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착 3주째에 중국산 온라인 플랫폼인 테무(www.temu.com)를 처음 사용해봤다. 2만8064원에 무려 21개 제품을 구입했다. 주문 후 정확히 1주일 만에 집앞 현관에 물건들이 도착했다. 한국까지 와서 글로벌 유통시장의 이단아 테무에 데뷔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한국의 고물가에 대한 좌절과 반발 탓이다. 5년 만에 들른 한국은 거품 같은 고물가의 갈라파고스섬으로 느껴진다. 짜장면 한 그릇 8000원, 사과 하나 5000원만이 아니다. 시든 장미 한 송이가 최하 5000원, 샴푸 하나에 1만원은 기본이다. 여권용 증명사진를 찍으러 가자 4장에 2만5000원을 달라고 한다.

필자는 한국에 오기 1년 전부터 유럽, 미국, 일본, 인도, 동남아를 돌아다녔다. 대략적인 글로벌 물가에 익숙하다. 한국의 경우 해도 너무할 정도의 수준까지 올라간 상태다. 3년 전 환율 폭락에 들어섰던 튀르키예 물가를 떠올리게 할 정도다. 돈을 쓸 수가 없고, 돈 가치가 떨어져서 제대로 쓸 만한 곳도 없다. 특히 일본과 비교할 때 거의 절망적이다. 일본에서는 우동 450엔, 사과 100엔, 장미 한 송이 150엔, 샴푸 300엔이면 충분하다. 서울 평창동 카페의 종이컵 커피가 1만2000원에 달하지만 도쿄 최고 호텔 데이코쿠(帝国)의 브랜드 커피는 600엔에 그친다. 한국의 경우 양이 많기는 하다. 그러나 질적으로 떨어지고, 서비스도 엉망이다. 테무는 그 같은 상황 속에서 접한 희소식이다. 알고 지내던 30대 한국 청년들로부터 들은 정보에 기초해 테무 회원이 됐다.

한국 온라인 플랫폼도 테무 가입을 부추긴 배경이 됐다. 서울 도착 즉시 쿠팡을 비롯해 여러 플랫폼을 통해 식료품을 주문해 봤다. 

외면하기 힘든 테무의 매력

필자의 여행법이지만 숙소는 전부 에어비엔비(AirBnB)로 예약한다. 호텔에 비해 값도 싸지만 주방이 있기 때문에 간편하다. 장기 여행을 하는 경우에는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이 좋다. 간장, 식용유는 물론 야채, 육류, 곡류도 직접 시장에 가서 구입해 먹는다. 쿠팡 등을 통해 이런 먹거리들을 신속,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주문을 해봤다. 그러나 필자가 접한 온라인 식료품은 대형 마트에 비해 조금 저렴할 뿐 별 차이가 없었다. 그나마 주문한 식료품의 상당수는 4~5일을 넘겨 도착했다. 만두를 만들기 위해 부추를 주문했지만 1주일 만에 도착했다. 온라인은 저가에다 실시간 서비스여야만 한다. 부추 배송이 왜 1주일이나 늦었냐고 문의를 했지만 아직까지도 경위 설명이나 사과 메시지 하나 없다. 일본에 체재할 때도 아마존닷컴에서 식료품을 주문했지만 늦게 배달될 경우 반드시 사과와 이유가 딸려온다. 단 하루라도 늦게 도착하는 제품이 극히 드물다. 나중에 알고 보니 쿠팡은 로켓 프레시라는 별도 서비스에 가입해야 빨리 온다고 한다. 이것도 회원 가입을 하고 추가 비용을 내고 일정 금액 이상 주문해야 한다고 하니 필자 같은 글로벌 노마드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는 아니다.

