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트 아이스 티의 원재료를 공급받는 세계 최대 유기농 차밭인 모잠비크의 ‘그린 엘도라도’.
저스트 아이스 티의 원재료를 공급받는 세계 최대 유기농 차밭인 모잠비크의 ‘그린 엘도라도’.

2022년 5월 ‘어니스트 티의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코카콜라에 맞서 그해 6월 어니스트 티의 창업자 세스 골드먼은 ‘차 음료 사업을 재개하겠다’라고 선언했다. 어니스트 티의 창업 미션을 이어가는 동시에 진일보한 차를 만들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그가 꺼내든 새 브랜드는 ‘저스트 아이스 티(Just Ice Tea)’. 그해 6월 29일 이 브랜드를 세상에 선보였고 그해 9월 6일 뉴욕시의 PLNT 버거에서 저스트 아이스 티의 첫 번째 병을 판매했다. 이와 동시에 소매 출시 파트너를 1000곳 이상 확보했다. 거의 빛의 속도로 코카콜라에 의해 좀비로 전락한 어니스트 티의 부활 작업을 주도해나간 것이다.

어니스트 티의 창업자 세스 골드먼이 코카콜라에 인수됐다 판매 중단된 어니스트 티를 부활시키기 위해 만든 ‘저스트 아이스 티’
어니스트 티의 창업자 세스 골드먼이 코카콜라에 인수됐다 판매 중단된 어니스트 티를 부활시키기 위해 만든 ‘저스트 아이스 티’

3개월 만에 출시하고 바로 1위 등극

부활은 성공적이었다. 천연·유기농 제품 산업을 위한 데이터를 발표하는 ‘내추럴 채널’ ‘SPINS’ 등의 조사 결과 저스트 아이스 티는 시장에 나오자마자 ‘가장 많이 팔리는 RTD 차 음료’로 떠올랐다. 전국적인 식품 서비스업체와 드러그스토어 및 편의점 체인에 판매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룬 신기록이었다. 출시하자마자 1위로 등극한 것도 놀랍지만 더욱 경탄할 일은 신속한 출시였다. 대형 음료 회사에서는 신제품 출시에 18개월이 걸리면 빠르다고 한다. 아무리 발 빠른 벤처기업도 3개월도 채 안 되는 기간에 새 브랜드를 내놓는다는 것은 사실 상상초월의 일이다. 어니스트 티에 이어 또 하나의 작은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이 기적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세스의 가족과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의 인내와 더불어 사회 인식 변화가 이끌어낸 합작품이었다. 1990년 세스와 결혼한 줄리 파커스(Julie Farkas)는 ‘정직한 차를 만들어 사업으로 세상에 기여하겠다’라는 어니스트 티의 창업 미션을 지지한 첫 번째 동지였다. 어니스트 티 창업 당시 초기 투자금 모집에 발 벗고 나선 헌신적인 투자자이기도 했다. 평소 지구환경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기업에 관심이 많던 줄리는 콩으로 육류 대체품을 만드는 식품회사인 비욘드미트(Beyond Meat)를 2012년 세스에게 추천했다.

목축업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식물로 좋은 맛을 내는 플랜트 베이스 미트(Plant-based meat)를 만들 수 있다면 지구환경 보호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한 세스는 어니스트 티를 코카콜라에 매각한 자금으로 비욘드미트에 투자했다. 2015년 비욘드미트의 회장에 취임한 세스의 주도하에 2019년 5월 뉴욕 증시에 상장한 비욘드미트는 공모가의 10배까지 주가가 오르기도 했다. 빌 게이츠와 영화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투자한 비욘드미트는 푸드테크의 신데렐라가 되어 한동안 ‘밈’ 주식이 됐다.

어니스트 티와 비욘드미트로 재정이 넉넉해진 세스 부부에게 지구환경운동가로 활동하던 세스의 장남 조너 골드먼은 “이제는 생산제품을 넘어 기후변화와 환경파괴에 대처할 수 있는 교육과 체험까지 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자”라고 건의했다. 마하트마 간디의 명언 ‘세상이 바뀌길 바라면 너 자신을 먼저 바꿔라’에서 영감을 얻은 조너는 ‘잇 더 체인지(Eat The Change)’라는 이름으로 벤처기업을 만들자고 부모에게 권유했다. 훨씬 큰 규모로 더 긍정적인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플랫폼 사업에 동의한 세스는 이 순간을 “아버지의 발자취를 아들이 이어가는 것이라고 믿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거꾸로 아버지가 아들의 발자국을 따라가게 됐다”라며 기뻐했다.

