도시로 거듭나겠다는 꿈에 들떠 있다. 그런데 ‘우주항공산업’을 관리하는 행정기관의 정체성과 역할이 도무지 분명치 않다. 무작정 만들어놓고 보자는 형국이다.

 

우주 개발은 시대적 당위 

우리도 미국의 NASA(항공우주국)나 일본의 JAXA(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와 같은 우주 개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요구는 20여년 전부터 있었다. 그런 우주항공청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 덕분이다. 경남 사천에 우주항공청을 설립해 ‘본격적인 우주 시대 개막’을 서두르면서 동시에 지역 경제를 살리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것이 대선 공약의 핵심이다.

‘미래 우주경제 로드맵’도 내놓았다. 이는 “앞으로는 우주에 대한 비전이 있는 나라가 세계 경제를 주도하고,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풀어갈 수 있게 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2032년에는 달에 착륙선을 발사하고, 광복 100주년인 2045년에는 화성에 태극기를 꽂아서 세계 5대 우주 강국의 꿈을 실현하겠다는 포부다. 대통령이 직접 국가우주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서 우주항공청을 ‘한국판 NASA’으로 키울 예정이다.

실제로 전 세계가 ‘우주 시대’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미국에서는 스페이스X와 블루오리진과 같은 민간기업이 우주 개발의 전면에 나섰고, 중국·일본·인도·아랍에미리트(UAE)·브라질·스페인도 우주 진출에 적극적이다. 인도가 작년 8월에 미국·러시아·중국에 이어 4번째로 찬드라얀3호를 달 남극에 착륙시켰고, 일본도 지난 1월에 달 탐사선 슬림(SLIM)을 달에 안착시켰다. 심지어 10년 전에 우주청을 설립한 UAE도 달·소행성 탐사는 물론 화성 이주 계획까지 추진하고 있다. 이제 미국·러시아·영국·프랑스가 우주를 지배하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세계 10위권의 선진국으로 성장한 우리도 먼 산만 쳐다볼 수는 없는 상황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우주 개발 로드맵을 내놓고, 우주항공청을 설치하게 된 것은 다행이다. 그렇다고 겉으로만 화려한 ‘로드맵’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 시대적 당위가 돼버린 우주 시대에 어울리는 실속을 채워 넣어야만 한다.

 

어설픈 우주항공산업의 정체 

적극적인 민·관 협력을 통해 글로벌 우주항공 경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이 우주항공청을 설치하는 정부의 목표다. 2045년까지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가 경제를 이끌어갈 혁신적인 우주항공 기업을 2000개 이상으로 육성하고, 100대 기업도 10개 이상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양질의 일자리 50만개를 창출하고, 4조원의 투자로 우주항공 산업을 420조원 규모로 키워서 세계 시장의 10%를 차지한다는 목표도 내놓았다.

당장 우리의 현실이 너무 초라하다. 작년의 우주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우주산업 인력은 1만명에 지나지 않고, 우주항공 분야 기업도 300여개 수준이다. 100대 기업에 속하는 한화·KAI·대한항공 등 3개를 제외한 대부분이 세계 무대에 나서기 어려운 영세기업이다. 누리호·다누리호의 발사 성공과 수리온·T-50·KF-21 등의 개발 성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가 차지한 우주항공 분야 세계 시장 점유율은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자칫하면 우주항공청이 한 푼이 아까운 정부 예산을 퍼주는 기관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겉으로만 화려한 관료주의적 탁상행정이 아니라 훨씬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목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우주항공청의 역할을 ‘우주항공산업’으로 못 박아버린 것이 못내 아쉽다. 물론 우주 개발이 새로운 첨단 기술의 개발을 촉진하는 실질적 동력이 될 수는 있다. 그렇다고 뒤늦게 우주 개발에 나서는 우리가 드러내놓고 ‘경제’와 ‘산업’만 강조하는 것은 낯뜨거운 일이다. ‘우주식품’ 개발을 목표로 내세웠던 과거의 부끄러운 행태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사실 ‘우주경제’와 ‘우주항공산업’이 무엇인지 도무지 분명치 않다. 달에서 채굴한 ‘자원’을 지구로 실어 와서 활용하겠다는 구상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지상 350㎞의 우주정거장까지 올라가는 러시아의 프로그레스 화물 전용 우주선은 최대 2.6t의 화물을 적재할 수 있고, 일본의 HTV 화물우주선도 최대 6t의 화물을 운반할 수 있을 뿐이다.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이 걸리는 우주에서 가져올 수 있는 ‘자원’의 양은 황당할 정도로 적다. 1972년 아폴로 17호가 달에서 가져온 암석은 고작 110㎏이었다. 미국의 소행성 탐사선 오시리스-렉스가 7년5개월 만에 소행성 베누(Bennu)에서 가져온 토양 시료는 250g뿐이었다. 달에서 채취한 헬륨을 지구로 가져와 자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발상은 공상과학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뜻이다. 

 

200명의 연구인력이 필요한 이유가 뭔가?

물론 그동안 선진국이 우주를 이용해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챙긴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선진국의 우주 개발이 오로지 경제적 이익만을 위한 노력이었던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허블 우주망원경을 통해 밝혀낸 우주의 정체와 역사의 과학적·학술적 가치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도 우주항공청법이나 우주개발진흥법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주항공 분야의 ‘과학’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다. 

우주항공청의 정체도 분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우주항공청법에 따르면 오는 5월 사천에 설립되는 우주항공청은 우리나라 우주항공산업의 정책을 총괄하는 ‘행정기구’다.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력을 갖춘 NASA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사실 사천에 마련해놓은 임시 청사도 우주항공기술의 연구용 시설이 아니다. 연구에 필요한 시설을 갖추는 일이 쉬운 것도 아니다. 결국 실질적인 연구·개발은 소속기관으로 편입된 항공우주연구원에서 수행할 수밖에 없다. 우주과학을 연구하는 천문연구원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도대체 우주항공청이 200명의 ‘연구인력’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 우리나라의 우주항공 분야 산업정책을 관리하는 연구인력을 외국에서 모셔와 특별대우를 해야 할 이유도 없다. 축구 국가대표팀처럼 우리나라 우주항공산업 정책을 함부로 외국인 감독에게 맡길 수도 없다. 미국인 대기과학자를 기상선진화추진단장으로 모셔왔던 기상청의 아픈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주로 나가야 하는 이유에 대한 감동적인 서사(敍事)가 필요하다. 경제와 국방의 논리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고, 남이 장에 가니 우리도 지게라도 지고 따라가야 한다는 억지도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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