필자에게 밀려든 테무발 제품은 한국전쟁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하루 만에 두만강을 넘어온 인해전술 중공군들의 21세기 버전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대만족이다. 가격이 1000원 전후인 생활용품을 주문했지만, 가격에 비해 물건 수준이 ‘엄청’ 높다. 대륙에서 불과 1주일 만에 이뤄진 초고속 배달도 놀랍지만, 배송비가 제로라는 점에서 가히 혁명적이다. 중국 제품의 질적 수준이 낮다고 하지만, 현실을 고려하면 좋고 나쁘고를 따질 겨를이 없다. 한국에서 팔리는 물건의 상당수는 이미 중국제이기 때문이다.

최근 경험이지만 서울 인사동에서 수백 종류의 모자를 파는 가게를 만났다. 모자 수백 종류를 가게 주변에 전시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데 가격이 불과 2500원이다. 그러나 디자인이나 재료의 수준이 상당하다. 전부 ‘메이드 인 차이나’다. 이후 홍익대 앞을 지나가다가 3만원 가격대의 한국산 모자를 봤다. 필자 판단이지만, 2500원짜리 중국제보다도 디자인이나 질이 떨어진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하지만 2024년 테무발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은 그 같은 선입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사상률은 참전 미군의 거의 50배 이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2024년 테무 제품은 한국 물건에 비해 ‘결코’ 밀리지 않는다. 1 대 50은커녕 1 대 1 이상이다. 결론이지만, 테무를 한 번이라도 사용해 본 한국인이라면 테무 신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국, 나아가 국뽕이란 관점에서 테무를 멀리하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애국주의는 오래가지 못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최종 승자는 싸고 질적으로도 우수한 상품이다. 주변 모두에게서 재확인했지만, 테무에 한 번이라도 주문한 사람은 곧바로 테무 신자로 변한다.

일본 곳곳에 9800개가 넘게 있는 100엔숍. photo GaijinPot
일본 곳곳에 9800개가 넘게 있는 100엔숍. photo GaijinPot

일본 곳곳에 9480개나 있는 백엔숍 경쟁력

도쿄는 필자의 아시아 여행 기반이 되는 도시다. 아시아 각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표가 저렴하기도 하고 노선도 풍부하다. 당연하지만, 도쿄 현지 물가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백엔숍(百円ショップ)은 필자도 애용하는 일본 물가의 출발점이다. 과거 일본은 버블이 터지면서 잃어버린 30년에 들어섰다. 그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거품을 완전히 뺀 ‘꽉 찬’ 소비문화다. 대표적으로 3가지 일본발 상품이 열도 전체로 확산된다. 생필품은 ‘백엔숍’, 의류는 ‘유니클로(ユニクロ)’, 가구와 공간 장식은 ‘니토리(ニトリ)’다. 싸고 다채롭다는 것은 3가지 상품 영역의 특징이자 공통점이다. 그 결과, 21세기 들어 백엔숍과 유니클로 제품이 일본은 물론 한국과 아시아 전체로 퍼져나간다. 백엔숍의 경우, 2022년 기준으로 일본 전역에 무려 9480개나 있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팬데믹 이후 일본 소비시장의 패턴도 급변한다. 엔화 약세와 원자재 가격의 급등으로 인해 백엔숍, 유니클로, 니토리의 제품가격 인상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가장 변화가 심한 곳은 백엔숍이다. 지난 2월 중순 기준 백엔숍 상품 가운데 30% 정도는 이미 100엔을 넘어선 상태다. 200엔, 300엔 심지어 1000엔이 넘는 것도 적지 않다. 그 같은 분위기 속에서 새로 등장한 것이 300엔, 또는 500엔짜리 업그레이드 가게다.