식생활 변화를 통해 지구를 보호하려는 플랫폼 ‘잇 더 체인지’ 창립에 든든한 지원군도 합류했다. 어니스트 티를 공동창업했던 배리가 엔젤투자자로 참여한 것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즐겨 찾은 햄버거 레스토랑 굿스터프이터리(Good Stuff Eatery)의 맛을 책임지는 셰프 스파이크 멘델슨도 공동설립자로 합류했다. 매장 내 스마트팜에서 직접 기른 무농약 채소와 냉장 소고기만을 사용해 패티를 만드는 굿스터프이터리는 서울 강남대로에서 2022년 5월 31일부터 10월 31일까지 대우산업개발 자회사 이안지티가 시범 운영하며 극강의 신선함을 보여줬다. 당시 매장을 직접 찾은 필자의 경험으로는 햄버거와 페어링할 차 음료가 없다는 점이 다소 아쉬웠다.

잇 더 체인지의 버섯 스낵 출시로 바쁜 와중에 세스는 코카콜라로부터 ‘어니스트 티 브랜드를 철수하겠다’라는 전격적인 통보를 받았다. 세스는 스낵사업을 잠시 접어두고 어니스트 티의 명맥을 잇는 저스트 아이스 티의 성공을 최우선 과제로 정했다. 다행히 코카콜라와 경쟁 금지 조항을 체결하지 않았던 세스는 차 음료 사업을 위한 펀딩에서 1450만달러를 모금했다. 어니스트 티 창업 당시 50만달러로 시작한 것에 비하면 넉넉한 자금이었다. 게다가 식음료 유통업체와 공급업체로부터 투자받은 것도 저스트 아이스 티의 초창기 성공에 일조했다.

세스 골드먼이 투자에 성공해 저스트 아이스 티의 부활 자금원이 된 대체육 회사 ‘비욘드 미트’의 제품들. photo Just Ice Tea, Beyond Meat
세스 골드먼이 투자에 성공해 저스트 아이스 티의 부활 자금원이 된 대체육 회사 ‘비욘드 미트’의 제품들. photo Just Ice Tea, Beyond Meat

세계 최대 유기농 다원 ‘그린 엘도라도’

세스는 중국과 인도에 있는 유기농 차밭을 비롯해 어니스트 티와 24년간 공정거래를 해온 농장주들에게 차 사업재개를 알렸다. 세스와 스파이크는 워싱턴 DC를 출발해서 런던을 거쳐 케냐에 도착해 육로로 모잠비크의 오지로 향하는 60여 시간의 여행 끝에 차 데 마고마(Cha de Magoma)에 도착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반지 원정대가 ‘절대반지(The Ruling Ring)’를 찾아가듯 어렵게 이들이 도착한 곳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유기농 다원이 있는 ‘그린 엘도라도’였다. 세스는 붉은 화산 토양의 경사면에 100년 전 포르투갈이 조성한 그림같이 펼쳐진 차밭을 공정거래로 확보했다.

공정무역 인증 차와 유기농 천연 감미료 사용에 초점을 맞춘 저스트 아이스 티는 이후 탄산음료로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코카콜라가 쥐고 있는 ‘절대반지’와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했다. 거대기업 코카콜라의 프리미엄 차 ‘골드 피크’뿐 아니라 펩시의 ‘퓨어 리프 티’와 유니레버의 ‘타조’도 이미 프리미엄 차 음료 시장을 선점하고 있었다. 위기를 기회로 보는 세스는 코카콜라가 어니스트 티를 철수시키는 바람에 생긴 톱엔드(top-end) 차 시장의 여백을 저스트 아이스 티가 점유할 수 있다고 봤다. 그의 말대로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일지 모른다.

실제로 50개국 이상의 소비자와 시장에 관한 산업 데이터를 비교 분석하는 전문 툴 ‘스태티스타’의 통계에 따르면 RTD 차 음료 시장의 올해 글로벌 매출은 6년 전보다 40% 증가해 297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코카콜라와 스타벅스처럼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절대 맹주가 없는 차 음료 시장에 우리의 토종기업도 세계무대로 나아가 하루빨리 차의 한류를 펼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