백엔숍은 기능성에 충실한 제품이다. 디자인은 물론 최근의 글로벌 상식인 환경이나 인권과 무관하다. 강제수용소에서 일하는 티베트인이 만든 중국산 제품이라도 100엔에다 기능성을 갖출 경우 판매한다. 그러나 300엔, 500엔 상품은 다르다. 어린이 노동착취 같은 반인권·반환경 제품은 애초부터 퇴출 대상이다. 그 결과 백엔숍은 급속도로 줄어들면서 300엔, 500엔 생활용품 가게들이 급증하고 있다. 기존의 백엔숍도 300엔, 500엔의 중저가 가게로 변신하고 있다. 백엔숍 자체도 가격을 올리고 있지만, 인권과 환경에 주목하는 상품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열도의 생활용품 시장도 급변하고 있다.

한국 천원숍 가게도 서울에 들르는 즉시 찾아간 곳이다. 일본 백엔숍과 비교해보기 위해서다. 결론은, 한국 천원숍 제품의 절반 이상이 일본 백엔숍보다 비싸다. 필자의 관찰 결과지만, 천원숍 제품 가운데 일본보다 경쟁력을 갖춘 제품은 ‘딱 하나’에 불과했다. 1000원짜리 작은 양초로 한 세트당 9개가 들어있어 일본보다 6개가 더 많다는 점에서 저렴하다. 나머지 천원숍 상품은 일본보다 비싸거나 비슷한 가격대다. 그러나 디자인이란 점에서 보면, 천원숍이 백엔숍을 따라잡기 어렵다.

중국발 테무와 알리바바는 전 세계 상품시장을 한꺼번에 석권하는 쓰나미 이커머스의 주역이다. 한국은 물론 미국과 유럽도 테무와 알리바바의 쓰나미에 떠밀려 가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테무와 알리바바 영향력이 미미하다. 왜 중국발 쓰나미가 일본에까지 도달하지 못할까? 두 가지 이유가 배경에 있다. 소비자들이 인권과 환경문제에 주목하고, 기존의 백엔숍과 300엔, 500엔숍의 저력이 중국발 쓰나미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일본을 방문해본 한국인이라면 실감했겠지만, 가격과 디자인이란 측면에서 볼 때 일본 백엔숍은 한국 천원숍 상품을 압도한다. 한국과 달리 중국발 저가 제품이 일본에서는 크게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수입 중개상을 하는 필자의 친구는 백엔숍에서 파는 100엔짜리 화장품을 한국에 되팔 경우, 최하 5배 이상 가격에 판매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필자가 테무에서 구입한 제품을 서울 거리에 나가 팔 경우 최하 100% 이상 비싸게 팔 수 있다고 호언한다. 결론이지만 한국은 테무나 알리바바만이 아니라, 일본 백엔숍 쓰나미에 떠밀려 갈 수도 있다. 일제 백엔숍 상품이 테무처럼 일본에서 직수입되는 것도 눈앞의 현실이다. 최근까지만 해도 통했던 ‘저가의 중국제, 기술과 디자인의 일제 상품’이란 식의 평가는 이미 한물 간 생각에  불과하다. 중국제와 일제 모두 기술적으로나 가격 면에서 한국을 눈아래로 대하는 경쟁우위 상품이다.

기존의 100엔숍에서 진화한 300엔숍. 기능성 중심의 100엔숍에서 탈피해 환경, 인권에 주목하는 새로운 적자생존 소비문화 창구다. photo 유민호
기존의 100엔숍에서 진화한 300엔숍. 기능성 중심의 100엔숍에서 탈피해 환경, 인권에 주목하는 새로운 적자생존 소비문화 창구다. photo 유민호

일본의 올해 히트상품 ‘사와’붐의 배경

2024년 봄, 일본 내 최신 트렌드라고 하면 ‘사와(サワー)’부터 떠오른다. 사회현상이나 열풍을 넘어 21세기 청년 문화, 나아가 알코올 문화의 새로운 좌표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 사와는 칵테일로 통하는 음료다. 신선한 과일즙과 함께 단맛·신맛이 교차하는 청춘 미각의 상징이다. 일본에서 사와는 저농도 알코올 스파클링 음료를 말한다. 초식계(草食系) 캐릭터의 상징인 논알코올을 포함해 알코올 도수 3%, 5%, 9%로 이어지는 저농도 스파클링 주류다. 칵테일 바에서 만들어 마실 수도 있지만, 355mL 용량 캔에 담아 파는 대중적 차원의 음료다. 캔 하나에 150엔 전후로, 콜라나 차(茶)에 준하는 저렴한 가격이다.

사와가 일본에서 출시된 것은 10여년 전이다. 수요가 급증한 것은 팬데믹을 거치면서부터다. 특히 지난해 등장한 코카콜라사 제품을 계기로 사와의 인기가 수직 상승한다. 필자도 일본 체류 중 거의 매일 즐겼지만, 가히 혁명적이라 부를 만한 음료다. ‘레몬도(檸檬堂)’라는 이름의 사와로, 알코올 농도 제로에서부터 9%에 이르는 다양한 제품이 코카콜라사에서 등장했다. 일본 코카콜라사는 이미 주류업체로 진화하고 있다. 레몬도는 실제 레몬이 2개 이상 들어간 음료로, 캔을 여는 순간 레몬 향이 퍼져나간다. 필자가 확인했지만, 슈퍼나 편의점에 가도 레몬도 매장은 거의 텅 비어 있다. 날개 돋친 듯 팔린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사와의 인기가 비등하면서 음료회사 전부가 신제품 개발에 나선다. 맥주의 대명사 아사히(朝日)는 레몬도를 누르기 위해 총력을 다하는 중이다.  최신 유행에 특화한 잡지 ‘닛케이 트렌드’는 2024년 인기상품 예측 리스트에서 아사히 사와를 인기 2위로 올렸다. ‘미래의 레몬 사와(未来のレモンサワー)’라는 이름의 저농도 알코올 음료로 6월부터 시중에 판매될 제품이다. 아예 마른 레몬을 캔 안에 직접 넣은 제품으로, 캔의 윗부분을 뚜껑처럼 열어 마시는, 이른바 ‘왕뚜껑’ 스타일 음료다. 현재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판매만 하고 있지만, 수량도 제한되고 워낙 인기가 높아서 손에 넣기가 어렵다. 355mL 하나에 200엔 정도로, 이미 코카콜라 레몬도에 이은 21세기형 첨단음료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일본 사와는 팬데믹을 거치면서 진화된 결과라 해석할 수 있다. 알코올을 즐기지만, 저농도에다 저렴한 제품에 주목하는 소비자들이 레몬 사와 인기를 끌어올린 것이다. 맥주가 일본 주류의 대명사로 떠오른 것은 1960년대 고도성장 때부터다. 그 이전만 해도 맥주는 부자들만 마시던 특별 음료였다. 이케다(池田) 총리가 주도한 소득배가 시대의 결과물이자 신호탄이 바로 맥주였다. 사와는 닛케이 주식지수 4만엔대에 들어서며 일본 부활을 상징하는 21세기 열도 스타일 샴페인에 해당할지 모르겠다. 거품도 넘치고 달콤하며 뭔가 쿨하다는 점에서 사와와 샴페인은 비슷하다. 그러나 가격을 10분의1, 아니 100분의1로 떨어뜨렸다. 백엔숍·유니클로·니토리 스타일에 해당할 21세기 음료가 바로 200엔짜리 사와다.

테무와 알리바바, 백엔숍조차도 한국 버블의 고물가를 틈타 밀려들고 있다. 인터넷 정글 속에서 이뤄지는 무한 적자생존의 법칙이라고나 할까? 막아줄 방패나 친구는 처음부터 없다. 결국 자생력이다. 중공군 100만명이 밀려왔지만, 한국은 국토방어에 성공했다. 무한 경쟁을 통해 강해지고 생존할 수밖에 없다. 사와에 준할, 거품을 완전히 뺀 생존 제일 소비문화가 한국에서도 탄생하길 기원,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